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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3

    <723 – 평화로운 하루(3)>

     

    기프트 아카데미의 중간고사는 항상 정신나간 난이도의 인생역경 종합선물세트가 기다리고 있다.

    다크노디는 당연히 두려움을 느꼈다.

    강의조차 오크노디가 가뿐하게 해치우던 기억과 다르게 이토록 가혹하거늘, 실제로 치르는 시험은 또 얼마나 가혹할까!

     

    “왜 그래, 오크노디? 갑자기 몸을 막 떨고.”

    “너, 너무 신나서 그래.”

    “너무 부르르 떨지 마. 오늘은 <공포의 저택> 던전이라고 거대한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거인종을 피해서 숨어있어야 한다며 같이 장롱 이불 틈새에 끌고 들어왔잖아.”

     

    이불 저편에는 앨리스 모자 선배의 그늘에서 “응애…! 응애…!”라고 작게 기합을 내지르며 잔뿌리권격술을 수련하는 응애 만드라고라가 있었다.

     

    너무 움직이면 응애의 잔뿌리가 움직이는 몸에 깔려 응애애애앳!! 하고 비명을 지르며 거인종을 부를지도 모르기에 이슈타르는 오크노디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생애 처음 치르는 시험에 대한 공포로 바들바들 떨던 다크노디는 이슈타르의 온기에 떨림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 기분은…

    오크노디의 기억 속에만 있던 이벤트 <수학여행>에서 같은 이불 아래에서 호감도를 올리는 이벤트?!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평화의 시간> 마법이야.”

    “…뭔가 배신감 들어.”

     

    부루퉁해진 오크노디의 모습에 이슈타르는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 지금 어리광을 부리는 건가?

     

    ‘하긴 오크노디도 어린애긴 하지. 평상시에 하는 짓을 보면 워낙에 강해서 떠올리기 힘들지만.’

     

    이슈타르는 마법을 걸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오크노디를 품에 안아주었다.

    머리카락까지 슥슥 결을 따라 다듬으니 오크노디가 더욱 부루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능숙해.”

    “능숙하면 싫어?”

    “원본… 뭔가 나 같아서 싫어.”

    “풋. 언제나 그렇지만 이상한 소릴 참 많이 하네.”

    “그런가?”

    “확실히 오크노디는 뭐든지 능숙하게 척척 잘하는 편이지. 그래도 자기 머리는 쓰다듬고 고르는 일이 적으니까 능숙해지긴 힘들겠지. 머리를 정돈하는 2위계 생활마법 <헤어스타일메모리>도 있고.”

     

    확실히 조나나 리프가 머리를 관리해주지 않은 이후로 오크노디는 마법으로 뚝딱 저장된 헤어스타일을 완성하고는 했다.

    가끔 아카디아나 이사벨이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주면 그것도 저장해서 심심하면 요일별로 하나씩 꺼내쓰기도 했었지.

    다크노디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이슈타르가 문득 옛날이야기를 했다.

     

    “마법에 익숙하지 않고 마나량도 부족했던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이야기였어. 그래서 소꿉친구 유피랑 같이 용사행을 다닐 적에는 밤마다 이렇게 머릿결을 가다듬어 주기도 했고.”

    “자고 일어나면 엉망이 되는데?”

    “새벽에 눈을 뜨면 다시 힘든 하루가 시작되니까. 잠이 안 오는 밤에 그랬어. 유피가 노곤하게 잠드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잠이 왔거든.”

     

    용사가 첫 동료와 함께 잠자리에서 하던 습관을 자신에게 베푼다.

    묘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이야기이지만 다크노디는 역시 질투도 났다.

    마치 전남친이 있는 여자가 예전 남자에게도 이렇게 해줬다며 추억 회상을 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

     

    “내일이 걱정될 때는 눈을 감고 상상해 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

    “언제나 어제보다 나을 수는 없지만 가끔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제보다 나은 내가.”

     

    이상하다.

    오크노디가 기억하는 이슈타르는 순 멍청이였는데.

    고집스럽고, 자기주장만 강하고.

    그런 이슈타르가 왜 자꾸만 어른처럼 보일까?

    게다가… 그런 이슈타르가 질투 나면서도 이 손길과 품 안의 온기가 그리 싫지만도 않고.

    어쩌면 오크노디는 이슈타르의 큰 가슴이 싫었던 건 아닐까?

    가슴이 큰 사람 앞에서는 부쩍 약해지거나 경계심이 커지는 모습을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조금 키워볼까?’

     

    심술궂은 생각도 들었다.

    오크노디가 돌아오기 전까지 매일 조금씩 마나주머니를 키우고 나중에 원본과 몸이 교체되거든 사람들이 역체감을 하면…

    오크노디는 내 앞에서 약해질까, 아니면 나를 경계하며 데드캣 선배처럼 하악질을 할까.

    적어도 그 꼴이 보기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과연, 이슈타르의 말은 옳았다.

    오늘보다 나은 나.

    나쁘지 않은 말이다.

    힘든 아카데미 생활도, 다가오는 중간고사의 공포도 역체감의 매운맛을 보여줄 날을 상상하니 즐겁게 이겨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가슴이 AA컵, 가슴이 A컵, 가슴이 B컵…’

     

    다양한 사이즈의 가슴을 상상하며 다크노디의 눈이 슬슬 감기더니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다.

     

    “이렇게 얌전히만 있으면 참 천사 같은데.”

     

    이슈타르도 그런 오크노디의 풀어진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평상시의 쾌활한 오크노디도 싫은 건 아니지만 오늘처럼 약한 오크노디의 모습도 싫진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약한 모습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 * *

     

     

    “이번 악마학 중간고사는 시험체의 인격을 악마들이 구사하는 다종의 인격 분리로부터 사수하는 거다. 시험체는 전원 사형수이니 인격을 빼앗겨도 별일은 없으니 학점이 높은 게 부담된다면 마음껏 개판을 쳐도 좋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개뿔.

    다크노디는 악마학 교수 데이몬의 중간고사 시험장에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까딱 실수했다간 멀쩡한 사람 하나가 악마에게 몸을 뺏기게 생기지 않았는가.

     

    “아, 아가씨. 제발 나 좀 잘 지켜줘. 살면서 나쁜 짓은 많이 했지만, 악마한테 몸을 산 채로 빼앗길 정도로 나쁜 짓은 안 했다고. 제발 부탁해…!”

    “괜찮아요. 정신보호 마법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지니고 있으니까.”

    “그 지식은 의심하지 않는데 혹시 손 떠는 건 조금만 멈춰주면 안 될까? 아가씨가 그렇게 불안해하면 보호받는 이 아저씨도 무섭거든?!”

     

    암살자를 슥삭하는 일이라면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을 지키는 일은 역시 무섭다.

    사람을 죽이는 수천 가지 방법의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할까, 싶어 어찌나 긴장되는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정 마법까지 써야 했다.

     

    “악마시험관님. 참고로 묻겠는데, 이 사형수는 무슨 죄를 저질러서 아카데미에 잡혀 왔나요?”

    “복제마법으로 건축자재를 늘려서 팔다가 마나유지기한이 끝나니까 재료가 소멸하고 집이 우르르 무너져서 거주민이 300명 죽었어.”

    “…”

     

    진정마법 괜히 썼네.

    다크노디의 차가워진 시선 앞에서 사형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방어마법 전개에 실패하면 세계평화를 위해 인간쓰레기 한 마리를 담가버렸다는 핑계로 시험을 망치는 낙제생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실제로 매년 디에몬 교수의 강의실에서는 학점을 조졌음에도 자신은 쓰레기 분리수거에 일조한 거라며 뿌듯한 얼굴로 정신승리를 하는 학생들이 매년 나왔다.

    그런 도덕심을 자극하는 함정을 보란 듯이 내놓는 점이 디에몬 교수가 악마학을 가르치는 교수임을 실감하도록 만드는 악마적인 장치였지만 말이다.

     

    “하하! 오크노디 학생. 3학년이지만 입학 2년차인 2년생이 이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넌 충분히 대견한 편이다. 그러니 실수 한 번 한다고 아무도 혼내지 않아. 이참에 실수인 척 사형수 한 놈에게 인격말살형의 참교육을 겪게 해보고 싶지 않나?”

    “…시험점수는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어요. 실수하면 엄청나게 화낼 테니까요.”

    “하하하, 기합이 아주 잔뜩 들어갔군. 그럼 데이몬 교수의 암흑방어술을 얼마나 잘 배웠나 차근차근 시험해 보자고.”

     

    실전에서 펼쳐지는 원조 악마의 흑마법 앞에서 다크노디는 화들짝 놀랐다.

     

    ‘술식전개가 보이지 않아? 아니, 염탐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술식변곡점을 은폐했어!’

     

    눈에 보이는 패턴에서 갈라지는 마법 패턴은 3가지.

    그중 하나의 마법만 골라서 방어할 수 있다.

    각 패턴의 술식전개에 따르는 부가효과를 모두 숙지하고 사소한 전조현상을 더 빠르게 깨달아야만 적시에 방어할 수 있는 방식의 시험!

    조금 느려도 방어는 가능하지만 그만큼 사형수의 인격은 마모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인격의 누수가 계속되면 시험이 끝날 적에는 사형수는 응애 만드라고라보다도 멍청한 인형인간으로 전락하거나 몸 전체를 악마에게 빼앗기고 인격이 사멸하고 만다.

     

    ‘빙의, 추출, 교체. 어느 쪽이지?’

     

    열심히 기억 속의 데이터와 비교하던 다크노디는 오크노디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정답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231153524? 이건… 객관식 문제잖아!’

     

    매번 떠오르는 보기 속에서 정답을 고르며 푸는 미니게임 형식의 시험과 달리 지금은 진짜 실전.

    객관식 문제도 없고 시험도 제 손으로 직접 방어마법을 펼치며 치러야 했다.

     

    “응? 너, 이 사형수가 진짜 싫었구나? 그 정도 실력을 지니고도 정신방어마법을 전개하지 않다니. 나야 인격 하나를 꽁으로 먹으니 고마울 일이지만!”

     

    기억과 현실의 괴리감에 오크노디가 낭패를 보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몸소 체험한 기억을 쌓아 올린 오크노디와 다르게 다크노디는 모든 게 낯설고 생소한 첫 경험이었다.

    궁지에 몰리자 다크노디가 고른 방법은 가장 익숙한 방법이었다.

     

    “에잇.”

    “갸아아아악!!”

     

    다크노디가 교수의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펼친 공격마법이 악마의 뇌를 바싹 구웠다.

     

    ‘지키는 건 힘들어도 죽이는 건 쉽지.’

     

    살해는 최고의 방어!

    오크노디의 고인물식 지혜를 활용하자 바싹 구워진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풀썩 쓰러졌다.

    그 꼴을 본 3학년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교수에게 일러바쳤다.

     

    “교수님! 오크노디가 시험관 악마를 전기로 구워 죽였습니다. 이거 실격 아닙니까?”

    “진짜네?”

    “으읏…”

    “오크노디, 합격.”

    “네? 실격이 아니라요?”

    “…제가요?”

     

    어리둥절한 3학년과 다크노디에게 데이몬 교수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시험과제는 악마의 정신마법으로부터 사형수를 지키는 것. 정신마법을 거는 주체를 살해하는 것도 엄연한 방법중에 하나다.”

    “그런 막무가내식 해답이 인정받다니, 그럴 거면 공부는 왜 한 겁니까!”

    “그야 악마를 죽일 능력이 안 되는 머저리들을 위해 몸 비틀고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준 거지.”

    “그럴 수가…”

    “악마는 기본적으로 마법저항력이 높다. 암흑마법이면 더욱 내성이 높지. 그런 악마를 암흑전기생성마법으로 튀겨 죽이려면 얼마나 대단한 마법실력이 필요한지 생각해 봤냐? 오크노디가 마음만 먹으면 악마의 인격을 역으로 분리해서 수집하고도 남았을 거다.”

    “아카데미 최연소 3학년임은 알았지만 설마 오크노디와 저희 사이에 그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니…! 미안하다, 오크노디. 내가 널 실력도 안 되면서 편법을 쓴다고 오해했어.”

     

    불만을 드러내던 3학년조차 경외심을 드러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니, 다크노디는 오히려 좌불안석처럼 이 자리가 불편했다.

    교수 몰래 슬쩍 담가서 잘됐다고 생각한 일을 교수가 허용해 버리니 이래도 되나 싶은 것!

    당황하는 다크노디에게 다가온 데이몬 교수가 걱정하지 말라며 인자한 얼굴로 다가와 속삭였다.

     

    “시험 난이도가 쉽다고 깽판을 친 건 사다코 교수의 얼굴을 봐서 한 번은 봐주마.”

    “…!”

    “하지만 내 시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딴 짓거리를 벌였으니 기말고사는 아주 지랄맞은 킬러문제만 내어줄 거다.”

     

    다크노디는 속으로 다짐했다.

    기말고사가 되기 전에 이 아카데미를 뜨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말고사 난이도를 올려버리고 튀어버리려는 사악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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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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