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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블랜튼과의 대화를 끝낸 로즈마리는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세간에서 마수라는 이름으로 정의되기는 해도 그녀 또한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몸. 신체 일부를 대체한 강철을 이끈 채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몸을 눕혔다.

         

        “하아암.”

         

       다른 인간형 마수들도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특히 로즈마리처럼 체구가 작은 경우에는 잠들어 있어야 하는 시간이 다른 마수에 비해 길었다.

         

       안 그래도 감시용 마법인 스코프(Scope)를 하루 종일 켜 놓고 있는 로즈마리였다. 마법은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술자의 체력에 부담을 준다. 마력초를 피우거나 마력 사탕을 핥아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원래의 몸은 마력을 담을 수 없었으니 신체에 무리가 가는 건 똑같았다. 그녀에게는 하루 여덟 시간의 취침이 필수였다.

         

        “뭐야, 오늘은 별거 없잖아.”

         

        12시를 넘긴 시각. 에테르와 귀쟁이 엘프의 동향을 파악한 로즈마리는 두 사람이 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주변에 다른 이들도 있는 걸로 보아 오늘은 회포를 푸는 날인가 보다.

         

        “그래, 너희들도 종강은 즐겨 둬야지.”

         

        로즈마리는 화면 너머로 풍겨오는 알코올 냄새에 치를 떨며 몇 분 동안 시장가를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마력초를 재떨이에 털어버렸다. 담배를 하도 해서 그런지 입가가 텁텁했다.

         

        구취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이름을 지닌 식물의 향수를 뿌린 것도 모자라 클리닝 마법까지 사용했다. 이만하면 체향으로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로즈마리는 기나긴 하품을 하며 목화솜으로 된 이불을 덮었다.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았지만 피로는 제때 풀어줘야 한다. 모든 상념을 끊어내고 꿈나라로 향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의 로즈마리는 거대한 거북이 위에 올라탄 채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라, 로즈마리는 쌕쌕 숨을 내쉬면서도 실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

         

         

        그리고 버멜은 로즈마리가 그런 생활패턴을 지닌다는 걸 전부 꿰고 있었다. 그가 새벽같이 일어난 이유였다.

         

        간만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숙취가 몰려왔다. 그렇다고 뭉그적거리고 있을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철판과 매쉬가 있다. 이것들을 들고 동아리 부실로 향했다.

         

        동아리 부실은 총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작업을 하는 곳이었고, 두 번째로 넓은 장소는 부실의 옆칸에 붙어 있는 비품실이었다. 비품실에선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물품이 웬만해선 구비되어 있었다.

         

        그 말고도 남은 공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공간은 나머지 두 방과는 달리 사방이 막혀 있는 곳이었다. 또한 크기도 두 평 남짓한 수준이라 부원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사용되질 않고 있었던 공간이었다.

         

        비품실로도 해결 못할 쓰레기들을 두는 장소, 즉 폐창고였다.

         

        다만 동아리 부장이었던 로르웰이 깔끔한 성격이었던 탓에 이곳은 현재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버멜은 이곳 문고리를 따고 들어간 뒤 사방에 철판과 매쉬를 하나씩 설치하기 시작했다. 철판을 직접 덧대기 어려운 천장엔 철사로 된 그물망을 직조하여 켜켜이 쌓아 올렸다.

         

       그 탓에 창문 하나 없어서 원래부터 어두웠던 공간이 이젠 아예 고문실처럼 변해 버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로즈마리의 스코프(Scope) 감시를 피하는 정석적인 방법. 사방을 전기 전도도가 좋은 금속으로 장치하고, 외부의 태양광까지 완전히 차단한다. 이렇게 하면 손님을 맞이할 준비는 다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자 두 개와 작고 가벼운 책상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 고작 가구 세 개를 놓기만 해도 벌써 공간이 꽉 찰 지경이었다. 

         

        두 의자 중 벽과 가까운 쪽 의자에 앉은 버멜은 작은 책상 앞으로 두꺼운 노트를 꺼내놓았다.

         

        남이 볼 땐 평범하디 평범한 가죽 노트. 그러나 그 내부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그야 그렇다. 자신이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직후 얻은 기연과 그렇지 못했던 기연들, 그리고 인간관계나 여러 공략 루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버멜은 그 노트의 중간 부분을 펼쳐보았다. 손바닥만 한 다홍색 사탕 포장지가 넙데데하게 붙어 있었다. 뿐만 아니다. 포장지 안쪽에는 날카로운 필기체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If u r not Korean, we could talk in EN]

         

        필리우트 제국에서 사용하는 문자와는 조금 다른 알파벳. 동시에 현대적 문법에 상응하는 지구만의 국제 표준어.

         

        이런 문장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렌스 대륙 전체에서 자기 한 명뿐일 거라고. 적어도 버멜은 그리 믿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선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통 방식과 작문. 그렇지만 이조차도 반갑게 느껴졌다.

        

        “…됐다.”

         

       이제부턴 전황이 크게 바뀔 것이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니까.

         

         

        **

         

         

        빙의자와 약속을 잡은 시간은 해가 진 이후. 그 전에 헤를라인 선생님이 날 불렀으니 그쪽을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저 안 꺼내 주세요?]

         

        자물쇠로 가둬 놓고 있었던 양장본이 계속해서 성질을 부려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이사장실로 오라는 헤를라인 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나는 짐을 반쯤 싸놓은 뒤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사실 이사장을 만나느니 마느니 하는 일은 별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잰걸음으로 아카데미 본관에 들어갔다.

         

        “어머, 왔니?”

         

        익숙한 은사의 목소리. 그러나 헤를라인 선생님의 표정은 그 목소리처럼 나긋하지 않았다. 어딘가 여유가 없으면서도 결연에 찬 듯한 낯빛이었는데, 능글거리는 평소의 태도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것임을, 또 이번 방학은 순탄하게 보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현관에서 대기를 타고 계시던 헤를라인 선생님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이사장실까지 안내를 받았다. 이사장실은 몇 번 들락거렸던 탓에 이젠 눈 감고도 걸어다닐 수 있었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인솔자가 없는 한 쉬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깐깐한 곳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이사장이 무슨 목적으로 나를 부르면서 추론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플레어 건으로 부르셨고, 최근에는 흑사병 대처를 잘 한 건을 두고 표창을 내리기 위해 부르셨다.

         

        당장 부를 이유가 없으실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사장실 문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옻칠이 잘 된 문이 신음을 토해냈다.

         

        “오셨습니까?”

         

        존대로 학생을 맞이하는 로베스피에르 이사장. 이 험난한 세상에선 충분히 인격자라 불릴 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공경의 의미로 가볍게 허리를 숙여 묵례했다.

         

        이사장실엔 이사장과 나, 그리고 헤를라인 선생님이 전부였다. 다른 학생이나 교수진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이번엔 무슨 일로 부른 걸까.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이사장이 찻잔을 내려놓기만을 기다렸다.

         

        탁.

         

        “에테르 양, 제 호출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나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이사장도 그런 나를 따라서 입꼬리를 올렸다.

         

        본격적으로 대화 주제를 시작해도 되겠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눈웃음을 건넸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우선 흑사병 건을 제외하고도 에테르 학생이 우리 학교에서 보여준 업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있을 때마다 부르자니 걸음을 늘리는 것 같아 오늘 이렇게 몰아서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용건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냐고 묻는 이사장의 질문에, 나는 가급적 짧게 끝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거 말고도 일정이 잡혀 있거든요.

         

        “학생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키도록 하죠.”

         

        턱, 하고 내 앞에 서류 한 장이 놓였다. 이사장의 손짓에 나는 눈가를 매만지며 그가 내민 서류를 잡아 내 품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글을 읽었다. 내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이번 학기 연구장학생으로 귀하를 추천함.]

         

        그 위로 여러 말이 적혀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지막에 적힌 그 한 줄.

         

        얼이 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구장학금인가 뭔가는 이미 헤를라인 선생님에게 한 번 받지 않았나? 그리 고민하며 침음을 삼키고 있던 사이에 이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처억. 책상 서랍 밑에서 튀어나온 또 한 장의 종이. ‘성적장학생 명단 발표’라는 글귀 아래로 수많은 학생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1학년부터 4학년부로 나뉘는 성적 장학생의 최상단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서, 성적이 벌써 나왔나요?”

         

        얼이 탄 목소리로 물어보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고란에 적힌 내 석차는 1등. 이번 학기에 빙의자를 제치고 1학년에서 가장 높은 등수를 차지했다는 뜻이었다. 첫 학기에는 실습보다는 이론 수업이 주를 이뤘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학생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각 학년의 수석에게는 전액 장학금이 나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라뇨?”

        “북방 전선에서의 패퇴와 흑사병의 창궐로 인해 지금 나라 경제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입니다.”

        “아.”

         

        그 정도는 눈으로 봐서 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 자리를 잡는다는 이 성도에서조차 무료 급식소가 열리고, 신실함과는 연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교회에 모여들어 격리라는 이름의 공동체 생활을 했었으니까.

         

        황성 주변이 이 정도인데 지방은 어떨지 감조차도 안 온다.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수석을 하더라도 반액 장학금으로 장학 금액을 낮추라는 목소리가 황실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어쩌겠나. 나는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현실의 벽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연구장학금을 따로 편성했으니까요.”

        “네?”

        “쉽게 말해 편법이라는 거야. 부족한 만큼 다른 명목으로 채운다는 거지.”

         

        헤를라인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플레어 특허를 포기했었잖아. 이번 펄스 스크롤도 비슷하고. 그거에 대한 학교 차원의 보상이라고 생각해도 돼.”

         

        이런 배려를 해 주시다니,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 그만큼 고맙긴 한데….

         

        “크흠.”

        

        이 사람들 안색이 왜 이리 어두운지 모르겠다.

         

        분명 웃고는 있다. 웃고는 있는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고 내 앞에서 대놓고 감정을 숨기려는 듯한 모양새도 아니었다. 

         

        아, 그럼 그렇지. 장학금 수혜가 본 대화 주제가 아니구나. 생각해보면 장학금 수혜 고지를 받으러 이사장실로 올 이유도 없었고.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헤를라인 선생님과 이사장의 표정을 단번에 추려냈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몰라도,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은 명백히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듯한 눈치였다.

         

        슬슬 가닥이 잡힌다. 내가 다음에 해야 할 말이 뭔지 알겠다.

         

        비즈니스 미소를 짓는 건 거의 한 달 만일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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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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