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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마탑에서 테러 모의는 최소 대학원 5년 이상의 중죄다.

        불법 폭발물 조제 혐의에 2인 이상의 공모라면 그 형량은 10년에 논문 필사 200회까지도 추가된다.

        비나는 순혈 마법사라 기껏해야 야단 맞는 것에 그치겠지만 나는 치안대에 잡혀가면 다음 날 토비랑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런 꼴만은 면하고 싶었기에, 극마법 시험이 끝나자마자 프리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라도 해주학파에서 학회에 참석할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같이 간다는 핑계로 도망칠 심산이었다.

       

        ====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선배 뭐좀 물어봐도 돼요?

        — 프리나나 : 뭔데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저희 이번 학회에 따로 발표할 연구 같은 건 없죠?

        — 프리나나 : 당연하지 난 40층 도전하느라 바빠

        ====

       

        극채색 입단 테스트 당시 친구로 등록해두었던 계정.

        예상대로 활발하게 갤질을 하고 있는 프리나답게 바로 답변이 도착했다.

       

        허나 내용은 실망스럽게도 이번 학기에는 학회에 나갈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안 좋은 소식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

        — 프리나나 : 그러고 보니 벌써 그 시기네, 너 길 가다 누가 해주학파냐고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지 마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왜요?

        — 프리나나 : 학회에 우리를 주제로 나오는 논문이나 연구는 쏟아질 테니까. 인터뷰 따게 해준답시고 따라갔다가 코 꿰이면 바로 연금학파 비밀 실험실로 직행하는 거야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그렇군요, 주의할게요

        — 프리나나 : 근데 전부터 신경쓰였는데 너 닉네임은 대체 왜 그 꼴이야? 분명 갤러리는 눈팅만 한다고 했었…….

        ====

       

        별 도움 안 되었던 그녀와 연락을 마치고 돌아가자 빈 강의실에서 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제조를 끝마친 사제폭탄들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꼴을 보아하니 여기야말로 이세계의 로스 앨러모스였다.

       

        다른 순혈마법사들은 마탑 최상층 공략도 하고 눈엣가시같은 정보부의 에이스를 겁박하기도 하며 바쁘게 지내는데.

        어째 비나만큼은 별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 보였다.

       

        “학파에 허락은 받았나요?”

        “예, 짝수 기수는 학회에 나가면 안 된다는 학파 규칙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럼 규칙을 바꿔야겠네요. 기다려보세요, 이건 아직 시제품이지만…….”

       

        태연하게 남의 학파에 전쟁을 선포해 너희의 헌법을 뜯어고치겠다 선언하는 포부.

        비아지오 따윈 흉내낼 수조차 없는 진짜 광기였다.

       

        “아뇨 아뇨,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규칙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헌데 비나 님, 저는 다른 일정이 많아 이번 학회엔 참여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서라도 빠지는 수밖에.

        나는 용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은 심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제 마법실력이 비나 님의 연구에 이름을 같이 올리기에 부족한 건 둘째치고 다른 일정이 많습니다.”

        “어떤 일이죠?”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실 손님들도 모셔야 하고 고행의 층 시련도 준비해야 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제 검이 아파서 이 녀석을 고치는데만 밤낮으로…….”

        “?”

       

        비나의 고개가 갸웃하고 돌아갔다.

        새하얀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히고 아랫입술이 살짝 튀어나온 모습.

        이번 학기 동안 비나 심리학을 전공한 수석 조교의 해석에 따르면 ‘난 네 말을 전혀 못 알아먹겠고 설령 알아먹어도 내가 원하는대로 할 것이니 적당히 나불대라’는 뜻이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어떤 이유를 붙여도 순혈 마법사와 함께 학회에 나간다는 영광에 비하면 초라한 것일 테지.

        하는 수없이 나는 가방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저번에 비나 님이 주신 숙제를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학기가 끝나면 시간이 좀 생길 테니 진득하게 도전해보려고요.”

        “아…….”

       

        실상은 연습은 고사하고 난이도가 지금까지 배운 간섭기로는 건드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높아 다른 용도로나 쓰는 중이었다.

        밤에 더울 때 수건에 감싸 목침처럼 배고 잔다든가, 아녜스와 베개싸움할 때 먼저 잡은 쪽이 이기는 필살 무기로 쓴다든가.

       

        그래도 자신이 준 마법으로 연습을 한다는 핑계는 먹히는 모양이었다.

        롤케익 모양의 얼음을 내려다 본 비나의 정수리가 묘하게 붉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노력한다면…….”

        “아쉽지만 비나 님의 연구 성과가 학회에서 박수갈채를 받기를 기원해 보겠습니다.”

        “사감은 제 고결함을 이해하는 사람이니 특별히 봐주는 거에요.”

        “네, 그럼 저는 이만…… 응?”

       

        다음 학기에 극마법 수업은 안 열리겠군.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빠르게 떠나려던 순간, 롤케익을 넣은 가방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툭!

       

        책상 위에 놓인 것들과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투명한 원통에 담긴, 한 병의 물.

        병의 라벨에는 ‘플루비아제(製) 청정 얼음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

       

        아차, 난파선에서 받았던 걸 깜빡하고 계속 넣어놓고 있었구나.

        자신의 발치로 굴러온 물병을 본 비나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거의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한 용의 입속에서 으깨진 미트볼이 되기 직전.

        나는 귀신같은 반사신경으로 병을 밟아 깨뜨리며 말했다.

       

        “경쟁사 제품의 약점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이겨야 하잖아요.”

       

       

       

        *

       

        울며 겨자먹기로 학회 참석 명단에 내 이름을 제출한 다음 날.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인 강의실 건물에 새로운 얼굴들이 기웃거렸다.

        대륙 각지에서 마탑을 찾아온 다른 참석자들과 그들을 따라 도착한 기자들이었다.

        플랫폼이 미어 터지고 오랜만에 외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거주 구역에 늘어선 호텔들이 가격을 올리기 바빴다.

       

        이렇게 되면 매년 가장 바빠지는 부서는 다름 아닌 생활부였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생활부장이 기숙사 사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했다.

       

        “호텔이 포화 상태인 관계로 오늘 도착한 기자단 중 일부는 기숙사 시설을 이용하기로 했다.”

        “올해도 작년처럼 남는 방이 없는 겁니까?”

        “그래, 명단 넘겨줄 테니 수습생들 빠져나간 공실 중에 상태 좋은 방 위주로 안내해드려.”

       

        마탑에는 네 개의 기숙사가 있다.

       

        메릴랜드 관.

        미티어 관.

        스피카 관.

        그리고 바드슈타펠 관.

       

        그 중 내가 맡는 메릴랜드 관은 마탑의 초기에 세워진 만큼 다른 세 곳 보다 시설이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입탑식 때 메릴랜드 관에 배정받은 학생들은 하나같이 나쁜 길(해주학파)로 빠지거나 흑마법사로 전직한다는 소문까지 있을까.

       

        반대급부로 빨리 성공해서 이곳을 뜨겠다는 의지가 넘치는지 대부분의 수습생들이 빠져나가는 곳도 여기였다.

        가장 많은 공실을 보유한 나를 생활부장이 따로 불러 당부했다.

       

        “클락, 너도 알다시피 기자들은 자기들 먹잇감이라면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족속들이야. 숙소 퀄리티가 안 좋았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게 편의를 좀 봐주기 바란다.”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학회가 주 관심사인 마탑에서 기숙사 상태까지 기사로 내는 별종은 거의 없었다.

        참석자들 만큼이나 기자들도 마탑 출신인 경우가 많아서 첫째 날 이후에는 다른 학파의 지원을 받아 숙소를 옮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생활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번 더 주의를 주었다.

       

        “이번 기자단 중에는 황실에서 파견한 인원도 섞여 있다는 소문이 있어.”

        “황실에서 마탑을? 무슨 이유로요?”

        “아마 이번 학회에서 발표될 연구나 논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겠지. 어쨌거나 뒷말만 안 나오게 잘 하면 돼. 우리 수훈 알지?”

        “네, ‘복도에서 뛰지 마라’잖아요.”

        “그거 얼마 전 원탁회 때 바꿨다.”

       

        오직 평화로운 정년퇴임만을 바라는 생활부장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으스스한 어투로 말했다.

       

        “이상(異常)은 없다.”

        “네?”

        “그것만 지키면 돼.”

       

       

       

        *

       

        나는 명단을 들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메릴랜드 관의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꼭 패키지 여행 가이드 같았다.

       

        다소 쪽팔렸지만 효과는 좋았는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카메라 역할을 하는 마도구를 들고 있던 이들 중 대표격으로 보이는 남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은발의 여인과 체격이 좋은 청년이었다.

       

        “램버스 지의 마법부 소속 기자 그레엄입니다. 이쪽은 같은 신문사의 사회부 담당인…….”

        “멜이다.”

        “클락입니다. 메릴랜드 관 사감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라면 모험가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직접적으로 얼굴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혹시 내 정체를 들킬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그들은 내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4층 전체를 쓰시면 됩니다. 통금 시간 외에 돌아다니실 경우 되도록 미리 말씀해주세요.”

        “식사는 어디서 하면 될까요?”

        “학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구내식당을 이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반찬이 죄다 코다리 요리라 딱히 추천하지는 않지만요.”

       

        누가 기자들 아니랄까봐 벌써부터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기숙사를 멋대로 쏘다니는 건 불만이었지만 금방 학회로 관심이 돌려질 것이기에 조금만 참기로 했다.

       

        그들에게 숙소를 안내해주고 사감실로 돌아가려던 나는 복도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멜을 발견했다.

        그녀는 또 어느샌가 제 멋대로 복도에 나와있는 메릴린 동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사진을 찍는 듯 했는데 틱틱! 소리만 날 뿐 찍히진 않았다.

       

        요즘 기자는 저런 수준이어도 할 수 있나보군.

        나는 동상을 치우기 위해 옆을 지나가며 조언을 건네었다.

       

        “거기는 렌즈라 손자국이 묻으면 안 됩니다.”

        “너는?”

        “마탑 출신이 아니신가보네요, 이런 동상에 관심을 가지시는 걸 보니. 다른 분들은 개최식 행사장으로 가셨는데 안 따라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흥, 지원서를 전부 살펴봤다만 전부 되다 만 놈들 천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황실의 금을 갈취하려는 생각뿐이지-.

        차라리 국고를 파산시킬 생각이라면 이야기가 통하련만-.

       

        카메라를 집어넣은 멜이 연초에 불을 붙였다.

        실내흡연은 금지라고 말하려던 찰나, 마치 칼이 뽑히는 듯한 속도로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물건이 내게 내밀어졌다.

       

        “나는 다른 기삿거리를 찾고 있다. 듣자하니 마탑엔 1층에 놓인 비석부터 하여 마법사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많다고 하더군.”

        “그런 편이죠. 어떤 걸 찾으시는지?”

        “이거다.”

       

        찢어진 한 장의 위치노트.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은 나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왔다.

       

        ====

        [메릴랜드 관 4대 불가사의]

       

        1. 움직이는 메릴린 동상

        2. 눈물 흘리는 얼음 정수기

        3.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는 의문의 여인

        4. 사감실을 배회하는 누더기 복장의 망자

        ====

       

        “이 중 하나라도 아는 바가 있나?”

        “……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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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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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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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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