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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식사가 끝나고 출정 준비를 마친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업혀서 여관에 왔던 네르도 이제는 힘을 되찾은 듯, 걸어서 내 뒤를 따랐다.

     

     

    바란이 나의 등장에 대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벼운 의뢰라지만 모두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우리가 모여드니 마을 주민들도 여기저기서 구경을 나온다.

     

    단원들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던 이장 녹스와 그의 딸 카일라도 다가왔다.

     

    이 마을에게 이 의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베르그님, 이제 나가시는 건가요?”

     

    녹스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합니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걱정되는건 어쩔수가 없군요.”

     

     

    가벼운 그의 말에서 고운 심성이 전해져온다.

     

    이런 사람이었으니 이장도 계속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그…”

     

    바란을 보며 명령을 지시하려던 중, 녹스가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말을 삼키며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카일라를 같이 데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의문에 침묵을 지키자, 그가 재빨리 변명했다.

     

     

    “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도 안전이 달린 문제라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무슨 말씀이시죠?”

     

     

    녹스는 저자세로 나오며 꿋꿋이 설명했다.

     

    “…불쾌하게 받아들이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베르그님이 혹시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마물이 있기라도 한다면…저희 마을에는 그보다 더 골치 아픈일이 없습니다. 카일라가 직접 보고 확인하는 편이 저희도 안심일 같아서…”

     

     

    말을 이리저리 포장했지만 그의 의도가 전해져온다.

     

     

    “…증인이 필요하다 이 말입니까?”

     

    “…”

     

    녹스는 침묵으로 나의 말을 긍정했다.

     

    사실 약속으로 묶인 관계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다고 오로지 믿음만 강요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그의 말이 딱히 불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내가 제안했다.

     

     

    “마물들의 머리를 수급해오겠습니다. 그러면 될까요?”

     

    “그보다 카일라를 데려가는게 편하시지 않으실까요? 카일라가 주변 지리도 아니 도움이 될겁니다.”

     

    “…”

     

    따지고 보면 녹스의 말이 옳았다.

     

    우두머리가 토벌 대상이라면 그 목을 증거로 가져다주면 되지만, 뎀스 마을의 흩뿌려진 수십마리의 마물들 죽여 일일이 챙겨오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닐것이었다.

     

    서로서로 이 편이 편하기는 했다.

     

    뎀스 마을은 확실한 증인을 얻는 것이고, 우리는 마물의 시체를 주섬주섬 챙길 필요가 없어지니.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하고 넘어갈 것도 있었다.

     

    나는 녹스 뒤에 서 있던 카일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와 눈이 맞자, 카일라는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를 향한 그녀의 노골적인 추파가 마음에 걸렸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했다.

     

    내 기분 때문에 더 옳은 길을 배제할 순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내가 카일라에게 물었다.

     

    “고될 수도 있는데.”

     

     

    카일라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괜찮아요. 마을을 위해서라면.”

     

    “다치실 수도 있어요.”

     

    “…지켜주실거라 믿을게요.”

     

     

    나는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꼭 이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하기야 사냥한 마물들의 목을 하나하나 자르는 것보다, 여인 한명을 지켜주는게 나을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툭.

     

    그때 무언가가 내 등에 닿았다.

     

    뒤돌아보니 네르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니야. 실수로 만졌어.”

     

    아르윈을 바라보자 그녀는 홱 눈을 피했다.

     

     

    별 것 없는 그 반응들에 나는 다시 카일라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고갯짓을 했다.

     

    카일라는 잰걸음으로 뛰어와 용병단에 붙었다.

     

     

    “감사드립니다.”

     

    녹스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란을 바라보자 그도 준비되었다는 듯 나에게 눈빛을 보낸다.

     

    그의 눈빛에 나는 다시 처음부터 하려던 말을 이었다.

     

     

    “자. 준비는 끝났지. 크게 방심만 하지 않으면 되니까 집중 잘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나는 몇 명을 호명했다.

     

    “번즈. 네가 정찰을 맡아. 마물의 흔적이 보이-”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카일라가 외쳤다.

     

    “잘 추적할 수 있어요. 우리의 마을이라 길도 잘 알아요. 저를 믿어주세요.”

     

     

    녹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럼 카일라가 길을 이끄는 걸로. 그래도 번즈는 앞에서 정찰해. 다음은 잭슨.”

     

    “네, 부단장.”

     

     

    나는 뒤에 네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우리가 돌아올 동안 네르를 지켜. 숀.”

     

    숀도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네!”

     

    “너는 아르윈을 지켜. 무슨 일 생기면 뿔나팔을 크게 불어. 금방 올테니까.”

     

    “알겠습니다.”

     

     

    우리 홍염단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둘을 그냥 내버려두고 떠날만큼 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녹스의 입장에서는 나의 이런 경계심이 짐짓 불편할지도 모르겠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기분보다는 나의 아내들이 우선이었다.

     

    녹스도 나를 의심해 카일라를 붙였으니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숀과 잭슨이 행렬에서 빠져나와 네르와 아르윈 뒤에 섰다.

     

    그들에게 눈빛을 보내자, 숀과 잭슨도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한다.

     

     

    우두머리 조에서 가장 믿는 대원들인만큼 마음이 보다 편해진다.

     

     

    이어서 나는 두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들 또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갔다올게.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내가 움직이자 대원들도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말을 타지 않기로 했다.

     

    우두머리가 아닌 마물을 사냥할 때는 이 편이 편했다.

     

     

    -탁.

     

    그 순간 무언가가 내 팔목을 잡았다.

     

    네르였다.

     

     

    그녀의 눈은 카일라에게 향해 있었다. 잠시 애먼곳을 바라보던 그녀가 나에게 말한다.

     

    “…조심히 다녀와.”

     

    그녀의 안부인사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세요.”

     

    뒤에 서 있던 아르윈도 마찬가지로 인사한다.

     

    어젯밤일이 떠올라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 더 자고 있어.”

     

     

    아르윈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마을 밖으로 나섰다.

     

     

    ****

     

     

     

    아르윈은 네르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같았다면 산책을 나갔을 법도 했지만…왜인지 그럴 마음이 아니었다.

     

     

    -쿵.

     

    단 둘만이 들어선 방에서는 긴 한숨이 이어졌다.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둘은 돌아온다.

     

     

    네르가 아르윈에게 물었다.

     

    “조금 더 주무실 건가요?”

     

     

    아르윈은 고개를 저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앉아있으려고.”

     

    “…그런가요. 저는 오늘 아침 기를 나누어줬더니 조금 피곤해서…”

     

     

    네르의 말에 아르윈은 한 장면이 떠오른다.

     

    베르그의 등에 업혀 있던 네르의 모습.

     

    왜 강조하듯이 네르가 다시금 그 일을 언급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강조했다고 느끼는 것조차 과민반응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아르윈은 네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있어, 네르.”

     

     

    네르는 그 말에 침대에 조심스럽게 올랐다.

     

    그 행동을 아르윈은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네르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쓰였다.

     

     

    …평소 베르그의 자리인, 침대 왼편에 누운것부터 눈길이 간다.

     

    항상 그러듯 오른편에 눕지, 왜 저기 눕는단 말인가.

     

     

    네르는 침대에 엎드려 시트에 코를 묻었다.

     

    그 상태에서 그녀는 꼬리를 천천히 살랑거리며 편하게 늘어졌다.

     

     

    침대에 오른 네르를 보니 아르윈은 어젯밤 베르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날 위험한 사냥을 나가는데도 악몽을 꾼 자신을 위해 잠을 포기하던 그의 모습을.

     

     

    인족, 또 단명종이라 편견을 가져왔지만…그렇게 따스한 대우는 그 누구에게도 받아본적이 없었다.

     

    편안한 잠에 이를 수 있도록 그가 끝까지 지켜봤다는 사실 또한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해서 네르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다.

     

     

    베르그가 상냥히 자신을 챙겨주었던 장소에…네르가 코를 묻고 누워있다.

     

     

    묘하게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했다.

     

    네르는 아무 생각이 없겠다지만, 대체 왜 저기인걸까.

     

     

    “……..”

     

    하지만 아르윈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이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하는지 알 수 없다.

     

    뭐가 됐든지 간에, 진실은 하나였다.

     

     

    네르는 아직도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생각에 마음이 어째서인지 너그러워진다.

     

     

    “…하아.”

     

    그녀는 베르그의 말대로 휴식이나 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지간에 아르윈은 그저 베르그가 빨리 돌아오길 바랬다.

     

    “…읏.”

     

    아르윈은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싶었다.

     

     

    베르그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니.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고 한참을 고민했다.

     

     

    ‘…바다가 보고 싶으니까.’

     

    그리고는 제 마음에 변명을 덧붙인다.

     

    170년을 기다려온 순간이니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아르윈은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

     

     

     

    “꺅!”

     

    -팍!

     

    “…”

     

    또 한번 내질러진 비명에 단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감탄하며 혀를 내두르는 단원들도 있었다.

     

     

    “…이야.”

     

    바란도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오로지 나만이 웃지 못하고 있었다.

     

     

    카일라가 내 몸에 안겨있었으니.

     

    “…떨어지라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무…무서워서…”

     

    하지만 카일라는 믿기 힘든 변명을 이어나가며 나의 말을 무시했다.

    주변에는 그녀가 겁낼만한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마을을 떠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말을 걸고, 만지고, 애교를 부리고, 안기며 카일라는 내게 구애를 했다.

     

    그녀를 떼어내주던 네르가 벌써부터 그리워질 판이었다.

     

     

    “…하아.”

     

    카일라가 이럴 것 같긴 했지만, 막상 이루어지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꾸우우욱…

     

    그녀의 이마를 밀어 내게서 떼어낸다.

     

    “아앗…”

    “떨어져.”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여자를 품을 생각이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낮잠돌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몽키루팡팡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ㅎㅎ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따라와주세요.

    stock size님! 4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봐주신다니 저도 기쁘네요! 큰 후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재밌게 보실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보여드릴게 아직 많이 남아있네요… ㅎㅎ 다시금 후원 감사해요. 맛있는거 먹고 힘낼게요.

    고스턴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 ㅠㅠ 매번 더 쓰고는 싶지만 여간 쉽지가 않네요. 일일연재도 사실 힘에 부칠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주신 사랑에 힘입어 힘내볼게요. 감사해요.

    아 최근에야 알았는데 이 소설의 나무위키 페이지가 생겼더라고요. 누가 정리해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꼼꼼히 정리해주셔서 감동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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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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