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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5

    <715 – 불쌍한아이(15)>

     

    학년최강과 이를 뒤에서 조종하던 숨은 실력자가 모두 무너졌다.

    980기 학년사천왕들을 압도하던 다른 이들도 이를 보고는 씁쓸한 얼굴로 공격을 거두었다.

     

    “시간도 참 무색하군. 얼굴도 모르는 신입생들에게 저 아가인과 사디 초콜릿이 깨지다니. 결국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오. 네놈들은 후배들에게 추월당했다.”

    “신의 힘이 없는 성기사는 무엇으로 강해지는가. 너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루. 궁리하고 또 갈구해라. 네가 나아갈 길을.”

     

    사자수인 리온.

    붉은 주먹의 기가도스.

    회색의 방랑기사 디오.

     

    980기 3학년들이 상대하던 강자들은 2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넘볼 수 없는 강함을 과시하다가 스스로 전의를 거두고 물러섰다.

     

    “가라. 죽은 자를 멋대로 일으켜 병졸들의 훈련이나 실험에 동원하는 여자의 도움 따윈 되지 않겠다.”

    “여기까지 왔다면 카타콤의 끝을 봐라. 적어도 그 정도는 해낼 수 있겠지.”

    “백색의 성기사 루여. 쓰러지지 마라. 내 옆자리에 묻히고 싶지 않다면.”

     

    981기 학생들의 얼굴에 뿌듯한 성취감이 어렸지만, 980기 학생들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이 어렸다.

     

    또각.

     

    그 많은 감정을 벨벳은 한 걸음으로 일축했다.

    나아갈 길에 감정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끈기와 집념이다.

     

    “그래서 결국 선배 살해는 어떻게 된 거냐?”

    “사디 초콜릿은 980기 제국 귀족 학생들의 뒤를 봐주는 이전 기수의 귀족들과도 연을 맺었어요. 삼대공신가문의 뒤를 잇는 제국을 대표하는 열일곱 개의 음식명가의 자제들과 말이죠.”

     

    제국십칠명가.

    만델라는 덤덤한 얼굴로 과거를 입에 담았다.

     

    “그들의 협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어요. 980기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모든 매점, 식당의 메뉴, 필드의 식자재를 선점하고 독점했죠.”

    “신기하네. 학생회에 그런 기록이나 잡음이 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럴 수밖에요. 그땐 그 사람들이 학생회에 세력을 두던 시기였으니까.”

     

    크루엘이 학생회를 경계하고 귀족학생들을 쓸어버린 것도, 만델라가 선배 살인에 일조한 것도 모두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980기가 있고 981기의 균형이 맞추어졌다.

     

    “거 미안하게 됐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 알았으면 바로 도와줬을 텐데.”

    “말을 해. 말을 안 하니까 모르지.”

    “설마 우리도 ‘귀족’이라서 눈치를 본 거냐?”

     

    서귀연 역대 고수들의 물음에 만델라가 평소의 호탕한 웃음 대신 주눅 든 얼굴로 눈치를 봤다.

     

    “서귀연은 제국귀족과 달라. 그런 하찮은 것들의 죽음에 신경 쓰지도 않고.”

    “벨벳 선배…?”

    “잠자코 따라와. 너희가 의지하지 않았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이 앞에서 보여줄 테니.”

    “누구 멋대로 다음을 논하는 거야? 언데드 학생은 980기가 전부가 아니야. 사디 초콜릿, 그 꺼림칙한 아이가 거슬려서 눈치를 봤을 뿐이지.”

    “그 아이가 없다면 이번엔 우리들이 재미 봐야지!”

     

    980기가 아닌 언데드 학생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무섭게 벨벳 선배의 영역에 치여 달려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벽면에 처박혔다.

     

    “내 걸음이 멈춰야 할까?”

     

    벨벳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언데드 학생들은 눈치를 보더니 관에 들어가서 조용히 뚜껑을 닫았다.

     

    “짱 세당…!”

    “오크노디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왠지 자존심이 상한 즈앙이 투덜거렸다.

    벨벳은 그녀의 유치한 감정표현에 피식 웃고는 마저 걸음을 이어 나갔다.

     

    쾅!

     

    6계층의 보스룸 출구가 또 다시 벨벳의 발길질 한 번에 떨어져나갔다.

    지하 60층의 너머로 걸음을 내딛는 벨벳의 뒤를 역대 서귀연 고수들이 뒤따랐다.

    980기와 981기 학생들은 서둘러 뒤를 쫓았다.

     

    쿠궁.

     

    층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심장이 짓눌리는 압박감이 이어졌다.

    이제 그들이 마주하는 상대는 죽은 학생들을 넘어선 실력자들이었다.

     

    <언데드 교관>

    <언데드 조교>

    <언데드 4학년>

     

    분위기만 잡으며 뒤따라오던 선배들이 7계층의 60번대 지하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디 초콜릿을 따르던 980기 학년사천왕 수준의 강자들이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복도에서도 서귀연의 역대 고수들은 거뜬히 길을 개척해 나갔다.

    개중에는 아카디아가 속한 피렌체 왕국 출신의 강자도 있었는데, 티토소가가 의문을 드러냈다.

     

    “피렌체 왕국에는 강자가 부족하다며 아카디아 언니가 투덜거렸는데, 본국에는 안 돌아가세요?”

    “절대 안 가.”

    “왜요?”

    “우리가 돌아가면 전쟁이 시작되니까.”

    “네에?!”

     

    이제는 몰락한 전 세비체 공작가문, 현 세비채 백작가문 이전에 세를 자랑하던 부야베스 후작가문의 양산을 든 귀족영애.

    그녀가 단발머리가 흐트러지는 일도 없이 양산 하나로 가볍게 모든 투사체를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서부귀족연합의 균형은 서로가 약하기에 성립되는 거야. 우리 같은 전략병기가 나타나면 나라에서 쓸데없는 짓을 시키고, 원치 않는 전쟁에 동원되겠지. 삼국의 평화가 지켜져도 제국에게 엄한 마음을 품으면 그때는 세계대전이야.”

     

    서귀연의 역대 강자들에게도 아카데미에 눌러앉아 지내는 이유가 있었다.

    나라에서 어설프게 욕심을 낼 강함을 지녔기에 조국을 위해서라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북부전선에 오는 건 어떠세요? 인류를 위협하는 마족과의 전선에 헌신하는 일이라면 조국의 부름은 충분히 막아드릴 수 있어요.”

    “춥잖아.”

    “귀찮아.”

    “너흰 물도 눈 녹여서 마신다며?”

    “후배들 놀려먹는 재미가 없잖아.”

    “…”

     

    아이린의 영입요청을 당당하게 까버리는 이유들을 들어보면 정말 그런 대단한 이유로 눌러앉은 것이 맞나, 그냥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저기 죽어서 언데드가 되어서 나자빠진 녀석들과 우리는 한 끗 차이다. 욕심을 접었는가, 접지 못했는가. 그것뿐이야.”

     

    차원문을 열고 소환수를 불러내며 물량공세를 펼치던 언데드 교관의 머리통을 차원문의 저편에 집어놓고 문을 닫아 쓰러뜨린 근육거한의 선배.

    일당백의 무력을 선보인 선배가 주인 잃고 달아나는 소환수들을 의욕 없는 눈으로 보내버리며 말했다.

     

    “나라를 위해 강해진다. 가문을 위해 강해진다. 강해질 이유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 이유가 자신의 존재보다 소중해지면 무리를 하게 되지. 이 아카데미에서 그런 무리를 하는 놈들은 위로 가면 살기 힘들어. 교수들도 슬슬 손대중을 안 하니까.”

    “강의 도중의 인명사고가 그렇게 많이 일어나요?”

    “경지에 접어든 고수들이 한층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서려면 얼마나 격렬한 강의가 되겠냐. 제 욕심에 목숨 걸 때를 잘못 고르면 훅 가는 거지. 마침 저기 아는 얼굴도 보이는군.”

     

    70층의 계층보스를 보며 근육거한선배가 털털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 피클드에그. 너 뭐하다가 죽었냐?”

    “행정학부 4학년 강의 <가문의 역사 고쳐쓰기> 실습시간에 괴조의 알에서 양분을 흡수해서 강해지는 가문비전요리의 알을 피닉스의 알로 고쳐보려고 무리하다가 불타 뒤졌다.”

    “대충 저런 식이지.”

     

    티토소가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행정학부는 제일 개꿀 아니었어요?! 저 몰래 전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학부건 고학년은 똑같다. 괜히 전과한다고 까불지 말고 다니던 학부나 마저 다녀라.”

    “네에…”

     

    피클드에그가문 언데드 4학년 선배의 충고에 티토소가가 침울한 기색을 감출 생각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피클드에그? 절인 달걀 가문?”

    “마계령에 삼켜진 멸망한 잉글랜드 왕국의 현재는 마인가문의 음식을 인류 식으로 개량한 요리다. 나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요리지.”

     

    2학년과 3학년들이 빠르게 시선을 주고 받았다.

    너 같으면 저거 먹고 싶냐?

    아니.

    나도 저건 좀.

    모두가 저 괴상한 음식이 제국에 기원을 두었다면 삼대역적가문이 사대역적가문으로 늘어났을 거라는 확신을 품었다.

     

    “뭐, 죽고 나서는 한결 나아졌지. 시체에서 힘을 뽑기는 훨씬 쉽고, 죽을 걱정도 없으니까.”

     

    언데드 4학년 선배의 뒤로 보스룸에 죽치고 앉아있던 다른 언데드들도 입이 근질거렸는지 한마디씩 끼어들었다.

     

    “나는 입 안에 차원문을 생성하고 입으로 해양괴수를 삼켜서 토벌하기를 도전했는데, 해양괴수 꼬리가 차원문에 걸려서 통로가 늘어나느라 살이 빨려들어가서 죽었다.”

    “키우던 애완동물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는데 이놈이 갑자기 부활하길래 너무 놀라서 심장병으로 즉사했다.”

    “우리 가문이 밀크쉐이크 가문인데 아카데미에서 우유 생산할 동물들이 죄다 잡아먹혔지 뭐냐? 혹시 우유 없이도 밀크쉐이크 만들 수 있나 싶어서 마나원소 화합물을 가장 강한 순으로 줄 세워서 이것저것 넣다가 대폭발에 휘말려죽었지.”

    “…”

     

    절대로 저렇게는 죽고 싶지 않은 순위 TOP10을 줄 세우면 나란히 자리할 법한 사인에 모두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특히나 4학년 선배들쯤 되면 사망 사유도 엄청나리라고 내심 기대했던 즈앙은 생각보다 더 엄청나게 바보 같은 이유들을 듣고 머리가 아파졌다.

     

    ‘4학년이 되면 너무 고된 강의 일정에 정신이 없어서 지능이 낮아지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죽을만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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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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