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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2196년 새해는 반드시 네오 헤이븐에서 맞이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필요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경비 의뢰를 수주하고자 접선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 미래를 아신다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도 다 아시는 겁니까? 그런 것 치고는 여러모로 쉽게 당황하신 데다가. 제 생각도 전혀 모르셨다는 점도 상기시켜드리면, 조금 우울하시겠지만 그런 허황된 상상을 떨쳐 내실 수 있겠습니까…? –

         

         “너 죽을래 진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꿈을 꾸는 건 자유지만… 망상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며 나를 타이르려 드는 깡통을 째려봤다.

         

         행여 말을 꺼내는 순간 현실이 끔찍하게 일그러지거나, 나를 여기 있게 만든 초월적인 존재의 제지가 들어올라.

         

         정말 조마조마하면서도 큰 결심과 함께 털어놓은 고백에 대한 반응이 이따위라니.

         심지어 헬레나의 추궁에도 끝까지 지킨 비밀 중 일부인데!

         

         “내가 언제 시시콜콜한 잡일까지 다 안다고 했어? 단지… 아나스타샤라는 개인이 없는 세계가 흘러갈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랑 역사의 큰 변곡점. 그리고 단편적인 미래 정보를 얻을 경로가 있다고 했지.”

         

         한때, 에나마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 권한도 가졌던 녀석인 만큼. 역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적에 대한 거부감도 강한 듯했다.

         

         아니면 기계인 자신도 시뮬레이션 시행을 통해 확률을 예측하는 게 한계인 데다가, 미래라는 건 현재에 따라 바뀌는 것일진대 어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냐고 타박한 걸지도.

         

         …맨살에서 코드화 된 전기 신호를 발사할 수 있는 인간이랑 같이 행동하기로 한 마당에 조금 더 열린 사고방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얘는 왜 에나마 사에서 나 같은 걸 연구하고 있었는지 알런가 모르겠다.

         

         무슨 추적자에 이능력이라도 추가해보려고 인체실험이라도 하던 걸까?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같은 숙련도가 있었으면 무작정 모든 데이터를 파기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빼돌려봤을 텐데… 조금 아쉽다.

         

         – 저는, 시시콜콜한 케어봇이 아닙니다. –

         

         꼭 상처받았다는 것처럼.

         바쁘게 이동하는 와중에도 억울함과 시무룩함을 온몸을 써서 호소해오는 바보를 흘겨보았다.

         

         요 며칠 사이에 나나 제니와 의사소통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도시 메인 네트워크에 연결된 채로 보내더니, 한층 감정 표출이 풍부해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호환성 문제 때문에 케어봇으로 구매했지만… 언젠가 돈이 모이면 제대로 된 안드로이드 몸체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설마 너를 두고 한 표현이겠어! 당연히 내 능력 얘기지.”

         

         언성을 높이려던 도중, 치솟는 고음에 행인들의 시선이 모여들 것 같았기에 그냥 목소리를 억눌렀다.

         

         설명할 방법이 없거나, 풀어내기 지나치게 어려운 이야기라. 대충 흘려들으라는 의미로 길에서 지나가듯이 말한 거긴 한데.

         내가 개떡같이 말했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융통성을 좀 발휘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바램이 피어났다.

         

         – 마찬가지로. 저도 아샤님이 없는 세상의 가능성이나 정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만. –

         

         “풉?! 콜록! 콜록…!!”

         

        간드러지는 톤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주워섬기는 녀석 탓에 사레가 들렸다.

         

         “너… 대체 어디서 그딴 말을…!!”

         

         – ‘가족-사랑하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다양한 명언’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혹시 잘못된 사용 예시였을까요? –

         

         “…다시는 그런 거 참고하지 마.”

         

         – 시정하겠습니다. –

         

         …그래, 무차별적인 정보 습득과 학습의 절정기나 다름없는 시기니 그럴 수 있다는 납득과 함께 고개를 돌리려고 했는데. 샐쭉하게 떠진 채 깜빡이는 스캐너와 묘하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보고 눈치챘다.

         

         깡!!

         

         – …아픕니다. –

         

         “웃기시네!”

         

         엄살부리는 깡통에게 일갈한다.

         

         기어이 걸음을 멈추고 구둣발로 금속제 정강이를 걷어찼지만, 충격을 주기는커녕 먼지조차 묻지 않았다.

         

         전부 똑똑히 알아들었으면서도 사람 놀리는 데만 관심있는 성격 나쁜 녀석에겐 더 심한 체벌을 줘야할 텐데… 내가 충분히 모질지 못해서 앞으로의 교육이 걱정이다.

         

         “전부 이해해 달라고 꺼낸 말은 아니야. 그냥… 내가 내릴 결정들의 근거가 되는, 예전에 네가 관측했던 정체불명의 신호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세상엔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는 거였지.”

         

         – 그렇습니까…. –

         

         머리를 끄덕이는 고약한 케어봇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쫓아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애칭에 대한 고민을 좀 해봤다.

         

         아나스타샤는 아샤, 헬레나는 레나.

         낯간지러운 서구권 문화에 대한 내 이해도가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깡통(Tin Can)을 어떻게 다정하게 불러줘야 하는지에 대해선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깡통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동화의 양철 나무꾼.

         하지만 이 바보는 마음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걸 펼치려는 첫걸음을 막 내디딘 참이니 참고하기엔 부적절한 관념이었으니 다른 게 필요했고.

         

         …내 사고는 거기서 막힌 채 여태 공회전하고 있었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건 알지만 제시어가 너무 빈약해서 그럴싸하게 연상되는 물건도 없었을뿐더러.

         

         작명에 소질이 없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캐릭터나 애완동물 이름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모의 책임감이 머리를 짓누르자 도저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하아아…… 그냥 개명하자니까….”

         

         – 그럼, 앞으로는 미하일 표트르비치 셰스토바 마카로프 2세라고 불러 주시겠…. –

         

         “미안, 내가 조금 더 고민해볼게.”

         

         그 정도는 상관없다고 한 주제에, 막상 애칭을 지어주는 대신 새 이름을 짓자고 하면 저런 식으로 기를 쓰고 반대해온다.

         

         이것마저 놀림의 일부라 여기기엔.

         내가 비록 인공지능 분석 자격증은 없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이 미묘하게 차이난다. 이건 그냥 개명하기 싫다고 시위하는 거다.

         

         …뭐, 어쩌겠나. 호불호가 확실하다는 건 그만큼 자아형성이 탄탄하다는 증거라 생각하고 그러려니~ 해야지.

         

         

         

         

         대로변을 슬쩍 벗어나 인기척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섰다.

         

         의뢰의 접선 장소는, 이 안쪽 언저리에 위치한 폐쇄된 사업장.

         

         그러니까 성깔 있는 블랙 마켓 용병들이 한 폐건물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셈이니, 저번처럼 호화로운 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과 그다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아닐 거라는 걸 대충 머리속에 새겨 넣으면 된다.

         

         – 정말 이런 수상쩍은 일을 꼭 하셔야겠습니까…? –

         

         “어차피 네오 헤이븐에 가도 또 예약된 일거리가 있어. 나도 이런 단발성 일은 오랜만이니까… 일종의 예행 연습이라고 생각해야지.”

         

         음습한 뒷골목을 모이는 곳으로 지정한 브로커에 대한 불만이 많은 듯 깡통이 초조함을 내비쳐왔다.

         

         적당한 집결지를 선정하고 임무에 착수할 용병들의 질과 태도를 관리하는 게 브로커의 영역이라면, 용병은 정해진 장소까지 찾아갈 수 있는 대가리와 규정 시간을 준수할 수 있는 의무감을 가지면 땡.

         

         하지만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오히려 브로커 걱정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털박이 아저씨. 잘 지냈어?”

         

         “큽!!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아이보리 해커.”

         

         낡은 철문 옆에 똥폼 잡은 채 기대고 서있던 중년 정장남에게 먼저 인사하자, 허둥지둥 자세를 푼 그가 내 입을 틀어막으려다…. 요란하게, 경고하듯이 스캐너를 깜빡이는 깡통을 보고 물러섰다.

         

         보다시피 브로커는 이제 막 초짜 티를 벗고 연륜 있는 업계 관계자인 척하고 싶어하는 남자.

         하지만 다른 용병들은… 글쎄, 털끝만큼이라도 신뢰할 놈들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일단 경험칙으로 판단해보면 여태 만난 용병 한 팀은 착한 동생들이었고, 다른 한 팀은 씹멍청이들이었으니 확률은 반반.

         

         “……지금 와서 말하는 거긴 한데. 얼굴도 비췄으니 난 돌아가면 안 될까? 의뢰 내용 보니까 난 완전 후방 요원이던데.”

         

         “당일 날 마주칠 일이 없기야 하겠지만… 기왕 온 거 얼굴은 확인해두고 가지? …아니, 그런데 그걸 몰래 훔쳐봤나?! 아직 정식으로 등록도 안 했는데…!”

         

         “쩨쩨하게 굴기는. 미리 예습해왔다고 생각해줘.”

         

         “이익…!”

         

         규칙 따위는 싸그리 무시한 내 폭거에 브로커 씨가 뭐라 면박을 주려다, 이내 체념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웬 야인이 주제넘은 짓거리를 하면 시건방이지만 능력이 검증된 용병이 하면 관록이니까.

         

         …물론 거기까지 교만한 태도를 취할 작정은 아니었고, 단순히 브로커가 이 아저씨인 걸 보고 큰 문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저지른 부정행위이지만.

         

         끼이이익—! 하는 녹슨 쇳소리를 동반한 철제 문이 열리는 걸 구경하며 곧 수행하게 될 업무 내용을 더듬어봤다.

         

         작전명 산타클로스.

         무려 메가 코프마저 존중하는 크리스마스 휴일에 당당하게 테러를 예고한 악명높은 범죄조직, 파이브 아이즈의 준동을 감시하는 연말 특수 아르바이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각한 듯, 심각하지 않은 연례행사.

    소설과 관련없는 개인사를 지나치게 풀어놓고 싶지는 않지만… 멋대로 휴재한 만큼 최소한으로 설명은 드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급하게 뛰쳐나가야 했던 원인인 할머님은 입원도 거부하시고 자택으로 귀가하셨습니다.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이면 제가 자처하려고 했는데… 문장도 제대로 말하시지 못하면서 두 가지는 확실하게 말하시더라고요.

    병원에 있기는 절대 싫다는 의사표현과… 손주인 제 이름.
    구석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닦다가 그냥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성실 연재하도록 다시 노력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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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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