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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6

    <726 – 평화로운 하루(6)>

     

    이슈타르는 처음이지만 실은 작년에 이미 이 시설과 심지어는 랩실까지 방문한 학생이 있었다.

     

    -위어드 교수님이 공부나 훈련은 해봤자 재능이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성취가 기대되지 않는 낙제예정의 하급생을 매년 이맘 때 랩실로 납치한대!

    -…납치해서 뭘 시키는데? 그런 멍청한 학생이 교수가 요구하는 수준의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작년에는 실습에 필요한 정령을 깨우는 일을 했대.

    -정령? 정령술사는 꽤 소질이 필요하잖아. 그건 재능이 좋은 학생 아니야?

    -정령의 단잠을 깨운 사람은 정령한테 메차쿠챠 얻어맞는데 그거 대신 맞아줄 사람이 필요하대!

    -…

     

    오크노디와 즈앙.

    그리고 도비였다.

     

    -그렇게 때린다고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어.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거든. 차라리 도비 보고 나중에 동화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약속해.

    -거짓말! 인간은 항상 정령을 속여. 믿음을 사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해!

    -안 가져오면 도비의 목을 따러 찾아가. 그게 암살자가 약속하는 방식이야.

     

    도비의 기억 속 정령들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목숨을…?

    -그래. 차라리 죽이면 속이 시원하겠어.

    -거짓말쟁이들에게 죽음을!

     

    “허억!”

    “왜, 왜 그래?”

    “후우… 잠시 싫은 기억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제가 작고 하찮은 존재였던 시절의… 세상의 종말보다는 훨씬 시시한 문제로 괴로워하던 시절의 기억이죠.”

     

    오크노디와 즈앙에게는 불쌍한 도비를 구하기 위한 나들이였을지 몰라도 도비가 기억하는 과거는 훨씬 괴롭고 쓰라리며 중요했다.

    실제로 정령에게 얻어터지고, 동화책을 구하기 위해 도서관원정대에도 합류하고, 겸사겸사 오크노디의 기억의 문을 열었다가 종말의 순간을 목도하며 인생이 달라질 경험을 했던 시간들.

    그에게는 지난 일생의 기억보다 정령들에게 붙잡히고 동화책을 구하기까지의 여정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는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 여겼지만… 이렇게 복수의 기회를 얻다니. 저를 불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딱히 그러려던 의도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의욕이 있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내가 하려는 건 오크노디의 구출이지, 딱히 위어드 교수님의 반파된 식물원을 확실하게 파괴하려는 작전 따위가 아니야.”

    “아닙니까?”

    “진짜 아니야. 그러니까 화염병 내려놔.”

     

    도비가 시무룩해하며 품에서 화염병 하나, 화염병 두 개, 화염병 세 개를… 아니 화염병을 몇 개나 챙겨둔 거야?!

    화염병을 내려놓던 도비가 손을 멈추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진지하게 제안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사다코 교수의 습격을 받고 만신창이가 된 식물원에 불을 지르거든 그게 우리의 소행인지, 사다코 교수의 습격 때문인지 파악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식물원이 불타면 안에 있는 사람도 죽잖아.”

    “그 거대나무가 <인공세계수>라고 불리는 사실은 아십니까? 그건 불붙는다고 타죽을 시시한 나무가 아닙니다. 정령들이 안에서 잠들고 뛰놀기도 하며 생명력도 엄청나게 늘어났죠.”

    “불에 타거나 질식할 위험이 없어졌다고 해도, 위어드 교수님한테 들키면 위험하잖아.”

    “반대입니다. 식물은 위어드 교수의 눈. 그런 눈엣가시 같은 방위식물몬스터를 불태워 죽이면 얼마나 쉽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

    본래의 이슈타르라면 이런 엉뚱한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겠지만, 오크노디를 보고 그녀의 엉뚱한 망상이 고지식한 자식보다 좋은 결과를 내는 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아온 지금의 이슈타르는 조금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소꿉친구인 유피도 곧잘 말하지 않던가.

    요령 좋은 여자가 고지식한 여자보다 남자에게도 인기가 좋은 법이라고.

    오크노디가 인기 있고 정작 용사인 자신이 인기 없는 이유를 그런 논리로 펼치는 건 좀 어떤가 싶지만, 내심 찔리는 구석도 있기에 유피에게는 몰래 수첩에 <인기를 얻는 방법>을 메모까지 했던 이슈타르였다.

     

    “챙겨도 돼.”

    “정말입니까?”

    “어차피 구출은 단기결전이 될 거야. 들어가서 단숨에 빼내고 나가지 않으면 위어드 교수한테 걸리겠지. 교수에게 원한이 있는 너라도 교수님과 대면해서 면전에서 화염병을 던질 용기까진 없잖아?”

     

    그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짓은 교수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4학년도 못 한다.

    그리하여 30분의 짧은 회의 후, 두 사람만의 랩실잠입작전이 시작되었다.

     

    “짹짹…”

     

    일차 관문, 식물원의 외부감시식물감시망은 죄다 불타 없어져서 프리패스였다.

    이차 관문, 연구실 지키는 20m크기의 거대뱁새 짹짹이.

    여기서부터가 공략의 시작이다.

     

    위어드 교수야 뺨따귀를 양쪽으로 한 번씩 번갈아가며 날릴 정도로 가지고 노는 애완괴수지,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무서운 괴수였다.

    때마침 식물원이 어수선한 틈을 타 때마침 나무 밖으로 도망치던 사마귀몬스터를 애완괴수가 발견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서 잡으려나?’

     

    이슈타르의 예상과 달리, 짹짹이의 입에서 촉수처럼 기다란 혀가 뻗어나오더니 사마귀몬스터의 갑각을 뚫고 일격에 머리를 관통했다.

    단숨에 절명한 시체가 혀 촉수를 따라 짹짹이의 입안으로 끌려가 꿀꺽 삼켜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남짓.

    말문이 막힌 이슈타르에게 도비가 설명했다.

     

    “출입구 사용 시에는 통로사용 허가술식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전부 저 짹짹이의 공격을 받습니다. 평소엔 게으른 녀석이라서 지 내킬 때만 일하는데 지금은 위어드 교수한테 뺨 맞고 빡쳤으니 24시간 경비태세에 임하겠죠.”

    “저런 거랑 싸우다간 교수님한테 들키지 않아?”

    “그다지 고르고 싶은 길은 아니지만 위어드 교수님과 마주치지 않고도 진입할 방법이 있습니다. 학부생 전용 알바를 골라서 시설에 출입하는 겁니다.”

     

    도비가 내민 마법시계 알바검색결과를 본 이슈타르는 그가 왜 이리 꺼림칙해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

    [일일알바] 정령과 놀아주기

    [일일급여] 100~100000포인트(놀아주는 정령 숫자 및 등급에 따라 변동)

    [근무장소] 위어드 교수의 <식물원> 내부시설.

    [고용인원] 2/5명

    [주의사항] 손목에 새겨진 출입술식이 파손되지 않도록 사수하십시오. 파손 시, 조교나 교수님이 술식을 복원하기 전까지 시설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

     

    “알바 하러 온 애들 술식 부수고 교관하기 전에 안 내보내 준다고 하면 그대로 꼼짝 못 하고 교관 되는 거 아니야?”

    “역시 사악한 용사답군요. 위어드 교수의 수법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계시다니… 고액알바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위어드 교수의 알바가 아니어도 보수가 높으면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현 학년수석인 당신이 알바 따위를 할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화났어?”

    “…미안합니다. 아직 하급반 시절의 퇴학 직전에 내몰렸던 스트레스가 가시질 않은 것 같군요.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멸망을 보고 왔는데도 인간의 마음이란 고작 이런 하찮은 걸로 분노하다니.”

    “한심하지. 하지만 우습지는 않아.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한심한 감정에 패배해 왔으니까.”

     

    도비는 믿을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이 창조한 완벽한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용사가 스스로를 한심한 인간이라고 말하다니.

    하지만 이슈타르는 진심이었다.

     

    “오크노디와 겨루고 또 겨루며 대등한 관계를 지녀보기 전까지는 몰랐어. 내 안의 추한 마음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용사님…”

    “그래도 그런 나약함을 딛고 이겨냈기에 지금의 나는 훨씬 더 강해. 너도 그렇지 않아?”

     

    이슈타르는 도비의 성장을 알고 있다.

    오크노디와 엮이기 전까지는 도비 본인의 말대로 퇴학 위기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학생.

    그런 학생이 종말교단을 만들고 괴상한 행보를 보이더니, 카타콤원정대에서 고학년 수준으로 오래 버텼다는 소문마저 들렸다.

    그런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한다는 짓이 신입생 성적 위조를 빌미로 포인트 쓸어담기라는 사실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 아카데미에는 학생이 나쁜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수가 나쁘지.

    위어드 교수가 선 넘은 시험을 냈겠거니 생각하면 오히려 도비가 브론즈 교수마냥 도둑맞은 성적을 되찾아 주는 의적처럼 보였다.

    하긴, 성별은 달라도 자신과 닮은 학생이다.

    행동은 좀 그래도 속에는 후배들을 위한 의도가 담겨있겠지.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짓밟고 올라서면서도 항상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희생을 딛고 올라서서 인류를 위해 더 큰 일을 해내겠다고.

     

    ‘지금은 예전처럼 그리 무식하게 모두의 적의를 사가면서 오르려고 하지는 않지만.’

     

    남을 짓밟는 것보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성장하는 길이 있음을 오크노디가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오크노디는 새로운 극한에 스스로를 내몰려고 한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어떤 시련도 달갑게 받아들이며 헤헤 웃던 아이가 우울증 걸린 사람마냥 아주 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

     

    ‘위어드 교수. 당신 같은 교수들이 오크노디의 그런 성정을 이용해서 오크노디를 이용하기 때문이겠지.’

     

    용서할 수 없다.

    오크노디는 반드시 구출해내리라.

    입장허가술식을 얻어 당당하게 나무 위로 들어서고는 도비가 말했다.

     

    “정령은 제가 혼자서 어떻게든 돌보겠습니다. 용사님은 그 틈에 오크노디가 갔다는 곳으로 향하십시오.”

    “고마워.”

    “아닙니다. 저 역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정령들을 두들겨 팰… 아니, 보다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할 기회를 얻지 않았습니까.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입니다. 감사는 제가 용사님에게 드려야지요.”

    “…”

     

    이 애, 그럴 작정으로 도와준 거였어?!

    뭐… 먼저 팬 건 정령들이니 인과응보이긴 하지만.

     

    “적당히 해둬. 교수님에게 어그로 끌리지 않도록.”

    “방음결계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체 크라켄의 크라켄피어를 겪어보고 공포란 크기만큼이나 섬세함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공포보다는 컨트롤 가능한 공포가 더욱 오래, 더 많은 공포를 선사할 수 있죠. 후후후후…”

     

    도비한테 도움을 구한 게 정말 맞는 생각일까?

    쉴드를 쳐보려 애써도 암만 봐도 사악하게만 들리는 도비의 웃음소리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암흑마나를 보면 성검 손잡이에 자꾸만 손이 갔다.

     

    ‘도와준 사람 통수를 치는 건 너무하지.’

     

    애써 마음을 다잡은 이슈타르는 자신의 분노를 오크노디를 유인해낸 학생에게 풀겠다며 복수심의 방향을 되돌렸다.

    밤새 품에 안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잠들 정도로 오래 있었던 아이다.

    생체마나패턴과 고유마나파장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대기에 남은 흔적.

    정체된 흐름을 쫓으니 곧 오크노디가 들어간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염탐안>

     

    이 방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을까.

    방을 투시하던 이슈타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오크노디가 울고 있어?!’

     

    편입생이 오크노디를 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쌍한아이 챕터가 끝났는데 혼자 계속 불쌍한 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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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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