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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깨달음을 얻은 걸 축하한다.”

       

        “축하해요.”

        ​

        “감사합니다…한동안 벽에 막혀서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화두를 던져주시니…”

        ​

        화두? 

        ​

        이게 화두?

        ​

        그냥 적당히 말했을 뿐인데, 이런 말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고? 

        ​

        주인공이라고 오성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 건가. 나는 상상을 초월한 주인공의 재능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적당한 사자성어 막 던지다 보면 경지가 또 오르는 거 아닌가?

        ​

        “…은공?”

       

        “일단 오늘은 경지에 올랐으니 잘 갈무리해야겠지. 그러니까…비무는 다음에 또 하자고.”

        ​

        “감사합니다. 은공!”

        ​

        알았으니까 일단 가라. 나는 몇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며 떠나가는 목경이를 배웅해주곤, 그가 사라지자 한숨을 쉬었다.

        ​

        “무지막지한 재능의 편린을 본 기분인데.”

        ​

        “아저씨, 무슨 말을 했길래 깨달음을 얻은 거에요?”

        ​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

        내 말에 혜령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좋은 말이긴 하지만 깨달음을 얻을 정도인지는 모르겠어요…”

        ​

        “나도 모르겠다.”

        ​

        이런 말로 깨달음을 얻었으면 개나 소나 화경 찍고 무림 제국을 세웠겠지. 이 정도면 영약, 처음부터 의미 없는 거 아냐?

        ​

        보통 내공도 깨달음을 얻으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걸로 아는데. 어쩌면 내공은 이미 나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서역은 전반적인 오러의 양이 적은 편에 속하니까. 

        ​

        서양과 동양의 깨달음의 차이인지 오러가 그렇게 많이 불어나지 않기도 하고.

        ​

        애초에 서역의 아츠야 그 작은 오러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큰 문제는 없지만…그래도 중원사람들처럼 넘쳐나면 좋긴 한데.

        ​

        이 부분은 영약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겠지. 

        ​

        “나도 빨리 경지에 오르고 싶은데…아저씨! 저랑 비무해요!”

        ​

        “방금 수련 다녀온 거 아니었냐. 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

        “씻는 건 다시 씻으면 돼요!”

        ​

        “지쳤을 텐데 내일 하자.”

        ​

        “할 수 있는데-”

        ​

        볼 부풀리고 팔 파닥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수련도 적당히 해야 의미가 있는 거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잖냐.”

        ​

        “아저씨는 고사성어를 어떻게 아는 거예요? 그거 논어에 나오는 말이잖아요?”

        ​

        “…그냥 공부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

        “아저씨 대단해요! 저는 어려운 말은 잘 못 쓰겠던데-”

        ​

        “평범한 거니까 너무 시무룩해 하지 마라. 나도 각 잡고 공부해서 할 줄 아는 거니.”

        ​

        정확히는 21세기에서 그랬지.

        ​

        “헤헤…아저씨, 그럼 저는 먼저 방에 들어갈게요!”

        ​

        “그래, 그래라. 난 좀 씻고 올 테니.”

        ​

        나는 종종걸음으로 방에 들어가는 혜령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방으로 향했다.

        ​

        ——————————-

        ​

        “흠흠. 다 모이셨군. 이제부터 본선 대진표를 정하기 위한 추첨을 하겠소.”

        ​

        심판의 말에, 나와 혜령이를 포함한 모든 본선 진출자가 심판 옆에 놓인 적당한 크기의 나무 상자를 쳐다보았다.

        ​

        “저기서 뭘 뽑냐에 따라 올라갈 수 있냐 없냐가 갈리겠네요…”

        ​

        “너무 걱정하지 마라.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

        ​

        내 기억이 맞다면 본선부터는 최소 일류고수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후기지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대부분이니, 구파일방의 무인들과 대진이 붙는 게 아니라면 걱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싸움은 되지 않을 터.

        ​

        “아저씨는 안 떨려요?”

        ​

        “별로.”

        ​

        어제같이 육포 씹던 동료가 다음날 머리만 돌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한 전장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지. 적어도 죽을 걱정은 없잖아.

        ​

        물론 이제 그렇게 될 예정이긴 하지만…그건 어떻게든 해 봐야지. 저기 저 천산에서 아득바득 기어 오는 천마 녀석 대가리를 깨야 하니까.

        ​

        “가장 앞에 선 사람부터 하나씩 종이를 뽑으시오!”

       

        아, 이제 시작인가. 

        ​

        우리는 잡담을 멈추고 상자를 향해 다가가는 청년을 쳐다보았다.

        ​

        창을 든 걸 보니 보기 드문 창잡이인가. 무림에서는 창을 잘 안 쓴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

        한번 붙어보고 싶기는 한데, 대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

        “양씨세가의 양서유! 5조!”

        ​

        “큽…”

        ​

        “아저씨 왜 그래요?”

       

        “그냥 기침이 나온 것뿐이야.”

        ​

        이름이 왜 저래?

        ​

        처음의 기습 이래로, 본선 대진은 순조롭게 정해졌다. 

        ​

        그리고 거의 끝에 접어들어서야 내 이름이 불렸다.

        ​

        “위리엄! 앞으로 나오시오!”

        ​

        나는 터벅터벅 걸어 나와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

        이 쪽지로 할까. 나는 손을 빼내고 쪽지를 펼쳐 심판에게 보여주었다.

        ​

        “위리엄! 5조!”

        ​

        진짜 붙게 됐네.

        ​

        이걸 좋아해야 할는지.

        ​

        내가 자리로 돌아가자, 혜령이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

        “아까 그 창수랑 싸우게 됐네요!”

        ​

        “창이라.”

        ​

        생각해 보면 내 기사시절 메인 무장은 랜스였지. 검은 보조 무장이고. 

        ​

        그래서 창잡이 상대법을 잘 안다…고 하기엔 창이 생긴 게 너무 다르네. 애초에 랜스는 기병 돌파용 무기였으니 비교하는 거 자체가 이상하긴 하지만.

        ​

        그래도 아주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니 상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듯했다.

        ​

        이슬람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병들인 맘루크 중에는 창을 잘 쓰는 자도 여럿 있었으니.

        ​

        그들에 비하면 재주가 뛰어나진 않으리라.

        ​

        그쪽은 아예 작정하고 나라에서 키운 괴물들이었으니까.

        ​

        기사가 아니라면 정면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의 괴물들. 그놈들에 비하면 이 녀석들은…애송이에 불과할 뿐이다. 

        ​

        숙련된 도살자들과 평범한 인간의 싸움은 궤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

        “…재밌는 비무가 되겠네.”

        ​

        “으으, 첫 상대가 화산파라니…”

        ​

        “청매향이었던가?”

        ​

        “맞아요. 백매화 청매향 소저예요.”

        ​

        …누구더라?

        ​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원작 히로인은 아니겠지.

        ​

        나는 고개를 돌려 화산파의 무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청매향을 살폈다.

        ​

        기도 자체는 혜령이랑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

        혜령이보다 약간 더 윗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싸워보지 못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힘든 싸움이 되기는 하겠지만…혜령이가 알아서 하겠지.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응원뿐이다.

        ​

        “너무 기죽지 말고, 큰 차이 안 나니까 자신감 있게 싸워라.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내가 자주 말했지? 싸움은…”

        ​

        “주도권!”

        ​

        “그래.”

       

        “은공의 말이 맞습니다.”

        ​

        “추첨은 잘하고 왔나?”

       

        “그렇습니다. 첫 상대는 패력부 송무한 공자더군요.”

        ​

        패력부라…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이 녀석은 절정고수랑 붙여놔도 중간에 깨달음 얻고 절정고수 될 놈인데.

        ​

        까놓고 말해서 별걱정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원작 주인공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니까.

        ​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군. 잘하고 와라.”

        ​

        “응원 감사합니다. 은공.”

        ​

        “…”

        ​

        “흠흠…”

        ​

        아, 아직 안 끝났지.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끌어모으는 심판에게 시선을 돌렸다. 심판은 본선 진출자들을 쓱 둘러보더니,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외쳤다.

        ​

        “본선은 이틀 후 미시(未時)에 시작할 예정이니 늦지 말고 오시오! 일 다경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자동 탈락 처리되니 말이오!”

        ​

        미시면 대충 1시쯤이니까 밥 먹고 난 이후인가. 

        ​

        “그럼 무림의 미래를 책임질 후기지수들이여! 이틀 후에 보겠소!”

        ​

        그 말과 함께 심판이 단상에서 사라지자, 본선 진출자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흩어지는 무인들을 바라보다 소매를 잡아끄는 혜령이의 행동에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아저씨, 이제 뭐 할 거예요?”

        ​

        “밥 먹으러 가야지. 슬슬 밥시간이니.”

        ​

        “벌써 그렇게 됐어요?”

        ​

        “아마.”

        ​

        “저는 그럼 순찰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은공…”

        ​

        “너도 따라와라.”

        ​

        “예?”

        ​

        “이왕 온 김에 맛있는 거 먹고 가야지.”

        ​

        친분도 좀 더 쌓고 그래야지.

        ​

        미래에 마교와 싸울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동료신데.

        ​

        원작에서 순찰대 밥이 부실하다는 언급이 수도 없이 나왔던 걸 기억하고 있기에, 안쓰러워서 그런 것도 있었다. 사람이 먹고살기 고달파도 밥은 맛있게 먹어야지.

        ​

        “저는 괜찮습니다.”

        ​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

        “허나…”

        ​

        목경이의 시선이 혜령이 쪽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왔다. 

        ​

        아, 그런 건가.

        ​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이렇게 된 거 나름대로 관계를 쌓는다고 생각해라. 너도 언제까지 혼자서 다닐 수는 없다고.”

        ​

        “…알겠습니다.”

        ​

        혜령아, 뚱한 표정으로 그만 쳐다봐라. 나도 쓸만한 부하가 있어야 마교를 막든지 말든지 한다고.

        ​

        나는 삐졌는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홱 돌리는 혜령이의 볼을 콕 찌르며 말했다.

        ​

        “혜령아, 원하는 걸로 시켜줄 테니 기분 풀어라. 어차피…”

        ​

        “…알았어요.”

        ​

        혜령이는 내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랜스차징…하고싶다…

    츄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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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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