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 –
파라몬 영감을 끝으로 성문이 닫혔다.
언데드를 처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기사들이 모두 돌아온 것이다.
“교단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영감의 인사에 교황아저씨가 답했다.
“늦어서 죄송하오. 진작에 도우러 왔어야 했거늘…”
“덕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알루어드가 곧장 나에게로 달려왔다.
“성녀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당연하지.”
“아우…!”
한동안 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영감들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
그리고 고위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
그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나를 향해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알루어드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뭐가?”
“저 같아도 크리스님의 눈치를 봤을 겁니다. 성녀님을 등에 업고 전장을 가로 질렀으니.”
“음….”
“거기다 거의 걸어오지 않으셨습니까?”
파격적인 행동이긴 했던 것 같다.
귀족들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저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이전보다 늘어난 인원의 마법사들이 성문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장군이들을 보러 가는 것일세.”
“클로셀 영감님!”
“같이 가 보겠나?”
그러고 보니 장승들에게 변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생김새도 기운도 커져 있었다.
“다행히도 이번 지원군에 정령사가 포함되어 있었다네.”
“정령사요?”
“그것도 물의 정령사가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지.”
“….혹시 저 사람들 인가요?”
마법사들의 뒤에 끌려가는 두 사람.
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영감이 말한 정령사가 맞는 것 같았다.
문제라면 굉장히 초췌해진 몰골이라는 것.
전투를 치른 다른 사람들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지쳐 있다기보다는 피골이 상접한 느낌.
“자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저들이 장군이들에게 물을 줬다네.”
“고마운 일이네요.”
닫힌지 얼마 되지도 않은 성문이 다시 열렸다.
영감을 따라가니 나를 본적이 있던 마법사들이 인사를 해 왔다.
“드디어 돌아왔군.”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네.”
“장군이들에게 변화가 있었으니, 확인해 주겠는가?”
이 마법사들….
눈이 희번득 거리는 게 정상이 아니었다.
마법사들 중 한 명이 눈짓을 하자 정령사가 걸어 나왔다.
“버…벌써 시작입니까?”
“전투가 끝났으니, 저번처럼 목이 마를 것이네. 운디네를 부탁하지.”
“조금만 더 쉬었다가 하면….”
찌릿.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덜덜덜.
정령사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뒤에 남은 정령사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고 말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 사람들 상태가 저래요?”
클로셀 영감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냥 물을 준것밖에 없네. 장군이들은 운디네들의 물만 먹으니.”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요?”
잠시 입맛을 다시던 영감이 설명을 시작했다.
“물의 정령사가 둘 뿐이라, 교대를 하면서 물을 줬다네.”
여기까지는 별일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설명에 나는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낮과 밤을 번갈아 가면서 계속 물을 줬지.”
“….?”
내가 없는 동안이라고 했으면 짧지는 않을 텐데?
그 기간 동안 계속 물을 줬다고?
영감이 흥미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군이들이 물을 조금 많이 먹어서 말일세. 날이 갈수록 그 양이 많아지고 있네.”
“….”
“아침에 물을 주기 시작해서 밤이 될 즈음이면…한 명이 쓰러지더군.”
“….예?”
“그럼 남은 사람이 물을 주기 시작한다네.”
그거 학대 아닌가?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한다고…?
주야 2교대로?
“자원 봉사를 시킨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네.”
“자원봉사는 시키는 게 아니고 받는 건데요…?”
“마법사들 사이에선 그게 그것이네.”
상황이야 어찌 되었건 영감님의 말대로 장승이 제법 자랐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무릎정도의 높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내 허리쯤까지 오는 높이가 되어 있었다.
“진짜 많이 컸네….”
애타게 나를 바라보는 정령사에게서 고개를 돌린 나는 마저 장승들을 살폈다.
“이렇게 깎아 놓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난 이렇게 조각을 잘하지 않는다.
이제는 대충 보아도 멋들어지게 생겼지 않은가.
정말로 책에서나 보던 장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조금씩 바뀌는 걸로 봐서는 더 자라면 어떻게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안에 담긴 신령스러운 기운들도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이게 장승이 맞기는 한 건가?”
세상 어느 장승을 찾아봐도 이런 기운을 품은 것은 없다.
세계수의 가지로 깎아서 그런 것일까.
옆에서 정령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디네…”
스팟 –
모습을 드러내는 운디네.
허공을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내 근처로 다가왔다.
– ….?
세레나가 부르던 정령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와는 초면이었다.
생긴 건 비슷했지만, 그 기질이 조금 달랐다.
– ….!
꾸벅 –
그리고 역시나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이 인사를 하는 운디네.
옆에 서 있던 정령사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혹시 지금 운디네가 인사를 한 것이 맞소?”
“맞아요.”
“어찌 그런 일이…듣던 대로 자네는 신비한 사람이군.”
또 호기심 어린 눈빛이 시작되었다.
어째 마법과 연관된 사람들은 다 나를 저렇게 바라보는 것 같다.
“우으!”
“루나?”
등 뒤에서 루나가 꼼지락 거렸다.
운디네를 향해 팔을 바둥거리는 게 내려달라는 소리 같기도 했다.
“기다려 볼래?”
스윽 –
익숙하게 포대기를 푼 나는 루나를 앞으로 안아 들고 운디네를 향해 다가갔다.
“이건 정령이라는 건데…음…”
루나에게는 이게 어떻게 보일까?
“일단은 물 같은 거야.”
“무우?”
보았는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가 물이라고 말하려고 한 것을?
운디네가 스르륵 우리에게로 날아왔다.
“내 동생이야.”
– …..?
물끄럼 –
말똥 말똥 –
“무우!”
나와 루나를 번갈아 보던 운디네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휘리릭 –
루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운디네.
루나를 향해 가볍게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주고는 장승을 향해 날아갔다.
역시 성녀라 그런지 운디네도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
웅성웅성 –
“…뭐야?”
장승을 살피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성벽 위의 병사들도 장승을 살피러 온 마법사들도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고 있는 아기가 성녀님이라더군.”
“성자와 성녀가 함께 나타났단 말인가?”
“걱정이 없겠어.”
마법사들의 눈빛도 희번득 거렸다.
“다들 분명히 보았을 것이네, 크리스 저 친구가 나타나는 순간 장승이 고개를 돌렸어.”
“제가 그 순간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땅에서 솟아오르기까지 했다니까요?”
“언데드를 저지하는 영역 또한 넓어졌습니다.”
우르르 –
이번에는 성문 안에서 신관들이 몰려나왔다.
“성녀께서 식사를 하실 시간입니다.”
“고단할듯하니 얼른 휴식을 취하는 편이…”
“크리스님께 안겨서 떨어지질 않으시니 걱정이오.”
클로셀 영감이 피식거리며 내 옆으로 와서 섰다.
“자네 이제는 정말로 유명 인사가 되었구만.”
“곤란하네요…”
“당연한 일일세. 앞으로는 이런 시선을 더 받아야 할 것이야.”
웅성웅성 –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붙어 있으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유명해진 만큼 신점을 보러 올 사람들도 많아지겠지만….
“난 도대체 언제 쉬나…”
“이만 들어가지. 나눠야 할 대화가 많다네.”
영감을 따라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고생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내 팔자이기도 했고.
“저들에 대해 더 느껴지는 것은 없는가?”
“음… 언데드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어요.”
저번에 엘프의 숲에서 봤을 때랑 느낌이 또 달랐다.
이번에는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느낌.
육체에 남은 미련들이 잔뜩 느껴졌다.
그리고 타락해 가는 영혼들의 사념도.
“엘프들이 도착하면 바로 산으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바로 말인가?”
“빨리 알아보기는 해야 하거든요. 산 정상이 너무 시커멓게 변했어요.”
클로셀 영감이 뒤를 따라오던 마법사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다시 나에게로 왔다.
“준비는 시켜 놓았네.”
그런데 말이다.
“제가 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건가요…?”
나는 전쟁이라고는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다.
이 많은 사람이 마치 내 말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 같지 않은가?
“자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세.”
“으음…”
“나머지 작전은 알아서들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다들 뛰어난 친구들이니 부족하지는 않을걸세.”
하기야 내가 없었어도 어떻게든 전투를 이겨냈을 사람들이었다.
이 영감들은 이미 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람들이니까.
“희생자를 줄인다라…”
아마 내 역할이 이런것이 아닐까.
“쉽지 않겠네.”
저벅 –
우르르 –
사람들이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다들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전투에 적응을 한 것일까.
동료들의 죽음을 농담으로 잊어보려는 기색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걸 보는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너머에 다른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영감님.”
“말 하시게.”
“조금 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부터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영혼들이 마을을 돌고 있어요…”
멀리서 영혼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하나 같이 눈이 멍하게 풀린 것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래서 물을 많이 먹은 거구나.”
성문으로 줄을 지어 간 영혼들이 방향을 바꾸어 다시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장승들이 그들의 길을 돌려 놓은 것이다.
“영혼을 홀려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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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휴가는 산에 갔다가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