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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

        

       상(相)이 비치고, 뒤틀리고, 반사된다.

       하나에 비친 상은 다른 거울에 퍼지고, 다른 거울에 퍼진 상은 다시 다른 거울에 퍼지며 무수히 많은 상을 비추며 한 사람을 수십, 수백으로 만든다. 마주 본 거울에서는 이계로 통할 것처럼 무수히 많은 상이 복사되고, 거울이 벽이 되어 세계의 칸을 나누며 수없이 복사되고 또 반사되며 그 기괴함을 더한다.

       그리고 그 끝에 점처럼 변한 곳에 있는 상(相)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것은 주인 된 자가 움직이는 것인가?

       거울 속의 형체가 움직이는 것인가?

         

       그저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 자아를 뒤흔들고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풍경.

       그 중앙에서 점술사는 카드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카드 한 장을 손가락 위에 얹어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 셔플을 하면서 놀기도 했으며, 카드를 튕기며 받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카드를 가지고 노는 마술사 같기도 하였고, 손님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장난으로 달래는 광대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스슥.

         

       점술사가 손장난을 계속하는 그때, 천막 입구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무언가 스치는 듯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린 것이다.

         

       “어머~슬슬 오시나 보네?”

         

       작은 소리였다.

       벌레가 날갯짓하다가 어딘가에 부딪쳤을 때 날법한 소리였고, 다리 여러 개 달린 것이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기어 다닐 때 날법한 소리였으며, 천장을 기어 다니던 거미가 발을 헛디뎌 바닥에 떨어졌을 때 날 법한.

       그런 아주 작디작은 소리였다.

         

       다만 그 소리는 작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슥.

         

       소리가 들린다.

       작은 소리는 천막 입구에서 기어와 벽을 타고 움직였다.

         

       스슥.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펄럭이며 날갯짓하는 새가 그러하듯, 공기를 밀고 허공을 뛰며 하늘로 날아올라 천장을 메웠다.

         

       스슥.

         

       은밀히 기어가는 소리는 땅바닥에 거꾸로 몸을 뒤집고 기는 뱀이 내는 그것과 흡사했다. 부드러운 배가 아닌 비늘로 땅을 기는 듯한 소리는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기괴함이 있었다. 모래가 비늘에 스치며 내는 소리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 소리는 뱀이 아니라 뱀 모양을 한 무언가가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하는 섬찟한 상상마저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는 한 군데로 합치기 시작하였으니.

       이는 벌레 떼가 날갯짓하는 소리와도 닮았고, 음산한 밤에 작은 나뭇잎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와도 매우 흡사하였다.

         

       “자기, 왔어?”

         

       점술사는 제 눈앞에 날벌레들이 가면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카드로 장난질하는 것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상을 갖춘 벌레들은 마치 사람이 입을 벌리듯 천천히 입을 움직여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얇은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모기가 성대의 역할을 하였고,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나방이 그것을 도왔다.

         

       [ 안-녕- 하신—가아? ]

         

       느릿하고 잡신호가 낀 듯한 소리.

       가느다랗고 잡음이 섞인 듯한 탁한 목소리였다.

         

       듣는 것만으로 피부에 닭살이 돋게 하기에 충분한 목소리였지만 점술사는 목소리가 거슬리지도 않는지 피식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안녕하지 못해 자기야. 이렇게”

       “개수작을 부렸는데 어떻게 내가 너를 환영하겠냐, 이 개자식아.”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듯 말하는 여성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그 뒤를 잇듯이 거울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따랐다.

         

       “이 씨-이-파-알. 웬 사람 같지 않은 냄새가 난다 했더니 제 새끼를 까고 가?”

       “자기야. 남의 업장 앞에 징그러운 벌레 새끼를 풀어놓고 가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매너야?”

       “그냥 전언용이라기에는 네놈 새끼 냄새가 어찌나 진동하던지”

       “어디서 피로 목욕하고 썩은 시체로 배를 채우고 오셨나? 자기 몸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 어떻게 천막으로 경계를 만들었는데도 냄새가 풍기니?”

         

       점술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진성을 노려보았다.

       점술사는 복싱 자세를 취하며 진성을 노려보았다.

       점술사는 카드를 손가락에 끼우고 언제든 날릴 준비를 했다.

       점술사는 흥분한 듯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숫자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점술사의 형상.

       반사되고 복사되며 늘어난 상은 제각기 다른 행동을 하며 진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 본 거울의 저편에서 점술사가 벽을 넘어서 그에게 다가왔고, 바닥에 꼿꼿이 서 있는 점술사는 그 모습이 부서지고 박살 나며 형체를 바꾸고 있었다. 허공에 맺힌 상에서는 점술사가 허공을 밟으며 진성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땅에 세워진 벽에서는 한없이 넓어 보이는 공간 속에서 발걸음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걸음걸이로 현혹하고 있었다.

         

       [ 그으을쎄에에에. ]

       [ 인사나 하러 왔는데,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가? ]

         

       점술사라는 개체가 군체가 되고, 군체는 곧 군대가 되었다.

       벌레로 이루어진 몸이 군대에 포위된 것 같은 형국이었지만, 진성은 아무런 압박도 느끼지 않는 듯 말했다.

         

       “인사는 사람이 하는 거고. 네가 하는 게 아니야 괴물 새끼야.”

       “나는 자기가 누군지 알 것 같아. 예쁜이 중에서 활기찬 애가 있었는데, 네가 그 예쁜이 옆에 붙어 있는 주술사지?”

       “예쁜이한테선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길래 평범한 줄 알았더니만, 재수도 더럽게 없지.”

       “자기가 천막 앞을 지날 때 어찌나 기괴하던지. 토할 뻔했다니까?”

       “게다가 문 앞에 벌레 새끼를 까고 가는 게 아주 엿 같더군. 개-새끼야.”

       “그때 느꼈지. 아, 오늘 여기에 괴물 새끼가 오겠구나.”

         

       수많은 점술사는 여자의 목소리로. 남자의 목소리로 번갈아 그렇게 말하며 손에서 카드 한 장을 뽑았다. 트럼프 카드와 타로를 뒤섞어 만든 덱에서 뽑힌 것은 태양.

       노란빛과 주홍빛으로 화려하게 피어난 해바라기가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나 있고, 그 사이에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웃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카드였다.

         

       “예쁜이가 활기차서 관심을 좀 가졌을 뿐인데, 괴물 새끼가 찾아왔네?”

       “여동생을 끼고도는 게 아주 합스부르크 왕가 새끼들 저리 가라야. 왜, 아예 결혼까지 하지 그러냐. 제 어미도 알아보지 못할 새끼 같으니.”

       “어머, 그런 욕은 먹히지도 않을 거야. 보니까 냄새가 다른 게 같은 핏줄도 아닌 것 같던데 뭐.”

       “하긴 저런 괴물 새끼 여동생이 사람일 리가 없지. 하하하!”

         

       진성을 도발하듯 말하는 그들의 손에선 불꽃이 피어났다. 태양에 그려진 해바라기는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고, 불꽃은 피어난 해바라기처럼 빛을 발하며 넘실거리며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얼핏 보면 해바라기의 형상이요, 손안에 피어나는 아주 작은 태양과도 흡사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망자들이 무덤가에서 불꽃을 피워내듯 싸늘한 불빛이 감도는 천막 안은 순식간에 온갖 불꽃들이 둥둥 떠다니는 연회의 장소가 되었고, 사신이 길을 잃은 망혼(忘魂)을 인도할 때 사용하는 등불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빛을 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엿 같은 괴물 새끼야! 당장 내 집에서 꺼져!”

         

       그리고 터져 나오는 노성(怒聲)과 함께 불빛은 일제히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평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거울에 비치고 늘어나는 불빛은 일제히 벌레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은 불꽃이 촉수를 꿈틀꿈틀 움직여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였고, 수많은 병사가 칠흑 같은 어둠에서 일제히 예광탄을 쏘아버리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파직!

       탁!

       타다닥!

       

       가면은 다시 분해되어 벌레가 되어 사방으로 숨어들려고 했지만, 시각이 왜곡되고 공간이 비틀린 천막에서는 피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 때문에 벌레들은 하나둘 타오르는 불꽃에 맞아 잿더미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고, 이윽고 단 한 마리의 벌레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벌레는 사라졌다.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던 가면의 형상도.

       잡신호가 섞인 소리로 자극했던 소리도 사라졌다.

         

       하지만 점술사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마음을 놓지 마라. 이렇게 쉬울 리가 없어.”

       “어머머, 알고 있단다.”

       “분명 또 온다. 또…. 아, 이런. 징그러운 새끼.”

         

       점술사 중 하나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 강령술사였어?”

         

       벌레의 사체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어둠이 자라나고 있었다.

       잿더미가 된 것들이 어둠에 녹아들어 물감이 되고, 그 물감이 빛 속에서 검은색으로 칠해지듯 번지고 또 번지며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듯한 그것은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고, 뭐가 그리 기쁜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제 머리통을 손톱으로 찢어발기며 귀까지 닿는 긴 입꼬리를 만들어냈다.

         

       “강시술사나 부두술사인줄 알았더니만. 씨-팔. 강령술사 새끼가 그딴 냄새는 왜 풍기는 거야?”

       “사람을 많이 죽여서 그런거 아닐까?”

       “도대체 얼마나 죽였길래 피비린내가 그따위로 나? 어디 거죽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속에서 풍기는 것 같던데, 어미 배 밖으로 나와서 삼시 세끼를 다 사람 고기로 처먹었나?”

       “그럴지도-오 모르지?”

         

       점술사는 덩실덩실 몸을 비틀며 어깨춤을 추는 그것을 노려보며 카드를 뽑아 들었다.

         

       어떤 점술사는 지팡이가 그려진 카드를.

       어떤 점술사는 칼이 그려진 카드를.

       어떤 점술사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흡혈귀 숙녀가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드를.

         

       그렇게 수많은 점술사는 카드를 검처럼, 총처럼 뽑아 들고 춤을 추는 악령을 포위했다.

         

       그리고 그 위협 속에서 악령은 검붉은 제 입속을 보여주며 노래를 불렀다.

         

       “아앞집 애기 시집가는데-”

         

       쩍 벌어진 그 입에서 더러운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뒷집의 총각은 목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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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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