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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정말인가?”

        “예. 벌써 5년째 메릴랜드 관의 사감 직을 연임하는 중이지만 저희 기숙사에서 비슷한 신고가 들어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흐음…….”

       

        멜은 태연하게 고개를 젓는 수상쩍은 남자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녀가 입수한 ‘4대 불가사의’는 대륙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정보 조직에게서 얻어낸 것이었다.

        헌데 기숙사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사감이 보고 들은 바가 없다?

       

        향간의 소문에 의하면 메릴랜드 관을 집어삼키려는 저주술사의 사악한 야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데, 더 없이 의심가는 상황이었다.

       

        “그게 사실인가? 이건 마탑 내에서도 꽤 유명한…….”

        “기숙사에 이상(異常)은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그를 추궁해보려던 멜의 시도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한 마디에 가로막혔다.

        클락은 백 키로가 넘는 돌덩어리를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그 모습마저 수상쩍기 그지없었으나 작동 방법도 모르는 카메라로 증거를 남기는 건 불가능했다.

        잠시 후, 그레엄이 코트자락을 날리며 달려왔다.

       

        차가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는 기자라기보다는 ‘기사’에 가까운 예법이었다.

       

        “헉, 허억, 죄송합니다. 개최식 이후에 기자단 측에서 보도지침에 대한 공지가 있어서 제가 미쳐 멜ㄹ……님을 보필하지 못했습니다.”

        “괘념치 말게 그레엄 경. 자네의 역할은 학회에서 본녀가 금을 건네면 좋을 적당한 후보를 선발하는 것이니까.”

       

        학회의 목적이란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황실로부터 지원금 및 이권을 얻기 위함.

        허나 그를 위해 파견된 멜에겐 어중이떠중이들이 발표한 연구 성과보다 마탑에 묻혀있는 유산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일개 심사관이 학회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멜은 황궁 비고의 총 관리인이었다.

        상재(商才)를 타고난 천재일 뿐 아니라, ‘황실의 금’에 손을 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에 오른 여인.

       

        그리고 지금의 황궁에서 그런 관직은 결코 실력만으로는 따낼 수 없는 것이었다.

       

        “헌데 정말 있다고 믿으십니까? 마탑 1층에 대현자의 유산이라는 것이.”

        “곡학아세와 광군의 폭정에 물들어버린 오라비들에게 제국이 넘어가는 꼴을 보고 있을 바엔 망자의 넋이라도 쫓는 편이 낫지.”

       

        멜로디 포레스티에 폰 도를레아크.

        방계이지만 엄연히 황족의 핏줄을 타고 난 제국 제일의 귀녀였다.

       

       

       

        *

       

        나는 동상을 원 위치에 돌려놓고 창고에 남아있는 쇠사슬을 가져와 칭칭 동여매 놓았다.

        혹시 누군가가 장난치지 못하도록 ‘지켜보고 있어’라고 적힌 경고판도 세워 두었다.

        이러면 다시는 움직이는 일 없겠지.

       

        ‘그건 그렇고 뭐였지 그 여자는?’

       

        4대 불가사의라니, 가십거리가 어지간히 없으면 마탑의 일간지에서도 안 다룰 법한 소재를 뒤적거리는군.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기에 적당히 넘어갔지만, 기숙사의 평판이 그런 식으로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정말 기사가 나올 것 같으면 따로 불러서 주의를 주던지 해야겠군.

       

        “늦었어요 사감사감.”

        “죄송합니다 비나 님.”

       

        글레시아 학파의 라운지에 딸려 있는 실험실에서 나를 무례한 언사로 칭하는 비나와 재회했다.

        한창 연구에 매진 중인 것인지 투명한 유리병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평소에는 단정한 원피스 차림인데 오늘은 연구복을 입고 있었다.

        세라가 취미로 키우는 카나리아가 새장 안에서 짹짹거렸다.

       

        “지금 이 유리병 안에 ‘과냉각’외에 다른 마법을 넣는 중이에요.”

       

        아무리 그녀가 막장이라곤 하나 학회에 폭탄을 던질 순 없었기에 ‘트라팔가 호수 산 청정 얼음물’은 약간의 변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투입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도 늘리고, 맛도 ‘죽음으로 맛있는 맛’과 ‘죽음으로 맛없는 맛’ 외에 다른 걸 추가했다.

        머리를 땋은 채 이리저리 시약과 스크롤을 펼쳐놓고 바쁘게 움직이는 비나.

        나를 불러놓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거기 앉아 있어요.”

        “아까부터 앉아있는데요.”

        “사감의 역할은 제 보조에요. 저희 차례가 되면 이것들을 옮겨서 시연장까지 가지고 가면 돼요.”

       

        결국 심심해서 옆에 부른 것 뿐인가.

        비나에게 내 존재는 마치 새장 속의 카나리아 같았다.

       

        깍깍-.

       

        허나 나를 비웃는 녀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은 매우매우 시간을 때우기 좋은 수단이 있다는 것.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나는 갤러리를 켰다.

        아니나 다를까 학회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완장들이 살살이가 없는 공백을 잘 메우고 있나 확인하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마리엘의 접속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공부 중인가?’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강의도 있으니 그녀 역시 다소 갤질에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중간에 훼방놓아 망친 과목들의 학점을 커버하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할 테지.

        타격감이 최고였던 마리엘을 괴롭힐 수 없어 심심해진 나는 다른 타겟을 물색했다.

        부엉이에게 이지선다의 탕수육게임을 신청하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다른 대상이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바쁜 나를 불러다놓고 저 혼자 연구에 매진 중인 나쁜 비나비나.

        끓어오르는 알콜 램프 앞에서 실험대에 두 손을 짚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얼음케이크2에 간섭을 시도할 셈이었다.

        지금까지의 반응으로 미루어보건대, 본인은 부정했지만 간섭이 성공할 때마다 간지러움을 느끼는 듯 했으니 장난치긴 딱이었다.

       

        정신을 집중한 나는 롤케익의 겉면을 마력으로 살살 긁어내려갔다.

        악의의 층에서 아녜스의 저주를 개찬한 경험 덕에 이전과 다르게 아예 건드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달달한 겉면을 얇은 천 벗기듯 주욱 뜯어내리고 안쪽의 속살에 차가워진 이빨을 꽂아넣는다.

        깊숙이 박혀 있는 건포도의 표면도 날카로운 송곳니로 굴려본다.

        저항이 강해지면 한 발 물러서고, 안심한 것 같으면 집요하게 달라붙어 얼음을 녹인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순간.

       

        털썩!

       

        비나의 다리가 풀리며 실험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다시 한 번 무릎이 꺾이더니 내 부축을 받고 겨우 두 발로 섰다.

       

        “비나 님?”

        “비켜요.”

        “괜찮으세요?”

        “괜찮으니까 놓으세요.”

       

        허벅지를 꾹 오므리는 게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거동.

        소파에 앉히려는 나의 움직임과 반대로 비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밖으로 나가려 애썼다.

        그러고 보니 공역에 갈 때, 열차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간섭기를 쓸 때마다 객실에서 사라졌다 한참 뒤 돌아오곤 했다.

       

        “어디 가시는지는 몰라도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불편하셨다면 다음부터는…….”

        “화장, 실…….”

       

        아.

       

        “급하니까, 놓으라고요……!”

       

        흐트러진 머리카락, 양 뺨에 가득 피어난 홍조, 기다란 속눈썹에 맺힌 눈물, 색기마저 느껴지는 원망의 시선까지.

       

        나는 처음으로 깨져버린 비나의 무표정을 보고 곧장 그녀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보글거리는 알콜 램프의 뚜껑을 덮었다.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건 사과해야겠지.

       

        설마 간섭기의 영향이 그런 쪽으로도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본인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사과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실험실을 새장처럼 뱅뱅 돌던 나는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곧바로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이는 비나가 아니었다.

       

        “어, 크리스티나 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관리인 님!!!”

       

        ……혹시 중간에 싸버렸나?

       

       

       

        *

       

        “비나가 또 저질러 버렸잖아요! 학회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얘는……!!”

       

        다행히 크리스티나는 다른 용건으로 찾아온 듯했다.

        비나의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매번 뒤치닥거리를 해오던 그녀는 이번에는 얼마나 쥐어뜯은 건지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채 내게 신문 하나를 들이밀었다.

        아직 잉크도 안 마른 기사의 큼지막한 헤드라인에는 ‘니플헤이르, 수십 년 만의 침묵을 깨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보나마나 비나가 학회에 나간다는 소문이 기자단을 통해 세상 끝까지 퍼진 모양.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얼음물이라니!! 이딴 허접한 걸 내봤자 예선심사에서 떨어질 게 분명하다구요!!!”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비나의 얼음물은 그 자체로 심오한 마법적 법칙을 표방한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혹자에겐 참신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칠현자까지 보유한 원소학파의 일석이 내놓은 결과물이라기엔 굉장히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번 일이 밀로네 님의 귀에 들어가면 비나는 진짜 죽어요!!”

        “그 정도입니까?”

        “앞으로 이십 년은 극지에서 나오지 못할 거에요. 이 바보가 진짜…….”

       

        물론 비나도 이곳에서 여러 마법을 담는 시도를 하는 중이긴 했다.

        문제는 만약 그녀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경쟁자들을 찍어누르지 못하면 그 자체로 니플헤이르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웃음거리가 될 거에요. 저 뿐만 아니라 글레시아의 모든 마법사들이!”

        “이제라도 가문 차원에서 지원을 하면 어떨까요? 아직 본격적인 시연까지는 시간이 있을 텐데.”

        “니플헤이르가 학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저희의 ‘고결과 무결’을 위해서에요. 마법을 노출시킬수록 피가 탁해진다는 거, 관리자 님은 아시겠죠?”

        “네, 뭐…….”

       

        비나의 마력은 극도로 순수해서 내게 마법을 간섭당하는 것만으로 힘이 약해진다.

        거기에 더불어 크리스티나는 공역에서 자신의 마법을 내어준 벌로써 비나가 극채색의 의장을 맡게 된 거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내가 이자젤을 구하기 위해 치안대에게 사용한 사제폭탄 때문에 그렇게 된 건줄 알았는데.

        본인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기에 이건 나로써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듭한 제의까지 고사하며 마법을 연습하라던 강의실 앞에서의 결연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직후 차가운 분노에 잡아먹혀 결국 나를 강제로 참석시켰지만.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비나가 학회에서 망신을 당하도록 손 놓고 있는 건 나로써도 굉장히 찜찜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과할 것도 있고.

       

        “그럼 지원을 하나도 받지 않고 비나 님의 연구가 학회에서 최고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니플헤이르의 면은 서는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뇨, 할 수 있습니다.”

        “설마…… 관리인 님께서 비나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가요?”

       

        이채를 띈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예?”

       

        비나가 비/나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돕는 건 당연했지만 연구 성과를 끌어올리는 것과는 다른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른 팀 방해할 건데요.”

       

        해주학파에는 해주학파만의 방식이 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쪼옥……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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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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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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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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