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1

       

       

       “···진정하셨습니까?”

       

       “덕분에요. 고마워요, 수사관님.”

       

       “편하게 불러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이게 편해서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귀찮아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웬만하면 사소한 일에는 작가님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작가님의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욱더 평범한 세상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지니까.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시는군요. 처리할까요?”

       

       “됐어요. 이 정도로 경고했으면 더 다가오진 않겠죠.”

       

       

       수사관이라면 저 여자를 체포한다든가 하는 방법이 있을 테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기로 했다.

       

       한 번 더 다가오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으니까. 굳이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역시 수사관님을 영입한 건 좋은 선택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일이 귀찮아질 뻔한 걸 막아준 이하율 수사관을 가볍게 띄워주었다.

       

       위버멘쉬와의 싸움 이후로, 나는 주변에 부하를 한 명 이상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그 귀찮게 덩치만 커다란 고양이 자식이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일을 그르칠 뻔했던 날.

       

       그날,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만일 그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면?

       

       더 빠르게 처치하고 도착하거나, 아예 맡겨두고 나는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었다. 부하는 있었음에도.

       

       아라크네는 그저 이름뿐인 조직. 명목상의 리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이라도, 스피라도, 이하율 수사관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어.

       

       비밀 조직의 부하라기보다, 그저 집에 얹혀사는 메이드.

       

       대충 그 정도 느낌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애초에 아라크네도 작가님의 실수와 설정 오류를 메꾸기 위해 적당히 지어낸 조직이니, 굳이 조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딱히 부하의 필요성도 느낀 적 없었고.

       

       ···유시우가 죽을 뻔한 모습을 보기 직전에는 말이야.

       

       

       “이 일대의 치안은 요즘 어떤가요?”

       

       “아주 좋습니다. 빌런들이 몸을 사리고 있어요. 아라크네 덕분입니다.”

       

       “···좋네요.”

       

       

       내가 안일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 반응하면 나 혼자서는 늦어.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건이 터지는 이유 자체가 유시우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니까.

       

       주인공에게 시련을 부여하고, 그 시련을 타파하는 것. 그것이 작가님이 혼란을 바라는 이유. 사건이 일어나는 건 필연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터지는 걸 막지는 않되, 변수를 줄여야 했다.

       

       여태까지 해왔던 것과 다르지 않아.

       

       다만 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 놀고 있던 손을 사용하는 것뿐.

       

       라이라는 적합하지 않다. 한번 제대로 싸우면 광폭화 탓에 일대가 부서져 버려.

       

       스피라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 숨어있기에는 위험해. 그 꼬리 탓에 너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입 경험도 풍부하고, 은신에도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이하율 수사관이 가장 제격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녀는 나를 도와줄 거다.

       

       협회도 반발하지 않았다. 엘리트 수사관 한 명이 억제하는 범죄보다, 아라크네가 억제하는 범죄가 훨씬 많았으니까.

       

       잡혀도 감옥 좀 다녀오면 된다는 마인드로 가볍게 범죄를 저지르던 빌런들이 아라크네에게 하나둘 목숨을 잃자, 빌런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이미 뒤가 없는 놈들은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더 크게 벌이게 되었지만, 그건 자잘한 사건이 줄어들어 체력을 비축한 다른 수사관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나.

       

       

       “그런데, 아르테 님. 그를 감시하는 이유는 대체 뭡니까? 그 나이대치고는 유능하지만, 감시할 정도까지는···.”

       

       “사건의 중심이니까요.”

       

       “네?”

       

       “그의 주변에서 사건은 언제나 벌어질 테니까요. 미리 준비해야죠.”

       

       “그건, 예언입니까?”

       

       

       예언, 예언이라···. 딱히 틀린 말도 아닌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예언자. 혹은 신도의 역할쯤 되려나.

       

       세상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신의 교단이라니, 듣기만 해도 사악한 이교도 같네.

       

       

       “···그래요. 예언이자 운명이라고 해둘까요.”

       

       

       세상은 벌써 시끄러웠다.

       

       위버멘쉬, 아라크네, 반파된 아카데미.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도 번화가를 걷다 보면 방학식 무렵의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오늘만 해도 그랬지. 다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

       

       창작물이라는 건 언제나 그런 법이니까.

       

       더욱더 큰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더욱더 큰 사건으로 주인공을 밀어 넣어야 하는 법.

       

       그러니 세상은 더 시끄러워질 거다.

       

       세계 멸망의 위협에 노출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

       

       이 세상에는 주인공이 있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자의 사랑을 받는 존재.

       

       이 인형극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

       

       나는 그가 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보조할 뿐.

       

       그를 보조해서, 이 세상을 최대한 멀쩡하게 유지한다.

       

       과연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으니까.

       

       

       “···하아.”

       

       

       세상이 부서지고 혼란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멸망 직전까지 불타는 건 안 된다.

       

       어쩌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유시우를 지켜본다.

       

       세상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

       

       

       

       “미르, 미르···. 정말 죽어버렸구나.”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기분이다.

       

       며칠을 내리 울고만 있었던가.

       

       초인의 튼튼한 신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초인의 신체로 버티기만 하는 것도 슬슬 한계인 것 같지만.

       

       

       “믿기지 않아, 미르. 한순간에, 한순간에 네가···.”

       

       

       영롱한 뿔이 달린 머리를 끌어안았다.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밀어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미르.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쓰다듬어주지 못해.

       

       ···알고 있다. 빌런은 언제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미르와 내가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기 직전에 죽어버리다니.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이까짓 게 뭐라고, 미르가···! 유전자를 섞는 게 대체 뭐라고!”

       

       

       잠깐.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구슬이 역겨워져 바닥에 내던지려다 멈칫했다.

       

       ···유전자를, 섞어?

       

       문득 미르의 뿔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사람이다. ···하지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종족의 유전자를.

       

       

       “이걸 사용하면···.”

       

       

       미르와 하나가 될 수 있어.

       

       그녀는 죽은 게 아니야. 나와 함께하는 거야.

       

       미르는 항상 말했다.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고.

       

       그렇기에 스스로 보스를 자처하지 않고 간부로 남았다.

       

       그렇기에 처음 완성된 환약을 제일 먼저 자신이 사용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평생 그녀와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충성했다.

       

       맹세를 지킬 시간이었다.

       

       

       “···미르. 너의 꿈은 내가 이루어줄게.”

       

       

       십이지 중에 가장 이질적인 것을 따지자면 단연코 용이다.

       

       그야, 용은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니까.

       

       다른 간부들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이지만 용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미르는 왜 자신을 용이라고 자칭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혼자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오직 그녀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자를 받아들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만이 특별하다. 그렇기에 환약은 미완성이었다.

       

       

       “원래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와 나를 섞는다면, 분명 가능할 거야.”

       

       

       구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삼켜야 해.

       

       

       “우급, 읍···. 끄윽···.”

       

       

       뱃속에 이물이 들어차는 끔찍한 감각.

       

       억지로 용광로를 삼키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눈치챘다.

       

       ···냄새가, 더 잘 느껴져.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 고통은 이미 겪고 있었으니까.

       

       흙 내음, 땀 냄새, 미르의 시신에서 나는 악취까지.

       

       감각이 순식간에 확장되어, 평소에 느끼던 감각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온몸이 탈진에 빠져 감각을 느끼기 힘들어진 상태였는데도.

       

       

       “이거라면···! 이거라면, 가능해···!”

       

       

       용광로의 기능과 사용법이 머릿속에 스며들듯 녹아들었다.

       

       이 힘이라면 가능해. 역시 미르는 옳았어.

       

       미르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모두가 마나를 가질 수 있는 세상.

       

       내가 이루어줄 수 있었다.

       

       내가 해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미르를 바라보았다.

       

       

       “미르, 너는 언제나 틀리지 않았어. 이 힘이라면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아름답게 빛나던 그녀의 비췻빛 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미르는 오롯이 혼자 유전자를 감당해냈다.

       

       마수의 유전자를.

       

       

       “너와 함께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미르.”

       

       

       

       ***

       

       

       

       “진정, 진정하는 거야···. 유시우···.”

       

       

       시우는 집에서 푹 쉬지를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쩌다 보니 집에 들고 왔던 실을 버리는 걸 깜빡하고 집에 놔뒀는데, 오늘따라 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버려야 하는데···. 버려야 하는데···.”

       

       

       문득 오늘 보았던 아르테의 비키니가 떠올랐다.

       

       ···비키니도 검은색이었지.

       

       형형색색의 실 중에서, 검은색의 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아아아아악!”

       

       

       시우는 집 앞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이대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버릴 수도 없었다. 버리기 위해 만지면 이상한 생각이 들 것만 같았으니까.

       

       땀이라도 빼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도 아르테의 레오타드 실 나눠줬으면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