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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망가진 청소 골렘의 반쯤 맛이 간 스피커로부터, 노이즈투성이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순간순간의 어조도 이상하고, 기괴하게만 들리는 소음이었으나.

       

       “자, 어서 오게 젊은이들. 변변치 않은 공간이지만 편히 있게나.”

       

       세 사람은 청소 골렘이 내는 소음으로부터 아브라함의 목소리를 떠올려 낼 수 있었다.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나긋나긋한 노인의 어조도.

       

       “내 저택이었더라면 대접할 차라도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군. 이 방에는 보다시피 먼지나 고철 쪼가리밖에 없다네. 의자도 하나뿐이고⋯⋯.”

       

       청소 골렘의 바퀴가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타라는 그 모습을 눈으로 쫒으며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간절함을 담아서 물었다. 어쩌면 비명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아브라함인가요?”

       

       그렇다, 는 대답이 들려왔을 때. 기뻐해야 하는지, 고통스러워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 골렘의 렌즈에서 붉은빛이 깜빡였다. 고민하듯이.

       

       “그 철학적 담론에 대해서는 이미 깊이 생각해 본 바가 있다네. 비록 내가 깡통 안에 들어가게 된 몸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하네.”

       

       망가진 청소 골렘은 살풍경한 방을 안내하듯이 한 바퀴 돌았다. 그제야 타라의 눈에 비좁은 방의 모양새가 눈에 들어왔다.

       

       골렘이 수납되는 공간은, 당연하겠지만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창문 하나 없이 막힌 비좁은 방에는 비슷한 청소 골렘들이 줄을 지어 쌓여있었다. 인테리어 하나 없이 그저 벽과 입구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으며, 삶을 위한 도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골렘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유일하게 눈에 띄는 사물이 있다면, 고철을 모아 억지로 조립해 내 만들어낸 듯한 조잡한 의자였다. 지독한 고독이 느껴졌다. 아브라함은 타인을 기다려왔던 걸까.

       

       그러니 만약── 이곳에서 누군가가 살아가야 한다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세 사람은 벽면으로부터 아브라함의 대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쇳조각으로 벽을 긁어 빼곡하게 새긴 글. 때때로 일기이기도 했고, 막연한 감상이기도 했으며, 주변에 대한 탐구이거나, 자신에 대한 회고였다. 그리고 그 모든 글줄이 다다르는 종착역은, 인류였다.

       

       던전의 벽면에는 내부의 구조를 그려낸 지도가 있었다. 함정의 위치와 위력을 표시하고, 공략법을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별을 관측하는 법과 맛있는 계란프라이를 익히는 방법에 대해 적었다.

       

       그는 괴이쩍은 상황에 빠진 자신의 마지막을, 타인을 위해서 쓰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아브라함은 말했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믿고 있네.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인게지.”

       

       그것은 아브라함이 맞았다.

       

       망가져 가는 쇳덩이의 몸에, 듣기 싫은 소음을 내는 스피커와, 내부에서 삐걱대며 돌아가는 태엽, 청소를 위한 기계 팔 하나만을 간신히 달고 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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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가, 이렇게 되신 거예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분명히 별을 헤아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눈을 떠 보니 이곳이었지. 처음에는 지옥에 떨어진 건가 했는데, 이내 또 다른 삶이었다는 것을 알았네.”

       

       아브라함은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어쩌다가, 라고 묻기는 했지만. 일행은 아브라함이 이런 처지가 된 이유에 대해서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피도 흐르지 않는 골렘에 박아버리는 건. 악신이 거둬들인 영혼에게 고통을 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베네트는 이를 악물었다. 분노했다.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걸로도 모자라서, 이런 꼴을 겪게 해야만 했다는 말인가.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한편, 아브라함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소실된 20%의 기억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자네들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네만, 미안하군. 나는 자네들에 대한 기억이 없네.”

       

       “아브라함, 저희는⋯⋯.”

       

       타라가 지난날의 기억을 말하려고 할 때, 베네트는 한쪽 팔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서 담백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저희는, 당신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입니다. 오갈 데가 없는 저희를, 아브라함 당신이 저택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랬는가?”

       

       “예.”

       

       “허허, 그렇구만⋯⋯.”

       

       허허, 라는 웃음소리는. 변질된 기계음 때문에 불길하게만 들렸다. 간만에 만난 손님들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기는 싫었으므로, 아브라함은 웃음을 자제하기로 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나? 우리들의⋯⋯ 만남에 대해서 말일세.”

       

       “슬럼가 인근의 분리수거장에서 만났습니다. 저희는 강도를 당했던 터라, 아브라함이 보기에 불쌍한 꼴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당신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네, 맞아요! 아브라함 덕분에 저희는⋯⋯ 옷도 구했고요. 또.”

       

       [며칠간 이것저것 알려주셔서, 즐거웠어요.]

       

       “별도 함께 보고,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아, 대학도 구경시켜 주셨어요. 그리고⋯⋯.”

       

       [멋진 아침 식사도요.]

       

       말문이 트이자, 니오레와 타라는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끊어져 버린 관계의 실을 다시 한번 잇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이야기하면 할수록. 아브라함과의 며칠간을 증언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느껴졌다.

       

       공백. 어쩌면 약간이나마 가족이라고 묶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관계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라는 울먹거렸다. 슬픔과 고통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브라함은 낡은 렌즈로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기묘한 일일세. 우리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아.”

       

       “⋯⋯그런 모양입니다. 여기, 던전에는 얼마나 갇혀 계셨던 겁니까?”

       

       “이곳을 던전이라고 부르나 보군. 시간의 흐름을 추정할 수 있는 사물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네. 여기는⋯⋯ 창문 하나 없지 않은가?”

       

       “확실히,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은 아닙니다. 저⋯⋯ 의자는 직접 만드신 겁니까?”

       

       베네트는 조잡한 의자를 가리켰다. 뾰족뾰족해서 사람이 앉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투박한 기계 팔로 저런 형태를 조립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혹시나 손님이 올까 싶어서 만들었다네. 언젠가 이 기묘한 공간에도 다른 사람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하나 또 맞췄군.”

       

       “벽에 남긴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여기는 꽤 위험한 곳이더군. 누가 설치해 놓았는지는 몰라도, 사람의 생명을 충분히 해칠 수 있을 법한 고약한 함정들이 많아. 그래서 표시해 두었다네.”

       

       베네트는, 아브라함의 박살 난 몸을 바라보았다. 파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함정을 밝히고 위치를 표시하면서 이리저리 부서졌던 것 같았다. 

       

       타라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돌았다. 자신의 울음소리를 아브라함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니오레는, 아브라함의 흉터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

       

       “기계의 몸을 가지게 되어서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험한 일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생명 없는 몸에 갇혔으니, 다음 날 관절 통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그런 일을 반복하고 계셨던 겁니까.”

       

       베네트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브라함의 정보량으로는 이 구조물이 던전이고, 간간히 사람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헌신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폐던전이었더라면, 아브라함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했던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브라함.”

       

       “얼마든지 해도 좋네.”

       

       “이런 몸이 되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할 일이 없어서 했네. 여기서 죽은 듯이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도 없잖나?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나는 믿네. 선의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네. 사람의 선성에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끄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고 믿어. 이게 내가 신봉하는 유일한 오컬트일세. 그래서 한 게지.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믿기에.”

       

       “⋯⋯⋯⋯.”

       

       “그리고⋯⋯ 멋있지 않은가. 남들을 돕는다는 건.”

       

       아마, 아브라함은 멋쩍은 듯이 웃었을 것이다. 언젠가 베네트가 노인에게, 협박을 받으면서도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두 눈동자에 소년과 같은 반짝임을 품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청소 골렘에 갇힌 채로도,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무척이나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 외형의 변모나 능력의 부족함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마음속의 별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걷고 있었다.

       

       던전의 벽면에 남은 아브라함의 기록들은, 단순히 함정의 위치나, 지식 따위가 아니라. 보다 커다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담긴 것은, 노인의 삶이었다.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남아있도록 하는 것은 신념이었다. 여전히 미래는 어둡고, 온갖 괴로움이 켜켜이 쌓인 파도가 몰려오고 있지만.

       

       나아갈 곳을 안다면. 헤맬 이유도 없는 법인가.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악신의 농간에 고통받는 가엾은 노인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자신의 영혼이 골렘에 갇혀버린 끔찍한 상황에도, 이렇게나 확실히 한 걸음을 내딛고 있지 않은가.

       

       망설이던 흑마법사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는 대신. 감탄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땅한 경의를 표하기로 했다. 아브라함 역시 이쪽을 바랄 것이었기에. 솔직하게 내뱉었다.

       

       “확실히, 멋지십니다. 아브라함.”

       

       “⋯⋯허흠, 부끄럽구만.”

       

       렌즈에서 붉은빛을 빠르게 깜빡거리는 아브라함에게, 베네트는 말했다. 그에게 알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저희에게는 아브라함의 연구자료가 보관된 금고의 비밀번호가 필요합니다.”

       

       “나쁜 일에 쓸 생각은 아닐 테지?”

       

       “예. 아브라함, 당신의 연구는 많은 사람들을 구할 겁니다. 저희가, 그렇게 만들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알려줌세. 0714, 딸아이의 생일이라네.”

       

       일행은 금고의 비밀번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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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어서 이런 위험한 곳을 탐험한 것일 텐데, 내가 너무 길게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아니, 아니에요. 저희 시간 많아요⋯⋯ 훌쩍.”

       

       타라는 눈가가 새빨개진 상태로, 코를 훌쩍였다. 손수건을 두 개나 쓰고도 물기가 마르지 않아, 일부러 눈을 깜빡이지 않아서 물기를 말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앞에 무릎을 꿇고, 기계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저, 아브라함. 저희와 같이 가요. 던전을 빠져나가서⋯⋯ 밖으로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요.”

       

       “⋯⋯⋯⋯.”

       

       베네트는 타라를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한발 빨랐다. 반쯤 망가진 청소로봇에서 거절의 말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주는 건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네.”

       

       “⋯⋯어, 어째서예요, 아브라함! 여기서, 이런 곳에서 지낼 바에는⋯⋯!”

       

       “타라, 그만.”

       

       베네트는 타라의 어깨를 잡고 당겼다. 청소 골렘은 거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함정 해체로 충격이 누적되어, 지금 움직이는 것도 기적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니오레의 안색을 보면, 그녀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아브라함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지금 당장 아브라함을 챙겨 금색 마탑으로 데려가더라도 수리가 가능할지 아닐지도 미지수인 데다가.

       

       그 이전에, 골렘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고통이 될 터였다.

       

       마검이 마검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영혼은 무기질적인 육체를 버텨낼 수 없기에, 결국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골렘에게 불어넣어진 영혼도 같다. 아브라함을 연명시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아브라함이 연명을 바랐다면 또 모를까, 그는 삶의 연장을 바라지 않는 듯 보였다.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하지 않겠나.”

       

       “⋯⋯⋯⋯.”

       

       타라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마검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이해한 것 같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베네트는 타라의 옆에 앉아,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조언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해 둬. 타라.”

       

       “⋯⋯⋯⋯.”

       

       감정이 복받쳐, 목에서 끅끅 소리를 내면서. 타라는 간신히, 한두 마디씩 말을 전했다.

       

       “저, 저는⋯⋯ 짧았지만, 아브라함과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정말로요. 가족, 가족같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저는.”

       

       “타라. 천천히, 심호흡하고.”

       

       “⋯⋯흐윽, 저는, 그래서. 너무 일찍, 급하게 떠나게 되느라, 말하지 못했지만. 이 말을 꼭, 해 드리고 싶었어요. 진작, 미리 말했어야 했는, 데⋯⋯.”

       

       타라는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삼키면서, 비록 더듬거리고, 울음기가 섞여 어눌했으나. 베네트의 도움을 받으며, 하고 싶었던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있었다.

       

       “제가 많이⋯⋯ 행복했다는 걸요⋯⋯.”

       

       “나도 행복했다네. 자네와 함께한 시간은, 분명 즐거웠을 거야.”

       

       타라는 아브라함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한참동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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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의 영성은 기계의 몸에 갇힌 채로도 영민하게 동작했다. 그는 눈앞의 젊은이들이 내뱉은 말의 공백 속에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아마, 자신에게 뭔가 변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아주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크게 다쳤거나⋯⋯ 어쩌면 죽었을 것이다. 

       

       저들의 눈빛과 행동으로부터 낡은 렌즈 너머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가진 이도 있었다. 기억은 없었지만, 저들과 자신은 사이가 꽤 가까웠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저렇게 등을 돌리고 서글프게 울고 있지 않은가. 청승맞게 굴면, 더욱 슬퍼할 것 같아서. 일부러 떠들썩하고 멀쩡한 체를 했다.

       

       기계에 갇힌 노인은 생각했다. 

       

       삶에 미련은 없었다. 늙은 나이까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왔으며, 기계에 갇힌 몸으로도 소신껏 살았다.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후회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딸에 대한 것이다.

       

       같이 별을 올려다보던 날.

       

       아브라함의 딸 이사악은, 우주로부터 무언가 목격해서는 안 되는 걸 본 사람처럼, 그 뒤로부터 이상한 오컬트에 빠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보다도 종교적인 믿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싸우고, 이사악이 집을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기를 바랐으나, 이사악은 신을 위해서 살기를 바랐으니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건만, 그 선택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직도 후회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이 젊은이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네, 아브라함.”

       

       “내게는 사이가 나쁜 딸이 한 명 있다네. 이상한 믿음에 빠져서 잠깐 사이가 소원해진 상태지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네. 돌아와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리라 믿어. 그러니⋯⋯.”

       

       이런 몸으로는, 딸아이를 기다릴 수도 없을 테니. 아브라함은 유일한 바람을 전했다.

       

       “이사악을 잘 부탁하네.”

       

       “⋯⋯네. 그러겠습니다.”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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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수습하고, 타라와 니오레, 베네트는 작별 인사를 남기며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던전 실습 중이었고, 그들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도, 슬픔도, 삭여야 했다. 

       

       타라가 니오레의 부축을 받으며,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방을 나가고. 마지막으로 베네트가 떠나가려고 할 때, 아브라함이 그를 불러세웠다.

       

       “베네트라고 했나?”

       

       “⋯⋯네. 아브라함.”

       

       “자네는 나와 비슷한 것 같네. 그래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노인네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아주게.”

       

       “새겨듣겠습니다.”

       

       “삶은 힘들고, 폭풍우는 몰아치며, 거센 파도가 언제나 잡아먹을 듯이 부딪혀 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잃지는 말게나. 나를 잃는 것은, 삶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베네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떠났다. 청소 골렘은 방 안에 홀로 남았다. 바퀴가 삐걱거리고, 태엽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 망가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조금 더 멀쩡한 상태였더라면, 가보지 못했던 왼쪽 갈림길의 함정까지도 체크해 봤을 텐데. 혹은, 젊은이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쌓을 수도 있었을 테고.

       

       렌즈가 비추는 화면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태엽이 하나둘 동작을 멈춰나갔다. 전신의 기능이 정지해 나가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언을 남겨야 할까 해서, 쇳조각을 집어 든 팔을 움직이려고 해 보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전하고 싶은 말은 이미 전했다. 고민 많은 젊은 청년에게.

       

       몸이 붕 뜨는 듯했다. 그리고 어떠한 인력이 느껴졌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기계로 된 몸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후세계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은 어느 새하얀 공간에서 소녀를 보았다. 양 갈래머리로 금발을 묶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자아이. 직감적으로 아브라함은 그녀가 자신의 창조주,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저를 마중 나와주신 겁니까?”

       

       “⋯⋯응. 고생했어, 아브라함. 안에서도 밖에서도. 훌쩍.”

       

       “계셨군요. 인생이 하도 팍팍해서, 안 계신 줄 알았습니다. 반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았는데⋯⋯ 혹시 벌을 주신 겁니까?”

       

       “아냐. 사고였어. 그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있잖아, 아브라함. 바라는 게 있어? 소원 말이야. 천천히 생각해 봐도 좋은데, 마침 교육자가 필요했다고나 할까──.”

       

       신은 생각보다 감정적이고 수다쟁이시로군.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색 마탑주에게 거두어졌다.

       

       ===============================================================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결의를 다졌다.

       

       타라는 못다 한 마지막 인사를 끝냈다. 가족에게도, 아브라함에게도, 죽음의 순간에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마지막 인사를 통해서 일부나마 해소되었다. 후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은의 황혼 교단에 대한 분노는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이대로 번져나간다면, 마음을 송두리째 태워버릴 만큼.

       

       니오레는 아브라함의 삶의 태도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구하지 못한 생명에,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대신에, 나아가야 했다. 자신의 능력과 목표, 자기희생의 사이에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다만, 그녀의 발걸음은 자신과 광신의 경계에 서 있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베네트는 마음속에 별 하나를 띄워 올렸다. 아직 미약한 빛을 내고 있을 뿐이지만, 길잡이 별로써는 충분했다. 친구들과 동생, 흑마법사와 검사, 복잡하게 얽힌 갈림길 사이에서. 그는 막연하게나마 나아갈 길을 정했다.

       

       또한, 언제고 별이 찬란하게 빛날 때면. 그의 마음을 올곧게 이끌어 줄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세션이 시작되는 날이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봉밥으로 담았습니다, 마이 프렌즈. ~중편~ ~후편~ 두 개로 나누는 대신 하나에 몰았으니까.
    요것도 어떻게 보면 연참의 한 형태가 아닐까요? 저, 빛⋯⋯ 갚은 게 아닐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친구들. 내일 또 봐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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