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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그 뒤로 여섯 번은 그 공략을 다듬으며 성공한 횟수였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통째로 시간을 돌려 처음부터 실행한 적도 많았고, 자잘하게 되돌렸던 것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아지겠지.

        

       하지만 성공했다. 성공하는 루트를 하나 만들어 낼 수는 있었다.

        

       “그런가.”

        

       내 말에, 제니퍼는 중얼거렸다.

        

       “지금 이 시간도 뒤로 돌릴 생각이겠지?”

        

       “그렇습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내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의 능력을 알고 있다고 해도 놀랍다. 믿기 어려울 정도야. 저런 요새에 한 사람이 들어가 점령할 수 있었다니.”

        

       “저는 그저 요새 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도중에 제국군이 진격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기는 힘들었겠죠.”

        

       안쪽이 ‘참호’라는 것이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적이 아무리 늘어서도 결국 참호 안이라서 한 번에 나를 볼 수 있는 숫자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밤이기까지 했고. 조명은 쏴서 깨버리면 그만이다. 수류탄 하나면 그 구간의 조명은 죄다 날려버릴 수도 있고.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

        

       제니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너를 보내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제니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치 머리 깊은 곳에 있던 고민을 꺼내놓듯 조금 망설이는 것 같은 말투라서 나는 내심 놀랐다.

        

       “지원 병력이 ‘한 명’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 생각해봐라. 뭐, 나는 어차피 여기 사령관도 아니기는 했다만, 그래도 한때 같이 싸운 전우들이었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지 바로 앞이다. 물론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은 고려해야겠지만, 사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는 꽤 기뻤다. 드디어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더 많은 원군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그 고급스러운 봉투를 열어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

        

       “할아버지께서 그 소식을 듣고 뭐라고 하셨는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폐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거다, 라고 하셨지.”

        

       “…….”

        

       “진짜로 다 생각이 있으셨군. 처음에는 그렇게 충성했는데도 영지째로 버려지는 줄 알았는데.”

        

       제니퍼는 웃긴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조금 허무감이 느껴졌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로 갈수록 맥 빠진 듯 작아졌으니까.

        

       “폐하께서는 네 능력에 대해 알고 계시나?”

        

       “모르십니다.”

        

       “확신하는 건가?”

        

       “예.”

        

       엄청나게 희한하고 유능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는 상상을 하지는 못할 거다. 그건 망상이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이 세상에서는 ‘시간은 돌릴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단순한 통설이 아니라 마법적인 문제가 얽혀있다는 설정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을 보면, 제작사에서 설정을 숨기고 나중에 반전 요소로 써먹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막바지에 주인공 일행이 픽픽 죽어 나가던 것도, 그리고 그 죽을 인물들을 직접 플레이어 손으로 결정해야 했던 것도 거기 연관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제작사에서 완전히 전개가 달라지는 두 가지 엔딩을 소재로 다른 루트를 넣어 1년 만에 후속작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설정이 있다면 그냥 시간을 되돌려서 등장인물들을 살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스토리를 진행해버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반전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등장인물도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가…….”

        

       제니퍼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네가 일을 해결하고 돌아왔다는 것은 티가 났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알기 쉽더군.”

        

       제니퍼는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조금 지쳐 보였던 너의 표정이, 어느 순간 갑자기 지독하게 지친 표정이 되었다. 만약 능력을 몰랐다면 앞으로 펼쳐질 임무가 지독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습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너의 표정은…….”

        

       제니퍼는 그녀답지 않게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옥을 보고 온 사람의 표정이다.”

        

       “……그렇습니까.”

        

       나는 그 외에 딱히 할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

        

       “…….”

        

       우리는 다시 저 멀리 보이는 벙커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미 나에게 들었겠지만, 저곳을 차지하고 있는 저 용병단 놈들은 지독한 놈들이다. 마을을 몇 개나 불태우고, 아녀자를 겁탈한 뒤 불타고 남은 마을 입구에 목을 매달아 놓은 전적이 있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잔혹하게 굴었을까 싶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들이다. 증거를 원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이긴 했다. 증거도 이미 보았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놈들은 사람이지. 짐승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는 놈들이 있기는 하다만, 사냥꾼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코웃음을 칠 거다. 사냥감을 놀잇감으로 생각하는 짐승도 있지만 그뿐이야. 그렇게까지 지능적으로 잔혹하게 구는 것은 인간뿐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존재 중에서는.”

        

       제니퍼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흘끗흘끗 바라보던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솔직히, 여기까지 너를 끌고 온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만.”

        

       아주 잠깐 망설이더니, 그녀는 말했다.

        

       “차라리, 그냥 도망가버리는 건 어떻겠나? 시간을 돌렸다면 네가 죽였던 그 목숨도 다 아닌 것으로 되돌릴 수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황제와 관련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 너의 그 능력이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나?”

        

       “…….”

        

       나는 가만히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벙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도, 이미 들었습니다.”

        

       “…….”

        

       나의 대답을 듣고 제니퍼는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런가.”

        

       다시 말이 없어진 제니퍼를 옆에 두고 가만히 서 있다가, 이번에는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씀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

        

       제니퍼는 잠깐 놀랐다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물었다.

        

       “그것도 이미 했던 말인가?”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처음 하는 말입니다.”

        

       “그렇군.”

        

       나의 말에, 제니퍼는 웃었다.

        

       *

        

       ‘처음부터 다시’라는 선택지가 나한테 있을까?

        

       제니퍼는 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게임’을 하던 나의 진짜 전생 말고도, 내가 ‘실비아 블랙’으로 살던 과거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클레어, 그리고 클레어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레오나 그레이스 남작 부부. 보고로 들었을 황제나 그 고아원을 직접 관찰하던 루카스.

        

       그리고 이 모든 인물은 내가 처음으로 시간을 돌려도 어차피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루카스는 처음부터 고아원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시간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해도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숨어도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루카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고, 설령 달려들어도 절대로 이길 수 없었을 거다.

        

       ‘실비아 블랙’이라는 존재는 어디서 온 걸까.

        

       아마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으리라.

        

       그저 그 순간,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존재.

        

       그리고 게임이라는 형태이긴 하지만 이 세계의 미래에 대해서 꽤 상세하게 알고 있는 나를 그 몸 안에 넣었다는 건, 나를 여기 불러온 존재가 어떤 존재이건 한 가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일 거다.

        

       내가 시간을 돌리는 것조차도 다 예상하고 있을 존재.

        

       “그렇다는 건, 내가 그냥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겠지?”

        

       한밤중에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위에 있는 존재가 신이건, 아니면 여신교에서 말하는 여신이건.

        

       그래, 뭐. 묵비권도 자유지.

        

       그리고 묵비권은 그 권리를 행사하는 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될 수도 있는 법이다.

        

       “좋아.”

        

       그러니 나는 그 침묵을 멋대로 해석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피곤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당연한 것이다. 정신도 정신이고, 한밤중에 일어난 몸도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분명히 새벽 네 시가 되면 클레어가 찾아올 테니까.

        

       “스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가부좌를 튼 채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정신을 가다듬어 몸의 상태를 회복한다.

        

       솔직히 지구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은 그저 피곤할 뿐인데.

        

       그러니 평범한 몸으로도 그런 기운을 움직일 수 있는 세계관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후우.”

        

       날숨에 고민과 번뇌를 함께 내뱉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만 머리에 남긴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좋아.

        

       이제 나갈 시간이다.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1만 선작…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여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쓰는 사람에게 있어 독자님들의 응원은 글을 쓰는 원동력 그 자체가 됩니다. 제가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글 쓰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이 종종 나타납니다. 글을 쓰다가 전개가 생각나지 않거나, 대화 장면을 쓰다가 그 캐릭터의 대사를 어떻게 해야하나 뇌정지가 오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만약 혼자서 글을 썼다면 저는 그냥 그 부분을 포기했을 겁니다.

    애초에 완성시키지 않아도 되는 소설이라면, 그냥 쓰고 싶은 부분만 써버리고 넘겨버려도 그만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글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분께서 실망하지 않도록 글을 써내려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Liszt_786 님, 후원 감사합니다!

    전작과 전전작도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두 소설 모두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받아 쓸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읽어주고 계신 독자 여러분의 존재를 상기하려고 노력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기대를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서 꾸준히 저의 글을 읽어주실 수 있도록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설의 길이에 대해선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중성녀 정도의 길이로 쓰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작’의 길이도 다소 길게 잡았는데… 사실 글이라는 것이 쓰다보면 스토리가 정리되고,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잘라내거나 처음부터 다시 설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더라구요. 그래서 아직 얼마나 길어질지 확답은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복선이 있다면 최대한 제대로 회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것,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글 쓰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께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글일 수 있도록, 내일도, 그 다음날도, 이 소설의 마지막 편을 쓰는 날까지 노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노벨피아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소설 덕분에 힘이 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웹소설을 보는 사람으로서 매일 올라오는 웹소설이 얼마나 삶에 즐거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소설도 그런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독자 여러분의 삶에 잠깐이나마 활력소가 될 수 있었다면 저는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독자 여러분께서 기대감을 품고 들어오실 수 있도록, 그리고 ‘오늘도 재미있었다’ 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대학교 갈 때 한 번, 그리고 지금 직업을 위한 면허를 따기 위해 한 번, 총 두 번 수험기간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면허 시험의 경우 시험문제가 쉽게 나온 해라서 한 번에 붙을 수 있었지만, 그 해 시험문제가 쉽게 나올지 어렵게 나올지는 알 수 없는 법이죠. 그래서 수능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힘든 기간 동안 저의 글이 한순간이나마 독자님께 편안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력이 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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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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