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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2

    <722 – 평화로운 하루(2)>

     

    조나와 리프와 오랜만에 함께 보낸 단란한 식사시간이 하늘을 감동시키기라도 한 걸까.

    다크노디는 강의 난의도가 몰라보게 낮아졌음을 체감하였다.

    학생들이 두 발로 걸어나가는 꼴을 용납하지 못하는 플라톤 교수에 필적하는 잔인한 교수 디에몬의 <악마학> 강의시간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교수님. 오늘은 어둠의 종복들이 인격을 건드는 다양한 흑마법에 대해 배운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수면에 대한 욕구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인격을 나태하도록 타락시키지. 그러니 이불을 덮고 강의시간에 따뜻한 바닥에 누워 눈을 감는 것은 아주 악마적인 강의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악마학 교수 디에몬 교수의 성정상 잠이 들면 악몽 속에서 괴롭히는 몽마들을 학생들의 인지 범위 밖에 매복시켜 두었을지도 모르지.

    잠이 들면 대체 어떤 악몽이 찾아오는지 두려움에 덜덜 떠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는 시간은 과연 다크노디에게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잠에 들지만 않으면 고된 강의 일정으로 축난 몸과 원기를 돌볼 수 있는 회복 기회이기도 했다.

     

    “너… 잠을 전혀 자지 않은 거냐?”

    “인격의 나태를 막기 위해 적진에서는 함부로 잠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번 강의에서 디에몬 교수님이 가르치고자 했던 진의. 저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이런 미친… 조금은 잠들어도 되잖아!”

    “싫습니다. A+학점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잠깐 졸지도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매일 절대로 잠이 오지 않는 각성제드링크도 미리 마실 겁니다.”

    “…조교들! 당장 암흑성채 방위마법진을 가동해라. 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준비를 서둘러라!”

     

    이어지는 4학년 강의라도 있는 걸까.

    급히 전쟁준비를 하는 교수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도록 꾸벅 인사하고는 냉큼 다음 강의장으로 향하는 포탈게이트를 넘나들었다.

    차원마법의 이용이 금지된 아카데미 내에서는 당연히 금기에 해당하는 행위였으나, 오크노디만큼 능숙하게 강의를 일찍 끝마칠 수 없었던 내게는 부득이하게 어길 수밖에 없는 교칙이기도 했다.

     

    “…왔냐?”

    “데드캣 선배님?”

    “<인생하직일보직전추적피하기> 강의는 휴강이다냐. 왔으면 출석 도장 찍고 썩 사라지라냐.”

    “조교분은 어디 가시고 선배님이 조교 일을 대신하고 계세요?”

    “모종의 사유로 교수와 조교들이 나란히 의료동에 입원해서 포인트 받고 일일 조교가 되었다냐.”

     

    역시 학년사천왕의 자리를 유지하는 실력자.

    누구보다 빠른 정보력과 실리를 챙기는 판단력이 정말 비범했다.

    오크노디는 허접선배라고 부르지만 다크노디에게는 존경스러운 선배였다.

     

    “굉장하시네요, 선배. 누구보다 빠르게 포인트 날먹의 기회를 낚아채다니. 역시 고양이수인의 민첩성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해요.”

    “…기분 나쁘다냐! 어울리지도 않는 칭찬은 집어치우고 썩 꺼지라냐!”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손에서 손톱도 뽑지 않고 점잖게 하악질만 하는 모습에서도 학년이 올라 부쩍 철이 들었음이 느껴졌다.

    기억 속 작년의 선배였다면 당장 손톱 뽑고 막무가내로 휘두르며 쫓아냈을 텐데, 움찔거리며 본능을 제어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나도 저런 후배를 위해서 본능을 절제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는 바람직한 선배가 되어야겠다.

     

    “오크노디! 점심시간인데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괜찮은 거야?!”

    “응…? 점심이니까 학식을 먹지.”

    “그게 아니라, 오늘 메뉴는 다 전에 먹었던 메뉴들 아니었어?!”

     

    도로시의 경악하는 외침에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는 식판에서 디저트로 나온 군밤을 도로시의 식판에 올려놓았다.

     

    “괜찮아. 가끔은 수련이나 수집 없이 이런 평범한 식사도 즐기고 싶거든. 이건 먹어본 음식이니까 도로시가 먹어도 돼. 기억대로라면 굉장히 달고 맛있어.”

    “ㅁ, 머야 이 달달함은!”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

    “밤이 아니라 오크노디가! 오크노디의 태도가 너무 스윗해. 이런 건 오크노디가 아니야!”

    “…!”

     

    물론 식사시간이라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과의 소중한 일상을 누리면서도 원본과 분신의 차이, 기억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이질감이 이렇게 주변의 위화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크노디는 애써 오크노디의 평상시 하이텐션을 기억하며 쾌활하게 말했다.

     

    “농담농담~! 도로시도 참, 군밤 준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았어? 킥킥. 먹을 걸 양보하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 그렇지? 방금은 정말 깜짝 놀랐다고.”

    “공짜로 주기는 그러니까 10포인트만 줘!”

    “오크노디가 음식을 팔아?! 그것도 완전 헐값으로?! 뭔가 오크노디스럽지만 이상해!”

    “…군밤 싫어해?”

    “싫지는 않지만, 마침 엄청 먹고 싶었지만! 으으으… 알았으니까 이리 줘! 10포인트에 살게!”

     

    식사시간을 마치고 강의동 휴게실에서 오후강의 과제를 풀려고 문제집을 잔뜩 들고 찾아가니, 안에서 문제를 풀던 빅스톤 선배가 입을 쩍 벌렸다.

     

    “너 이 자식, 딱 걸렸어!”

    “네?”

    “평소에 공부는 교과서 한 번 슥 훑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점잔 떨더니 너도 결국은 사람이었구나! 지금까지도 남몰래 이렇게 공부하고 있었지?!”

    “아.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거짓말하지 마. 그럼 그 문제집은 다 뭔데?”

    “기억으로 알고 있는 정보를 실제로 취득하는 과정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다 아는 문제를 복습하러 왔다고? 그것도 굳이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악마적인 발상… 인정하지. 넌 평상시의 오크노디가 맞군!”

    “…”

     

    가끔은 의도치 않게 오크노디스럽다는 판정을 받아 경계를 사지 않았지만, 그럴 땐 뭐가 얻어걸렸는지 헷갈려서 오히려 곤혹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쪽지시험은 어떻게 치르나, 기억이 온전하기는 한 걸까 걱정이 태산이었던 다크노디에게는 천만다행히도 오후강의 또한 휴강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한 포식자들> 강의는 휴강이다냐. 왔으면 출석 도장 찍고 썩 꺼지라냐.”

    “아. 또 보네요, 데드캣 선배.”

    “오크노디?! 왜 이딴 강의까지 듣고 있는 거다냐.”

    “선배야말로 듣지도 않는 강의 휴강 안내는 어쩌다가 맡게 되셨어요?”

    “<인생하직일보직전추적피하기> 강의 교수의 옆 침상에 입원한 교수에게 겸사겸사 자기 강의 휴강 신청도 대신 해달라는 일감을 따냈다냐.”

    “역시… 선배님의 영업능력은 탁월하세요. 학년사천왕의 노련함이 느껴지세요.”

    “지금 놀리는 거다냐?! 마음만 먹으면 학년수석은 그냥 하는 녀석이 별것 아닌 걸로 칭찬해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냐! 기분 나쁘다냐!”

     

    하악질을 하다가 무심코 실수로 손톱을 뽑아서 날카롭게 세워버린 선배.

    그런 제 행동을 뒤늦게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손을 등 뒤로 감추었지만, 그래도 감출 수 없는 것이 기뻐서 위로 꼿꼿이 세우고 바르르 떠는 꼬리였다.

     

    ‘데드캣 선배는 귀엽기까지 하시네. 실은 기분이 좋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화난 척을 하지만 그래도 몸은 정직하잖아?’

     

    데드캣 선배를 향한 호감도를 오늘도 1점 올리며 다음 강의장으로 가니, 이번에는 왼팔에 부목을 감고 오른쪽 팔로는 목발을 짚으며 절뚝거리는 교수님이 뚱한 얼굴로 칠판에 분필을 올렸다.

     

    [자습]

     

    “니들 하고 싶은 거 해.”

     

    얼마전에 사다코 교수님도 안식일이라고 휴강을 하시더니, 아카데미에도 실은 안식일 비슷한 쉬는 날이 있었나보다.

    교수님들이 다들 널널해서 원기를 회복하기 좋은 날이라며 기뻐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는 매점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매점에 들렀더니 “오크노디가 매점에?!”를 외치는 티토소가와 친구들과 마주쳤다.

     

    “오늘은 매점 간식이 먹고 싶었어.”

    “하지만 매점에 나오는 간식은 오크노디가 전부 먹어본 간식이잖아!”

    “…그래도 가끔은 먹어본 걸 또 먹어보고 싶을 수도 있잖아.”

    “알았다! 오크노디 지금 우릴 시험하는 거지? <인간으로 둔갑한 포식자들> 강의를 듣는 3학년 선배들한테 들었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그건 인간으로 둔갑한 포식자가 틀림없댔어! 흐흥. 우리한테도 3학년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어서 왔겠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구!”

    “…분하다. 내 속셈이 벌써 들켜버리다니!”

     

    억지로 분한 척을 했지만 실은 그냥 시무룩했다.

    간식을 못 먹어서 주린 배를 쥐며 교내를 떠돌고 있으려니, 다크노디를 발견한 이사벨이 다가왔다.

     

    “왜 그렇게 느리게 걷고 있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마나실드 위로 굴러다니지도 않고. 기분 안 좋아?”

     

    원본의 기분 좋은 상태는 이해하기 어렵구나.

    오늘도 오크노디 연기가 또 한 계단 난이도를 올라갔다는 사실에 정말로 기분이 안 좋아진 다크노디가 “아니요…”라며 소심하게 대꾸했다.

    이사벨은 앉아보라며 돗자리를 깔고는 언제 오크노디와 마주쳐도 건네줄 수 있는 상시보온 신선유지 기능이 첨부된 마법 3단 도시락을 풀었다.

     

    “먹어. 너 해주려고 가지고 다녔어.”

     

    다크노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아카데미 생활은 힘들지만 오크노디의 친구들, 동기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직접 교류하는 즐거움은 기억 따위로는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행복한 얼굴로 도시락 뚜껑을 열자 생전 처음보는 기괴한 곤충이 까꿍 하고 머리통을 내밀었다.

     

    “…이사벨. 이 음식 이름이 뭐야?”

    “매미튀김. 오크노디가 못 먹어본 음식이 거의 없어서 오늘은 곤충 특식으로 준비해 봤어.”

    “……”

    “싫어…?”

    “아, 아니. 맛있어보여서 어디부터 씹어먹을지 고민했어.”

    “그거야 늘 먹던 대로 한입에 왕창 먹으면 되잖아.”

     

    슬픔 뒤에 행복 뒤에 찾아오는 슬픔.

    단짠단짠의 하루에 다크노디는 괴로운 기분을 감추고자 <감각차단>으로 미각을 일시적으로 없애버리며 입안에 든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씹고 삼켰다.

     

    “평소보다 먹는 속도가 느리네. 역시 맛없었어…?”

    “…맛을 음미해서 그래.”

    “잘됐네. 다음에도 또 해줄게.”

    “……뭘로 하려고?”

    “오크노디는 곤충도 좋아하고 독도 좋아하니까 독거미가 좋을 것 같아.”

     

    안녕, 이사벨.

    만나서 즐거웠고 한동안 다시 보지 말자.

    다크노디는 오크노디처럼 교내를 정신없이 구르고 날아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식사시간에 자신을 찾아 헤매는 이사벨과 마주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보스몹레이드> 저녁 강의는 휴강이다냐. 왔으면 출석 도장 찍고 썩 꺼지… 왜 또 너냐?!”

    “역시 선배는 모범생이네요. 본받아야겠어요.”

    “햐아악!! 도대체 강의를 몇 개를 듣는 거다냐! 무서우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냐!!”

     

    그래도 존경스러운 선배도 보고 강의도 쉬니까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크노디의 일상은 따라 하기는 힘들지만, 오늘처럼 불쑥 찾아오는 선물 같은 쉬는 날이 있으니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일도 오늘처럼만 편했으면 좋겠네.’

     

    단련실에서 오크노디를 발견하고 경악하는 동급생들과 으레 나누는 스몰토크도 나누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매주 한 번씩 나타나는 암살자들도 슥삭 해치우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모자 선배에게 맡긴 응애에게 무럭무럭 자라라고 암흑의자양강장제도 넣어주고 눕는 잠자리가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오크노디.”

    “응.”

    “중간고사 준비는 잘 하고 있어?”

    “…!”

     

    기숙사에서 밤마다 같이 잠드는 이슈타르가 불쑥 던진 한마디는 평화로운 일상이 와장창 박살 났음을 알리는 폭탄선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리시험을 치러라, 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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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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