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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19

    <719 – 불쌍한아이(19)>

     

    티토소가가 마나의 격류에 휩쓸리는 광경을 보면서도 헤스티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티토소가와 그녀의 관계는 그리 긴밀하지 않았다.

    오크노디의 메이드이자 준교수 리프의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의 동문제자.

    이것이 그녀가 티토소가에게 지닌 인식이었다.

     

    -와아, 헤스티아는 어떻게 길을 막는 플라톤 교수의 길 잃은 조각상들을 척척 들어서 길 밖에 던지고 돌아오는 거야? 근력 굉장해!

    -4학년 선배가 바닥에 심어두고 뽑으면 가져가라고 연습용 마검을 심었다는데 근력이 엄청 많이 필요하대! 한번 뽑아보지 않을래?

    -으앙, 헤스티아! 지나가던 편입생이 나보고 허접성녀래. 가서 혼내줘!

     

    …티토소가의 헤스티아를 향한 인식은 그 이상으로 굉장히 이상하게 잡힌 것 같지만.

    천하장사.

    동네 힘 센 언니.

    뭐가 됐든 헤스티아에겐 달갑지 않았다.

    힘이 세기에 강한 자신이 수치스럽던 나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녀가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분야를 높이 평가하며 의지하는 티토소가는 솔직히 말해서 꺼림칙하기만 했다.

    물론 신입생들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마검도 직접 뽑아서 호수에 유기하고, 티토소가를 놀린 편입생도 한 대 맞기 전에 사과하라고 시켰지만.

    아무튼 티토소가는 그녀의 1순위가 아니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지켜야 할 다른 사람이 있겠지.’

     

    로지니에게는 샌드쿠커가 있다.

    록펠에게는 도로시가 있다.

    즈앙에게는 티토소가가 있다.

    오직 그녀.

    헤스티아에게만 오크노디뿐이었다.

     

    “저기, 너.”

    “그러는 너는… 카시아라는 이름이었나?”

    “이 장소는 내겐 너무 불리해. 그러니까… 힘을 맡길게. 이걸 가지고 가. 가서 우리 몫까지 제대로 뜻을 전해줘.”

     

    카시아가 뇌기가 깃든 둥근 보옥 하나를 건네주자 블라디미르도 제 엄지를 송곳니로 쿡 찌르고는 피 한 방울을 짜내어 날렸다.

     

    “우린 마나가 불안정해서 이런 고강도의 격류에 오래 노출되면 마나역류에 확정적으로 걸려. 뒤는 부탁할게, 헤스티아!”

     

    낙오되기 전의 학생들이 둘이나 무언가를 건네주며 날아가자 오기로 버티던 학생들도 힘들게 끝까지 버티느니 같은 수순을 밟고 포기하고픈 충동이 생겼다.

     

    “종말의 누출이 담긴 예언록의 일부로 접은 종이비행기입니다. 그분이 좋아하는 형태로 담은 예언서이니 이 예언이 종말의 날까지 당신을 지킬 겁니다!”

    “특별한 친분관계는 없지만 당신은 오크노디의 첫 번째 친우라고 들었습니다. 그 특별함에 의지해서 제 대지룬마법이 각인된 룬을 하나 빌려드리죠.”

     

    …종말교단의 교주 도비나 편입생 대표 아스타로트처럼 아무래도 좋을 사람에게서 받는 의지 따위는 꺼림칙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래도 오크노디를 돕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사람들의 뜻이니 헤스티아는 모두 떠안았다.

     

    -넌 무식한 아이구나. 열을 가르치면 하나조차 따라가기 버거워해.

    -용케도 그 실력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네. 타고난 둔재의 머리로.

     

    실은, 그녀가 떠안았던 것은 기대뿐만이 아니다.

    실망. 멸시. 비웃음.

    아카데미 입학식 전부터 귀족영애들, 이제는 수련상대가 된 롯토에게도 당했던 부정적인 태도를 교수들도 그녀에게 보이고 있다.

    제국교수들의 차디찬 시선.

    변방교수들의 흥미 없는 시선.

    어느 쪽이건 헤스티아에게는 모두 괴롭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크노디의, 오크노디의 것이라고 착각했던 암흑적성평가모자에 깃든 오크노디의 친구의 목소리와 주고받은 희망의 불씨가 있다.

    그 작디 작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살려온 지금, 헤스티아의 내면에는 불이 붙었다.

     

    ‘가장 힘들 때 날 위로해줬던 상대가 실은 오크노디 네가 아니라는 건 알아.’

    ‘거짓된 관계도 전부 알게 되었어.’

     

    그래도 상관없다.

    힘들 때 그녀의 곁에 있고자 했던 사람은 늘 오크노디뿐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나서서 싸워주는 그 작은 등이야말로 무엇보다 든든한 등이었다.

     

    -변함없이 무식해. 그래도… 적어도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깊게 따라오고 있어. 그 무식함이야말로 성장의 비결일까?

    -천하의 둔재도 그 바보 같은 우직함을 지켜내기만 한다면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네. 솔직히 다시 봤어, 헤스티아 학생.

     

    교수들의 평가조차 뒤바꿀 정도의 끈기와 집착.

    그런 노력이야말로 지금의 헤스티아를 있게 했다.

     

    -이런 덩치 큰 몸으로 어떻게 메이드가 될 수 있냐는 바보 같은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암살메이드나 기사메이드도 버젓이 존재합니다.

    -될 수 없는 자신을 떠올리지 마십시오. 사람의 뇌는 자신이 떠올리는 것을 각인합니다. 언제나 되고 싶은 자신을 떠올리십시오.

     

    그런 그녀에게 편견 없는 스승 리프는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었다.

     

    ‘오크노디. 네 스승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난 이대로는 못 돌아가.’

     

    오늘 이 자리에 헤스티아가 찾아온 것은 아카디아의 구원요청뿐만이 아니다.

     

    -아가씨가 독사탕을 좋지 못한 표정으로 씹어 삼켰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괜찮다면 아가씨의 상태를 살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독이라면 좋다고 내성 올린다고 꿀꺽 삼켜대던 오크노디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모습.

    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리프 준교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오크노디의 웃는 얼굴을 되찾아야 한다.

     

    [헤스티아 이해도 2차 특전 <보호지정>이 발동합니다.]

    [현재 보호지정 대상은 <오크노디>입니다.]

    [인물 <헤스티아>가 보호지정 효과로 보호대상을 지키는 전투에서 전투력이 상승합니다.]

     

    오크노디의 웃음을 위해.

    리프 준교수에게의 보은을 위해.

    헤스티아는 사방에서 빗발치는 격돌의 잔흔을 어떠한 잔재주도 없이 몸으로 받아내며 전진했다.

     

    전장의 가혹함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개인은 항거할 수 없는 고위력의 마법이 빗발치는 전장을 가로지르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아군이 비명을 질러도 돌아보지 않고, 적군이 고성을 질러도 기죽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걸음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격돌이 일어나는 한복판에 발을 들인 시점에서 헤스티아의 안위 또한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보장된다.

     

    ‘할 수 있어.’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으로 축소된 신체는 과하게 커다란 육체로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오히려 메이드의 은밀함이 더해지며 암살메이드 특유의 은밀함을 적극 살려 자연스럽게 시선을 흘려보내고 마나 탐지를 저택의 가구처럼 받아낸다.

    지금, 그녀는 마치 암살자처럼 은밀했다.

     

    “…!”

     

    격전지를 가로질러 도달한 곳은 벨벳의 뒤.

    의외라는 듯이 고개만 틀어서 헤스티아를 흘끔 돌아보던 벨벳이 훗하고 웃으며 다시금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걸었다.

     

    따라올 수 있을 때까지 따라와 봐.

    이런 좋은 경치, 쉽게 볼 수 없으니까.

     

    사방에 넘쳐나는 마나를 따라 심언이 전해지듯 들려오는 벨벳의 의지가 느껴졌다.

    헤스티아는 오기로라도 벨벳의 뒤를 따랐다.

     

    <카시아의 전기 보옥>

    <효과 : 보옥을 깨트릴 시, 소지자의 공격에 스턴 효과를 주는 뇌기를 섞는다. 추가로 스턴내성 일시 획득.>

     

    동료도 뭣도 아니지만 다른 이들이 주는 물건이 상해서는 안 되니 온몸이 저릿할 정도의 마나파동으로부터 물건들을 감싸며 전진한다.

     

    <블라디미르의 성혈>

    <효과 : 혈액을 복용할 시, 섭취자의 혈액마나밀도를 상승시킨다. 추가로 중독내성, 감염내성 일시 획득.>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지독한 질병의 기운이 스쳐 지나가도 움츠러들지 않고 피 한 방울 튀어 나가지 않도록 제대로 감싼다.

     

    <종이비행기로 접은 종말의 예언서>

    <효과 : 비행기에 적중한 상대가 종말선언에 직격으로 당해 정신이 무너진다. 추가로 비행기를 날린 자는 즉사내성, 광기의 정신강화 일시 습득.>

     

    적중했다간 팔 하나를 잃을 공격을 몇 번이고 흘려내면서 일어나는 공포심은 광전사의 광기를 끌어올려 억지로 무디게 만들었다.

     

    <아스타로트의 수호성채 룬>

    <효과 : 룬에 새겨진 수호성채의 이름을 외치며 미량의 마나를 불어넣는 순간, 룬 개방자를 보호하는 수호성채가 생성된다. 추가로 투사체보호, 물리내성, 마법내성, 대마법내성, 이동저항 일시 습득>

     

    벨벳을 노리고 직접적으로 날아든 공격의 여파만으로도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내장이 진탕되는 충격이 전해졌으나, 룬만큼은 깨지지 않도록 지켜냈다.

    전대거악 언데드퀸 사다코가 복종시킨 강자들이자 넘버즈 석관에서 해방된 옛 강자들.

    교관이라는 이름의 허울에 갇힌 지난 시대의 강자들의 맹격 앞에서 서귀연 역대 고수들도 카타콤이 제공하는 막대한 마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둘 뒤로 물러났다.

     

    이젠 돌아갈 길도 없다.

    뒤를 쫓는 이도 없지만, 나아갈 길뿐이다.

     

    교관들의 뜻 또한 벨벳의 의지가 심어로 전해지듯이 뚜렷하게 전해졌다.

    안식기를 누리며 제 안의 흉성을 제어하려는 사다코 교수와 마주하는 순간, 너희는 죽은 목숨이라고.

    곧 빈 석관의 새로운 주민이 될 터이니, 그 얼굴을 다시 볼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이다.

     

    “…”

    “그르르…”

     

    수많은 사슬이 실내를 가로지르며 옥좌에 앉은 사다코 교수를 가두고 있는 사다코의 안정실.

    가시나무 면류관부터 얼굴을 덮는 해골마스크, 심지어는 몸의 절반을 덮은 아이언메이든의 강철구속마저 겹겹이 더하며 자기제어에 몰두하던 사다코 교수.

    자신을 제어하려 애쓰던 야수와 겁도 없이 발을 들인 무모한 벨벳이 눈을 마주했다.

     

    “이건 좀, 너무한데.”

     

    처음으로 벨벳의 입에서 곤혹스러운 음성이 나왔다.

    언제 출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할 새도 없이 거대화한 벨벳 선배의 구두가 깨졌다.

    흩날리는 파편 너머로 동방의 무너진 대신들의 천수관음을 연상토록 하는 거대한 손이 내리쳤고, 그 손을 감싼 금속 건틀릿이 박살 났다.

    두 손 가득 피 흘리며 얻어낸 기회를 틈타 내지른 발차기가 아이언메이든을 부수었다.

     

    “분하네.”

     

    벨벳 선배가 쾅 소리와 함께 그녀가 걷어차며 무너뜨렸던 관문들처럼 튕겨 나갔다.

    자신을 제어하던 도구에서 해방된 사다코 교수는 날 것 그대로의 살기를 머금은 시선을 벨벳에 이어 헤스티아에게 겨누었다.

    사다코 교수의 악의의 끝에 도달한 지혜는 헤스티아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친구들의 물건과 만신창이가 된 헤스티아의 몸을 보고 사고정지에 빠졌다.

     

    친구들이 쓰라고 준 걸 왜 들고 다니는 거지?

    저걸 아껴서 내 앞에서 사용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나?

    뭐, 됐다.

    꺾어주마.

    사용해라.

    그때가 네 마지막이다.

    헤스티아가 친구들의 뜻을 이어받아 전투태세를 갖추기만을 기다려주는 흉성에 취한 사다코 교수의 앞에서, 헤스티아가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주섬주섬.

     

    가져온 물건들을 제 무기 위에 하나씩 내려놓고 제사라도 지내듯이 어설프게 엎드려 절을 한다.

     

    “뭘… 하는 거야.”

    “오크노디에게 행해지는 과도한 강의에 걱정하는 친구들이 모두 마음을 모아 건네준 소중한 뜻이 담긴 물건들입니다. 이걸 드릴 테니 오크노디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결전용으로 챙겨온 게 아니라 공양물로 가져왔다는 헤스티아의 황당한 말에 사다코는 엄청난 빡침을 느꼈다.

    그걸 내가 받아서 어디다가 쓰라고.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니한테 쓰면 됐잖아.

    이건 숫제 다치지 말라고 검과 갑옷을 들려서 보낸 언데드 해골병사가 어디 가서 줘터지고 갈비뼈도 두 대 뜯긴 채로 돌아와서는 주인님이 주신 소중한 장비를 무사히 지켰습니다. 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꼴이 아닌가.

    하찮다.

    너무 하찮아서 자극받아버린 오래 전, 첫 언데드와의 보잘 것 없는 추억.

    그 추억이 사다코의 흉성과 광증을 가라앉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불쌍해서 정신이 든 사다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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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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