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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5

    <725 – 평화로운 하루(5)>

     

    다크노디는 신입생의 부름을 참지 못하고 위어드 교수의 랩실을 찾아가려고 했다.

    뒤에서 미친 거 아니냐고, 위어드 교수의 함정이 틀림없으니 가지 말라는 이슈타르의 외침은 이미 들리지도 않았다.

    이슈타르가 보기에는 신규이벤트, 생소한 첫 경험이라는 말만 던지면 헤까닥 돌아버리는 오크노디의 특성을 이용한 교수의 덫이 틀림없었다.

     

    ‘상식적으로 건전한 목적이라면 사람을 만날 수많은 장소를 놔두고 굳이 랩실에서 만날 이유가 없잖아!’

     

    이대로는 오크노디가 랩실에 감금된 채로 날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구조요청을 하는 가련한 공주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교수의 랩실에서 그런 가련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피를 마구 뽑혀서 다 죽어가는 비참한 몰골이라면 조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얼마 전에 중간고사 성적 항의를 위해 찾아간 <귀족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때의 대응수칙> 강의를 담당하는 프란츠 교수의 랩실에서 본 선배들은 그랬었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귀족에게 붙잡히고 고문당한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면서 며칠째 고문을 당하고 있어! 제발 우리 좀 구해…

    -미안하군. 잠시 문 닫는 걸 까먹어서. 그래서 이슈타르 2년생. 성적에 불만이 있다고 했던가?

    -……전혀요? 완전 마음에 드는데요?

    -귀족파의 거물로서 이 프란츠, 학생들의 불만은 결코 묵살하지 않네. 이의신청이 있다면 이쪽의 독방… 아니, 개인실로 들어가도 된다네.

    -제가 불만이 있는 건 몸을 돌볼 줄 모르고 정무에 매진하는 교수님의 생활이었습니다. 여기, 제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아껴둔 동물귀쿠키를 드릴 테니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하하. 현역용사가 주는 쿠키라, 이거 기운이 나는군. 먹고 힘내서 고문… 아니 교육을 이어 나가겠네. 용건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 주겠나? 앞으로도 일정이 남아있어서.

     

    떨림을 꾹 참으며 랩실을 나서기 직전에 희미하게 들리던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친위대장 바닐라가 직접 구워준 쿠키를 교수에게 준 것은 아깝지만, 그 쿠키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도 개인실이라 부르는 독방에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겠지…

    그런 위험한 랩실에 자처해서 들어간다는 오크노디가 걱정되는 건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안 가면… 내가 좋은 거 해줄 건데?!”

    “좋은 거? 무슨 좋은 거?”

     

    다크노디가 멈칫 하고는 돌아보았다.

    이슈타르의 눈이 핑핑 돌았다.

    오크노디가 좋아할만한 새로운 것, 새로운 경험이 뭐가 있을까.

    자신이 오크노디에게 해줄 수 있는 첫 경험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이슈타르는 오크노디의 눈에 떠오른 희미한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뀌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냅다 달려가서 오크노디를 번쩍 들어 올렸다.

     

    “!”

     

    놀란 눈의 오크노디 앞에서 이슈타르가 힘껏 외쳤다.

     

    “지금이라면… 같이 아카데미의 미확인 구역을 탐험할 수도 있어!”

    “걸리면 교수님들한테 혼날 것 같아서 싫어.”

    “으읏… 그, 그러면 교수님들이 기르는 괴수를 몰래 테이밍해서 시험난이도를 낮추는 거야!”

    “그것도 걸리면 혼날 것 같아서 싫어.”

    “왜 이럴 때만 소극적으로 변하는 거야! 평소라면 신나서 하기 싫대도 막 끌고 갔을 애가!”

     

    결국 오크노디는 이슈타르의 품에서 벗어나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데굴데굴 구르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하고 오크노디를 방치할 이슈타르가 아니었다.

     

    ‘또 저러다가 어딘가에 몇 주 잡혀있으면 오크노디 때문에 강의를 잔뜩 들었던 나만 헛고생이잖아! 그래, 혼자 꿀 빨지 못하게 하고 싶을 뿐이지 딱히 친구라서 도우려는 것만은 아니라고!’

     

    바로 얼마 전, 두 차례나 모집된 카타콤원정대의 소식을 기억하는 이슈타르로서는 위어드 교수의 랩실원정대가 결집되는 꼴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오크노디가 그동안 꿀 빠는 건 둘째 치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강의를 등한시하느라 학년평균성적이 떨어진다.

    그래서는 3학년이 되어버린 오크노디에게 2학년의 강함을, 그녀가 버리고 멋대로 시야 밖으로 밀어낸 모두의 진가를 보여줄 수 없지 않은가.

     

    ‘그래… 우리에겐 오크노디의 예상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어.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똑똑히 네 위치에서 우릴 지켜봐야만 해.’

     

    용기가 충만해진 이슈타르가 완전무장을 한 채로 오크노디의 뒤를 밟았다.

    위어드 교수의 랩실은 거대한 식물원이었다.

    그런데 그 식물원이 세기말의 재앙에라도 휩쓸린 것처럼 불에 타 재만 남거나 괴상하게 변이된 채, 새카만 기침을 콜록콜록 내뱉는 암흑식물 천지였다.

     

    ‘이 흔적은… 사다코 교수님의 부하들이네.’

     

    카타콤원정대의 생존보고를 통해 카타콤의 전력이 외부에 알려지고 심지어 4학년이 견학 예정이었다는 사실까지 공개된 뒤.

    중간고사가 찾아오기 전까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가 카타콤에 서식하는 몬스터 종류나 전력 수준, 대응책을 연구했었다.

    4학년이 되면 치러야 할 시험일지도 모르는 데다가, 이미 그 사다코 교수가 제 부하들을 이끌고 교수들의 개인실이나 강의실에 쳐들어간 사례가 다수 알려졌기 때문이다.

     

    결과는 15전 15승.

     

    사다코 교수는 가는 곳마다 개박살을 내놓았고, 습격을 당한 교수들이 죄다 개박살이 났다는 소식에 다른 교수들은 미리 백기를 걸었다.

    가장 치열하고 대차게 싸웠다는 악마학 교수 데이몬조차도 보유한 악마전력이 크게 감소했다고 하니, 위어드 교수의 식물원이 이 꼴이 된 것도 당연했다.

     

    ‘위어드 교수님은 출장중이었으니까.’

     

    요컨대 빈집털이를 당한 셈이다.

     

    “짹짹아.”

    “짹짹…”

     

    랩실 중앙에 자리한 생기를 약탈당해 앙상하게 마른 나무 사이로 겁에 질린 20m 크기의 거대뱁새가 짹짹 하고 울었다.

    연구실 지킴이로 길러지는 괴수의 애처로운 울음을 들으며 위어드 교수는 식물을 피워내며 짹짹이의 뺨을 덮는 거대한 손의 형상을 만들었다.

    위로라도 해주나 싶어서 뜻밖이지만 훈훈하다는 눈으로 지켜보는데 거대한 손의 동작이 이상했다.

     

    ‘응? 저 자세는…’

     

    짜악!

    뺨따귀를 날려버리는 싸대기의 동작!

     

    “#@^#@^!”

    “뭘 잘했다고 울어대니. 맞을래?”

    “짹짹!!”

     

    이미 때리지 않았냐고 화를 내던 짹짹이가 반대쪽 뺨까지 맞고 쓰러졌다.

    키우던 애완괴수도 패버리는 위어드 교수의 잔혹한 체벌은 용사도 떨게 했다.

    하지만 용사는 용사였다.

    다른 친구들이라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식물원원정대를 만들 상황에서도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부른다고 막상 도움이 되지도 않을 거야.’

     

    가령 숲지기 도로시를 부른다고 치자.

     

    -도로시는 숲지기잖아. 식물에 강하지?

    -탐지기능이 달린 식물들을 피해서 잠입하는 코스도 무사히 잡아낼 수 있긴 해!

    -그럼 도와줘.

    -근데 걔들 다 타죽었어! 이젠 숲이 아니라 공터야! 나 없어도 될 듯!

     

    식물이 다 타서 없어졌다고 런하겠지.

    오크노디의 베프 즈앙을 부른다고 쳐도 마찬가지다.

     

    -즈앙은 오크노디랑 같이 다녔잖아. 위어드 교수의 랩실도 전에 방문한 적 있지 않아?

    -있어.

    -그럼 도와줘.

    -그때 느낀 무력함이 아직도 생생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실전이 아닌 훈련이야. 오크노디는 사다코 교수한테 이르면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될 테니 정 마음에 걸리면 교수님을 불러.

     

    실력의 한계를 체감한 즈앙은 수련에 매진 중이다.

    다른 학생들도 같은 이유로 도울 리가 없었다.

    위어드 교수의 식물원에 방문한 경험이 있고, 도움이 될 정도로 강하면서 향상심은 없는 별종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할 리가…

     

    “도비는 자유의 몸이다! 예지된 종말의 순간에 오크노디 님께서 종말을 물리치거든 만인이 진정으로 자유를 얻을 것이다!”

    “교주님 만세! 만세! 만만세!”

     

    존재할 리가…

     

    “내가 누구? 위어드 교수의 연구실에서도 생환한 자! 사다코 교수의 카타콤에서도 생환한 자! 랩실생환자 2관왕!”

    “최고에요 도비도비!”

    “도비 그는 신인가!”

     

    존재할 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왜 존재하지?

     

    “나는 전지하다! 그리고 전능하다! 교수님이 답안지를 보관한 금고도, 교수님에게 사적인 원한을 지닌 랩실 조교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포인트를 바쳐라. 성적을 고치고 싶은 자, 종말교단에 충분한 공물을 바치면 학생회보다 저렴한 가격에 지원해주마!”

    “와아아!”

     

    유세운동이라도 펼치는 것처럼 신입생들을 속여 포인트를 쓸어 담는 도비.

    그에게 일직선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이슈타르를 뒤늦게 발견한 종말교단의 교단원들이 기겁하며 헌금함을 품에 안고 소리쳤다.

     

    “용사! 우린 딱히 사악한 짓은 하지 않았어. 금고는 정말로 있고 답안지도 고칠 거야. 고친 답안지가 교수에게 들켜서 점수가 더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의뢰를 맡긴 당사자들도 감수해야지!”

    “게다가 우린 연약한 하급반이라고. 아무리 같은 학년 같은 기수 동기라도 상급반이 하급반을 때리는 건 고학년이 저학년을 패는 거나 다름없어. 양심이 있으면 우릴 때려서는 안 돼!”

    “…너희가 훌륭한 쓰레기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지금 용무가 있는 건 헌금함이나 멍청한 후배들이 아니야.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고 순순히 이리로 와, 도비.”

     

    <홀리미러>

     

    사방에 펼친 거울 사이로 공격이 가로지르며 스타일리쉬한 공격을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쏟아내는 이슈타르의 전매특허처럼 불리는 성검마법.

    홀리미러가 패스 월 주문으로 벽을 뚫고 슬그머니 달아나려던 도비를 집어삼켜 이슈타르의 앞으로 떨어뜨렸다.

     

    “크으읏…! 이슈타르, 설마 우리 종말교단의 사악한 계획을 눈치채고 이렇게나 빠르게 대응하다니. 아무리 썩어빠진 악덕용사라도 용사는 용사였군요!”

    “불쌍한 1학년들 털어먹기 말고도 또 뭔가를 더 하고 있었던 거야?”

    “블라디미르의 타락을 막기 위해 교단원들과 함께 블라디미르 주변에서 남몰래 블라디미르가 쓰레기를 줍거나 식물에 물을 줄 때 칭찬하며 바른생활 모범생 타락을 하도록 유도하며 그녀의 성장을 억제하던 사악한 계획에 대해서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 블라디미르의 모범생 타락계획에 대해서라면 난 하나도 모르니까 안심해.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위어드 교수의 랩실에 대해서야.”

     

    용사의 앞에서도 장난치나 싶을 정도로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던 도비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위어드 교수가 또 무슨 짓을 했습니까?”

    “교수가 데려온 수상한 편입생이 오크노디를 위어드 교수의 랩실로 불러냈어.”

    “그런 끔찍한 짓을…! 그 여자는 제게도 벌인 참혹한 비극을 이번에는 오크노디에게 반복할 작정인 겁니다.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이슈타르는 덜컥 겁에 질렸다.

     

    “위어드 교수가 네게 무슨 짓을 했는데?!”

    “정령의 단잠을 깨우는 알바를 시키고는 메챠쿠챠 얻어맞게 했습니다!”

    “…”

    “존나 아팠어요!”

    “그, 그래.”

     

    위어드 교수님이 무섭다는 건 사다코 교수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 아닐까.

    경계심이 조금은 옅어진 이슈타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까마득한 옛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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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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