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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크라슈가 펜달로드 패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

   그러는 사이 라크라디온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라크라디온은 아직 나서지조차 않았다.

   그녀가 합류해 전투한다면 얼마나 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지는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냥 가십쇼.”

     

   자신들로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그나마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니 그들이 길을 내주자 크라슈는 다가온 라크라디온과 함께 몸을 돌렸다.

   어차피 이제 제 육감으로 길은 다 찾았다.

     

   기계 미궁 벽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제 육감을 더 쓸 필요도 없었기에 크라슈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죽이시지는 않는군요.”

     

   그러는 순간 의외에 말이 라크라디온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크라슈가 나름 손속을 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쟤들이 도적단이나 세계 침식자의 종이냐? 다 죽이게.”

     

   크라슈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들이라고 마성궁에서 사람을 죽여 보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는 단언할 수 없겠지만.

     

   크라슈 입장에서는 충분히 손속 둬도 제압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어차피 힘의 차이를 느끼면 원한조차 못 가질 녀석들을 크라슈는 굳이 죽일 생각 없었다.

     

   앞으로 죽일 놈들이 아주 산더미 같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크라슈를 보고, 라크라디온은 얼마간 침묵했다.

   그러다 그녀가 크라슈를 따라 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라슈 님, 이번 일이 잘 끝나면 한가지 청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런 거 큰일 있을 때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발언인데.”

     

   크라슈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듣는 거야 어려울 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크라디온의 말은 역시 플래그를 세우는 발언이었던 것일까.

     

   기계 미궁을 크라슈와 라크라디온이 거의 다 돌파했을 때쯤.

   그들의 위를 유유히 날며 따라가던 크림슨가든이 갑자기 크라슈의 앞으로 내려왔다.

     

   [ 크라슈! ]

     

   그것도 함정을 말해줄 때와는 달리 꽤 기분 나쁜 감정을 담아서 말이다.

     

   [ 멈춰라! ]

     

   그리고 이어진 발언은 크라슈의 사고가 아주 짧게 가속화되었다.

   그 순간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크라슈가 라크라디온의 옷깃을 낚아챔과 함께 뒤로 당겼다.

     

   “엇.”

     

   비틀거린 라크라디온의 당황한 음색과 함께 크라슈와 라크라디온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거세게 울려 퍼진 소리와 함께 크라슈의 앞에 있던 벽이 갈라지며 그 너머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것을 본 라크라디온이 숨을 삼켰다.

     

   오러 블레이드조차 베지 못했던 미궁 벽이다.

   그걸 일격에 갈라 버리다니.

     

   그 격차를 이 한순간에 깨달은 것이다.

     

   저벅, 저벅-

     

   그사이 무너진 벽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크라디온, 뒤로 빠진다.”

     

   크라슈는 그 인기척을 느낀 즉시, 연기 속에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라크라디온을 이끌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라크라디온도 상황이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빠르게 크라슈와 함께 물러섰다.

     

   덕분에 두 사람은 이곳에 오기 직전인 갈림길로 무사히 빠져나가 벽에 달라붙었다.

   그러곤 최대한 인기척을 지운 채 감각을 곤두세웠다.

     

   크라슈의 제 육감은 미궁 길을 찾을 때보다 더 강하게 발현되고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리기 위해서였다.

     

   크라슈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크림슨가든이나 에벨아스크는 크라슈가 스스로 엮인 세계 침식자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가장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미치광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니까.

     

   당연하지만 크라슈라도 지금 수준으로 세계 침식자와 맞설 방법은 없다.

     

   세계 침식자가 무엇인가.

   세계 침식에서 태어난 그들은 세계 침식의 본연의 힘을 지니고 있고, 세계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중에 몇은 천하십강 이상인 괴물 같은 녀석도 있다.

     

   지금 여기에 나타난 이가 그런 수준은 아니어야만 한다.

   그랬다간 진짜 객사일 테니까.

     

   크라슈는 부디 최소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세계 침식자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는 순간 크라슈의 제 육감에 서서히 상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벽, 벽, 벽, 씨발, 더럽게 많네. 새로운 아이 마중하러 가는데 짜증 나게 말이야.”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곤두선 감각에 목소리가 잡혔다.

   하이톤의 높은 여성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드디어 상대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뒤로 나풀거리는 주홍빛 꼬리와 머리 위에 우뚝 솟아난 두 개의 호랑이 모양의 귀.

   목뒤를 살짝 넘는 복슬복슬한 머리카락 사이로 채워진 한쪽 안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몸 전체를 두르고 있는 수백 개의 무기였다.

   저만한 수의 무기를 대체 전신에 어떻게 지고 다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당연하게 그걸 행하고 있다.

     

   무장공주(武裝公主)

     

   크라슈가 평하기를.

   그냥 미친년이라 해도 좋은 세계 침식자였다.

     

     

     

   * * *

     

     

     

   호족, 무장공주.

   자기 몸에 덕지덕지 세계 각지의 무기란 무기는 다 두르고 다니는 정신 나간 세계 침식자.

   무기에 미쳐 있는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무기가 있으면 주인이 있건 말건 죽여서라도 빼앗는 여자였다.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말을 듣자마자 왜 그녀가 마성궁에 나타났는지 눈치챘다.

     

   ‘우뢰성을 노리고 온 거다.’

     

   세계 10대 천검으로 손꼽히는 우뢰성이다.

   당연히 무기에 미친 무장공주 입장에서는 군침이 돌았겠지.

     

   ‘예전에도 무장공주는 우뢰성을 노린 적 있었던 건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노렸다면 과거 무장공주는 낙천에게서 우뢰성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걸 가져간 건 다름 아닌 벨로킨이었으니까.

     

   ‘……무장공주도 낙천을 해결하지 못한 건가?’

     

   무장공주라면 낙천을 상대로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는 괴물이니까.

     

   그러나 낙천의 특이성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낙천은 마성궁 안에서는 불사신에 가깝다.

     

   마성궁의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기 때문에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낙천은 마음먹으면 8층을 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우뢰성을 빼앗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면 무장공주에게서 계속 도망치는 것도 큰 문제 없었을 것이다.

     

   ‘마성궁 공략이 목적이었다면 박살 낸 낙천을 두고 지나치면 그만이었겠지만.’

     

   우뢰성이 목적이었던 무장공주는 죽지 않고 도망치는 낙천을 상대로는 짜증만 부리다가 포기한 거겠지.

     

   10대 천검은 우뢰성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무장공주가 나타났다.

   과연, 그게 우연일까?

     

   아쉽게도 크라슈는 이게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무장공주는 원래도 10대 천검을 노리고 있었고.’

     

   때마침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발하임의 직계가 우뢰성을 노리고, 낙천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말이다.

     

   그녀는 단순 무식하다.

   그러니 그 소식을 들은 즉시 움직였다.

     

   ‘내가 발하임이라는 게 걸렸겠지.’

     

   발하임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황 발록 발하임이니까.

     

   그녀가 한쪽에 찬 안대.

   그 안대에 새겨진 상처가 과거 무황이 세계를 돌아다니던 도중 새겨준 상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는 발하임과 관련된 건 경기를 일으킨다.

   괜히 우뢰성이 발하임의 손에 넘어가 건드리지 못할 나무가 된다면 그 전에 빼앗겠다는 심보로 무턱대고, 마성궁에 쳐들어왔을 것이다.

     

   그것도 이쪽처럼 1층부터 차근하게 내려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닌 무기 중 하나를 사용해 7층부터 돌파해버리는 미친 짓거리와 함께 말이다.

     

   거기까지 결론이 나온 크라슈가 짜증스럽게 눈을 찌푸렸다.

     

   최근에 일들이 잘 풀린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이 크게 터져줬다.

   그것도 스케일이 남다르게 말이다.

     

   그 사이 8층으로 향하는 무장공주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 최대한 빨리 몸을 뺀 덕분인지 저쪽은 이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전투 특화지 감지는 소질이 없는 편이니까 말이다.

     

   크라슈의 입에서 겨우 풀린 숨이 나왔다.

   만약, 7층에서 무장공주와 직접 맞붙었다면 크라슈도 방법이 없었다.

     

   “크라슈 님, 방금 그자는…….”

   “세계 침식자다.”

     

   라크라디온이 숨을 삼켰다.

   세계 침식자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는 크라슈도 잘 알았다.

     

   단지, 이쪽은 겪어온 삶이 있으니 그 이름을 마냥 두려워하기도 뭐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 어쩔 생각이냐? 차라리 우뢰성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일 텐데. 저 미친년이랑 붙어서 좋을 건 없다. ]

     

   크림슨가든도 에벨아스크 때와 달리 무장공주는 나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 저년은 무기에 꽂히면 뒤가 없으니까. ]

     

   보아하니 느낌상 무장공주와 무기를 두고, 다툰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크라슈는 고개를 저었다.

   우뢰성은 포기하지 못한다.

     

   지금 크라슈에게 있어 천검 중 우뢰성만큼 구하기 쉽고, 가장 잘 어울리는 검은 없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는 걸 크라슈는 잘 알았다.

   장인이야말로 그 도구를 더 깊게 따진다.

     

   하물며 장인의 발끝에 미치려고 발버둥 중인 자신이다.

   도구를 더더욱 까탈스럽게 따져야만 했다.

     

   ‘게다가 우연이라도 우뢰성이 무장공주 녀석에게 넘어가면 끝장이야.’

     

   그녀는 후에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에서 가장 선두에 섰던 녀석 중 한 명이다.

   그런 무장공주에게 우뢰성이 쥐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딱 한 명.

   세계 침식자 중에 절대 우뢰성이 넘어가면 안 되는 놈이 있다.

     

   ‘검존(劍尊).’

     

   혹여나 무장공주를 통해 그놈에게 우뢰성이 들어가는 순간 그 혼자서 전쟁을 끝장내 버릴 정도로 판을 뒤집어엎는 장기 말이었다.

     

   샬롯이 끝끝내 검존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우뢰성을 샬롯이 가졌다는 차이 덕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우뢰성 덕분에 샬롯은 검존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만약, 앞에서 일어난 단 하나의 전제 조건도 채워지지 못했더라면 그 전쟁의 끝은 세계 침식자의 승리였을 것이다.

     

   ‘인제 와서 보면 아서 놈이 우뢰성을 욕심 안 내고, 샬롯에게도 별다른 짓을 안 했던 건 그 때문이었겠지.’

     

   아서는 검존은 그 당시에 우뢰성을 지닌 샬롯만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게 분명했다.

     

   ‘난 그걸 두고 볼 생각 없다.’

     

   아서는 샬롯과 우뢰성을 검존을 쓰러트리는데 버린 패로 썼지만.

   크라슈는 그 전쟁의 끝을 그렇게 둘 생각 없었다.

     

   그러니 우뢰성을 찾으러 마성궁까지 온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딴 전쟁 제대로 이뤄지게 둘 생각도 없어.’

     

   괜찮은 녀석들이 그때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는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아서 놈은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전쟁을 통해 이권이 약해진 창공의 세대를 확실하게 자신의 손에 쥐어 버렸지만.

   크라슈는 그런 이권 다툼에 욕심을 부릴 생각 없었다.

     

   크라슈에게 세계를 주름잡는 권한 같은 건 다 필요 없었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단 하나, 세계 멸망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이 또다시 오게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세계 침식자의 전력을 줄여 놈들이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라크라디온, 나는 8층으로 갈 거다.”

     

   8층이라면 무장공주를 대처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무장공주를 쓰러트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녀의 손에 우뢰성이 넘어가는 건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황에게 크게 데인적 있는 무장공주다.

   발하임의 직계인 크라슈가 우뢰성을 지니는 순간 발록의 화가 두려워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할 거란 것도 크라슈는 계산에 넣어 두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함께 온 라크라디온에게 물었다.

   낙천을 물리치고, 우뢰성을 얻으려면 애초에 그녀의 도움이 필요 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8층으로 가기 위해 온 마성궁입니다. 따르겠습니다.”

     

   라크라디온의 확고한 대답을 들은 크라슈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상황이 갑자기 악화했지만 오히려 운이 좋다면 좋았다.

     

   무장공주는 쓰러트리지는 못해도 상대할 방법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가자.”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비결을 써 보일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랑이는 고양이 과입니다.

[ 트위치에서 삽화 작업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
!!놀러 오실 분들은 트위치에 ‘무화꽃란’ 을 입력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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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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