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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

       어느덧 백우진의 앞에 스물이 넘는 주민들이 모여 그를 향해 무한한 감사어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대협!”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감사, 사과, 안도.

         

       온갖 인사말들이 그의 귀를 어지럽혔다.

         

       그때였다.

         

       캬우웅!

         

       백우진의 품속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백호가 파묻어 두었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제 나름의 포효를 내질렀다.

         

       “사, 산신님이다!”

       “아기 산신님이야!”

         

       백호를 발견한 이들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럽게 변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갔다간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광신도로 변할 기질마저 엿보였다.

         

       “다들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으십시오.”

         

       백우진이 말하자, 신룡조를 이곳까지 안내해 주었던 중년 사내가 마을 주민들의 입을 단속시켰다. 그리고선 그를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십시오, 대협.”

         

       금세 조용해진 마을 주민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이번 사건은 이곳 주민들이 산신으로 모시는 태백호가 마물이 되면서 벌어졌습니다.”

       “아…!”

       “산신님께서….”

         

       일말의 탄식이 뒤를 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물이 된 태백호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고, 우리는 고생 끝에 그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몇몇 주민들이 눈물을 훔쳤다.

         

       “영면에 들기 직전, 태백호…, 산신은 잠시나마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눈시울을 붉힌 채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년 사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 저희에게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산신이 남긴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흐느끼는 소리마저 억지로 참아내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몹쓸 짓을 시켜 미안하다고 전해달랍니다.”

         

       그리고.

         

       “이 산에 더 이상 산신은 없으니 하산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산신님…!”

       “아이고, 산신님!”

       “우리가 산신님을 두고 어딜 간단 말입니까….”

         

       마을 주민들이 줄지어 눈물을 흘렸다. 그들에게 산신이란 어버이요, 든든한 보호자였다.

         

       평생을 모셔온 이를, 터전을 버리고 떠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눈물 흘리던 주민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백우진의 품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백호를 가리켰다.

         

       “이곳에 아직 아기 산신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맞아요! 아기 산신님을 모시면…!”

         

       아기 백호를 또 다른 산신으로 모시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나는 이들을 초기에 진압하기 위해 음성에 기를 실었다.

         

       “그만.”

         

       장중하게 울려퍼지는 음성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갑니다. 그것이 산신이 제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으니.”

       “하, 하지만….”

       “당신들도, 이 백호도 더 이상 이 산에 묶어두려 하지 마십시오.”

         

       백우진은 제 품에서 마냥 즐겁다는 듯, 놀고 있는 백호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자그마한 것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시렵니까?”

       “…….”

         

       그들 모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산하라는 말씀, 잘 알겠습니다.”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산신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초, 촌장님!”

       “다른 마을에 정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시잖습니까!”

         

       주민들이 중년 사내, 촌장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 정착하기 위해선 그만큼 돈이 필요한 법이다. 자급자족해온 그들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백우진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산신이 자신이 남기고 간 육신을 요긴하게 써달라 하셨습니다.”

       “사, 산신님의 육신을… 말입니까?”

       “여러분께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니, 절대로 썩히지 말고 요긴하게 쓰라 하셨지요.”

       “아아, 산신님…!”

         

       백우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뻥을 너무 잘 쳤나.’

         

       이들을 보고 있자니 단순히 태백호의 시체를 땅에 묻어 썩히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모셔온 이의 시체를 덥석 팔라고 하면 한사코 거절할까 봐 대충 지어낸 말들을 둘러댔을 뿐인데.

         

       눈앞에 눈물바다가 펼쳐졌다.

         

       캬웅?

         

       이 와중에 백호는 귀여웠다.

         

         

       * * *

         

         

       해가 뜰 무렵 잠에서 깨어난 백우진과 조원들은 어젯밤 미리 챙겨둔 짐을 메고 며칠간 신세졌던 집을 나섰다.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 다가왔다.

         

       선두에 나선 촌장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예. 해야 할 일도 끝마쳤으니 복귀해야지요.”

       “변변한 대접도 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가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짓자 백우진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저어….”

         

       촌장의 뒤편에 서 있던 여인이 작은 광주리를 손에 이고 앞으로 나섰다.

         

       “출출하실 때 드시라고 감자를 조금 삶아봤는데….”

         

       백우진은 기쁘기 한량없다는 듯 냉큼 광주리를 받아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촌장 또한 지금껏 보인 적 없던 미소를 내비치며 그에게 말했다.

         

       “저희도 조만간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할 예정입니다.”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산신이 묻혀 있을 자리를 응시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산신님께서 마지막으로 베풀어주신 은혜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지요.”

         

       호랑이의 부산물은 돈이 된다. 하물며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영물의 것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터.

         

       그 돈이라면 수십의 마을 주민들도 정든 곳을 떠나 새로이 정착할 수 있는 돈이 될 것이다.

         

       “정무학관으로 연통이나 하나 주십시오. 나중에 꼭 한번 찾아갈 테니.”

       “하하! 그때는 정말 제대로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은 뒤, 백우진과 신룡조원들은 길을 나섰다.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인사에 어쩐지 발걸음에 더 힘이 솟는 듯했다.

         

         

       * * *

         

         

       이따금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인근 마을에 들렀던 때를 제외하면 난생처음으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발을 내디딘 신녀는 고행 아닌 고행을 겪는 중이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그녀를 등쳐먹으려 했던 이들도 있었고,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를 겁간하기 위해 다가왔던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적잖은 무공 수위를 지닌 덕에 그들로부터 제 몸을 지켜내기는 했으나, 그녀는 세상의 무서움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지겨웠던 현천문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웅님, 어디 계셔요….’

         

       허나 이 모든 것도 영웅을 찾기 위한 시련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낮에는 한참을 떠돌고, 밤에는 영웅의 별을 관측하여 그가 있는 방향을 알아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정도는 알려주지…!”

         

       불친절한 별은 그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만 알려줬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는 조금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지난밤 별이 알려주는 방향대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신녀는 별안간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 이건.”

         

       정확히는 가슴이 아니라 품에 넣어두었던 현천문의 비서가 열을 내고 있었다.

         

       “설마…!”

         

       과거 영웅과 함께했던 선대 신녀가 남긴 기록에서 본 기억이 있는 현상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비서의 첫 장을 펼쳐보았다.

         

       “아!”

         

       본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곳에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백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마을에서 변고가 생겨 영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은 영웅의 태동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비서의 진정한 이름은 ‘영웅비록(英雄祕錄)’.

         

       영웅의 행보를 지켜보는 신녀가 직접 써내려가야 할 한 편의 서사시가 제 마음대로 기록되었다.

         

       “백리산…!”

         

       이는 이정표였다. 영웅이 탄생하고 첫 발걸음을 떼었음에도 여전히 그의 곁에 도달하지 못한 신녀를 질책하고, 길을 인도하기 위한.

         

       “기다리세요, 영웅님…! 금방 찾아뵙겠어요!”

         

       느려졌던 그녀의 걸음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한발 늦었지만.

         

         

       * * *

         

         

       “흐으음….”

         

       정무학관으로 복귀하는 도중, 또다른 산길에서 밤을 맞이한 백우진은 모두가 잠든 사이 불침번을 서며 태백호에게서 얻은 내단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이대로면 안 되겠는데….”

         

       조별 과제 완료 보고서에 첨부하기 위해 태백호의 발톱과 이빨을 하나씩 뽑아왔지만, 그것으로는 마물로 변한 녀석이 평범한 호랑이였는지, 영물이었는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결국 이게 가장 큰 증거인데.”

         

       영물에게는 본디 내단이 존재하는 바, 태백호의 뱃속에서 얻은 내단을 첨부하면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내단에 쌓인 마기가 너무나도 지독하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내면 절대 못 돌려받을 텐데.”

         

       마기가 가득한 내단을 증거랍시고 제출했다간 영영 돌려받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이 마기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미리 챙겨둔 수통에 내단을 넣고 음주선공의 내기가 가미된 술을 들이붓고 있지만, 마기가 워낙 독해 이를 정화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최대한 신법을 운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했다.

         

       “어쩐다.”

         

       뭐 좋은 수가 없나 싶어 머리를 굴리는 도중, 거의 붙어있다시피 잠들어 있는 구왕수와 장삼의 얼빠진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옳거니.”

         

       왠지 좋은 수가 생길 것만 같다.

         

       “자아, 기상!”

         

       동이 터오르기가 무섭게 곤히 잠든 조원들을 깨우기 위에 목청을 높였다.

         

       야영에 익숙해진 조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육포 하나를 입에 물고 질겅거리며 야영에 쓰인 물자들을 정리했다.

         

       “다들 집합!”

       “집합….”

         

       힘없는 소리를 내며 백우진의 앞으로 모여드는 조원들.

         

       “어허, 이거 봐라.”

         

       건수를 잡았다는 듯한 말투에 군기가 빠져 있던 조원들이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허나, 이미 늦었다.

         

       “정신이 썩어 빠졌구나.”

       “아, 아닙니다!”

         

       한껏 목소리를 높였지만 앞서 말했듯, 이미 백우진은 결심한 상태다.

         

       그것도 지난밤부터.

         

       “중대장… 아니, 조장은 여러분께 실망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조원 생활 끝나나!”

       “아닙니다!”

         

       군기가 확립된 조원들의 모습이 매우 만족스럽다.

         

       군대는 가보지 않았지만, 중대장은 이런 맛에 군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흡족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지금의 너희는 매우 약하다. 알고 있나?”

       “예!”

         

       모두가 예, 라고 할 때.

         

       “아닙니다!”

         

       구왕수만이 눈치 없이 아니라고 힘껏 외쳐댔다.

       

       

        백우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래? 그럼 나랑 한 판 붙자.”

       “야, 약합니다! 제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약합니다!”

         

       황천길 앞에서 겨우 몸을 비트는 데에 성공한 구왕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대로 돌아가는 건 아쉽다고 판단, 너희에게 한 가지 임무를 내리고자 한다.”

       “임무라면….”

         

       가장 먼저 불길함을 느낀 신예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학관까지 산을 통해서만 움직인다.”

         

       조원들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정도라면 조금 힘들긴 해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식의 대화가 오간다.

         

       단.

         

       “지나가는 산에 존재하는 모든 산적들을 다 잡아서 간다.”

         

       “헉!”

       “에엑…!”

         

       어때, 참 쉽지?

         

       내단을 정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조원들의 발목을 붙잡을 비장의 한 수가 펼쳐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를 쓰면서 약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묘사되고, 대화할 때 모두를 부각시키기 힘들다는 점과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는 점이 그렇습니다.

    예상으로는 지금 편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딱 들어가야 했는데, 나름대로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짚어야 할 부분만 짚어냈다고 생각하는데도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다음으로 시작될 에피소드에는 이를 유념하면서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제갈연지 일러스트가 생각보다 음침함과 찐따미가 덜하다고 말씀하시는 독자님들이 계십니다.

    제가 외주를 처음 넣는 거다 보니까 자료 수집이 모자라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에 제갈연지 일러스트를 또 뽑을 때에는 이보다 더 확실하게! 조져놓도록 하겠습니다…!

    70화 만에 첫 일러스트를 선보이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하여 이번에는 텀 없이 바로 또 다음의 일러를 뽑아내기 위해 예약을 걸어 두었습니다.

    이번에 또 제 마음을 빼앗아가신 그림 작가님 스케줄이 조금 있다 보니, 제 차례를 기다리며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는 중입니다.

    또 아주 예쁜 일러스트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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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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