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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

         

         최근 식사 시간을 위협받고 있다.

         

         그의 식사 시간은 시간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식사란 결국 에너지의 보충이며, 활동량을 산출한 적정 열량을 보급하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허기나 식욕으로 말미암은 식사가 아닌 탓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계 장치의 급유. 그 정도의 행위다. 에너지가 부족하므로 보급한다는 식.

         

         그러니까 영양바를 대강 잘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침으로 살살 불린 뒤에 어금니에 마력을 두르고 우드득, 아작. 이윽고 꿀꺽. 정확히 15초면 그의 한 끼가 해결된다.

         

         따라서 식사 시간이 위협받고 있다는 소리는, 이런 상황을 의미한다.

         

         

         “와! 이것도 먹다 보니까? 응. 먹다… 먹다 보니까 맛있어요, 삼촌! 삼촌은 참 요리를 잘 하시는구나아!”

         

         

         에시디스는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오물오물 열심히 영양바를 씹어 삼켰다.

         

         영양바는 초창기 하드텍의 공법에 적절한 페미컨식 어레인지를 가한 완전식품이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하지만, 슬프게도 식감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

         

         애초에 하드텍은 씹어 먹으라고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다. 물에 불리고 끓인 뒤에 죽으로 먹는 간편식이다. 생긴 것이 비스킷처럼 보인다고 아삭아삭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기적과 같은 힘, 바로 ‘만능 자원’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력을 어금니에 두르고 씹으면 이 정도 쯤이야 별것 아니다. 안 그래도 체구 대비 강인한 인간의 치악력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니까.

         

         

         “우으으… 으윽… 꿀꺽.”

         “…억지로 먹을 필욘 없다.”

         “억지!로? 라뇨?! 저는… 저는 태어나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진솔함의 에시디스… 모르세요?”

         “몰랐군.”

         “이제 아시면 되겠다! 아시겠죠? 제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이에요.”

         

         

         에시디스는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륵 흘려내며 애써 웃었다.

         

         실패했다….

         

         이 전략은 실패야….

         

         그녀는 후회를 짓씹으며(영양바도 짓씹으며) 한탄했다. 분명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이자벨, 그 기집애는 감히 시도도 못 할 계획이었는데…!

         

         

        *

         

         

         드로안은 척박한 땅이다.

         

         서늘하고 건조한 여름, 끔찍하게 춥고 긴 겨울, 잠깐 발만 담갔다 사라지는 봄과 가을.

         

         그렇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와 날씨 개같네!를 연발할 수 있는 익숙한 환경이다.

         

         거기에 더해, 드로안은 험준한 산세와 농경지에 적합하지 않은 쓸모 없이 넓은 목초지를 지니고 있다.

         

         밭에 무언가를 심어보아도 작황은 거기서 거기. 차라리 양을 풀어놓고 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당연하게도 식문화가 발달할 수 없다. 칼리온은 갈 것도 없고, 틸레스는커녕 크라실로프만도 못하다.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그러니, 그런 나라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당연하게도 악식(惡食)에 익숙하다. 소금간에 구운 퍽퍽한 양고기는 호사고, 대부분 찐감자나 염장햄, 삭힌 청어 같은 것만 먹게 된다.

         

         그러므로 이반이 평소에 우물우물 잘도 먹는 저 기괴한 나무토막 또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허용범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본디 사람과 가장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던가.

         

         틸레스의 미식에 익숙해진 나약한 이자벨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도전이다. 나무 뿌리를 삶아 먹는 것 정도는 익숙했으니까. (그녀는 드로안의 왕녀다. 이 이상 드로안의 식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쿨하지 못하다.)

         

         

         ‘그래도 정도가 있는 거잖아!!’

         

         

         크라실로프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처음 ‘생크림’을 ‘버터빵’에 발라 먹었던 기억이었다. 세상에 그 포근한 달콤함이라니.

         

         드로안의 전사들은 ‘달다’라는 개념을 ‘꿀술(미드)’에나 사용한다. (사실 꿀술은 달지 않다.) 그런 세상에서 나고 자라 기껏 바깥이야 전쟁터에 아빠 따라 돌아다닌 것이 전부인 에시디스에게, 이런 ‘식문화’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식감은 돌이요, 끈적이는 것은 돼지 기름이고, 중간에 버석버석 으스러지는 것은 알 수 없는 시큼한 말린 과일인 기괴한 간편식을 먹으니, 새삼 눈물이 맺힌다.

         

         

         “제가… 응. 제가 요리를 좀 해올까요…?”

         “요리?”

         “네, 적어도 그. 음. 오늘 저녁? 오늘 저녁에 어때요. 진짜 맛있는 걸 좀 먹어요 우리.”

         

         

         이 가련한 사내는 슬프게도 식사의 즐거움이란 것을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만 같다. 하는 것만 보면 크라실로프가 아니라 드로안 촌구석 전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드로안 사내들처럼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르질 않나….

         

         

         “저녁엔 바쁘군.”

         “엑. 어, 잠시만요. 나 알아, 이 패턴 알아요. 내가 뭐 언제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바쁘다고 할 생각이죠?!”

         “…? 그렇진 않다.”

         

         

         이반은 진솔한 사람이었으므로 바쁘지 않은 날까지 바쁘다고 핑계를 댈 이유는 없다.

         

         슬프게도 진심이란 본디 타인에게 전달될 수 없는 가치 중 하나다. 에시디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이반을 한참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에 뭐 해요?”

         “평소처럼 보내지.”

         

         

         이반의 평소 생활은 용사 파티 자제들의 호위역이다. 이자벨과 함께 보내기로 했으니, 평소와 같다고 하겠다.

         

         에시디스는 그 대답에 활짝 웃었다.

         

         

         “그럼 저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요! 선배들이 그러던데, 축제때 매점들이 그렇게 많이 열린대요! 프리첸카야에서 제일 큰 축제라고요!”

         “그러지.”

         

         

         평소와 같은 스케줄이다. 이 꼬마들이 밥 먹는 것을 지켜보며 영양 벨런스를 좀 잡아주는 것 정도야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3시. 왕녀의 호출에 응해야 할 시간이었다.

         

         

        *

         

         

         “아, 반카. 왔나. 앉게.”

         

         

         엘리자베타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총장실의 넓은 원목 테이블 맞은편엔 엘피헤라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디 아픈가.

         

         이반은 빠르게 신체 징후를 훑고는 고개를 저었다. 엘프는 나약하니까 쉽게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베올그린 또한 인간만 보면 컨디션이 악화되는 지병이 있지 않던가.

         

         

         “부르셨습니까, 전하.”

         “후후, 반카. 총장이라 부르래도. 아, 그리켄코스 양과는 구면이지. 지난 작전을 같이 수행했다고 들었는데, 그리켄코스 양이 그대를 아주 좋게 본 모양이더군.”

         

         

         엘리자베타는 소파 상석에 앉아서 싱긋 웃었다.

         

         그녀의 말에 엘피헤라는 얼굴을 붉히며 이반을 힐끗거리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럽사옵니다, 전하….”

         “…? 그대는 또 갑자기 왜 그러는가?”

         “소녀가 무언가 기휘를 상하게 할만한 일이라도 범했나이까…?”

         “아찔하군.”

         

         

         엘리자베타는 고개를 설설 저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모습이다.

         

         이반을 보라. 저 듬직한 크라실로프의 대전사는 일단 보기에도 위협적이기 그지 없다.

         

         최근에 수상할 정도로 결이 매끄럽게 다듬어지기 시작했지만, 어쨌건 저 비죽비죽한 긴 수염.

         

         그것만으로도 인상의 절반을 가리고도 남는다.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통탄할 노릇이지만, 뭐 저 고집을 꺾을 수도 없고.

         

         그리고 무감각한 눈과 날선 눈매, 덥수룩하게 뻗힌 정리 안 된 머리칼.

         

         아니, 이해할 수가 없네.

         

         수염은 분명 저거 뭐라도 바른 것 같은데, 정작 머리는 왜 저 꼴이야.

         

         엘리자베타는 순간 훅 올라오는 분통을 삼키고는 침착을 되찾았다.

         

         어쨌건 어린 꼬마에겐 다소 과한 자극이다. 근육이 잘 잡힌 단단한 체구와 외모가 더해지고, 오랜 실전을 걸쳐 쌓인 위압감과 예기가 서리면 이제 갓 20살이 된 저런 꼬마는 감히 눈도 마주치기 어려워야 정상이다.

         

         거기에 더해 저 아이는 반카의 실력을 직접 목도하고 돌아온 것이 아닌가.

         

         듣자하니 저 아이와 함께 유적지의 마물을 잡았다고. 그 과정에서 반카가 가진 능력의 편린이라도 마주했다면, 뭐. 저렇게 겁을 집어 먹어도 이해할 수 있다.

         

         어른(27세)인 내가 이해를 해 주어야지.

         

         엘리자베타는 따듯하게 웃으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곧 축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전하.”

         “그 때에 맞춰 몇몇 국가에선 사절을 보내올 예정이라더군. 이해할 수 있네. 제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무언가를 한다면 그만한 핑계가 없지.”

         

         

         이 시기의 대학 축제는 단순히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성 얀스크 대학에 입학한 수많은 국빈들이 그 기회를 노려 학생 신분을 초월한 영향력을 서로에게 투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고위 귀족들은 정치의 짐승들이다. 당연히 이런 기회에, 자국 본토에서는 할 수 없는 은밀한 물밑 외교가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제 자식들을 핑계로 한다는 것이 참 한심한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엘리자베타는 이 나라의 왕녀이며, 동궁정의 주인이며, 정치력을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왕혈인 데다, 심지어 성 얀스크 대학의 총장이니.

         

         그녀가 취임 후 맞이하는 이 첫 번째 행사는 반드시,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나야 한다.

         

         

         “그리켄코스 양에게 신변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언질을 하니 곧장 그대를 지목하더군. 엘프다운 식견이야, 이 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자를 택한 셈이니.”

         “과찬이십니다.”

         “무얼. 그대라면 내 목숨도 믿고 맡길 수 있는데. 겸양이 과하면 실례야. 왕실근위대는 뭐 아무나 했겠나.”

         “….”

         

         

         엘리자베타는 싸늘하게 굳은 이반의 표정을 보며 후회했다. 아, 저건 역린이었는데.

         

         

         “흠, 어쨌건. 부탁해도 되겠나? 축제에 별다른 스케줄이 있다면 편하게 말해도 좋네. 어차피 축제 기간 동안엔 방첩사령부가 이 대학 전역에 주둔할 예정이거든.”

         “별일 없습니다.”

         

         

         용사 파티 자제의 식단을 확인하고 잠시 같이 이동하는 것 정도는 평소의 스케줄과 같다.

         

         거기에 엘피헤라 하나가 더 낀다고 문제가 생길 여지 또한 없다.

         

         그가 이토록 합리적인 사람이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페트로비치 경.”

         “음.”

         

         

         그쪽 저쪽 부르던 것이 고작 며칠 전이었는데,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이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축제 시작 사흘 전.

         

         같은 날 다른 세 여자와 동시에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으므로, 이반은 밀린 고아원 업무를 처리한 뒤 휴식을 취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진짜 아웃소싱 직원이 왜 연말에 물류팀이랑 같이 야근을 해야 하는 걸까요?

    제 역할은 분명 공장라인에 서서 예쁘게 전선이나 꼽는 건데

    이거 기울어진운동장이야남자는힘이세니까창고에서물건을꺼내도된다는거그거편견이야나는연약한노동자라구

    *

    드로안에선 삭힌 청어, 절인 연어(그라브락스), 비도정 곡류(호밀, 보리, 귀리), 순록과 양 고기 등을 먹습니다.

    현대적인 식자재, 특히 향신료와 소스류는 근대 이후 물류 유통 혁명이 지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므로, 시기상 드로안에선 크림과 그레이비를 제외한 소스류를 거의 먹지 않습니다.

    물론 과장이 섞인 묘사입니다. 설마 정말 현실에서 삭힌 청어를 별미로 먹었겠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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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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