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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아서 일행의 던전 공략은 순조로웠다.

   

   그들은 6층을 돌파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고난을 겪지 않았다.

   

   던전에 무슨 몬스터가 나오는 지.

   

   길이 어찌 되는지.

   

   함정은 어떤 것이 준비되어 있는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다 꿰고 있는데다 아서라는 훌륭한 지휘관을 두었으니 공략에서 헤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들에게 호의적인 정보는 던전을 공략함에 따라 그들이 성장하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아서의 지휘는 더 명확해졌고 전위에서 날뛰는 자칼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익숙해졌으며 매튜의 신성 마법은 가면 갈수록 적재적소에 들어맞고 있었다.

   

   그들의 성장을 증명하는 건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한 층을 돌파하는 데 30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6층을 돌파하는 지금 그 시간은 20분까지 단축됐다.

   

   층을 올라감에 따라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성장률은 가히 초월적이라 부를만 했다.

   

   아서 일행 모두가 이번 내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즈음.

   

   루카가 품 안에 가지고 온 수정구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교수님. 그건?”

   

   아서가 의문을 표하자 루카가 수정구를 꺼내 보이며 웃었다.

   

   “바깥과 통신이 되는 구슬입니다. 두 시간이 지나면 알른 영애가 어디까지 공략했는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해뒀죠.”

   “오오.”

   “굳이 그런 걸 확인해야 할까요? 어차피 한 2~3층에서 헤매고 계실 텐데.”

   

   매튜가 관심을 보이고 자칼이 농담을 던졌지만 아서의 표정은 진지했다.

   

   확실한 정보를 듣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 생각한 것이다.

   

   루시 알른이 지닌 재능은 진짜배기니까.

   

   ‘루카 교수님.’

   “네. 듣고 있습니다.”

   ‘루시 알른은 현재 20층을 돌파 21층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한껏 들떠 있던 아서 일행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20층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숫자인가.

   

   아카데미 1학년치고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서 일행이 이제야 6층을 돌파했는데 20층?

   

   도저히 그 숫자가 와닿지 않아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 자칼이 애써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농담하시는 거죠? 어떻게 20층을 넘어요.”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20층을 돌파했다고요?”

   ‘저들은 지금 길어도 5분에서 6분 이내에 던전 한 층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던전 공략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수준입니다.’

   “말도 안 돼.”

   

   수정구 너머에서 나온 단언에 자칼이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하면 던전 한 층을 5분 만에 통과할 수 있단 말인가.

   

   던전 안에서 나오는 마물 하나를 쓰러트리기만 해도 3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어떻게.

   

   수정구 너머에서 흘러나온 구체적인 설명에 일행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와중 루카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루시 알른!

   

   당신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난 입학시험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뽑아내고!

   

   아그라의 개입에서 파티원 모두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했으며!

   

   차기 검성 후보인 프레이 켄트를 상대로 승리하더니!

   

   이제는 아카데미의 던전에서까지 역사를 써내려 갈 생각이십니까?!

   

   과연. 과연!

   

   편견을 지녔던 것은 저로군요.

   

   당신이 지닌 재능이 얼마나 큰 지를 생각하지 않고 제 상식의 기준 안에서는 평가를 내려버렸으니.

   

   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이란 말입니까.

   

   아아. 루시 알른.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이런 멍청이에게 깨달음을 준 것도.

   

   아서 솔라딘을 구석으로 몰아넣어 준 것도.

   

   루카는 가만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는 아서의 표정을 보았다.

   

   꾹 다문 입술과 흔들리는 눈동자. 달싹이고 있는 입술.

   

   겉으로는 철저한 체 하면서도 속으로는 승리를 확신하던 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안 되죠. 왕자님.

   

   자신에게 금이 가버린 걸 티를 내면 그 사이로 검은 잉크를 넣고 싶어지잖아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 주세요.”

   ‘예. 수고하십시오. 루카 교수님.’

   

   수정구의 연락이 끊어진 후 루카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서의 곁으로 다가갔다.

   

   “왕자님.”

   “그 자는 믿을만한 자인가.”

   “예. 던전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직원 중 한 분이시거든요. 농담을 할 만큼 유머가 넘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거짓이나 농담이 아님을 재차 확인한 아서의 얼굴에 수심이 깃든다.

   

   이대로 루시 알른을 따라잡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필사적으로 내달린다 해도 거리만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내가 승리하기 위해 준비한 전장이다!

   

   그대에게 굴욕을 선사하기 위해 강요한 결투란 말이다!

   

   모든 조건이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거늘 이를 자신의 재능만으로 극복하겠다고?!

   

   웃기지 마라.

   

   이래서야 마치 이 자리가 네 놈이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처럼 보이지 않으냐.

   

   나라는 인간이 루시 알른이라는 태양을 가리려다 불타 없어질 미물처럼 여겨지지 않으냐.

   

   “이대로 가면 패배하실 겁니다.”

   

   루카의 목소리에 아서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겠지.”

   

   어떤 정상적인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루시 알른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루시 알른이라는 압도적인 천재는 그를 허용하지 않을 터니까.

   

   “어찌하시겠습니까.”

   

   그 물음에 아서가 입을 다물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정공법으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서는 자신이 품 안에 고이 모셔 두었던 마도구를 매만졌다.

   

   루시 알른과 승부를 하기로 결정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의 교수 중 하나가 아서를 찾아왔다.

   

   그는 외부에서 큰 공을 세워 아카데미에 들어오고서 얼마 되지 않은 자였다.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고 싶다며.

   

   당신 같은 재능을 지닌 사람이 굴욕을 겪는 걸 지켜볼 수 없다며.

   

   만일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며 그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던 것.

   

   그 신입교수에게선 뇌물을 바침으로써 연줄을 얻고 싶다는 추악한 욕망이 뻔히 드러나 있었다.

   

   원래라면 아서는 그 물건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멍청이와 얽힌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허나 아서가 자신의 신념을 꺾고서 교수의 뇌물을 받은 것은 조이의 말 때문이었다.

   

   만일 그녀가 말했던 대로 루시 알른이 규격 외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자신이 지닌 모든 불리를 극복할 정도로 압도적인 빛을 지니고 있다면.

   

   이 승부에서 패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생겨났기에.

   

   지금 이 순간 그 때 아서가 지녔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마도구에 그 교수가 이야기한 기능이 담겨 있다면 이를 사용함으로써 승기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획득할 수 없었던 승기를.

   

   이는 부정이다.

   

   정당한 승부를 하자 이야기를 한 주제에 그를 먼저 어기는 짓이다.

   

   그렇지만 그 승기라는 단어는 꿀처럼 달콤하여 아서의 귀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내게 방법이 있다.”

   

   아서가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내자 루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아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30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도착했을 무렵.

   

   불안불안하던 비시는 결국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견디지 못했는지 자신의 속을 게워냈다.

   

   20층을 넘어서면서 내가 움직이는 게 좀 빡세긴 했지.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공략시간이 크게 늦어지니까 비시를 배려해 줄 수도 없었고.

   

   으음. 이렇게 된 이상 조금 쉬다 가도록 할까.

   

   처음에는 오늘 안에 던전을 클리어 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비시의 상태가 저래서야 그러긴 어렵겠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기행을 벌여야 할 텐데 비시가 그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일단 오늘은 중간까지만 공략을 해두고 다음에 자칼의 호감도를 올렸을 때 걔랑 프레이를 데리고서 다시 오자.

   

   성능이 어중간한 바람에 여기저기서 치이고 다니는 자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걘 초기 성능이 괜찮은 축에 속한다.

   

   프레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속도를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겠지.

   

   방패를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체력을 회복하던 중에 칼의 품 안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칼…’

   “허접. 그거 뭐야?”

   

   “아카데미 측에서 긴급 연락용으로 사용하는 수정구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네요.”

   

   연락을 나누겠다며 잠시 떠나가는 칼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절로 치솟았다.

   

   루카. 그 미친 놈이 무슨 짓을 벌인 건 아니겠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인데.

   

   심지어 그 대상이 버로우 공작가문의 영식과 솔라딘 왕국의 3왕자인데.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고 미친 짓을 벌이겠어?

   

   응. 벌이지.

   

   그 새낀 그런 새끼니까.

   

   괜히 그 새끼가 소울 아카데미 유저들 사이에서 분탕충이라고 불렸던 게 아냐.

   

   연락을 마치고서 돌아온 칼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서 일행이 던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군요. 바깥으로 나간 것은 아니니 던전 내부일텐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답니다.”

   

   ‘자세히 말해주세요.’

   “허접. 말 아끼지 말고 제대로 말해.”

   

   아서 일행이 아카데미 던전의 6층을 공략하던 와중 아서가 품 안에서 나침반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그러더니 여태까지 던전의 길을 따라 정확히 공략을 하던 이들이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헤매이기 시작.

   

   그러다 아서가 어느 공간에 도착해서 무어라 중얼거린 순간 그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던전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아서 일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며.

   

   칼이 해주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했다.

   

   루카 미친 새끼.

   

   아니지.

   

   걔가 원인이긴 하지만 결국 그 녀석의 음모를 실행에 옮긴 건 아서니까.

   

   그 멍청이가.

   

   아무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의 충격으로 유언을 잊었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지!

   

   니가 부정을 저지르면 어떡하냐고!

   

   이건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퀘스트 중 하나다.

   

   트리거는 루카에 관심에 들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여야 한다는 것과 유혹에 흔들릴 정도로 정신력이 약한 상태일 것이다.

   

   이 두 조건을 충족 시키면 아카데미의 신입 교수 중 하나가 플레이어를 찾아 와서는 나침반처럼 생긴 마도구를 선물한다.

   

   하는 이야기는 그 때마다 다르다.

   

   이 나침반이 시키는 대로 가면 축복을 얻을 수 있다거나.

   

   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거나.

   

   빠르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숨겨진 길을 발견할 수 있다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다 구라다.

   

   그 나침반의 기능은 이렇다.

   

   아카데미 던전에 설치던 여러 마법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으로 안내하는 것.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한 순간 아카데미의 마법을 무효화하고 학생들을 다른 던전으로 공간 이동 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아카데미의 던전에서 언제라도 그들을 죽이고자 마음먹고 있는 외부의 던전으로 말이다.

   

   지금 아서 일행이 그 던전을 공략하는 게 가능한가?

   

   아니. 될 리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스펙이 모자라.

   

   나 하나도 쓰러트리지 못할 약골들이 거기를 어떻게 공략하겠어.

   

   아아. 젠장.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네.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수단으로 그 멍청이를 구하는 게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해.

   

   스피드 런을 할 생각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해둬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좀 막막했을 거야.

   

   ‘칼…’

   “허접. 불쌍왕자가 들어간 던전의 좌표는 보고 받았어?”

   

   “예. 방금 전에 통신을 하면서 받았습니다.”

   

   좋아. 그럼 아서가 들어갔던 던전에 진입하는 건 문제없겠네.

   

   ‘움직이죠. 그 멍청이를 구해야 하니까요.’

   “움직이자. 질 게 무서워서 멍청한 짓을 저지른 불쌍 왕자를 구하러 가야 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던전의 마법은 왤케 허접한가요?

그거슨 마법의 설계도를 들고 있는 내부인이 친 분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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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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