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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그리하여 마차에 산더미 같은 앵속이 날아와 푹신한 이불 바닥을 나뒹굴었다.

       청은 사실 좀 놀랐다.

         

       그 되지도 않는 엄살이 통했다고?

       대놓고 국어책을 읽었는데?

       뭐지? 중원에선 이런 연기를 믿는 경향이 있나?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다만, 대놓고 하는 아픈 척에 속아 주는 이가 있기는 했다.

       정말로 아닌 것 같기는 한데, 혹시라도, 진짜 혹시라도 만에 하나 진짜 아프면 어쩌나 하고.

         

       부모님의 은혜가 그러하고 자식의 효심이 또 그러하며 친애하는 연인과 둘도 없는 친구들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밖에 있는 마두가 그럴 리도 없고.

         

       아니면 아예 중독을 시켜서 조종하겠다는.

       

       아! 그거였구만.

       하지만 어림도 없지.

         

       청이 앵속을 분별없이 빨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에 해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도 결국에는 마약.

       심리적인 저항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막이 나타났다.

         

       생전 처음 맨눈으로 사막의 장엄함을 목도한 청의 웅장한 가슴이 감동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한 시진이 되기 전에 사막의 낮이 참 좆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밤의 사막은 또 신비하고 아름다워서 청의 장대한 가슴이 다시 감동으로 차올랐다.

       추위에 대한 강인한 내성을 가진 청이었다.

         

       근데 더운 건 좀.

       그것도 사방이 막힌 마차에서 이불에 파묻혀 있는 신세가 아닌가.

       이것들이 날 옮기고 있는지 찜기에 넣어두고 서문청 찜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낮의 개처럼 헥헥거리고 있을 때, 청의 시선에 들어오는 꾸러미들이 있었다.

         

         

       —-

         

         

       천산산맥.

       그 이름만으로도 웅장한 산세가 짐작이 가는, 중원의 끝이자 천장이었다.

         

       최고 봉우리는 승리봉으로, 백두산 약 세 개 분의 높이다.

       백두산 두 개짜리 높이의 봉우리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니 산맥 중턱에서 만년설이 하얗게 센 절경을 드러냈다.

         

       그와는 별개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기도 했다.

         

       척박한 땅, 험한 대지, 연중으로 추운 밤.

       그렇다고 짐승이 많지도 않으니 농사도 사냥도 애초에 답이 없는 험지 중의 험지였다.

         

       이 오지가 천마신교가 자리잡은 땅이었다.

         

       천마신교가 네 번이나 중원 침공을 감행한 이유였다.

       이렇게 척박하고 스산한 땅에 있으면 저절로 중원에 대한 증오가 끌어오를 수밖에는.

         

       반면 마교가 남아있는 이유기도 했다.

         

       변경 지나 고원에 올라 초원 건너 사막 건너 지체하지 않고 이동에만 세 달이 걸리는 세상 끄트머리 후미진 산맥의 저 안쪽이었다.

         

       아무리 마교 놈들이 밉고 증오스러워도, 아주 머나먼 원정길을 감수할 정도가 못 된다.

         

       초원의 황량함에 질리고, 사막의 낮과 밤으로 해동과 냉동을 번갈아가서 견디다보면, 드디어 저 멀리 만년설 쌓인 장벽이 멀리에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가까워지질 않네?

       천산 산맥의 높이는 원근감조차 무시한다.

         

       그 꼴을 보고 있으면, 복수심조차 ‘아, 이건 좀 아닌데’ 하고 사르륵 불씨가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역시 복수는 허무하니 다 잊고 따뜻한 집에서 불 쬐며 맛난 음식 먹는 게 최고라면서.

         

         

         

       날짜로 세 달, 거리가 약 구천 리에 이르는 호송길이었다.

       현대식으로는 삼천 육백 킬로미터가 되니 마교가 대놓고 어디에 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아무도 쫓지 않는 이유였다.

         

       본래 죄수 호송 자체가 쉬운 임무가 아니다.

         

       신교의 범죄자란 대개 신교에서 도망친 놈들이다.

       

       그런데 신교의 구성원은 중원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놈들 포함이었다.

       

       즉, 신교의 죄수란 도망쳐 와서는 또 죄를 짓고 도망친 놈들인 것이다.

        일반적인 탈주자보다 두 배는 대단한 놈들이었던 것.

         

       그러나 이번만큼 큰 규모와, 또 피해가 컸던 죄수 호송이 없었다.

         

       그리하여 호송에 참여했던 신교의 무사들이 저네들의 영웅적인 위업을 자랑했다.

       자랑이 늘 그렇듯이 과장 조금 섞어서.

         

       이번 죄수는 아주 미쳐가지고 눈만 마주치면 사람 대가리를 깨기를 즐기더라.

       죽어간 외작부 살수들이 수백에 이르고 보다 못해서 초절정 고수들을 전부 불러모았다고.

         

       그냥 와도 힘든 길을 죄수를 데리고 왔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리하여 치하의 말을 해 주려던 듣던 이가 그 대신 대답했다.

         

       “……그래서, 저게?”

         

       울 것 같은 표정의 자전마군에게 안긴 소녀가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일견 방정맞은 동작이나 그렇지 않고 오히려 기품이 흘렀다.

       방정맞은 동작이 방정맞지 않으려면 버릇의 수준으로 오래 훈련된 가풍이 몸에 배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디 명가의 영애가 틀림없으리라.

         

       “……쟤가 대가리를 막 깨고 다녔다고?”

         

       “속지 마. 저거 다 위장이야.”

         

       “어지간해선 고생했다고 해 주고 싶은데. 야. 구라도 정도가 있지. 입만 열면 거짓말이여.”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그렇게 청이 최후의 최후까지 엿을 먹였다.

         

       자전기 일렁이는 자전마군의 슬픈 표정으로 짐작하는 이도 있었다.

         

       저거 죄수가 좀 약을 많이 하나본데.

         

       자전마군의 딸은 그 싸가지로 유명했다.

       죽기 전에 이르러선 구제불능 심각한 약쟁이로 더욱 유명했다.

       딸자식 농사를 제대로 망친 최리옹이었다.

          

       그 이후.

       

       청이 여인들의 손에 건네졌다.

       지존을 보러 간다고 하니 꼬질꼬질한 상태로 놔둘 수가 없다.

         

       여인들이 청을 헹구고 닦고 광내고 말렸다.

       사실 청에게는 대단히 치욕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다 큰 성인이 수많은 여인들의 인형 놀이에 속절없이 몸을 내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약기운에 고양된 상태라서 큰 저항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치욕은커녕 오히려 좀 즐거웠다.

       

       끝물에서 약효가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계속 즐거울 수도 있었겠지만.

         

       서문청, 커다란 흑역사 하나 적립.

         

         

         

       그 날 밤.

       서문청이 지존 호소인을 다시 만났다.

         

       제단처럼 높게 쌓은 단 위에 붉고 푸른 비단 매달아 치렁치렁 늘어진 사이에 놓여진 왕좌.

         

       대전이라기보단 제단과 같은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제단이 맞기 때문이다.

       

       천마신교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후예들이다.

       이후 또다시 변질되어 지금은 지옥의 복수자들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름 전통이라고 유지되는 문화도 있었다.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청을 내려다보는 지존 호소인의 오른쪽, 지승주가 보다 초라한 의자에 앉은 채였다.

         

       뭐야, 저 새끼. 완전 이인자였네?

         

       청이 저걸 죽였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성질 못 참고 죽였으면 지금 무사하진 못했겠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 결과, 결론은 명확했다.

         

       도망치기 전에 죽이고 째야겠다.

         

       그리고 수십의 고수들이 대전 안에 이 열로 정연히 도열했다.

       그 사이에 두 다리로 선 청을 내려보던 지존 호소인이 말했다.

         

       “오면서 교인 여럿을 죽였다지?”

         

       또다시 얻어맞기는 싫었던 청이 비굴한 웃음을 장착했다.

         

       “그게요.”

         

       “아니. 됐어. 딱히 탓할 일은 아니지. 어차피 약해빠져서 죽은 놈이야 그 놈들 잘못이지.”

         

       “헤헤.”

         

       겨우 웃어주는 치욕 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오냐, 가랑비는 맞아주마.

       하지만 폭풍은 내 것이야.

       

       청이 신으로 추앙받는 한 창작자가 만든 명대사를 떠올렸다.

       

       그 화자가 가랑비에 너무 많이 맞아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현대 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것이다.

       아깝숑.

       

        “그런데 말야. 흠.”

         

       지존 호소인이 히죽 웃었다.

         

       “처맞고 완전히 꺾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개새끼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속으로는 아주 개새끼라고 욕을 했겠지?”

         

       “헤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흠, 연화야.”

         

       지존 호소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비단 사이를 헤치고 조신한 동작으로 나타나는 여인이 있었다.

       옥기린으로 단련된 청의 심미안에도 수준급의 미인이었다.

         

       “지존. 소녀를 부르셨습니까?”

         

       “벗어.”

         

       “예.”

         

       여인이 곧장 훌러덩 입은 궁장을 끌렀다.

       지존 호소인이 여인을 손가락질했다.

         

       “이봐, 이게 보이나?”

         

       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자기 과시?

         

       “여기 사내새끼가 몇이야? 수치심도 모르는 년이 벗으라면 벗지. 멍청한 년.”

         

       여인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손은 부들부들 떨었다.

         

       청이 여인을 불쌍하게 여겼다.

       아니 지가 벗으래놓고 저 지랄이네.

         

       그러다가 여인의 악업을 확인했다.

       음. 좀 더 욕을 먹어도 되겠는걸.

         

       “이러니 여인이란 것들은 재미가 없어. 아양이나 떨 줄 알지.”

         

       여인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런데 또 본좌는 감히 본좌에게 대드는 걸 몹시 싫어해. 너도 겪어 보았으니 알겠지?”

         

       청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이 씨발 새끼. 산 채로 태워야지.

         

       누군가에게 모닥불을 피워주면 당분간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에 직접 불을 붙여주면?

       남은 평생을 아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아주 평생의 따뜻함을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따뜻함으로 보듬어 줘야 깜찍한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거야!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고, 뒤로 살기를 피워올리지. 뻔한 년인 줄 알았더니. 하. 몸이 달아오르는데. 다만.”

         

       청의 팔뚝에 소름이 쫙 뻗더니 단숨에 목덜미까지 닿았다.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고?

         

       “저거 환희궁에 데려다놓고, 있는 선녀공이란 선녀공은 죄다 익히게 만들어. 그래도 안 되면 영약 퍼먹여 초절정에라도 들게 하던가. 환골탈태가 아주 미모엔 직빵이지.”

         

       새로운 무공! 영약!

       청이 눈을 빛냈다.

       

       이제 마공이고 뭐고 저 새끼를 조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

       아주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생물이었다.

         

       가혹한 압제자에 맞서는 혁명적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겨우 화경 밖에 안 되는 자연경 호소인 새끼가 아주 죽고 싶어서 기특한 짓을 하네?

       청(절정 후기)이 생각했다.

         

       초절정만 찍어 봐라.

       아주 여래신장 오천 배 갈 줄 알아라.

       

       청이 분을 꾹 눌러 삼켰다.

         

       그러자 지승주가 지존 호소인을 말렸다.

         

       “지존. 사갈 같은 년입니다. 분명 신교에 큰 화를 입힐 년이 틀림없습니다. 부디 재고를.”

         

       “그만. 본좌가 결정했다.”

         

       “……지존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지승주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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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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