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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6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지만….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형상이기도 했다.

       박진성의 정체를 숨기는 것과 동시에, 이 연구소에 있는 이들. 그리고 훗날 온갖 방법을 사용해서 기록을 살펴볼 이들에게 공포를 안길 수 있을 효율적인 형상 말이다.

         

       저벅.

         

       벌레로 기괴한 어린아이의 몸을 만들어낸 박진성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구성하고 있는 벌레들이 부서지지 않도록.

       여러 곳에 사용하느라 소비되었다기에 단단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은 몸을 최대한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

         

       ‘밀도가 너무 낮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촉수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 단백질에, 환풍구와 하수구를 지나치면서 벌레를 소모하기까지.

       몸의 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불을 피웠는데 장작이 줄어들지 않고 똑같기를 바랄 수 있으랴?

       소비된 만큼 밀도가 낮아지고, 형상을 만들기는 하되 그 안의 내용물이 부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현재의 박진성의 몸은 빛 좋은 개살구.

       평범한 어른이 발로 차기만 해도 산산이 부서져 버릴 몸이었다.

       마치 해변에 크게 쌓은 모래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몸이라고 할지라도 문제는 없다.

         

       연구소 전체가 개판이 되어버린 지금이라면 말이다.

         

       외부는 물론, 이제는 내부까지 감염되고 있는 상황.

       감염된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다니고,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도망치거나 숨기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성을 방해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방해가 된다고 할지라도 촉수를 사용해서 시간을 끌기만 한다면 분노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몰려들 터이니, 몸 하나 지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니.

         

       이것이 바로 박진성이 연구소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였다.

         

       그리고….

         

       [ 인증이 필요합니다. ]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간편하게 통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박진성은 인증이 필요하다는 안내음을 듣고는 자신의 뒤를 따라 기어 오는 촉수 하나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내었다.

         

       쩌억.

         

       박진성의 옆으로 온 촉수는 입을 쩌억 벌리며 타액을 바닥에 쏟아내었다.

       그러고는 근육을 꿀렁꿀렁 움직여 안에 처박아두었던 연구원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었고, 이내 얼굴이 바깥으로 드러날 정도까지 밀어낸 뒤 갈라진 촉수 일부를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곤 실처럼 얇은 촉수를 뽑아내어 눈가의 근육을 붙잡고는 강제로 눈을 뜨게 만들고는 그대로 패널에 가져다 댔다.

         

       삐익.

         

       [ 1단계 홍채 인증에 성공하였습니다. ]

         

       [ 2단계 인증이 필요합니다. ]

         

       꿈틀.

         

       2단계의 인증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들리자 촉수는 자연스럽게 몸체를 꿈틀거리고는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길쭉한 고깃덩어리.

         

       [ 2단계 지문 인증에 성공하였습니다. ]

         

       [ 3단계 인증이 필요합니다. ]

         

       지문 인증에 필요한 손가락이다.

         

       물론 뼈마디가 조각조각 난데다가 뒤틀리기까지 해서 이걸 정말 팔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드는 형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몸에 붙어있기는 해서, 정전용량식 인식 방식으로 작동하는 패널을 작동시키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3단계는 쉬웠다.

         

       [ 3단계 생체칩 인증에 성공하였습니다. ]

         

       [ 2급 연구원 권한이 확인되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

         

       마지막 3단계는 직원들의 몸에 심어지는 자그마한 생체 칩이었으니까.

       목숨만 붙여놓는다면 촉수 안에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박진성은 너무나도 쉽게 보안 시스템을 통과했다.

       전통적이면서 아주 효율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고무호스 암호분석(Rubber-hose cryptanalysis)이야말로 최고의 해킹이라 하였던가.’

         

       옛적 용병 일을 할 때 해커와 협업할 때도 많았는데….

       그때 한 해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많은 해킹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무호스 암호분석(Rubber-hose cryptanalysis)이라는 방법이라고.

         

       보안 담당자를 물리적으로 납치한 다음 고문해서 정보를 캐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또 없다고. 일단 잡기만 하면 100% 확률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킹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까지 하니 이 방법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고 말이다.

         

       물론 그 해커는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정말로 자기 말이 맞았다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테지.

         

       보안 담당자를 납치해서 정보를 캐내는 것을 넘어, 아예 보안 담당자와 암호가 혼연일체가 되어 활용되고 있는 광경이라니. 마치 경지에 이른 검사가 검과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의 경지가 되는 것처럼, 보안 담당자와 암호가 한 몸이 되어서 서로가 자물쇠이자 열쇠가 되어 활용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고무호스 암호분석이 옳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뚫어낸 것이 기계 교단에서 만들어낸 최신식 3단 보안이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그 해커의 말이 옳다 할 수 있겠다.

         

       박진성은 그렇게 전능한 ‘보안 담당자-암호’ 덩어리를 이끌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권한이 부족하다면 다른 연구원을 끄집어내면서.

         

       그리고 마침내.

         

       “호오.”

         

       절지동물 시리즈가 보관된 곳까지 도달하였다.

         

       절지동물 시리즈.

       공장처럼 보이는 거대한 공간에는 커다란 기계가 있었다.

       거대한 기계 케이블, 혹은 입자 가속기에 사용될 커다란 부품 일부처럼 보이는 기계가.

       뱀처럼 보이는 머리나 환형동물과 닮은 것처럼 보이는 몸체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부품이나 첨단시설의 설비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 중인 것인고. 모양새가 어설프구나.”

         

       박진성이 그것을 보고 느낀 감상은 어설프다는 것.

       회귀 전에 보았던 모양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엉성하다는 생각이었다.

       바위도 뚫을 수 있을 거대한 굴착기는 어디를 가고 뱀의 머리를 흉내를 낸 것으로 보이는 머리통이 달려있지를 않나. 화학 용액을 뿜어내기 위해 몸체 곳곳에 붙어있어야 하는 설비 대신에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돌기가 달려있었고, 방울뱀의 꼬리를 닮았던 회귀 전과는 다르게 안테나로 추정되는 것이 붙어있는 것이 딱 봐도 뭔가 시행착오를 잔뜩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로토타입.

       아니, 프로토타입도 되지 못한 무언가.

         

       박진성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미완성의 웜이었다.

         

       ‘미완성일지도 모르고, 혹은 다른 모델을 개발 중인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박진성은 기계 교단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기계 교단에 투자하지도 않았다.

       기계 교단이 잘되어서 득을 볼 것도 없었고, 웜이 완성되어야 할 이유도, 웜이 완성되지 않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그의 계획에 이것이 참으로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박진성은 공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복도를 통과하면서 그러했듯 연구원들을 촉수에서 슬쩍 끄집어내 보안 시스템을 통과한 후, ‘웜’에 탑재될 알고리즘 시스템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온갖 코드와 기계어들의 범람.

       심지어 보안을 위해서일까?

       영어로 코드를 짜는 것 대신에 암호로 코드를 짜기까지 했으니….

       기계 교단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면 이 코드를 손대기는 어려워 보였다.

         

       ‘역시 내가 손대기는 힘들군.’

         

       암호를 뚫을 방법도 없고,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알고리즘을 확인해본 것은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으니.

         

       박진성은 계획대로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폭주 패턴.’

         

       기계 교단의 악명에 일조한 알고리즘.

       기계가 노획되어 분석되거나, 혹 배신자가 기계와 함께 투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패턴이다.

         

       1. 절지동물 시리즈는 기계 교단에 속한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2. 절지동물 시리즈는 생체 칩이 이식된 사람만이 통제할 수 있다.

       3. 절지동물 시리즈는 생체 칩이 이식된 사람이 없다면 폭주 상태에 돌입한다.

       4. 절지동물 시리즈는 폭주 상태에 돌입 후 일정 손상도를 초과 시 자폭한다.

       5. 한 번 폭주 상태에 들어간 절지동물 시리즈는 진정시킬 수 없다.

         

       기계 교단과 적대하는 이들로서는 아주 골치가 아픈 패턴.

       그냥 노획하려 하면 폭주하거나 자폭하고.

       기계 교단에 속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원격으로 생체 칩을 조작해서 사람을 죽여서 강제로 기계를 폭주시킨다.

       폭주를 가라앉히려고 해도 자폭했으며, 심지어는 자폭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점차 악랄한 개조를 거치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지역 하나를 오염시키고도 남을 오염 물질을 뿜어내게 만들거나, 뇌에 영구적인 장애를 남기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을 살포시키기까지 했으니….

         

       아마 회귀 전의 미국이 개판이 되게 된 것에는 기계 교단의 지분율도 꽤 될 것이다.

         

       그러니…. 그래.

       회귀 전에 맛보았던 이들의 행패를 저들 스스로가 겪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하.”

         

       박진성은 너털웃음과 함께 촉수를 조작했다.

         

       콰득.

         

       이제는 충분히 사용한 연구원들을 죽이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공에 신검합일이 있다면.
    보안에는 암호와 하나되는 보안일체의 경지가 있는 법…!
    암호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암호가 되는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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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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