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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오늘은 학교에서 별 일 없었니?”

    인자한 여성 엘프의 목소리.

    세레나였다.

    “응, 별일 없어.”

    세레나의 질문을 들은 시루드는 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이가 건성으로 대답하면 어머니 된 입장으로 조금 기분이 나쁠수도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루드가 무려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만화책도 아니고, 마법책이었다!

    ‘실전 좌표방정식의 정석 -초급자편-‘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을 듯한 글씨가 쓰여진 두꺼운 마법책.

    시루드가 집에선 절대 스스로 안펼치는 그런 종류의 책이었다.

    뭐 기쁘다거나 재밌는건 아닌지 역시 무표정이지만, 그게 어딘가.

    억지로 시켜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하기 싫다는 듯이 문제지에 낙서나 하고 있는 꼴을 보는것보단 백배천배 낫다.

    “그런데 갑자기 왜 공부니?”

    그런데 한편으론 또 걱정이 된다.

    원래 사람이 안하던짓을 하면 죽는거라던데, 시루드가 집에서 공부하는건 그 안하던 짓에 속했다.

    시루드는 잠깐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냥, 루크가 이렇게 공부하는게 좋을거래서.”

    나도 얼른 루크가 보여줬던 그 멋진 불마법을 써보고 싶단 말이다. 손으로 불을 뿜는건 뭇 어린이들의 로망에도 닿아있다.

    원초적인 멋!

    시루드는 잠깐 손에서 불을 뿜는 자신을 생각해봤다.

    그냥……. 너무 멋있지않나? 서클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물론 루크는 위험하다는 핑계로 안 알려주긴 했지만, 공부하다보면 알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일단은 공부다.

    그 말을 들은 세레나는 화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

    요즘들어 심장도 많이 좋아졌다던데(심장의 서클이 이중서클이 되었다고 한다. 물어보니까, 이것도 루크 덕분이라고 한다.) 설마 공부도 봐주는건가?

    ‘후후, 역시…….’

    루크를 입학시킨건 정답이었다.

    요즘은 시루드가 아카데미에서 말썽도 안 부린다는데, 아주 좋은 변화다.

    “그런데, 루크는 자율출석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자주 오더라고. 수업시간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내가볼땐 그냥 급식먹으러 오는 것 같아.”

    시루드는 일전에 식사를 구경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자기는 먹지도 못하는걸 그렇게 맛있다는 듯 먹고있으면 솔직히 조금 약오른다.

    나는 왜 엘프로 태어났을까.

    “흐음……. 그래?”

    세레나는 시루드가 한탄하듯이 말하는것을 듣고는 턱을 쓸었다.

    ‘아마 좋아하는 여자애가 자기한테 관심을 안주는데, 어떻게 관심받는지 몰라서 그런거겠지.’

    세레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예르나에게 연락해봐야겠다.

    ——-

    루크는 도서관의 수많은 책더미에서 쓸만한 거라고는 단 한권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사서에게 직접 ‘마계의 생태계나 생물이 저술된 서적’을 요구해서 찾아낸 것이다.

    ‘환상 동물사전.’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여기 나오는 동물들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서술되어있다.

    마치 멸종한 종의 화석을 분석한듯한 자료다.

    그러고보면 학교의 책은 다 이런 감이 있다.

    아이들이 읽기 편하고 즐거운 책들…….

    역시 전문적인 서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뭐, 그럴 것 같더군.’

    루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왕을 죽였으니 마계와 중간계를 잇던 차원의 유대도 느슨해졌다.

    마왕토벌 후 결국 몇십년정도 지났을 시점에 이미 중간계와 마계와의 연결은 거의 끊겨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아예 기록이 안 되어있다니, 조금 놀랐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마계에 대해서 몰라서 찾아보려했던게 아니라,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려 한 것에 가까웠으니까.

    마계는 마왕이 억지로 이 세계와 이어둔 타차원.

    마왕, 그리고 마족은 타차원의 인류.

    그렇다보니 중간계의 인류와 종이 달라 현 인류와는 수정이 불가능했고, 심각한 저출산으로 미처 마계로 귀환하지 못해 중간계에 남아있던 마족들은 나라는 커녕 시골의 마을 단위로 뭉치는게 고작이었다.

    꽤 비참한 삶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만약 마왕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쪽이 그런 꼴이 났을테니 어쩔 순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계의 동물이 그려진 사전을 보면, 마계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그림과 설명을 읽으니 조금씩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바르크, 사자의 몸에 털과 갈기를 지우고 비늘을 씌운 맹수다. 녀석의 가죽은 아주 두껍고 튼튼한데다 내열성이 좋아서 불마법은 전혀 통하질 않았지.

    하지만 속살은 꽤 맛이 좋았다. 

    특히 갈비가 괜찮았지.

    헬파이어의 화력으로 구워야 했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꽤 좋은 식재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피, 매와 닮았지만, 털색은 앵무새처럼 요란한 마수다.

    하지만 사냥을 시작하면 오색으로 빛나는 털의 각도를 절묘하게 조절해 스스로 색을 변화시키는 신기한 녀석이다.

    빠르고 치명적인 마수.

    작고 마력저항력이 높은탓에 꽤나 까다롭지만, 개인생활을 하는터라 여행중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아, 고기는 쓰고 비려서 맛이 별로였다.

    쥬페르, 이족보행하는 거북이라는 느낌이다.

    일반적인 거북과는 달리, 마치 인간의 풀 플레이트 아머처럼 온 몸을 덮는 외골격이 인상적인 마수다.

    이족보행을 하기에 무기를 쥘 수 있고, 그만한 지능도 겸비하고 있어서 굉장히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먹어보진 못했다.

    마침 요리하려고 할 때마다 무언가 방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케일 프롭슨은 그 이유를 어쩌면 텔레파시 같은걸로 다른 마수들과 소통하는게 아니냐는 주장을 했는데, 케일 치고는 꽤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라서 놀랐던게 떠올랐다.

    ‘이중에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녀석은…….’

    역시 ‘트렉스’ 아니겠는가.

    코끼리보다 두세배쯤은 클 듯한 거대하고 높은 몸체, 악어같이 거대한 주둥이와 그에 걸맞는 치악력, 케일 프롭슨조차 경탄할 스피드에 검기를 두르지 않고는 칼질도 먹히지 않는 단단함.

    날개는 없지만 말도 안되게 뛰어난 각력으로 몇십미터 정도는 그냥 뛰어오를 수 있었으며, 입에서는 브레스까지 뿜을 수 있다.

    그 형상과 무력은 마치 날개와 지능을 포기한 용과 같았다.

    마계의 환경까지 더해져 용보다 상대하기 어려웠다는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어찌나 상대하기 어려웠는지, 녀석을 상대하다가 9서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루크는 아마 주어진 시간내에 마왕을 보기도 전에 죽었을거다.

    ‘그래, 이 녀석은 내 선생이라고 불러도 좋겠군.’

    루크는 마계의 동물들 삽화를 계속 보고 있자니 왠지 재미있는 기분이었다.

    마수 하나를 볼 때마다 하나씩 추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루크에게는 이것이 사진첩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몇몇 마수는 삽화가 틀린 것도 있다. 이건 나중에 출판사에 문의를 해봐야하겠군.’

    보낼때 추가로 그림같은것을 보내면 수정이 되겠지.

    루크는 노트에 마수의 수정 스케치를 그렸다.

    ‘이정도면 알아볼수는 있겠군.’

    루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고양이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는 것같지만……. 그건 솔직히 기대도 안 했으니.’

    자신이 직접 마계의 숲에서 찾아야 할 정도였다면 일반적으론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개체였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이런 사전에 떡하니 나와있었다면 조금 김이 샜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불사와 무슨 관련이 있었던건가?

    어째서 기억이 나지 않는걸까.

    ——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는줄도 모른채 사전을 읽고있는 루크를 발견한 예르나는, 덩덜아 미소지으며 그런 루크를 바라보았다.

    ‘저거 되게 재밌게 읽네.’

    요즘은 볼때마다 저걸 읽고 있었는데, 벌써 몇번째 읽는지 모를 정도였다.

    환상동물, 즉 마수는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도 나올 정도로 꽤 인기있는 상품이니까.

    꽤 좋은지 심지어는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역시 너무 잘 그려서 아이가 그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너무 박력있는 삽화.

    그림도 조금은 아이처럼 밝고 귀여우면 안될까……?

    “루크, 그거 재밌니?”

    “재밌다마다. 옛날생각도 나는게 즐겁구나.”

    “그렇구나.”

    옛날생각? 그러고보면 루크 이루시는 동화에서 수많은 마수를 처치하며 나아갔다는 언급이 있었지.

    ‘……그런거면 꽤 디테일한 역할극인걸.’

    예르나는 살짝 허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말투마저 또 ‘루크 이루시’로 돌아와버리고 말다니…….

    왜 다시 그렇게 말하냐고 물어보니까, 아무래도 역할극을 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모양이다.

    언니라는 말을 듣는것도 좋았는데.

    ‘애가 싫다는데 강요할순 없는 거지만.’

    어른흉내를 내는 루크도 나름대로 귀여우니까 됐다.

    언젠가 저 말투도 고쳐지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혼자서 침울해하지 않겠다 약속했으니까, 안좋은 감정은 빨리 털어내야만 했다.

    그 감정은 다행히 아주 손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럴만한 일이 있으니까.

    예르나는 결국 출근을 해서까지 며칠 후에 있을 예정을 떠올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세레나씨가 루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줄 줄이야…….’

    며칠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요즘 루크가 빠져있는 책이 있는데, 마수에 관심이 많아보이더라구요.’

    ‘그래요? 그럼, 마수 박물관은 어때요?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우리 시루드랑 같이 붙여놓으면 재미있게 놀 수 있지 않을까요?’

    ‘마수 박물관이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았다.

    마수 박물관이라, 책만으로도 저리 즐거운듯 보이는데, 직접 보면 얼마나 재미있어할까?

    루크의 반응을 상상하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만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이튼은 옆에 지나가던 키르케를 툭툭 쳤다.

    “야, 오늘 예르나 무슨 일 있어? 꽤 텐션 높아보이는데.”

    “아, 이번 주말에 마수박물관 갈거래.”

    “뭐? 누구랑?”

    “나야 모르지. 대충 들어보니 엘프랑 만난다는데.”

    다이튼은 화들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엘프라고? 그거 남자야, 여자야?”

    키르케는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몰라. 나도 대충 들은거라서. 뭐, 그런데 같이 가는거면 남자 아닐까?”

    그 말을 끝으로 휙 몸을 돌려버리는 키르케, 다이튼은 멍청하니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으며 서있었다.

    ‘엘프, 남자, 박물관…….’

    이거 무조건 데이트 아닌가?

    선이라도 보았던가?

    그러고보면, 최근 임시보호기간 연장과 더불어 뭔가 연애에 대한 고민도 몇번 토로했던 적이 있었던게 떠올랐다.

    그 옆자리가 자신이 되었으면 했는데…….

    종족의 차이는 역시 극복할 수 없는 거였을까, 다이튼은 머리를 쥐어잡으며 서서히 무너져 땅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대체 언제부터…….’

    엘프라…….

    잘 어울릴지도 모르지.

    다이튼은 누군지 모를 남자가 예르나의 옆에 서있는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거기서 그녀는 행복하게 웃는 표정으로 얼굴없는 엘프남자를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래, 예르나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이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라도 확인하자.’

    그래, 그리고 나서 깔끔히 포기하는거다.

    만약 제대로 된 놈이 아니면……. 깽판이라도 쳐줘야겠다.

    음침하게 웃는 다이튼을 본 소르비가 ‘으으, 드디어 완전히 미친것인가.’라며 몸을 떨며 도망치듯 멀어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이 세계관에서 마수 = 공룡입니다.
    그러니까 마계는 마치 이 세계의 쥬라기 같은거죠….!

    마법공룡! 애들이 환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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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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