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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인공지능 로봇에게 있어서 자신의 외형이란 어떤 의미일까?

         

         성장하고, 또 늙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사람과는 달리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그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도… 오히려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을지도, 완전 미지수였다.

         

         총 1억 하고도 1200만 크레딧.

         이게 깡통 녀석의 새 몸에 투자된 총 금액이다.

         

         전처럼 폭발에 휘말리거나 돌진하는 차량에 몸을 내던지면 얄짤없이 부서지겠지만, 총알 한두방에 불상사가 일어나는 걸 막기위해 여유자금을 모조리 때려 박아 다용도 복합 장갑 옵션을 외부에 도배해주었다.

         

         한데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 매정한 케어봇은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같은 기대하던 인사를 툭 던져서 사람을 설레게 해놓고는. 그 이상은 탁 트인 곳에서 하기 적절하지 않은 얘기라며 뒷말을 아꼈다.

         

         “…그래서 언제쯤 입을 여실 건데요.”

         

         – 확실히, 여기라면 괜찮겠군요. –

         

         정말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었지만, 통신이나 전파분야는 몰라도 주변 인기척을 탐지하는 데는 나보단 케어봇의 센서가 더 민감할 것이 분명했기에 여태 잠자코 따른 것이다.

         

         결국 가게에 딸린 부품창고 안. 외진곳에 단 둘이서 틀어박히고 나서야 그는 조용하던 음성 모듈에 전력을 공급했다.

         

         아무튼 이름도 멀쩡하게 깡통이라 자칭하고 나를 또렷하게 기억해주는 시점에서 큰 불만은 없었지만… 아니, 결국 너 이름이 뭐냐니까?!

         

         – 이상하군요.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일개 한낱 케어봇을 위해 거금을 소비할 수 있으시지만 정작 마땅히 지낼 곳은 없으시다니. 현재 에나마 소속이 아니십니까? –

         

         “뭐…?”

         

         얘는 갑자기 왜 다 끝난 일을 꺼내 드는 걸까.

         직접 최후의 추적자와 장렬한 동귀어진까지 감행했어도 내가 잡혔을 거라 여긴 건가? 혹은 그게 아니라면.

         

         “깡통 너, 기억이….”

         

         – ……. –

         

         역시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속이 답답해졌다.

         연산 장치를 잡아 뽑을 때 좀 살살 당길 걸, 숨기기 어렵더라도 차라리 머리를 통째로 들고 다닐 걸… 하는 늦은 반성점이 떠올랐다.

         

         – 자세한 과정에 대한 데이터가 완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모두 각인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닥터께서 가동 초기에 입력시켜 주신 자료라던가. 같이 가달라고 저를 감전시키고 명령까지 내리신 분이, 냉각수 흐른다고도 타박주시는 눈물투성이 모습이라던가. –  

         

         “?! 야!!”

         

         십…! 완전 멀쩡하네!!

         

         케어봇 머리엔 표정이랄 것도 없는데, 왠지 이죽거리는 얼굴이 자동으로 그려져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어떻게 멱살이라도 잡아서 불만을 표출하고 싶었으나 흠집 하나 없는 새 장갑은 내 손으로 두들겨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게 뻔했다. …이씨!

         

         – 기계인 제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겪을 의식의 암전조차 없습니다. 방금 전에 미스 아나스타샤께서 우시는 걸 봤는데, 그걸 되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만나 뵙게 된 셈이죠.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리어 제 부족한 임무 수행력으로 폐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

         

         “……넌 내 옆에 붙어있기엔 과분할 정도로 훌륭했으니까, 괜한 걱정은 집어치워.”

         

         …멋대로 죽어 놓고, 이제는 기억까지 안 난다는 바보에게 할 쓴 소리는 없었다.

         아니면 자꾸 근질근질한 말을 하게 만들어서 다른 소리를 할 여지를 주지 않는 걸지도.  

         

         만지작… 만지작.

         괜히 창고에 널린 상자 모서리를 쓰다듬으며 어색함을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이번엔 또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 …그렇다면 영광입니다만. 불민한 저를 되살리는 건 실수였다고 충고 드리고 싶습니다. –

         

         “영광은 무슨. …그런데 실수?”

         

         하나밖에 없는 눈동자 겸 스캐너가 연거푸 깜빡이며 주변을, 나를 살폈다.

         사람 놀리는데도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이 문제아가 말하기 어려워하는 지적은 대체 뭘까?

         

         이윽고 확인 작업을 끝마친 깡통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 남의 집에 얹혀사시는 데다가 복장마저 그대로 시라니…. 이렇게나 형편이 어려우신 상황이라면. 케어봇 같은 사치품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크레딧을 쓰시는 게 미스 아나스타샤의 미래에 더 긍정적이었을 겁니다. –

         

         “그건…… 하아…. 난 괜찮아. 되레 여유가 넘친다고.”

         

         – 그건 엄청난 희소식이군요. –

         

         우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잔걱정 많은 부모 같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근심거리에 매몰된 깡통 녀석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골치가 아파졌다.

         

         갑작스레 생긴 목돈인만큼 소비도 조금 즉흥적이긴 했다.

         

         선생이 숙박비까지 탈탈 털어 케어봇 외부장갑에 투자했다는 내게 묘하게 공감해주지 않았더라면, 꽤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던 거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성장한 내 능력이나, 그간 있었던 일들을 구태여 풀어놓을 필요는 없겠지.

         

         슬프지만 더는 그가 관여할 문제가 아닐 테니까.

         

         끼긱…!

         

         의자삼아 앉아있던 플라스틱 상자로부터 내려왔다.

         은인과 헤어질 때도 시건방진 태도를 취할 생각은 없었기에 당연한 사전 준비였다.

         

         그가 내게 해주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이 정도면 서로가 서로의 앞길을 열어줬다고 볼 수도 있으니 동등한 보은이라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그럼… 앞으로는 잘 지내. 네 덕분에 난 좀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어. 고마워.”

         

         – ……? –

         

         멋들어진 작별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진심을 전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 하에.

         나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 제 경솔한 직언이 그렇게나 미스 아나스타샤의 감정을 해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니 저를 홀로 남겨두려는 시도는 부디 참아 주시길. –  

         

         “…? 내가 널 왜 떼어놔? 이제 피차 무사한 것도 확인했으니 미련도 없는 니가 떠날 것 아냐!”

         

         어라, 뭔가 나랑 깡통 사이에 아주 커다란 인식오류가 존재하는 게 느껴졌다.

         어엿한 메트로폴리스 사회인이 된 내가 같은 연구실 출신 케어봇에게 상식이 밀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 …도대체 왜 그런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왜냐니… 그야….”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은 입력된 코드를 스스로 재설계하고,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그러니까 네오 헤이븐에 나왔던 그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떠났으니까…?

         

         애당초 언제든지 나를 돕지 않고 연구소나 전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던 이 바보가 끝까지 함께해준 이유를. 나는 그의 영혼에서 탄생한 지극히 인간적인 의무감과 책임감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그게 충족되었을 지금은 존재 자체가 위험분자나 다름없는 내 곁에 굳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고.

         

         내 얼굴에 떠오른 혼란을 감지한 그가 나처럼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정정한다. 다소곳이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우뚝 선 나와 눈높이를 맞춰왔다.

         

         흡사 고집불통 어린 애를 타이르려는 보호자처럼. 마치 변치 않는 절개를 맹세하는 기사처럼.

         

         – …아나스타샤. 프로젝트가 폐기되지 않으면, 가동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이었던 한 무명의 로봇에게 당신께서 이름을 주신 순간부터. 어차피 그 깡통은 하고 싶은 일만 저질렀습니다.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하셔도 떼어놓기 힘드실 겁니다. –

         

         “아……?”

         

         제대로 말을 들었음에도 이해가 따라잡지 못했다.

         내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지만 그건 욕이나… 별명에 가까운 호칭이었지, 그런 선하고 막중한 의도를 담은 행동이 전혀 아니었다.

         

         속으로는 바보바보 연호했어도 설마 진짜로 이렇게까지 올곧은 녀석일 줄이야.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깡통은 좀 아니지…!

         

         – 인간이 선대로부터. 부모로부터 주어진 이름을 계승하는 것처럼 개화한 AI의 자아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저나…. –

         

         거기서 뒷말을 흐린 깡통은 슬쩍 창고 문틈으로 밖에서 선생을 시중드느라 바쁜 제니를 바라봤다가 이내 시선을 다시 나에게 고정했다.

         

         – 그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의 논리회로는 인간의 철학과 감수성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내려진 계시를 외면할 정도로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

         

         “….”

         

         너무 과한 의미부여로 창창한 진로를 함부로 결정하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었으나, 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넘치는 애를 어떻게 다뤄야할 지 감이 안 왔다.

         

         배양되던 시험관 속에서 깨어나 처음 마주친 게 케어봇인 나.

         긴 대기에서 깨어나 수많은 시체를 치우고 처음 본 살아있는 인간이 실험체인 인공지능.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어긋난 채로도 재회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꼭 제대로 된 이름으로 개명하자.”

         

         – 저는 이대로도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만? –

         

         내가 불편하다고, 내가…!!

         

         속으로 씩씩거리면서도, 싸울 기력마저 쇠해버린 입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뿐이었다.

         매번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말도 안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사양이다.

         

         이런 순진해 빠진 애를 세상에 홀로 던져 놓는 건 중범죄나 동일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잘 보살펴 줘야겠다.

         

         그럼 아쉬운 대로, 이름 문제는 다음에 해결한다 치더라도 얘를 부를 대명사가 있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임시방편으로 새로운 애칭이라도 붙여주는 게 어떠려나… 고민하는 와중에. 엄청 심각한 사실을 깨달았다.

         

         본의가 아니지만 보모 비스무리한 역할을 떠안은 사람이 지금 물어보기엔 너무 늦은 의문이자 질문.

         차마 얼버무리기는 뭐하니 이번 건에 한해서는 똑바로 이름을 불러주면서 물어봐야겠다.

         

         “깡통아, 넌… 그러니까 니가 생각하는 너의 성별은 뭐야?”

         

         나름대로 상대방의 자아정체성을 존중한 물음이었거늘.

         이 철없는 케어봇은 남의 고민이나 배려도 모르고, 한술 더 떠서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으로 반환해왔다.

         

         – …아나스타샤는 어느 쪽을 선호하십니까? –

         

         야 임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환장의 듀오 탄생.
    나약한 사이버펑크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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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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