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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아셀라를 위한 건강식 정찬 준비는 예상보다 착착 진행됐다.

     

    “보이는 대로 캐오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황궁 뒷산에서 인삼이 나길 기대하긴 힘들겠지. 5할만 모여도 성공이야.”

     

    “선생님, 발견했습니다.”

     

    “이게 있네?”

     

    유능한 월광궁의 기사들은 아셀라를 위한 것이라 하니 밤새 산을 뒤져다 내가 요구한 재료를 전부 캐왔다.

     

    인삼은 물론이고 더덕, 고사리, 야생 깻잎 등 온갖 나물을 손에 넣었다.

     

    “슈웃, 슈프레 상단에서 택배도 도착했대요오. 항구도시에서 새벽에 낚은 연어랑…”

     

    “그것도 다 있어?”

     

    제국의 운하를 독식하다시피 한 슈프레 상단의 이동력은 상당했다.

     

    황실 주방을 통해야만 구할 수 있는 고급 재료들이 있다. 황실 전용 특급 운송선은 마나석을 모터처럼 써서 초고속으로 날아온다는 모양이다.

     

    총알배송이 따로 없네. 제국의 인프라는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다.

     

    “남은 건 맛있게 만드는 일뿐이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모인 재료를 싸들고 황실 주방으로 향한다.

     

    황궁 중앙, 천황궁 근처에 위치한 주방은 황족과 고위 귀족 전원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식사 정도야 각 궁에서 알아서 만들면 더 편할 텐데요.”

     

    “고급 재료를 취급할 수 있는 곳은 황실 주방 뿐이기도 하고, 안전상 문제도 있어.”

     

    황족의 입에 들어갈 것이니 행여 독이나 흑마술이 묻으면 안 된다.

     

    요리사와 주방장들은 주치의만큼이나 엄격한 심사와 선별을 통해 뽑힌 엘리트들이다.

     

    “평소에는 나도 못 들어가. 하지만 오늘부터는 황명을 빌미로 써먹을 수 있지. 조율은 해놨어. 들어가서 요리만 하면 돼.”

     

    “역시 준비성이 철저하시군요.”

     

    휴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주방에 도착해 철저한 보안 검사를 마친다.

     

    마침내 안에 들어서자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닭장 문이 열렸다! 어떤 놈이야!”

    “당장 배넉 가져와! 버터도!”

    “세 그릇 더 나가야 한다고! 5분 내로!”

     

    주방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모든 궁으로 가야 하는 음식을 약 서른 명이 전부 만들고 있으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지경이다.

     

    “주치의 선생님이시군!”

     

    주방장 한 명이 잔뜩 충혈된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주방 안은 소음이 가득했기에 그는 목소리를 키워야만 했다.

     

    “전달은 받았소! 앞으로 월광궁으로 가는 음식은 직접 만드신다지! 그쪽 조리대를 비워놨으니 쓰시고! 이 선은 넘어올 생각 마시오!”

     

    주방장이 바닥에 미리 그어놓은 흰 선을 가리켰다. 안전상의 이유다.

     

    쿵, 요리사들이 커다란 박스를 내려놨다.

     

    “이쪽이 주문하신 재료요! 그쪽이 반입한 재료도 검사하겠소!”

     

    주방장과 요리사들이 우리가 가져온 부재료를 체크했다.

     

    “이런 걸 쓰시겠다고? 거 참 희한하군. 재료가 섞이지 않도록 주의 부탁하오!”

     

    “걱정 마십쇼. 척 보기에도 우리 건 우리 것처럼 생겼으니까.”

     

    “불! 어떤 놈이 기름 넣은 팬을 놔뒀어!”

     

    주방장이 정신없이 뛰어갔다. 나와 눈을 마주친 타냐가 어깨를 으쓱였다.

     

    “으아아… 지저분해요.”

     

    클로에가 우리 조리대를 손가락으로 훑더니 질색했다. 기름때가 꺼멓게 묻어나왔다.

     

    이 세상에 위생 개념은 그다지 없다.

    황실 주방도 최우선 목적은 황족의 요구에 맞춘 음식을 맛있고 빠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나마 교육 중인 클로에나 휴고는 위생이나 감염 개념이 잡힌 편이다.

     

    “청소부터 진행하지요.”

     

    휴고가 장갑 낀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는 그간 재료를 확인하며 메뉴를 결정했다.

     

    ‘아셀라의 권장 칼로리는 2000. 3대 영양소 중 지방에 많이 치우친 상태니 단백질을 늘리고, 첫 주에는 혈관을 맑게 하는 성분을 다수 포함시켜야겠어.’

     

    단백질은 참치가 더 좋았겠지만 제국의 바다는 지나치게 먼 관계로 연어로 정했다.

     

    ‘깻잎을 연어에 감싸면 거부감 없이 먹을 거야. 세사민이 콜레스테롤을 낮출 거고.’

     

    메인디쉬는 정해졌다.

     

    ‘다음으로 주식.’

     

    아셀라는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주제에 유제품은 좋아한다.

     

    ‘유당을 미리 분해해서 타락죽으로 만들면 먹기 편해. 치즈케이크보다는 이쪽에 입맛을 들이는 게 좋아.’

     

    마늘은 물에 재워 향을 빼고 다른 요리에 섞는다 해도 냉이나 더덕 같은 나물을 아셀라가 먹을지는 모르겠다.

     

    ‘더덕의 사포닌은 특히 염증에도 좋은데.’

     

    맛있으면 먹겠지.

    내가 잘 만들면 될 일이다.

     

    ‘그리고 커피보다는 차.’

     

    아셀라는 틈만 나면 커피를 찾는다. 대신 맛 들일 만한 차를 찾아야 한다.

     

    정말 맛있어서 좋아하는지, 어른처럼 보여서 폼내는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이렇게 가자.”

     

    토종 한국인이었던 나다.

    접시에 고기 한 덩어리만 덩그러니 올라오는 식사보다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반찬의 가짓수가 많은 쪽이 좋다.

     

    총 메뉴 숫자는 열둘. 대신 양은 조금씩.

     

    지금부터 준비해도 빠듯하겠는데.

     

    “서, 선생님. 준비됐어요.”

     

    클로에가 쭈뼛거려서 확인하니 그새 조리대를 새것처럼 깨끗하게 닦아놨다.

     

    “시작하자. 마스크 착용해.”

     

    나는 기세 좋게 식칼을 들었다.

     

     

     

    그리고 두 시간 만에 타냐에게 참패의 쓴맛을 맛봤다.

     

    입맛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아니다. 내 인삼구이가 썼다.

     

    “이 풀떼기는 요리가 아니라 산에서 뜯어온 그대로잖습니까. 선생님이 응급처치를 해서 다시 심으면 꽃도 필 기세입니다.”

     

    “아이, 거 말 심하게 하네.”

     

    “황녀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이게 맛없을 게 아닌데.”

     

    탄수화물 함량을 낮추려 당분을 최대한 덜 쓰려다 보니 숙성도가 부족하다. 솔직히 내가 먹어도 깊은 맛이 떨어진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자취 인생 5년 및 용사파티에서 길바닥 요리…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존심을 지키려 했건만.

     

    “성질변화.”

     

    기사들이 뽑아온 재료 중에 사탕무가 있었다. 지금은 개량도 안 되어서 그냥은 절대 못 먹고 여물로나 줄 수 있는 정도다.

     

    “압축, 강화.”

     

    새하얀 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로 사랑스럽게 사르르 쏟아진다.

     

    마법의 가루.

    MSG 완성이다.

     

    “글루탐산나트륨. 감칠맛을 더해주는 궁극의 조미료지.”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어 성인병 위험도 적고 풍미는 살려주는 장점만 가득한 조미료다.

     

    물론 장인이 장기간 재료를 숙성, 발효하여 내는 맛에는 못 미치지만 초심자도 그 반은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해준다.

     

    소스와 국물에 아낌없이 투하한다.

     

    “모든 요리의 맛 성분을 전반적으로 손봐야겠어.”

     

    개량이 안 된 식재료들이다보니 내가 아는 맛과는 상당히 다르다.

     

    성질변화를 이용해 쓴맛은 줄이고 풍미는 살린다.

     

    한참을 끙끙댄 후에, 나는 타냐의 앞에 완성된 다섯 개의 음식을 내놓았다.

     

    “먹어봐.”

     

    타냐의 눈동자가 구르며 음식을 살핀다.

     

    냉이장국을 한 스푼 떠먹어보는 타냐.

     

    “우옷.”

     

    머리에 번개라도 친 듯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번쩍 떴다.

     

     

     

    ***

     

     

     

    “소녀는 월광궁은 처음이군요. 초대에 감사드리옵니다, 전하.”

     

    “거기 앉아.”

     

    월광궁의 식당에 들어선 앰브로시아가 관찰하듯 주변을 둘러보며 기사가 빼준 의자에 착석했다.

     

    긴 테이블을 놓고 아셀라와 앰브로시아가 마주했다.

     

    “월광궁은 깔끔하군요. 진보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확히 봤어.”

     

    앰브로시아의 말대로 월광궁은 황궁에서도 비교적 신식인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고트베르크 주치의의 도전적인 태도만 봐도 전하께서 가시는 길이 짐작됩니다. 오늘도 그가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되는군요.”

     

    “그럼. 그대도 관심 깊게 지켜보도록 해.”

     

    아셀라는 형식적인 말 뒤에 가려진 앰브로시아의 진의를 파악하려 시선을 고정했다.

     

    ‘폐하의 1주치의. 비서장을 제외하면 폐하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인물이야.’

     

    황제의 주치의들은 그의 나이 때문에 상시 대기 상태다. 내의원 근무가 거의 없다.

     

    아셀라는 그녀에게서 황제의 동태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싶었다.

     

    ‘내가 황제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은 정식 후계자로 인정받는 방법이야.’

     

    권터가 명목뿐인 황태자라고는 황실의 누구나 느끼고 있다.

     

    누가 먼저 황제에게 점수를 따내 진짜 황태자, 혹은 황태녀가 되는가.

     

    아셀라는 천황궁의 정보를 얻을 이 기회를 백분 활용할 생각이었다.

     

    “폐하의 용태는 어떠셔? 건강하게 주무셔야 할 텐데.”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한다. 딸로서 아버지를 걱정하는 단순한 문장으로 보이도록.

     

    “으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천하를 호령하실 위용이십니다.”

     

    앰브로시아는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다.

     

    주치의는 담당 황족의 건강 정보를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으며, 황제가 약해졌다는 말 따위를 했다간 제국에 대한 반역이 될 수도 있으니.

     

    그 문장의 틈새.

     

    아셀라는 앰브로시아의 어투에서 숨겨진 뜻을 찾는다.

     

    ‘살짝 망설였어. 굳이 표현을 과장한 걸 보면 전보다 안 좋아지신 게 분명해.’

     

    톡톡, 아셀라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자네도 고생이 많겠어.”

     

    “주치의로서 당연한 업무지요.”

     

    “그만한 자리에 있으면 권력을 누릴 만도 한데 말이야. 내의원은 자네가 아니라 오히려 1황녀파나 2황자파가 강세였다며?”

     

    “저희야 파벌을 만들 이유도 여유도 없지요. 아, 고맙소.”

     

    시녀장이 식전 차를 대령하여 앰브로시아가 그것을 가볍게 홀짝였다.

     

    반면 아셀라는 자신 앞에 놓이는 차나 식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앰브로시아만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자네에게 다른 제의가 들어오진 않아?”

     

    “다른 제의라면 어떤 의미신지요?”

     

    “글쎄. 이를테면… 다른 파벌에서 협력을 요청한다거나.”

     

    앰브로시아에게서 캐내고 싶은 정보는 황제의 행보 외에도 한 가지 더 있었다.

     

    아셀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발동한 천리안으로 봤던 광경.

    라스가 어느 때보다도 세게 끌어안아준 날.

     

    아니, 라스는 상관없고.

    내 집중력이 왜 이런담.

     

    앰브로시아는 분명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사유는 황제의 시해였다.

     

    ‘타냐 공은 내가 씌운 누명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미 있는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했을 터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걸 조작할 정도로 리스크를 짊어지진 않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다.

     

    앰브로시아가 다른 황자나 황녀의 사주를 받아 황제를 해하려 한 건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다른 파벌이라. 글쎄요, 소녀는 오직 폐하께 충성을 바치기에 그런 이야기는 아예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사옵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처형장에서 목이 떨어진 인물에는 분명 고트베르크 후작도 있었다.

     

    그도 아무 이유 없이 그 장소로 끌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황제 시해라는 대역죄에 가문의 가주가 연루된 사건이다.

     

    분명 라스의 가문은 멸문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가능성 중 하나니까.’

     

    혹시, 혹시나 하는 일이지만.

     

    천리안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현재가 흘러간다면, 라스는 모든 걸 잃고 떠돌이 들개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바로 아셀라 자신이다.

     

    ‘혹시 정말 앰브로시아가 고트베르크 후작과 손잡고 반역을 일으킨다면.’

     

    그때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천리안에서 봤던 것처럼 그들을 대중의 먹이로 던져줄 것인가, 비호할 것인가.

     

    ‘라스는 못 버려.’

     

    아셀라는 자신의 애착인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파악하고 싶어졌다.

     

    “그럼, 앰브로시아 경…”

     

    꼬르륵―

     

    대화를 이어나가려던 아셀라의 배에서 자그마한 진동이 일었다.

     

    앰브로시아가 입꼬리를 쭈욱 찢었다. 아셀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렸다.

     

    ‘라스 얘는 왜 이렇게 늦어?!’

     

    그렇다고 지금 난입해 대화를 방해했어도 화를 냈겠지만 일단 라스 탓을 하고 보는 아셀라였다.

     

    속으로 탓을 하기도 잠시.

    달칵, 식당의 문이 열렸다.

     

    “에.”

     

    아셀라가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입밖으로 냈다.

     

    복도부터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고소한 향기가 쏟아져 들어와 코를 자극한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 고여버린 침이 행여 흘렀을까 혀를 빼꼼 내밀어 입술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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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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