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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5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방을 밝히는 환한 불빛 속에서 가장 어두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등잔의 아래라!

       3차 대전이라는 세상을 붉게 만든 불꽃에서 가장 어두운 것이 바로 그것이었음이라니.

         

       인공지능 아나엘.

       루카스.

       생명창조학파.

       교단.

         

       그것들이 여럿이 뒤섞이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아직 실마리가 크게 잡히지 않아 그 윤곽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수준이지만.

       그저 고요한 한밤중에 손만을 뻗으며 나아가던 때에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음이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으랴?

         

       과연 그의 감은 훌륭하게도 들어맞았도다.

         

       ‘보자. 아나엘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보였다면 다른 보고서들도 분명히 있을 터이니…흐음.’

         

       박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자료들 역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의 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몸 군데군데에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빼돌린 재료들은 사람의 팔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고, 손등 부분에 초롱아귀의 등불처럼 안테나가 불쑥 솟아난다. 그리고 그 끝에 사람의 눈과 같은 형태로 눈알이 파삭 솟아났으니, 그 형태가 요괴와 닮았음이라.

         

       음양술의 특성 때문인지 에너지가 꽤 많이 소모되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하기에는 꽤 쓸만한 주술이라 하겠다. 특히나 이런 자료들을 여럿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는 더더욱.

         

       그리고 또 다른 쓸모라 함은.

         

       “주고쿠의 산인(山陰)에 하나의 마을이 있어 그 위치가 산세가 험한 곳에 있고 길이 구부러지고 산세가 울창하여 쉬이 찾아가기가 어려웠다더라. 다만 그 마을에는 하나의 신사가 있어 그 신께 지켜졌으니 그 은혜로움으로 산나물과 버섯이 충분히 나서 굶주리되 굶어서 죽는 이들이 별로 없었으니 과연 신의 은혜를 받은 마을이라 하겠다….”

         

       이 음양술의 모태가 된 전설과도 맞닿아 있는 것.

       바다와는 다른 산의 전설.

       바다만큼이나 모호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

       철썩거리는 파도 아래에 숨죽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집요함.

       신에 의한 행방불명, 카미카쿠시(神隠し)와 관련된 음습한 공포.

         

       그래.

       저주다.

         

       “신의 형태는 그것에는 털도 없고 비늘도 없으며 그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거친 피부를 가지고 있음이니 사람의 손과 비슷한 형상이라 하겠다. 손톱이 있어야 할 곳은 자리 잡은 게 없으며 그 냄새는 고약하되 짐승의 것과는 달라서 땅속에 파묻힌 시체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산나물이 땅 위에 솟아나듯 살점이 손등이 있을 위치에 솟아나고 그 끝에는 산을 둘러볼 눈을 가지고 있으니 신께서는 소리는 듣지 못할지라도 그 눈으로 마을을 굽어살피시어 그들을 돌보고 계셨음이다.

       다만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물이 필요하였으니 마을 사람들은 그분의 은혜에 감복하여 두 발 달린 토끼를 공양하며 그분께 제사를 지냈으니….”

         

       그것은 타타리가미(祟り神)에 대한 기록.

       숭배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재앙을 입히는 신에 대한 기록.

         

       그것이 신인지조차 의문이 드는.

       실상은 악령이나 악귀, 혹은 주물과 관련이 되어있을 하나의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주술.

         

       닮는 것은 닮는 것을 닮는 법이니.

       그분의 의지가 닿은 것은 마땅히 그분과 같은 형태로 되어가도록 할 것이라.

       그리하여 종이 하나하나에 에너지가 서린다.

         

       종이의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고 원하는 내용이 아님에 실망하여 뒤로 휙 집어 던진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가는 종이에는 잠시 산의 밤을 닮은 어두운 빛이 서렸다가 빨려들 듯이 사라지고, 산나물이 손등에 돋아나는 것처럼 뼈마디가 뒤틀려서 산나물처럼 손등 부분에 솟구치게 만드는 저주가 종이에 서리는 것이다.

         

       물론 그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이미 신사조차도 사라져버린 타타리가미의 영세함과 같이 미약하기가 짝이 없어 부적과 같은 것으로도 쉬이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다만 그것은 바이러스나 기생충과는 다른 형태의 또 다른 오염.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만진 이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테러다.

         

       이 테러는 연구소와 교단에 또 하나의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며, 생명창조학파의 연금술사 몇몇이 저주에 고통받게 만듦으로써 전력을 떨어뜨리는 효과 또한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관심은 또 하나의 자그마한 이득이 되어서 박진성에게 올 것이겠지.

         

       그리고…. 그래.

       범인을 오판한다면 더더욱 좋은 일일 것이고 말이다.

         

       ‘저주의 연원을 찾는다면 나라로는 중국이나 일본이요, 단체로는 여럿이 있으니 그들이 물망에 오를 터. 그렇게 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고…. 연원을 찾지 못한다면 저주라는 인식이 있으니 그쪽을 파고들 것이니 그 역시 시선을 돌리는 데 쓸모가 있을 것이로다.’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다.

       혼란이든, 오판이든.

       범인을 쫓든, 포기하든.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이득으로 다가올 것이다.

         

       박진성이 인공지능 아나엘을 찾을 때 도움이 되는 이득.

       훌륭한 이득이 말이다….

         

       물론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진성이 모르는 주술을 사용했던 그 주술사.

       그 주술사가 이 건에 관여한다고 한다면.

       그 주술사가 저주에 대한 조예가 있어 박진성이 남긴 주술의 흔적을 쫓아서 그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한다거나, 저주에 또 다른 저주를 얹어서 박진성에게 가혹한 대가를 안겨주려고 한다거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확실히 리스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좋으리.’

         

       하지만 그것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술사를 쫓기에 모호한 상황에서 실마리가 던져지는 것이니.

       그 주술사의 시선이 닿는다면 박진성 역시 그 시선의 길을 토대로 그가 위치한 곳을 알 수 있음이요.

       발자국을 남긴다면 그 발자국으로 정보를 얻고, 저주를 얹는다면 그 역시 그것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추적을 할 수 있음이니.

         

       약간의 위험부담을 견디는 것 치고는 커다란 이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로다.

         

       약간의 손해를 보는 미끼라.

       초롱아귀가 등불을 흔들거리며 유혹을 하는 듯이.

       아니,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물고기 흉내를 내어서…손가락이 잘릴 위험을 감수하면서 커다란 물고기를 낚아서 들어 올리는 것과 더 흡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역시 훌륭한 미끼로다.

         

       그러하니 이득이 가득한 일이니.

         

       박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자료를 살폈다.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대강 훑어보고, 던지고.

       아나엘이나 루카스와 관련이 있는 자료는 꼼꼼하게 읽고.

         

       그렇게 정보를 한참 수집한 뒤.

         

       ‘볼만한 것은 다 보았군.’

         

       퍼석.

         

       햇볕에 눈사람이 녹아내리듯 그렇게 그의 몸이 녹아내리고, 분해되어 나타난 벌레들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연구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 *

         

         

         

       영화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라도 공포영화를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공포영화는 귀신과 관련된 것일 확률이 높다.

         

       악령.

       악귀.

         

       물론 그 전개는 작품마다 다르다.

       봉인된 주물에 함부로 손을 대었다가 사악한 존재가 풀려나기도 하고, 지장보살 상을 훼손했다가 그 안에 갇혀있던 악령이 풀려나 재앙이 닥치기도 하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심심한 악귀가 쳐들어와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멍청하게 강령술을 했다가 귀신에게 빙의 당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형태로 공포영화에서는 악령과 악귀를 묘사했다.

         

       이는 귀신이라는 존재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으며,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에.

       살갗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생생한 공포감, 실존하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 하겠다.

         

       물론 그 이유뿐만은 아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실존하는 존재’라는 소재에 대한 흥미로움뿐만이 아니라, ‘귀신은 통제할 수 없으며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 또한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는 귀신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기적으로 수많은 멍청이가 담력 시험이니, 오컬트의 증명이니 하는 바보 같은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짓거리를 벌이는 것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지.

         

       그렇기에 영화 단체에서부터 국가까지, 수많은 이들이 공포영화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귀신을 주제로 한 공포영화’를 주제로 공모전을 연다거나, 혹은 귀신과 관련된 소재에 가산점을 부여한다거나, 혹은 유망한 감독들에게 귀신을 주제로 공포영화를 만들지 않겠냐며 제안하거나 투자한다거나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귀신은 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노력했고, 그 덕분에 귀신과 관련된 공포영화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공포영화 마니아들의 입에서 ‘어휴. 또 귀신이야? 제발 참신한 소재 좀 봤으면 좋겠네.’라는 불평불만이 터지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

       이렇듯 사회는 자그마한 것에도 여러 의지가, 의미가 담겨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일상의 일부 중 하나라고 여겼던- 커플이 데이트할 때 보는 것으로 여겨졌던 공포영화조차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공포영화에서 두 번째로 많이 나타나는 소재가 ‘실험으로 탄생한 실험체’나 ‘폭주한 생체병기’라는 것이 말이다.’

         

       아니, 공포영화뿐만이 아니다.

       히어로물이라 불리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구하는 영화라거나.

       좀비나 괴물이 튀어나오는 영화라거나.

       괴물이나 연구소가 나오는 스릴러 영화 등.

         

       수많은 영화에서 ‘생체실험’, ‘유전자 조작’, ‘실험체’, ‘합성생물’,’ 생물병기’ 등의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많이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귀신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를 경계하고 견제하기 위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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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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