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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데릭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기사는 대체 무얼 보고 자신의 말을 믿어준 것일까?

       아니, 설령 믿었다고 한들, 어찌 저토록 전심전력으로 싸워주는 걸까?

         

       ‘도망가면 편했을 텐데….’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저런 거인을 마주한다면 두려움에 떨며 도망부터 치리라.

       그게 당연한 순리니까.

       한데 그는 포기는커녕 지금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 자리하여 검을 휘두르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저토록 필사적으로….

       용감하게 해주는 걸까?

         

       – 응? 그 쉬운 해답을 모르는 거니? 하여튼 너도 어지간히 헛똑똑이구나.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준 것은 자수정색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소녀였다.

         

       – 용맹해서 싸우는 게 아니야. 사람은 지킬 것이 있고, 도망갈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둘 중 하나로 나뉘거든, 포기하며 생을 마감하거나, 그도 아니면 발버둥치거나. 그리고 아마 네가 말한 사람은 후자일 거야, 다만 그 사람은 평범하게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거다.”

         

       데릭은 저가 아는 한 가장 지혜롭고 믿음직한 소녀의 말을 되새기며 인간과 괴물의 전투를 보았다.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그 전투를 말이다.

       이를 보며.

         

       “공녀님, 아무래도 발버둥치는 사람은 저뿐이고, 저분은 그냥.”

         

       용맹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데릭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그대로 체력이 다하며 쓰러졌고, 그는 쓰러지면서도 눈만은 부릅뜨며 기원했다.

         

       ‘부디,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상태창?”

         

       일순간, 이한은 느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꽃잎의 기척을.

       그러며 또다시 느낀다.

       제 뒤에서 열망을 쏟아낸, 필사적으로 용기를 낸 회색머리 소년의 각오를.

         

       이를 또렷하게 느끼며 그는.

         

       [[하아아!!!]]

         

       힘찬 기합, 사자후와 함께 더욱 악기바리로 검을 휘둘렀다.

         

       일순 이한의 우렁찬 사자후와 큰 일격 앞에 당황하는 귀왕이었고, 귀왕은 뒷걸음질 쳤다.

       이한은 지금 거인과 같은 귀왕을 오롯이 기백 섞인 휘두름으로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개미가 인간을 물러서게 만든 것과 같은 업적.

         

       하지만 그는 업적 따위를 위해 놈을 일부러 물러서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소심한 줄만 알았던 겁쟁이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었으니, 그 용기가 보답 받을 수 있도록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그렇게.

         

       후두두두두두둑-!

         

       꽃잎과 닮은 무수한 니들(Needle)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파바바밧!

         

       꽃잎 형태의 암기들이 공중을 빽빽하게 채우며 터져나가며 대바늘이 비처럼 쏟아진다.

         

       대략적으로 일만 개, 아니면 더욱 많을지도 모를 노릇.

       허나 바늘은 사람을 노리지 않았다.

       설혹 사람을 노린다고 하여도 사람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는 상냥함이 묻어난 바늘은 오로지 사악한 마성을 품은 괴물들만을 노렸으니.

         

       “만천화우….”

         

       풍진강호 사천의 패자, 독과 암기의 명가 사청당가의 비전절기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멋진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으…으!!]]

         

       [Ga…?!]

       [!!?!]

       [Aaaa…!]

         

       그 위력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는 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니들은 오로지 마물만을 향했고, 그들을 고통스럽게 죽여 갔다.

       생도들과 싸우는 놀들을 노리는 것은 물론이요, 귀왕에게도 쏟아지며 두개골을 으깨고, 목을 꿰뚫으며, 심장과 등을 난도질한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터지는 크레모아.

         

       한데 크레모아보다 나은 점은.

         

       “자식, 엄청난 사기 스킬을 숨기고 있었네.”

         

       우웅.

         

       이한은 니들을 맞는 순간 몸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조금이지만 체력과 부상이 회복된 셈.

       아마 버프 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적군에겐 죽음을, 아군에겐 버프를.

         

       이만한 사기 스킬이 어디 있으랴.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군.’

         

       쓰러진 태창이 녀석의 기척을 느낀다.

       만천화우를 펼치고 곧장 모든 힘을 다한 것이리라.

         

       한 번 쓰고 끝, 가성비가 극악한 스킬이 아닐 수 없었으나.

         

       ‘충분하지.’

         

       역할은 충분했다.

         

       그가 준 건 호흡을 머금을 시간과 잠시간의 여유.

       무호흡의 난전 속에서 가까스로 찾아온 가뭄의 단비와 같은 도움.

       더할 나위 없게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더욱 마음에 드는 점은.

         

       [[━━]]

         

       “괴롭냐, 근데 어떡하지?”

         

       [[??]]

         

       “한 발 더 남은 것 같은데?”

         

       쏴아아아!

         

       이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수의 물들이 용솟음쳤다.

       마치 이무기가 수행을 끝내고 승천이라도 하려는 듯 높게 치솟는 물살.

       아마 저조차 저 물살에 휘말린다면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 정도로 물살은 위협적이고도 압도적이었다.

         

       “우리 교관님, 괴롭히지 마!”

         

       아이린 윈들러.

       이번 세대 최고의 티어이자, 실상 로엔보다도 몸값이 더 높을 재원.

         

       세기의 대마법사가 될 재능을 가진 소녀가 마법을 펼쳤다.

         

       “[물이여 분노하라, 물이여 회전하라, 물살이여 나의 적을 꿰뚫어라, 창살이 되어 심판하라].”

         

       막대한 마력을 퍼부은 물의 마법.

       허나 아이린 윈들러의 곁을 맴도는 유령 소녀는 이러한 위력적인 마법에.

         

       [바람아 불어라, 물과 하나가 되어라, 적을 꿰뚫는 단두대가 되어라.]

         

       휘이이이잉!

         

       특대형 바람의 마법을 결합한다.

         

       2중 영창.

         

       두 개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녀의 뒤를 지켜주는 어느 유령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개인이 동시에 두 개의 속성을 사용하는 기적의 순간.

         

       “마, 말도 안 돼.”

         

       오드왈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이린의 마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타 마법사의 눈에는 인지를 초월한 재능이자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재앙과 같은 마법은.

         

       “가라!”

         

       소녀의 소중한 사람을 괴롭힌 괴물에게 향하였다.

         

       생성된 것은 작은 [용오름]

       허나 작다 해도 용오름은 용오름이었고, 그 용오름이 귀왕을 덮치는 순간.

         

       콰아앙!!

         

         

       귀왕이 침묵했다.

         

         

         

         

       “…이웃집 병아리 녀석, 이제 보니 병아리가 아니라 봉황 새끼였네.”

         

       이한은 감탄 섞인 넋두리를 내뱉었다.

         

       설마 주문쟁이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무의식적인 주문쟁이 혐오 발언이 나왔으나, 이한은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노력해주는 소녀 덕분에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천금 같은 이 시간을 활용하여.

         

       ‘애들이 힘내는데, 모양 빠지게.’

         

       자신이 준비한 ‘비장의 수’를 꺼내기로 하였다.

         

       * * *

         

       -작은 용오름이 귀왕을 옭아맨다.

         

       마력으로 인해 압축된 막대한 물의 질량과 흐름은 어느 생물이라도 거스를 수 없는 법.

       실제로 귀왕은 마법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며 좁은 창살에 가둬진 채 물고문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회전하는 물의 창살은 마냥 귀왕을 붙잡아둘 뿐만 아니라, 강력한 회력으로 상처를 내었고, 놈의 몸을 완전히 갈아버릴 듯했다.

         

       믹서기.

       저건 물로 이루어진 믹서기와 다름없다.

       한 번 붙잡힌 순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대로 온몸이 갈려나갈 때까지….

         

       즉,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아닐 수 없으며 개인이 펼쳤다고 여길 수 없는 강력한 압도적인 힘.

       허나 문제는….

         

       [아린아, 좀만 더 힘내 봐!]

         

       “으으으!”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마법을 지속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란 것이었다.

       아이린은 온몸이 벌써부터 후들거렸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만약 이한을 만난 후 강제로 체력증진 훈련을 해놓지 않았더라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리라.

         

       [역시 체력은 국력이 맞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이야!’

         

       아이린은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니!? 교관님은 대체 어떻게 이 괴물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지!

         

       ‘미쳤어! 이건 진짜 괴물이잖아!?’

         

       저항력이 심상치가 않다.

       아니, 저항력도 저항력이지만 저 괴물은.

         

       콰아아아!

         

       용오름을 거스르려고 하고 있었다.

         

       쿵! 쿠웅!

         

       몸이 갈려나가면 어떤가?

       몸이 분쇄될지언정 재생하면 그만이었고, 물이 무겁다고 해도 힘으로 돌파하면 그만이라는 듯.

         

       저놈은 그거다.

       세상 불가능한 문제 대부분을 머리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몸으로 모두 해결하는 놈!

         

       한 걸음, 한 걸음.

         

       공포 영화와 같이 놈은 용오름에서 벗어나 그녀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당한 만큼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이.

         

       “나, 나 죽어어어!”

         

       [아린아-?!]

         

       아이린은 한계에 다다르며 그렇게 눈이 뒤집혔다.

         

       이제 더는….

         

       툭.

         

       “고생 많았다.”

       “…교관님?”

       “고마웠고, 나중에 이 빚은 갚으마.”

       “…….”

         

       아이린은 피로함도 잊고 그를 보았다.

         

       그가 격려와 함께 감사를 전하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이대로 기절해도 되리란 안도감이 말이다.

       하여.

         

       “나, 나중에 비싼 밥 한 끼 사주셔야 해요….”

       “약속하지.”

       “지, 진짜 비싼 거 먹어야지….”

         

       헤헤.

         

       소녀는 헤픈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쓰러졌다.

         

       그의 자신만만한 눈을 직시하며.

         

       털썩….

         

       깃털처럼 가볍진 않지만, 그래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소녀를 받아들며 이한은 천천히 내려놓았다.

         

       나름 신사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으리라.

         

       허나 형형한 두 눈은 여전히 귀왕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

         

       그르르륵!

         

       칠판 긁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세가 약해진 용오름을 뚫고 오는 놈이 보인다.

       왜 살아있는 천재지변 취급받는지 알 수 있는 힘이다.

         

       “인정한다. 넌 강하다.”

         

       이한은 오늘이 오기까지 무수한 수단을 강구했다.

         

       폭약을 품은 관일창.

       대형 작살.

       뜻밖에 도움을 얻은 스킬의 조력과 마법사의 도움까지.

         

       …이 모든 수단을 쓰고도 놈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인정한다.

       저놈은 강했으며 자신처럼 허약한 놈이 이길 만한 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널 제압하겠다.”

         

       죽이진 못할지언정 제압은 가능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선언인가 싶으나, 그는 결코 허언을 내뱉지는 않았으니.

         

       투, 투욱.

         

       이한의 몸이 느릿하게 회전했다.

         

       흐느적거리는 몸짓.

       나른한 얼굴과 온몸에는 힘조차 없으니.

       지금껏 패기 넘치는 모습과 전혀 다른 탈력(脫力)적인 검형.

         

       ‘지금은 이거면 충분하다.’

         

       허나 그 어느 순간보다 눈은 또렷했으며 집중력은 곤두섰다.

         

       전날 이한이 채석장에서 쉴 틈 없이 무작정 곡괭이를 휘두르며 얻은 깨달음은 하나였다.

       ‘힘’이란 게 꼭 힘을 줘야지만 나오는 게 아님을.

       역설적인 말이며, 무슨 헛소린가 싶을 거다.

         

       허나 그가 깨달은 바론 힘(力)은 반드시 육체가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힘은 어디에나 있다.’

         

       회전하는 기류나 부는 바람에도 힘이 있고, 노래와 악기의 소리에도 힘은 있다.

         

       곡괭이질도 마찬가지다.

         

       ‘그때’ 휘둘렀던 곡괭이질은 이한의 생애에서 가장 연약한 곡괭이질이었다.

         

       하지만 그 곡괭이는 기어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처럼 암석을 갈랐다.

       부순 것이 아니라 가른 것이다.

         

       곡괭이 자체가 가진, 철이란 놈이 가진 힘을 일시에 모두 소비했기에 해낼 수 있던 기예.

         

       신검일합과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다.

       단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가진 무기란 놈은 사실 더 날카롭고 위력적인 무기란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이.

         

       화라락!

         

       검기(劍氣)를 형성시켰다.

         

       검기상인.

         

       로엔이 보였던 투기법의 새로운 신기원.

         

       허나 로엔이 보였던 검기는 강압적이고, 여러 가지 요소와 천부적인 재능을 합치해 강제로 일으킨 검기였다면 이한의 검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검이, 철로 이루어진 무쇠덩어리가 가진 잠재력을 발산했을 뿐이다.

         

       경과 비슷한 원리지만, 보다 더 깊게 검을 이해하게 됐기에 검은 주인의 의지에 응하며 검기는 빛살을 흐느적거렸고, 마침내-.

         

       화악!

         

         

       ─꽃을 활짝 피웠다.

         

         

       [[???]]

         

       가까스로 용오름에서 빠져나온 귀왕의 눈에 다시금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이거 뭐지?

         

       [[…꽃?]]

         

       그래, 그건 꽃이었다.

       방금 꽃 모양의 바늘과는 아예 별개인….

       진정한 의미의 꽃이었다.

         

       허나, 이 계절에 피기엔 적당한 꽃이 아니다.

       마치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라지는 과실의 꽃잎과 닮았으니 말이다.

         

       …혹, 요술쟁이가 또다시 요술을 부렸나 싶은 계절을 거스르는 개화(開花)의 순간.

         

       그리고 개화한 꽃잎은 마치.

         

         

       “-육합검법은 못 하겠던데, 매화는 피울 수 있겠더라. 신기하게 말이야.”

         

         

       그래.

         

       그 꽃은 봄날의 매화와 닮아 있었다.

         

       * * *

         

       [[…….]]

         

       귀왕은 꽃잎을 닮은 검기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아름답게 핀 검기는 마물의 왕조차 시선을 빼앗기게 하는 현혹스러움이 있었으니.

         

       아름답다.

         

       그저 검기가 피어낸 꽃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이들로선 생경함과 신비로움을 느낄 따름.

         

       천 년 전 저에게 덤빈 어떠한 놈들도 저런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여 귀왕은 여름날이 다가오는 계절과 맞지 않게 핀 매화에 현혹됐고, 그대로.

         

       푹.

         

       [[?]]

         

       꽃잎이 제 살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봐야 했다.

         

       “약하지는 않을 거다.”

         

       초췌해진 낯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걸 다 썼다는 것처럼.

         

       파스슥….

         

       검기를 피워낸 검은 그 생명을 다하고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어느 것이든 대가가 필요하며, 검은 주인을 위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꽃을 피움으로 그 또한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없다.

       이건 그런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제법 괜찮은 작품이지?”

         

       푹!

       푸푹!

       푸우욱-!

         

       제가 피어낸 작품을,

       꽃잎이 귀왕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걸 감상했다.

         

       [[!!!!!]]

         

       귀왕의 몸이 뒤집혔다.

       쿠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토해낸다.

       지금껏 어떠한 공격을 맞더라도 저토록 극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을 터.

         

       검기의 꽃잎은 미세하게 살결을 파고들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으니까.

         

       장기 곳곳을 돌아다니며 찌르고 베고, 파고들길 반복하는 것이다.

         

       통각이 있는 생명체라면 저것을 견뎌내는 게 요원한 일이다.

         

       아미 지금쯤 지옥을 보고 있을 터.

         

       “…말했잖아, 제압할 거라고.”

         

       역시 저걸로 죽이진 못한다.

       저 재생력은 반칙을 넘어 신비와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재생력이 있는 만큼 아플 거다.

       내부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칼날의 고통이 어떠한지를 어린 날 마법사에게 고문당하며 배운 바 있다.

         

       저렇게 당하고 나면 체력이 다하여 일어설 생각조차 들지 않으니까.

         

       …뭐, 안타깝게도.

         

       [[너…너…요…술]]

         

       쿠웅…!

         

       놈에겐 상식이 통하지 않는 듯했지만.

         

       기이어 일어서는 귀왕이었고, 이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사신이라더니, 체력조차 무한한 것인가?

       

       ‘난 당하고 나서 체력도 바닥이던데, 하여튼 괴물 새끼….’

         

       질리고 만다.

       끈질긴 게 바퀴벌레 저리가라다.

         

       “……졌다, 이 자식아.”

         

       이한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저놈은 마물이기 이전에 현재의 자신으로선 이기지 못하는 생물이 맞았으니 말이다.

         

       초월적인 생명체, 괴물.

       자연재해, 마왕.

         

       이 모든 것이 합당한 괴물이 아닐 수 없고, 저러니 고대의 왕국도 멸망하고 만 것이리라.

         

       쿠웅, 쿠우웅!

         

       [[죽…인다!!]]

         

       격렬한 감정과 함께 자신을 먹으러 오는 귀왕이었고,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이한은 덤덤히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놈을 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아이린이나 데릭, 혹은 호수 안 물고기 등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하니, 원.

         

       “…그렇게 나를 먹고 싶냐?”

         

       [[Grrr!!!]]

         

       말해 뭐하겠냐며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였고, 이한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자신은 이상한 것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같은 거 먹어봤자 배도 안 찰 텐데 말이야, 안 그래요?”

         

       [[죽…인….]]

         

       “저놈 계속 죽인다는 말만 하는 거 보니까, 죽인다는 말을 학습할 정도로 많이 들었나 봐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재.”

         

       [[……?]]

         

       …도중 이상함을 깨달은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저 미물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그러한 의문이 들 때.

         

         

       “-또 기괴한 기술을 만들었더구나. 한데 제법 괜찮았다. 완성만 되면 나도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허허.”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미안하구나, 하지만 성을 함부로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더구나.”

       “참 나. 사람은 다 죽어가게 생겼구먼.”

       “널 믿었던 게다.”

       “우라질! 말은 잘합니다.”

       “허허! 진심을 말했는데도 믿어주질 않으니, 원. 억울하구나.”

         

       태평하게 대화하는 두 사람이었고, 귀왕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다.

         

       [[GAA!!]]

         

       귀왕은 분노하며 포효했다.

       감시 자신을 무시하냐며.

         

       그러나 귀왕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놈 참 둔하구나, 이미 생을 마감했음에도 뭘 그리 미련이 많을고-?”

         

       ……나아가려 했지만, 귀왕은 다리가 없었다.

         

       숭겅-!

         

       아니, ‘잘려나간’ 상태였다.

         

       분리된 다리.

       그러나 분리된 것은 마냥 다리만이 아니라.

         

       서걱! 서걱-!

         

       [[G……r…!]]

         

       목 또한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여전히 이해 못 하며 귀왕은 눈을 부릅떴다.

         

       억울하여 눈조차 감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직 베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일 뿐.

         

       귀왕은…!

         

       [[[—–.]]]

         

       단말마를 내뱉을 시간도 없이 안광의 생기가 사그라질 따름이었다.

         

       허무하도록….

         

       “…왜 다들 나보고 괴물이라는 건지.”

         

       눈앞의 저 양반이야말로 진정으로 괴물이거늘.

         

       이한은 언제 칼을 휘둘렀는지 보지도 못한 그의 솜씨에 질리고 말았다.

       조각조각 나뉘고 있는 귀왕이었고, 고개를 젓고 만다.

       아직 저 인간을 이기리란 요원하다 못해 한참 먼 훗날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발타르 그레이스.

         

       왕국 최강의 기사이자 초인.

         

       천 년 전, 고대의 왕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러 유저가 있는 시대에 나타난 것이 귀왕의 유일한 패착이었다.

         

         

       허무하지만 압도적인.

       몬스터 레이드의 결착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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