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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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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잠깐 제스..진정 -..진정 좀..”
    “끼잉,낑…쭈인…쭈인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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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내 위에 올라타, 내 볼에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듯한 소리를 흘렸다. 반사적으로 제스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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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
    ​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이가 눈앞에 있으니 다른 질문보다 그 질문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내 얼굴에 마구 얼굴을 문지르던 제스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
    ​
    덥석!
    ​
    ​
    “컁?”
    ​
    ​
    제스의 몸이 갑작스럽게 위로 번쩍 들려졌다. 시선을 굴리자 아이리스가 싸늘한 얼굴로 제스의 누더기 로브를 붙잡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제스는 목이 물려 끌려가는 강아지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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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이거 뭐야?”
    “오,오빠 친한 동생이야”
    ​
    ​
    아이리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살벌해 보여 말을 더듬으며 대답하자, 아이리스의 눈이 더욱 스산해졌다.
    ​
    ​
    “친…한 동생?”
    ​
    ​
    뭔가…아이리스의 등 뒤로 ‘구구구구구!’하는 효과음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놀란 눈으로 아이리스에게 붙잡힌 제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
    ​
    “..피 냄새,크르릉.”
    ​
    ​
    급하게 투기장을 벗어나느라 씻을 시간이 없었다. 그 탓에 아이리스는 피범벅인 상태였다. 코가 예민한 제스는 피 냄새가 싫은지 크르릉거리며 이를 내보였다. 
    ​
    ​
    그런 제스를 아이리스가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저대로 두면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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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우선 제스를 내려놓자.”
    “…응.”
    ​
    ​
    평소보다 늦은 대답과 함께 아이리스가 제스를 놓아주었다. 제스는 몸을 파드득 떨며 코를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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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쭈인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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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제스의 말투는 굉장히 성숙해져 있었다. 다만, 주인님이란 말은 여전히 쭈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어 아직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다.
    ​
    ​
    “응, 여긴 내 동생 아이리스야.”
    “동생…?”
    “가족이라는 말이지.”
    ​
    ​
    그 말에 제스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어느새 머리 위로 솟은 빨간 귀가 축 늘어져 있었다.
    ​
    ​
    “제스는 쭈인님 가족 아니에요?”
    ​
    ​
    제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혹한기가 찾아왔다. 나는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이리스 쪽에서 눈바람이 날리고 있었다. 
    ​
    ​
    덥석!
    ​
    ​
    아이리스가 갑작스럽게 내 팔을 끌어안으며 제스 쪽을 노려보았다.
    ​
    ​
    “오빠는 내 오빠. 너는 동생 아니야.”
    “히이잉..”
    ​
    ​
    아이리스의 단호한 말에 제스가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냐 제스도 내 가족이지.”라고 말하려다가, 머릿속의 본능이 내 목을 움켜잡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
    ​
    여자의 직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남자도 세상을 초월한 눈치가 있다. 이 말을 하면 나는 X된다! 라는 감각!
    ​
    ​
    “제스는…가족…이랑 비슷한 거지!”
    “비슷…?”
    ​
    ​
    아이리스의 곁에서 부는 눈바람이 더욱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제스는 축 늘어뜨렸던 귀를 쫑긋 세우며 꼬리로 프로펠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
    ​
    “정말?”
    “으응.”
    ​
    ​
    꽈아악,아프다. 팔이 아프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등을 툭툭 두드린 후, 고개를 숙여 아이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
    ​
    “하지만 진짜 가족은 아이리스뿐이야. 제스한테는 비밀이야. 알겠지?”
    “…!”
    ​
    ​
    꽉 조이다 못해 이승을 탈출하려던 팔이 온전한 형태로 돌아왔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
    ​
    ‘가족 아닌 거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
    ​
    아이리스의 반응을 봐선 난리가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가족이 아니라는 걸 들켰을 때 해결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답은 쉽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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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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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부탁한다! 미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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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왠지 시공간을 넘어 미래의 내가 나에게 욕설을 날리는 게 들리는 것 같지만 가볍게 무시하자.
    ​
    ​
    “자,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제스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쭈인님 찾으러 욜,욜심? 달려왔어!”
    ​
    ​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쫑긋 서 있던 귀가 축 늘어져 쓰다듬 받을 준비를 했다.
    ​
    ​
    ‘귀,귀여워…’
    ​
    ​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스의 꼬리가 또다시 마구 흔들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복슬복슬한 감각을 느끼며 애니멀 테라피…비슷한 걸 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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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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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손목이 잡혀 위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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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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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로 끌려간 내 손은 아이리스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핏물이 굳어 딱딱해진 머리카락이 손끝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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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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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귀여운 아이들 사이에 껴있으니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
    ​
    ​
    “커흑..”
    ​
    ​
    진짜 영혼이 빠져나오려는 감각에 혀를 깨물며 정신을 차렸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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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오빠!”
    “쭈인님!”
    ​
    ​
    그런데 애들은 괜찮지 않았나 보다. 내 품에 뛰어들며 울상을 짓는 모습에 핏물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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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볼을 잘 못 씹어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그것보다 사려고 했던 식료품부터 사자. 아, 제스도 우리랑 같이 다닐 거지?”
    ​
    ​
    빠르게 주제를 돌리자 제스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애들이 더 매달리기 전에 후다닥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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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인인 제스가 먹을 분량까지 생각해 최대한 넉넉히 식량을 구매했다. 거의 식료품 가게를 다 털어온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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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공간에선 음식이 상할 일 없으니까. 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사둬야지.’
    ​
    ​
    가게 주인이 입을 떡 벌린 채 가방 안으로 사라져버린 식료품을 바라보았다. 이내 금화로 값을 치르자 헤벌쭉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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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누더기였던 탓에 용병 용품 가게에 다시 들러 제스가 입을 법한 로브와 옷을 샀다. 옷과 로브를 계산한 후 가방에 밀어 넣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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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저기 들렀다가 가자. 출발하기 전에 씻고 가지 않으면 몬스터가 몰려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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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간판이 달린 여관을 가리키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
    제스가 코를 찡그릴 정도로 피 냄새가 진동하는 상태이니,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어버릴 것이다. 가능하면 씻고 가는 게 좋았다.
    ​
    ​
    ‘처음에는 최대한 빨리 나갈 생각이었는데..’
    ​
    ​
    점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도박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여자를 옆구리에 낀 채 술을 진탕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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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을 먹고 뻗은 사람도 종종 보였다. 무법지대인 이곳에선 일상 같은 장면일 것이다. 다른 가게라고 해서 다를 거 없었다. 
    ​
    ​
    나는 곧바로 데스크로 다가갔다. 안경을 쓴 채 신문 같은 걸 읽던 콧수염을 기른 나이 든 남자가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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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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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
    ​
    “도박은 저쪽, 약쟁이는 저쪽, 여자가 필요하면 원하는 취향 말해달라고. 오, 이런. 이미 끼고 왔나? 그것도 둘이나 데려오다니 능력이 좋은걸? 그럼 방이 필요하겠군?”
    “욕실이 포함된 방이 있을까요? 반나절만 사용하고 떠날 생각인데..”
    “그럼 3실버. 씻는 것까지 포함하면 5실버.”
    ​
    ​
    1실버가 대충 십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바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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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싸게 가능할까요?”
    “안돼. 싫으면 나가.”
    “뭐, 그러죠.”
    ​
    ​
    선뜻 나간다고 하자 남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
    ​
    “에휴, 내가 딱해서 봐준다 3실버.”
    “제가 1실버 20쿠퍼 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
    ​
    욕실 딸린 방 하나 빌리는데 보통 1실버 정도 사용된다. 원작에서 본 내용이었다. 남자는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받아줬다. 
    ​
    ​
    우리 셋은 곧바로 예약된 방으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근 후 두 사람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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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한 빨리 씻고 떠나 -…”
    “와! 목욕이다!”
    ​
    ​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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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로브와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옷이 허공에서 느릿하게 떨어지며 제스의 헐벗은 몸을 가려주었다.
    ​
    ​
    “…나는 오빠랑 씻을래.”
    “그건..힘들지 않을까?”
    “….정말?”
   “으응.”
    “….안돼?”
    “안..돼.”
    ​
    ​
    아이리스가 초롱초롱 눈 공격을 했지만 안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진짜 나이 차 많이 나는 남매라면 모를까, 까놓고 보면 아이리스와 난 완전히 남이었다. 결혼까지 가능한 완전한 남!
    ​
    ​
    그렇기에 함께 씻는 건 절대 안 된다. 내 생존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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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애니 세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있지 않은가? 여탕에 남자가 숨어들었다가 마지막 추억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다시 부활한다고 해도 죽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
    ​
    “자, 어서 들어가서 씻어.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쳇.”
    “응?”
    ​
    ​
    방금 아이리스가 혀를 -…에이 아니겠지. 우리 착한 아이리스가 그럴 리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
    ​
     쏴아아아 -.
    ​
    ​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방이라 그런지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
    ​
    ‘애들 입을 옷이나 꺼내두자.’
    ​
    ​
    그리 생각하며 가방에서 옷을 꺼내 들고 있는데..
    ​
    ​
    삐걱삐걱.
    ​
    ​
    뭔가 옆방과 윗방에서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
    ​
    ‘난…슬프지 않아.’
    ​
    ​
    눈에서 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애들 옷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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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ㅇ

리안은 마음의 땀을 훔칠 뿐..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자,잠깐 제스..진정 -..진정 좀..”

“끼잉,낑…쭈인…쭈인님..”

제스가 내 위에 올라타, 내 볼에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듯한 소리를 흘렸다. 반사적으로 제스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제스 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이가 눈앞에 있으니 다른 질문보다 그 질문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내 얼굴에 마구 얼굴을 문지르던 제스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덥석!

“컁?”

제스의 몸이 갑작스럽게 위로 번쩍 들려졌다. 시선을 굴리자 아이리스가 싸늘한 얼굴로 제스의 누더기 로브를 붙잡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제스는 목이 물려 끌려가는 강아지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있었다.

“오빠…이거 뭐야?”

“오,오빠 친한 동생이야”

아이리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살벌해 보여 말을 더듬으며 대답하자, 아이리스의 눈이 더욱 스산해졌다.

“친…한 동생?”

뭔가…아이리스의 등 뒤로 ‘구구구구구!’하는 효과음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놀란 눈으로 아이리스에게 붙잡힌 제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피 냄새,크르릉.”

급하게 투기장을 벗어나느라 씻을 시간이 없었다. 그 탓에 아이리스는 피범벅인 상태였다. 코가 예민한 제스는 피 냄새가 싫은지 크르릉거리며 이를 내보였다.

그런 제스를 아이리스가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저대로 두면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이리스 우선 제스를 내려놓자.”

“…응.”

평소보다 늦은 대답과 함께 아이리스가 제스를 놓아주었다. 제스는 몸을 파드득 떨며 코를 찡긋거렸다.

“쭈인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제스의 말투는 굉장히 성숙해져 있었다. 다만, 주인님이란 말은 여전히 쭈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어 아직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다.

“응, 여긴 내 동생 아이리스야.”

“동생…?”

“가족이라는 말이지.”

그 말에 제스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어느새 머리 위로 솟은 빨간 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제스는 쭈인님 가족 아니에요?”

제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혹한기가 찾아왔다. 나는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이리스 쪽에서 눈바람이 날리고 있었다.

덥석!

아이리스가 갑작스럽게 내 팔을 끌어안으며 제스 쪽을 노려보았다.

“오빠는 내 오빠. 너는 동생 아니야.”

“히이잉..”

아이리스의 단호한 말에 제스가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냐 제스도 내 가족이지.”라고 말하려다가, 머릿속의 본능이 내 목을 움켜잡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여자의 직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남자도 세상을 초월한 눈치가 있다. 이 말을 하면 나는 X된다! 라는 감각!

“제스는…가족…이랑 비슷한 거지!”

“비슷…?”

아이리스의 곁에서 부는 눈바람이 더욱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반대로 제스는 축 늘어뜨렸던 귀를 쫑긋 세우며 꼬리로 프로펠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정말?”

“으응.”

꽈아악,아프다. 팔이 아프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등을 툭툭 두드린 후, 고개를 숙여 아이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진짜 가족은 아이리스뿐이야. 제스한테는 비밀이야. 알겠지?”

“…!”

꽉 조이다 못해 이승을 탈출하려던 팔이 온전한 형태로 돌아왔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가족 아닌 거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아이리스의 반응을 봐선 난리가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가족이 아니라는 걸 들켰을 때 해결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답은 쉽게 나왔다.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부탁한다! 미래의 나!

왠지 시공간을 넘어 미래의 내가 나에게 욕설을 날리는 게 들리는 것 같지만 가볍게 무시하자.

“자,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제스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쭈인님 찾으러 욜,욜심? 달려왔어!”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쫑긋 서 있던 귀가 축 늘어져 쓰다듬 받을 준비를 했다.

‘귀,귀여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스의 꼬리가 또다시 마구 흔들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복슬복슬한 감각을 느끼며 애니멀 테라피…비슷한 걸 하고 있는데.

슥.

갑작스럽게 손목이 잡혀 위로 들렸다.

“어?”

그대로 끌려간 내 손은 아이리스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핏물이 굳어 딱딱해진 머리카락이 손끝에 느껴졌다.

“…나도..”

아이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귀여운 아이들 사이에 껴있으니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

“커흑..”

진짜 영혼이 빠져나오려는 감각에 혀를 깨물며 정신을 차렸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괜찮았다.

“오,오빠!”

“쭈인님!”

그런데 애들은 괜찮지 않았나 보다. 내 품에 뛰어들며 울상을 짓는 모습에 핏물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보,볼을 잘 못 씹어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그것보다 사려고 했던 식료품부터 사자. 아, 제스도 우리랑 같이 다닐 거지?”

빠르게 주제를 돌리자 제스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애들이 더 매달리기 전에 후다닥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수인인 제스가 먹을 분량까지 생각해 최대한 넉넉히 식량을 구매했다. 거의 식료품 가게를 다 털어온 수준이었다.

‘아공간에선 음식이 상할 일 없으니까. 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사둬야지.’

가게 주인이 입을 떡 벌린 채 가방 안으로 사라져버린 식료품을 바라보았다. 이내 금화로 값을 치르자 헤벌쭉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스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누더기였던 탓에 용병 용품 가게에 다시 들러 제스가 입을 법한 로브와 옷을 샀다. 옷과 로브를 계산한 후 가방에 밀어 넣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잠깐 저기 들렀다가 가자. 출발하기 전에 씻고 가지 않으면 몬스터가 몰려올지도 모르니까.”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간판이 달린 여관을 가리키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스가 코를 찡그릴 정도로 피 냄새가 진동하는 상태이니,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어버릴 것이다. 가능하면 씻고 가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최대한 빨리 나갈 생각이었는데..’

점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도박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여자를 옆구리에 낀 채 술을 진탕 마시고 있었다.

약을 먹고 뻗은 사람도 종종 보였다. 무법지대인 이곳에선 일상 같은 장면일 것이다. 다른 가게라고 해서 다를 거 없었다.

나는 곧바로 데스크로 다가갔다. 안경을 쓴 채 신문 같은 걸 읽던 콧수염을 기른 나이 든 남자가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촤륵.

그는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도박은 저쪽, 약쟁이는 저쪽, 여자가 필요하면 원하는 취향 말해달라고. 오, 이런. 이미 끼고 왔나? 그것도 둘이나 데려오다니 능력이 좋은걸? 그럼 방이 필요하겠군?”

“욕실이 포함된 방이 있을까요? 반나절만 사용하고 떠날 생각인데..”

“그럼 3실버. 씻는 것까지 포함하면 5실버.”

1실버가 대충 십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바가지였다.

“더 싸게 가능할까요?”

“안돼. 싫으면 나가.”

“뭐, 그러죠.”

선뜻 나간다고 하자 남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에휴, 내가 딱해서 봐준다 3실버.”

“제가 1실버 20쿠퍼 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욕실 딸린 방 하나 빌리는데 보통 1실버 정도 사용된다. 원작에서 본 내용이었다. 남자는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받아줬다.

우리 셋은 곧바로 예약된 방으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근 후 두 사람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씻고 떠나 -…”

“와! 목욕이다!”

펄럭…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스가 로브와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옷이 허공에서 느릿하게 떨어지며 제스의 헐벗은 몸을 가려주었다.

“…나는 오빠랑 씻을래.”

“그건..힘들지 않을까?”

“….정말?”

“으응.”

“….안돼?”

“안..돼.”

아이리스가 초롱초롱 눈 공격을 했지만 안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진짜 나이 차 많이 나는 남매라면 모를까, 까놓고 보면 아이리스와 난 완전히 남이었다. 결혼까지 가능한 완전한 남!

그렇기에 함께 씻는 건 절대 안 된다. 내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그 애니 세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있지 않은가? 여탕에 남자가 숨어들었다가 마지막 추억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다시 부활한다고 해도 죽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자, 어서 들어가서 씻어.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쳇.”

“응?”

방금 아이리스가 혀를 -…에이 아니겠지. 우리 착한 아이리스가 그럴 리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쏴아아아 -.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방이라 그런지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애들 입을 옷이나 꺼내두자.’

그리 생각하며 가방에서 옷을 꺼내 들고 있는데..

삐걱삐걱.

뭔가 옆방과 윗방에서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난…슬프지 않아.’

눈에서 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애들 옷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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