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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지수 누나! 무사하셨네요.”

     

    “너희야말로 정말 다행이다! 포탈을 탔는데 갑자기 나 혼자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유라도 괜찮아?”

     

    “….“

     

    아까와 달리 뭐가 불만인지 아무런 반응 없이 지수 누나를 쳐다만 보는 한유라.

     

    ”저기… 유라야?“

     

    ”야, 한유라! 누나가 묻잖아.“

     

    결국 내가 나서서 한유라를 향해 따지듯이 말하자, 그제야 반응한다.

     

    ”아뇨…. 아무 일도.“

     

    ”누나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유라 쟤가 싸가지가 별로 없잖아요.“

     

    ”신기하네…. 살다 보니 유라한테 그런 말을 막 하는 원우도 보게 되고. 항상 어떻게든 지켜주려고 하던 애였는데.“

     

    ”하하….“

     

    지수 누나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유라와 사귀었던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 내 과거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바보 등신 같이 행동했는지 옆에서 가장 잘 지켜본 사람이다.

     

    ”그보다 누나도 여기 길을 찾으셨네요?“

     

    ”응?“

     

    ”미로 속에서 헤매다가 오신 거 아니세요?“

     

    ”아아. 그게….“

     

    ”어? 누나 옷에 뭐 묻었어요.“

     

    오른쪽 어깨에 묻은 붉은 빛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하자, 누나는 슬쩍 보더니 인상을 쓰며 말했다.

     

    ”하…. 그때 묻었나 보네.“

     

    ”네?“

     

    ”좀 전에 복면을 쓰고 덤벼드는 놈을 만났거든. 아마 암살 길드 놈인 거 같은데. 그때 처리하면서 피가 좀 묻었나 봐.“

     

    ”아, 누나도 만나셨구나. 저희도 아까 만났었어요.“

     

    ”응, 알아. 여길 왔으면 당연히 이게 있어야 하잖아?“

     

    지수 누나는 허리에 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작은 열쇠를 꺼냈다.

     

    아까 한유라가 보여준 열쇠와 똑같은 형태의 열쇠.

     

    포탈을 타기 전 지수 누나의 말이나 행동이 이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역시 아닌 듯하다.

     

    그럴 리가 없지, 지수 누나가.

     

    ”갑자기 포탈을 나오고 걷는 도중에 덤벼들길래 엄청 놀랐다니까.“

     

    ”큰일 날 뻔했네요.“

     

    ”에이, 그래도 조만간 S급을 달 사람인데 이 정도에 당할 내가 아니지.“

     

    ”어라? 그 이야기 꽤 예전부터 하신 거….“

     

    괜히 의심해서 미안한 마음에 장난을 치자, 늘 그렇듯 주먹을 들며 달려드는 지수 누나.

     

    ”어허, 원우야. 눈치 없는 남자는 여자친구한테 미움받아. 오랜만에 명치에 주먹 좀 꽂혀 볼래?“

     

    지수 누나의 손을 막으며 제지하는 사이 한유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원우야, 나 등이 가려워. 등 긁어줘.“

     

    ”응?“

     

    자신의 매혹적인 척추기립근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긁어달라는 듯 몸을 보이는 한유라.

     

    장난스럽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가 한유라의 뜬금없는 말과 행동에 우리 둘 다 멍하니 바라봤다.

     

    ”너희…. 혹시 다시 시작했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딴 애랑.“

     

    지수 누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적극적으로 부정했다.

     

    ”그럼 유라는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뭐 몸과 마음은 따로야 그런 거 아니지?“

    순간 환멸 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지수 누나.

     

    양손을 휘저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절대로 그럴 리가요! 저 그 정도로 쓰레기 아니에요, 누나!“

     

    ”그렇긴 하네…. 오히려 당하는 쪽이지 그런 짓을 할 인간은 아니긴 해.“

     

    뭔가 바보 취급당한 거 같긴 하지만 일단 결백함을 믿어주는 거니 그걸로 됐다.

     

    그보다 뜬금없이 허튼 소리한 한유라에게 따지는 게 먼저다.

     

    ”야. 사람 쓰레기로 만들 일 있어! 무슨 헛소리하는 건데.“

     

    그러면서 한유라에게 다가서자 갑자기 나를 확 잡아채 당기면서 귀에 속삭인다.

     

    ”…간지러워, 원우야. 벌써 잊어버린 거야?“

     

    ”아 왜 이래, 진짜! 그럼 긁던가!“

     

    ”….“

     

    윽박지르는 소리에 결국 아무 대답도 못 하는 한유라.

     

    진짜 미쳐버린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거야 원래부터도 지수 누나를 껄끄러워해서 그렇다 쳐도 이런 짓까지 하는 애는 아니었는데.

     

    ”원우야, 진정해. 많이 간지러웠나 보지. 우리끼리 화내서 좋을 거 없잖아.“

     

    지수 누나의 말에 평정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쨌든 지금 적의 함정에 빠진 상태인데 감정적으로 굴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예전에 막 헌터가 되었을 때쯤 한유라와 함께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파티를 짰을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어…?“

     

    ”왜 그래 원우야?“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지수 누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요.“

     

    ”응? 뭐가 떠올랐는데?“

     

    ”아주 예전에 누나를 만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어요.“

     

    ”그래? 파릇파릇하던 원우랑 유라 생각나네. 진짜 엄청 예전이네. 혈기로만 덤비던 애들이 지금 이 정도로 잘 나가다니.“

     

    ”그러게요, 하하….“

     

    그렇게 대답하고 한유라를 슬쩍 바라보니 계속 날 응시하고 있다.

     

    만약 한유라의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대로의 의미라면…?

     

    엄청 오래전 일이라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당시와 달리 현재 우리 둘은 친구보다 못한 사이니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지수 누나가 갈림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큰일이네. 갈림길이라니….“

     

    ”어떻게 하죠? 누나가 오던 길은 어땠어요?“

    ”미로와 달리 함정도 없고 그냥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었어. 너희는?“

     

    ”저희도요. 결국에는 남은 길 2곳 중 가봐야 한다는 뜻인데….“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 같이 뭉쳐서 가는 것이 정석이다.

     

    상대의 기습이나 함정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

     

    ”저 혼자 갈 테니 둘이서 반대로 가요.“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한유라가 우릴 보며 말했다.

     

    ”응? 유라야 그래도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겠어?“

     

    ”괜찮아요, 전 둘과 달리 S급이니까.“

     

    ”아… 그렇긴 하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한유라의 말에 쉽게 수긍하는 지수 누나.

    다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이상하다.

     

    도끼병이 아니라 여태까지 한유라의 태도를 보면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혼자서 다른 길을 찾겠다고 말하는 한유라라니.

    이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가 여기로 가고 유라는 반대편으로 가자. 뭔가를 발견하는 것과 관계없이 3시간 뒤에 여기로 다시 모이는 걸로 하고.“

     

    왼쪽 길을 가리키며 말하는 지수 누나.

     

    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우리도 가자, 원우야.“

     

    ”네.“

     

    지수 누나가 앞장서서 걷고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여기도 많이 기네. 이 길도 미로려나 설마?“

     

    ”그러게요…. 귀찮게 시리.“

     

    손목에 찬 시계를 살펴보니 걸은 시간은 30분 남짓.

     

    이번엔 아무런 함정도 없이 쭉 뻗은 길을 걷고만 있다.

     

    아까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예상컨대 아마 자기들만 빠르게 다닐 수 있는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진짜. 차라리 뭐라도 나왔으면 좋겠네!“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지수 누나.

     

    ”누나,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꼭 저런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 느낌이라 자제시키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비수가 우릴 감싸는 형세로 하늘에서 쏟아진다.

     

    아까 강철민이 죽어있던 곳과 동일한 함정.

     

    ‘또 이거네. 대체 트리거가 어디에 있길래 못 알아채는 거지.’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를 살펴봐도 그럴 장치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재빨리 손을 들어 [염력]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아까보다 더 많은 수에 다 막는 것은 무리다.

    ”윽.“

     

    떨어지는 비수를 검으로 쳐내던 지수 누나는 미처 보지 못한 비수가 왼팔에 박히면서 고통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누나!“

     

    혹시나 몰라서 마력을 아껴두려 했지만 이대로 가면 오히려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듯 보인다.

     

    괜히 여력을 남겨두려다가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아까보다 더 두텁고 넓게 [염력]을 발동해 다가오는 비수들을 계속해서 쳐냈다.

     

    약 1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끝이 난 비수의 소나기.

     

    마력이 크게 비면서 생기는 허탈감을 느끼며 지수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괜찮아요?“

     

    ”하하…. 응, 괜찮아. 아으, 입 잘못 놀렸다가 제대로 혼나네 혼나.“

     

    지친 듯한 미소를 짓더니 팔에 박힌 비수를 뽑아내고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옆구리에 매고 있던 가방을 뒤적이더니 붕대와 상처 치료약을 꺼낸다.

     

    ”제가 해드릴까요?“

     

    ”아니, 혼자 할게.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경계나 서줘.“

     

    ”알겠어요.“

     

    워낙 오랫동안 헌터 일을 해서인지 고통스러울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으으. 몇 번을 당해도 이건 적응이 안 되네. 쓰라려.“

     

    액체로 담긴 병의 뚜껑을 연 후 자신의 상처에 붓자, 깊게 새겨져 있던 상흔이 조금씩 작아지면서 회복되어 간다.

     

    하지만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고 미세하게나마 피는 여전히 새어 나온다.

     

    ”이거 새로 나와서 좋다고 써봤는데 역시 완벽한 치료는 어렵네. 가격만 더럽게 비싸고. 얼음 공주님이 계셨으면 이딴 거 그냥 치료했겠지?“

     

    ”당연하죠, 수정이는 단박에 고치죠.“

     

    ”어쭈, 이것 봐라? 옆에 있던 사람이 바뀌어도 하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아…. 그 이야기는 그만 해요 좀. 이제 서로 사이 아시잖아요!“

     

    괜히 뻘쭘함에 소리치자 입으로 붕대를 끊은 후 둘둘 감던 지수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 내 기준에서는 둘 다 아끼는 동생들인데. 연애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그게 최악의 방식으로 당했으니 그렇죠.“

     

    ”그렇긴 하겠다. 나 같으면 죽더라도 모가지를 분질러 버렸을지도 모르겠네.“

     

    순순히 인정하는 지수 누나를 보며 어이가 없어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친누나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후, 다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원우 니가 앞장 서줘야겠네. 알다시피 고통까지는 치료를 안 해줘서….“

     

    붕대가 감긴 상태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팔을 내밀며 말하는 지수 누나.

     

    앞에서 적이 나타났을 때 저지해야 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처음부터 제가 앞장설 걸 그랬네요.“

     

    ”에이, 그럴 순 없지. 원우 너나 유라랑 있으면 항상 내가 먼저 가야지. 너희들이 나보다 강해져도 그건 무조건이야. 누나의 자존심이라고.“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가슴이 찡하다.

     

    바닥까지 처박혀도 나를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다. 힘든 순간마다 도움도 많이 줬던 사람이고.

     

    힘들 때 이런 사람이 옆에 있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뿐이다.

     

    ”어쨌든 저만 믿고 뒤에 계세요, 누나.“

     

    그렇게 말하며 지수 누나를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오냐, 동생 버스 좀 타보자 이제.“

     

    웃으면서 내 손을 잡는 지수 누나.

    나도 아무런 의심 없이 힘을 주며 손을 잡았다.

     

    ”근데 그 버스는 못 타게 될 거 같네….“

     

    ”네?“

     

    무슨 말인가 싶어 물으려는 순간.

    내가 끌어당기는 힘을 이용해 반동으로 몸을 일으킨 지수 누나는 그대로 내 팔을 꺾으며 순식간에 등 뒤로 돌아 들어간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팔로 비수를 쥔 채 내 목덜미를 겨눴다.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원우야.“

     

    지수 누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귓속에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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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내가 구한 그녀가 S급 헌터로 돌아왔다
Score 3.4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s soon as she became an S-rank Hunter, my childhood friend and lover said we should break up. As I was hurting, another S-rank girl came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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