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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6

        

       혹자는 말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상은 대격변을 이루었노라고.

       1차 세계 대전도 많은 것을 바꿔놓기는 했지만, 세계 2차 대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이 없노라고.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칭해도 될 정도의 참사.

       인류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광기를 폭력성으로 드러내었던 사건.

         

       그 광기는 차마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웠고, 휩쓸리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광기 중에서 으뜸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 어떤 이들은 영국에서 골상학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식민지 사람들을 재료로 실험을 한 것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프랑스가 파리를 제물로 바쳐서 독일군과 동반으로 터져 나가려 했던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나치 독일에서 천공 카드를 사용해 유대인을 분류해 학살했던 것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각국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민족을 대상으로 한 온갖 생체실험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정말로 인상이 깊은 사건이었노라고.

       이것은 전쟁이 피와 전쟁뿐만이 아니라, 더 깊고 끔찍한 것을 동원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노라고.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생체병기의 등장이다.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발전한 문명과 그와 반비례해 땅에 떨어져 버린 윤리로 인해 탄생한 패러다임 시프트.

         

       그들이 말하는 ‘열등 민족’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낸 병기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매일매일 인신 공양을 하면서 인육을 뜯어먹는 아즈텍의 미치광이들보다도 더한 죄악의 상징이었으며, 전쟁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적으로 만나면 끔찍하고 역겹고 잔혹하지만 내가 사용한다면 안심할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무기였으며, ‘열등 민족’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부릴 수 있는 윤리와 도덕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사람을 닮은 가축’이자 ‘플랜테이션이나 노예 정도밖에 쓸 수 없는 열등한 종자’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사용처가 되었다.

         

       그렇기에 2차 세계 대전은 광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신비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어졌던 것들이 양지로 튀어나오며 생긴 혼란. 그 모든 것을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광기에 미쳐버린 인류에게 쥐여주었던 그때의 그 거대한 혼란.

         

       그것은 마치 못되고 고약한 아기의 손에 칼을 쥐여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음이니.

         

       당연하게도 손에 칼이 쥐어진 아이는 그것을 휘두르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장난감과 개미…. 나아가서 자신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약한 동물들에게마저 칼을 푹푹 찌르면서 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고약한 아기로서는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군사 용도로 쓰기에는 너무나 유전자 자체가 열등해서 써먹을 수가 없다고 여겨지던 존재들을 과학적인 수술을 통해 병사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는데! 가축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병사로 사용해서 우수한 존재-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후환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흥미롭기까지 한 주제라서 연구하겠다는 과학자들이 넘쳐나기까지 했으니.

       대관절 이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가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했다.

         

       1차 세계 대전 때 갈려 나간 젊은이들의 복수를 하고자 식민지인들을 갈아 넣어서 광전사들을 만들어 참호를 만들고 틀어박힌 놈들에게 뿌렸고,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의 교훈을 담아 온갖 질병을 품게 만든 뒤 적진에 던져놓기도 했다.

       특정 물질과 반응하면 강력한 독성을 생성하는 기체를 발견했을 때는 식민지인의 몸에 간단한 수술을 시행,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 안에 수술로 넣어두었던 풍선이 터지며 혈관에 미리 주입해놓았던 물질과 반응해 터지도록 만드는 일종의 생체 생화학 폭탄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그 외에는…. 그래.

       기계와 인간을 결합해서 만든 생체병기가 있겠다.

       현실에 실제로 구현된 사이보그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표현되는 기괴한 존재들 말이다.

         

       물론 위압적이고 기괴한 모습과는 다르게 그다지 쓸모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전쟁 말기에 탄생한 이 사이보그들은 그저 체제의 우수성과 과학력을 자랑하기 위한 트로피 정도로밖에 사용되지 않았더란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이 없었던 프로토타입 사이보그들이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광기의 심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장기 하나를 개조해서 마약의 효과를 증폭시키도록 개조시킨 생체병기, 여러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광전사, 생체폭탄 등 실제 전쟁에서 활약했던 생체병기들을 뒤로하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 잡은 ‘광기의 심볼’은 전쟁 이후 자숙과 반성의 시간에 쉴 새 없이 소비되었고, 어느새 사람들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의 광기 = 생체병기’라는 하나의 공식의 형태로 말이다.

         

       그것은 굳이 따지자면 좋은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떠한 사실보다는 사건을, 사건보다는 이야기를,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를 더더욱 잘 기억하는 생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의 사이보그를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역사적 사건과 연결을 짓는 것은,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광기를 다시 겪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서는 최상위에 속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두가 좋을 순 없다.

       누군가 좋았다면, 누군가는 나빠야만 한다.

         

       그래야 세상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바로, 그러한 ‘광기의 심볼’이 탄생하는 데에 일조한 이들이었다.

         

       생체실험에 손을 보탰던 과학자들이나 그 집단, 혹은 기업.

       진리를 탐구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잔혹한 실험했던 연금술사.

       마법과 마력의 효율성, 적합성을 연구하기 위해 기꺼이 국가의 요청에 응했던 마법사.

       히틀러의 명을 받아서 유럽 곳곳의 유적을 탐사하고 다니며 주술을 바쳤던 탐험가들까지.

         

       그들은 원망할 곳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거세게 탄압당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했던 탐험가들은 히틀러 부역자라는 멸칭과 함께 그대로 몰락해버렸고, 그들에게 투자했던 투자자들 역시 큰 손해를 보거나 쫄딱 망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멸칭은 크게 번져나가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서 유지되는 대신에 길드 자체가 공중분해, 이제는 탐험가라는 직업은 소설이나 영화 등의 창작물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로 변해버렸다.

         

       생체병기의 탄생에 일조한 과학자, 마법사나 연금술사 등의 능력자 역시 마찬가지.

       이들은 강력한 규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국제기구와 국가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향정신성의약품 같은 위험한 물질이 아니라,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같은 일견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생체병기의 탄생에 크게 관여를 한 개인은 목이 매달려 처형당했고, 집단과 학회, 기업은 공중분해가 되어서 다른 기업에 뜯어먹히는 처벌을 받으며 본보기를 보이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권선징악의 체현이라 할 수 있겠다.

         

       악은 멸망하고 선이 승리했으니.

       그리하여 세상이 평화로워진 것이 아니겠는가.

         

       권선징악.

       아! 성서에 적히기를 진실로 이르노니 지극히도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그분께 하지 아니한 것이라 하였음이니 그들은 영벌에 처하고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였느니라.

         

       …

       …

       …

         

       권선징악, 권선징악이라.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의인이 상을 받고 악인이 벌을 받아 공정하게 세상이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서 벌과 상을 받을 이가 분명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증명이 여기 하나 존재하였으니.

       이것은 유일한 것도 아니고 유이한 것도 아니다.

       온 세상에 퍼져 있으며, 수많은 이들로 이루어진 증거와 증명이다.

         

       ‘세상이 뒤바뀐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아직도 우리를 욕하고 있군.’

         

       그것은 탄압받는 자.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온갖 매체에 등장해서 심심할 때마다 불려서 얻어터지고, 탄압당하고, 숨죽인 채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말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는지 모르겠군. 우리만 잘못한 게 아닌데.’

         

       더러운 위선자들 같으니.

       대체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는가?

       대체 얼마나 더 탄압당해야 하는가?

         

       그 거대한 전쟁의 책임을.

       세계 전체를 뒤덮었던 그 거대한 전쟁의 책임을 고작 집단 몇몇, 개인 몇몇에게 부과한다는 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선동한 자가 있다면 선동에 따른 이들도 동조자요, 공범이거늘.

       어찌 하나에게 죄를 죄다 몰아주고 패는 것을 멈추려 하지를 않는가?

         

       옛적 지저스가 모든 죄를 끌어안고 죽었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몰아넣고 죽이는 수법이 참으로 그렇다.

         

       ‘그 시절에는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닐진대.’

         

       이들은 생각한다.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자신들이 생체병기의 탄생에 일조했고, 생체실험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까지 탄압당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어떤 이들은 ‘그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었으며 우리는 시류를 따른 것뿐이다. 우리는 억울하게 돌을 맞고 있다.’라고 주장하였고, 어떤 이들은 ‘우리의 잘못은 인정한다. 하지만 죄는 우리가 모두 진 것인데, 자신의 무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죄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우리의 비윤리적 면모를 부각해서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명명백백하게 사실로만 따져보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탄압당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본다면 피를 토하며 분통을 터뜨릴 모습이었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의 집단이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기에.

         

       그리고.

         

       거대한 권력이 이들을 비호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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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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