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72

       전임자 소환, 전학 수속, 계약서 작성…… 내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행히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우선, 전임자 소환의 경우에는 의외로 쉽게 되었다.

        

       이미 몇 번이고 말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저택의 소유주는 ‘예사라’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삶을 사실상 포기하고 별다른 의욕 없이 그냥 살아만 있던 예사라는 그 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적은 없지만, 사실 법적으로만 따지면 내가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사용인을 내쫓아버려도 큰 문제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생활 자체가 마비될 것이 뻔하니 일단 참고 있을 뿐.

        

       아무튼 그런 이유로, 양혜인은 의외로 쉽게 이 저택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양혜인 본인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꺼렸지만.

        

       하긴, 나라도 무려 우리나라 최대…… 아니, 세계 최대 기업의 회장이 직접 해고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양혜인을 그냥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저택 안의 사용인들은 나를 최대한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 있어도 그냥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주로 바깥으로 나돌아다니는 시간에는 아예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냥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장은 사용인들이 나와 말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놨겠지만, 나는 얼굴이 보일 때마다 사용인들에게 말을 걸어댔으니까.

        

       “사용인 메뉴얼이 있나요?”

        

       “저의 전임 메이드가 하던 일을 정리해 둔 노트가 있나요?”

        

       “혹시 저와 소희에게 이 저택의 내부를 안내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나요?”

        

       일요일 내내 뒤에 소희를 데리고 사용인들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다녔더니, 다들 나의 얼굴을 보면 새파랗게 질려서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바빴다. 내가 발을 빠르게 움직이면 상대도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분하게도 예사라의 발은 사용인들보다 훨씬 느렸다.

        

       좋아, 체력 단련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내가 언젠가 진짜 전력 질주해서 잡으러 간다.

        

       “내가 잡아 올까?”

        

       소희는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갑을관계에서 대부분은 갑이 훨씬 더 유리하다. 당연한 말이다. 돈을 받는 이들과 돈을 주는 이들. 어느 쪽이 상대를 휘두르기 더 좋은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원작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예사라는 학교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택 안에서도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게 직접 나온 장면은 아니었고, 엔딩에서의 예사라를 서술한 내용 중에 있었다. 저택에서의 패악질을 용감한 사용인들이 폭로했고, 당연히 그건 ‘예사라를 처벌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회장도 결과적으로 예사라를 버렸고.

        

       ……진짜로 버렸을까?

        

       게임을 할 때는 당연히 예사라의 입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예사라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장에게 고용되어 예사라 아래에 있던 사용인들이, 과연 자신들 스스로 입을 열었을까?

        

       회장에게 꽉 붙들려서 예사라를 대놓고 투명 인간 취급하던 학생들이, 재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겪어온 아이들이, 과연 스스로 예사라의 패악질에 대해 고발하고 예사라가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을 도울 수 있을까?

        

       회장은 예사라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려고 했지만, 그건 예사라를 증오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순히 재산을 빼앗으려고? 아니, 그랬다면 굳이 그런 미친 복장을 입히고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만져대진 않았을 것이다.

        

       ……한가지 가능성이 떠오르지만, 일단은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도 않으니까. 일단은 내 머릿속에 있는 진짜 예사라의 의식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우선이다. 겸사겸사 최나경의 생각도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은, 그래서 나는 양혜인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만약 양혜인을 해고하면서 회장이 어떤 추가적인 조건을 걸었더라도, 내 이름으로 다시 고용하면 그만이었다. ‘어디 어디서 일할 생각 하지 마라’ 같은 말은 결국 그냥 위협일 뿐이었으니까. 이 나라의 누구도 어떤 사람을 그런 식으로 고립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메이드 한 명에게 연봉 5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라면 더더욱 하지 못하고. 설사 나보다 돈이 많더라도 말이다.

        

       예사라의 번호가 아닌 소희의 번호였기 때문이었을까. 양혜인은 의외로 쉽게 전화를 받았다. 물론 받자마자 들린 내 목소리를 듣고 다소 당황한 모양이었지만, 전화가 바로 끊어지진 않았다.

        

       기회를 잡은 내가 다시 돌아오라고 하자,

        

       [하지만 저는……]

        

       양혜인은 망설였다.

        

       “만약 저택 안에서 만나고 싶지 않으면 밖에서 한 번 대화라도 나눠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그만두고 나가버리면 안 되죠. 뒷사람에게 인수인계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회사 다닐 때부터 ‘바쁜 것’이 제일 싫었다. 그리고 바쁜 일은 보통 여러 일이 한꺼번에 겹칠 때 발생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전생에, 내 회사 선배는 내가 취업하자마자 나한테 이것저것 사다 먹이면서 엄청 친해진 다음에 내가 두 달쯤 일하고 좀 익숙해질 만 하자 그대로 퇴사해버렸다. 사표 한 장 딸랑 남겨놓고 잠적해버렸다고 한다. 퇴직금이야 어차피 월급 계좌로 보내면 그만이니까. 아니면 나중에 사장에게만 따로 연락해도 그만이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선배는 애초부터 그 회사에서 탈출할 각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회사로 가게 된 건지, 아니면 그냥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 관둬버리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그대로 나의 사수이기도 했던 선배의 일을 통째로 떠맡게 되었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그래도 두 달 정도 열심히 배운 짬으로 어떻게든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 시기의 기억은 진짜 토나올 정도로 힘들었었다. 비자발적인 야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물론 지금의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는 없을 거다. 양혜인 뒤에 들어올 메이드는 이미 그 시점에서 교육이 끝난 뒤일 테니까.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메이드는 소희였으니까.

        

       “정 하기 싫더라도, 최소한의 인수인계는 하고 돌아가세요. 그 기간 동안은 제대로 계산해서 일당으로 줄 테니까.”

        

       […….]

        

       “제가 찾아갈까요? 지금 나가서 택시 잡아요?”

        

       [……아닙니다. 최대한 빠르게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감사합니다, 아가씨.]

        

       뭘 감사까지야. 어차피 돈 받고 일하는 건데.

        

       그렇게 인수인계 문제는 전임자를 소환하는 것으로, 일요일 저녁쯤에 끝날 수 있었다. 양혜인은 다시 짐을 싸서 가야 하므로 월요일부터 인수인계를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기왕 하는 김에 전학 수속과 계약서 작성도 짬 시켜버리기로 작정했다.

        

       뭐.

        

       왜.

        

       뭐.

        

       내가 하는 것 보다는 양혜인이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정 안 되겠다면 그 업무에 관련된 추가금을 주면 되는 일이다.

        

       세상 모든 일이 전부 돈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보통 그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보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웬만한 일을 해도 돈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계보건기구였나, 일론 머스크 재산의 몇 퍼센트면 전 세계의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나도 몇 퍼센트 정도 투자해볼까? 여론이 인식하는 나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준다면, 후에 일이 터지더라도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터였다. 전 세계 기아를 다 처리할 생각은 없어도, 국내의 문제라면 어느 정도 눈에 보일 정도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좋아, 이건 체크리스트에 넣어두기로 하자.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소희 몸에 맞는 메이드 복을 찾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메이드 복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월요일 되기 전에 저택 구조 파악이나 해 두기로 하자.

        

       *

        

       “오늘 학교 다녀오면 전임자가 올 테니까, 아마 오늘 저녁부터는 정식 메이드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때부터는 메이드 말투를 써야 하는 건가?”

        

       내 말에 소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얘 혹시 메이드라는 직업에 좀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마도 다른 사용인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단둘이 있을 때는 그냥 말 편하게 해도 좋아. 아니, 오히려 편하게 해주지 않으면 좀 불편할 거 같은데.”

        

       “그래?”

        

       내 말에, 소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일단 저녁에 만나자.”

        

       아직 전학수속이 되지 않았기에, 소희는 오늘은 자기 학교로 등교한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겠지만.

        

       메이드 복은 어제 미리 찾아두었다. 내 예상대로 저택의 대부분은 비어있었다. 사실, 그냥 걸어 다니면서 방문을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릴 정도로 컸으니 오히려 그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놀랄 일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저택 안에서 사용인들이 쓰는 곳이나, 창고 같은 곳은 다 찾을 수 있었다. 마치 옷 가게 창고 같은 곳에는 사용인들이 쓰는 옷들이 업무 종류별로, 그리고 사이즈별로 주르륵 걸려있었다.

        

       과연 돈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사용인 복장을 고용하고 구하는 게 아니라 미리 전부 만들어서 보관 중이라는 말이니까. 심지어 인원 변동도 거의 없는 곳인데.

        

       “그래, 저녁에 만나자.”

        

       나는 그렇게 인사하고 차를 향했다. 소희는 걸어서 학교로 가야 했기에, 오늘은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나왔다. 다행히 사용인들은 어제 내가 들쑤셔놓은 것 때문인지, 내가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겠다고 하니 좀 기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뭐, 별로 서운하진 않다.

        

       나는 다시 한번, 어째서인지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소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차에 탑승했다.

        

       *

        

       차에서 내렸는데도 인사 소리가 없으니 조금 어색했다. 내가 말이라도 걸 거라고 생각한 건지, 차는 내가 내리자마자 훌쩍 떠나버렸다.

        

       운전기사와 딱히 친분도 없는 나는, 그냥 그대로 걸어서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나와 같은 시간에 등교하는 아이들도 꽤 많았는데, 요즘 학교에서 내가 부리고 다니는 패악질 때문인지 아이들은 내 곁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걸었다. 덕분에 내 주위에는 마치 결계 같은 둥근 원이 만들어졌다.

        

       아직 하늘이가 올 시간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혼자 걷기로 했다. 내가 혼자라 나를 무시하는 것이 더 쉬웠는지, 주변 아이들이 나를 흘끗거리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랬다. ‘나를’ 흘끗거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 뒤쪽 어딘가를 흘끗거리고 있었다.

        

       마치 뭔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

        

       뭐가 있나,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휙, 하고 근처 나무 뒤로 사라지는 파란 머리카락이 눈에 보였다.

        

       “…….”

        

       대체 뭔가 싶어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더니, 나무 뒤에 숨었던 선도위원이 나무 밖으로 고개를 슬쩍 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바로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설마 저거 숨은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양갱킹님, 후원 감사합니다!

    아레나 게시판에 거의 들어가지를 않아서 팬아트를 이제야 봤습니다! 고퀄리티의 팬아트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그림 그리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제가 그린 선들은 사람 비슷하게도 생기지 않았는데,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을 그대로 현실에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언제 봐도 신기해요. 사실 팬아트를 받기 전에 먼저 표지를 뽑았어야 했는데, 이번주에야 정산 신청을 했습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저의 소설을 읽고 이렇게 애정을 보여주시니 굉장히 기쁩니다. 글쓰는 것도 좋고, 글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 여러분이 예사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가가 가진 생각과 독자가 가진 생각은 언제든지 다를 수 있고, 그렇기에 같은 묘사를 보아도 상상하는 외모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던 사라의 이미지와 여러분이 생각하던 사라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다시 한 번, 후원과 팬아트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정진하여 독자 여러분께서 저의 글을 읽으시며 쓰신 비용과 시간이 켤코 아깝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