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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27

        

         

       거대한 권력.

       그것은 깊은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넓은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높은 권력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깊기도 하고 넓기도 하고 높기도 하며 모든 것을 아우름이니.

       하나에게서 비롯된 권력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퍼져 하나의 권역을 만들고 있음을 사사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도 질기고도 질긴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었다.

         

       물론 이 말을 듣는다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모론 중 하나인가 하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권력 집단, 혹은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강력한 가문이 세계를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것은 당장 미스터리 채널을 틀기만 해도 나오는 단골 주제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달랐다.

         

       세계를 지배하니 뭐니 하는 야망 넘치는 목표와는 다르게,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의 상징으로 찍혀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 뻔했던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이며, 충분한 능력이 있었던 이들이 권력자들에게 달라붙으며 목숨을 유지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능력이 있으면 죽을 자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법.

         

       미국의 비밀스러운 비호 속에서 처형당할 위기에서 벗어난 후 신분 세탁에 성공해서 미국 시민이 되었던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과 같은 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옛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미국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후 미사일을 개발하거나 온갖 분야에서 과학적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강하지 않기에 살아남았다. 쓸모가 있기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능력이 있는 것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아니었다.

       적당히 능력이 있으면서도 통제하기가 쉬웠기에, 꿀꺽 집어삼켜도 될 정도로 파이가 작았고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기 딱 좋을 정도로 몰락한 상태였기에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려주는 데에 별다른 노력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거의 다 죽어가는 목숨이기에 숨통만 트이게 해도 은혜라고 여기게 될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리턴은 많기까지 했으니.

         

       어느 권력자가 이런 탐스러운 매물을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는가?

       리스크에 비해서 압도적인 리턴을 가지고 있는데.

       약간의 금액만 투자한다면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투자처인데.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하찮았으니까.

       그리고…고귀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실로 권력자들의 생각이 맞았으니.

         

       그들은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의 상징이며, 절대로 양지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되며, 음지에서조차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활동하더라도 권력자의 손과 시야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고, 감히 그들의 권좌를 노릴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자기 능력으로 탑을 만들어 권력을 얻고자 하였고, 실제로 얻을 뻔했던 과거를 생각해본다면…. 하하. 그야말로 바닥으로 추락을 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이 성공했다면 모르되 그들은 패배하였고.

       그저 숨통이 붙어서 대를 이어가고 학맥이 이어져가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크나큰 자비인 것을.

         

       다만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은지라.

       앉으면 눕고 쉽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요 본성인지라.

       그렇기에 이들은 권력자의 개로 살아가면서 끈질기게 맥을 이어가면서도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희망을 품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평화는 칼을 녹슬게 할 뿐. 칼이 낡은 창고에서 꺼내져 피를 보게 되는 것은 전쟁의 불길이 높게 치솟고 연기가 하늘을 새까맣게 가려버릴 때이니….’

         

       그 희망은 부질없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것도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높이 날아올랐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추락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가 어떤 때 가장 치솟는지, 어떤 때 그들이 가장 자유로워지고 크게 발전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기에 충분한 지능과 지혜가 그것을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전쟁.

       단순히 헤게모니(Hegemony)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피가 흐르고 강철이 부서지며 문명이 터져나가는 그러한 강렬한 전쟁이야말로 그들이 높게 비상할 수 있는 때였다.

         

       온다.

       그것은 반드시 온다.

         

       진리와 인간의 본성이 말하기를 사람은 싸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전쟁을 멈출 수가 없는 종족인지라. 그리하여 그들이 이토록 찬란하게 발전할 수 있었으며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까닭인지라.

         

       사람은 평화를 참을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그 증거?

       대단한 연구자료를 찾아올 필요조차 없다.

       전 세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전쟁이 멈췄던 적이 있었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지구에서 인간끼리의 전쟁이 멈췄던, 말 그대로 ‘세계평화’가 이루어졌던 때가 잠깐이라도 있었던가?

         

       없다.

         

       사람은 전쟁하고, 싸우고, 다툰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 미국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나라에 의한 강압적인 평화 상태에 놓여있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한도 이상으로 압력과 열을 가하면 결국 종국에는 터져나갈 뿐.’

         

       누르면 반발하고, 한계를 넘었을 때 터진다.

         

       그들은 그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직감하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어렴풋하면서도 확신하면서 그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가 온다면.

       그때가 오기만 한다면.

         

       ‘그때가 온다면 너희는 과거의 우리가 되어야 하리라.’

         

       너희.

       배신자.

       전향자.

       우리를 탄압한 놈들.

         

       그리고 뻔뻔한 낯짝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틈에 어울리고, 칭송받으면서 살아가는 옛 동료들까지.

         

       ‘그때가 오면 지금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 거다.’

         

       남자는 떠올렸다.

       보자마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고, 행복하게 보이는 낯짝을 보자마자 속이 뒤틀려버렸던 그때의 기억을.

         

       옛 동료.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탄압하는 이들보다도, 자신들을 개처럼 부리면서도 쉴 새 없이 견제하여 그들이 크지 못하게 방해하는 권력자들보다도 더더욱 증오스러운.

       가증스러운 낯짝을 볼 때마다 토악질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에 방문하고 머물렀던.

         

       ‘저주받을 마녀, 위선자, 유대인 구한 걸로 면죄부를 받은 탕녀.’

         

       오딜리아 A 라이히의 얼굴을.

         

         

         

         

        * * *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비루한 쥐새끼.

       반짝이는 것을 줍고 모아놓는 것만을 할 줄 아는 멍청한 까마귀.

       분수 넘치는 보물을 손에 넣어놓고 벌벌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결국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가련한 꼴이 되어버린 아둔하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

       용렬하고 어리석으나 돈 버는 재주만은 있어 금융계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하자 넘치는 남자.

         

       루카스, 루카스, 루카스.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

         

       이 돈 많은 위선자의 창고는 어디에 있을까.

       대관절 어디에 숨겨놓고 있기에 그것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일까.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의 창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

       …

       …

         

       ‘하하. 술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숨은 이를 찾을 수가 없다면 이렇게 골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

         

       이미 버려져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게 되어버린 폐공장의 안.

       박진성은 연구소에서 보았던 기록을 곱씹고 있었다.

         

       일종의 복기(復棋)였다.

         

       ‘참으로 귀중한 자료가 많았어. 특히나 그래…. 낙서들이 특히 대단했지.’

         

       박진성이 방금 떠올린 것은 이면지 뒤에 라틴어로 휘갈겨 쓰였던 글이었다.

       루카스가 소유하고 있는 인공지능, 아나엘의 서버 위치를 찾다가 스트레스로 반쯤 미쳐버린 사람이 저주의 의지를 담아서 라틴어로 꾹꾹 눌러서 쓴 글 말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다고 주술이 발동해서 저주가 나가지도 않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주 만약에 그것이 저주로 구현되어 살이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제 몸의 안전 하나는 끔찍하게 여겼던 루카스가 몸에 잔뜩 두르고 방어용 주물이나 아티팩트에 그대로 튕겨 나가서 시전자에게 돌아가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겪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면지 뒤에 루카스에 대한 욕을 얼마나 휘갈겼든, 루카스가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를 기대했는지는 루카스의 운명과 인생에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박진성의 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의 생각과 그 흔적은 영감을 남기는 법.’

         

       그것이 아무리 일견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 해도 그렇다.

       산 구석에 적혀있는 수백 년 전에 세워진 산불을 조심하라는 비석은 그 당시 사회상이 어땠는지, 풍습이 지금과 얼마나 같고 달랐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동굴에 그려져 있는 원시인이 그린 음란해 보이는 낙서 역시 그 당시 사회상이 어땠는지, 그 당시 원시인들의 생각이 어땠는지, 문화생활이 태동할 수 있었는지를 추측하고 연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지표가 된다.

       로마 병사가 휘갈겨 쓴 천박해 보이는 낙서 역시 그 당시 로마 병사의 월급이 얼마였는지, 그 월급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 무엇이었는지 연구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과거를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변화한다.

         

       그리고 박진성의 손에 들어온 루카스에 대한 저주와 푸념, 아나엘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짜증이 섞인 이 내용들은 그에게 하나의 영감을 주었으니.

         

       ‘아나엘. 이거…. 바다 아니면 우주에 있겠군.’

         

       그것은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아나엘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예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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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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