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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세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지하 공터에 도착했다.

    커다란 남자와 포니테일을 한 여자.

    세희 연구소 여성 연구원은 후배 1호가 껴안고 있는 회색 사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후배 1호는 놓기가 싫은지, 회색 사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덕분에 졸린 표정의 회색 사신은 양손을 붙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가 눈치를 주자, 후배 1호는 굉장히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놓았다.

    후배 1호는 그 후에도 회색 사신을 품에 안고 공터 밖으로 걸어 나가는 세희 연구소 연구원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선배, 저는 왜 세희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아닌 걸까요.”

    슬픈 목소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회색 사신이 사라지자, 황금 사신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서 곧 전부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후배 1호는 한 줌밖에 남지 않은 황금 사신들을 끌어안고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사실 세희 연구소 소속의 남자가 황금 사신들도 회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몇몇 황금 사신이 후배에게 달라붙은 채로 절대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서 포기하고 남은 것이 지금 후배의 품에 있는 황금 사신들이었다.

    대신 그 남자에게 몇 가지 주의를 받았는데, 지금까지 유해성이 밝혀진 적이 없는 오브젝트라서 그런지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협회 쪽 사람의 지시가 좀 더 문제였다.

    황금 사신을 가지고 캠프 밖으로 나가지 말아주기를 강하게 당부받았다.

    “역시 믿을 건 너희들뿐이야.”

    “너희들은 안 사라질 거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는 황금 사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후배 1호.

    시간이 지나도 저러면 정신 오염 검사를 받으라고 해야겠다.

    의외인 점은 황금 사신에게 묘한 애착을 보이던 후배 2호가 얌전하다는 점이었다.

    후배 1호보다 애착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후배 2호….

    자세가 뻣뻣하고 자꾸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불편한 거라도 있는 건가?

    ***

    협회 소속 비밀 연구소.

    그 연구소 가장 깊숙한 곳에 특이한 격리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철같은 금속으로 엄중한 격리실도 아니고,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평범한 격리실도 아니었다.

    투명하고 반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재질로 이루어진 격리실이었다.

    그 격리실은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서, 마치 격리 대상이 허공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격리실이자 감옥에 갇혀있는 것은 한때 중앙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한 남자였다.

    메이커라고도 불렸던 남자는 처참한 시체가 된 채로 격리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가 갇힌 투명 격리실 주변은 정교한 감시장비가 가득했다.

    인간의 육안으로 이뤄지는 관찰뿐만 아니라, CCTV를 포함해서 다양한 장치가 소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적외선, 진동, 온도 등의 온갖 수치를 측정하는 장치들이 즐비했다.

    육안 감시를 하는 직원과 장치들을 모니터링 하는 직원들 말고도, 군인들도 항시 대기 중이었다.

    그런 탈출이 불가능한 엄중한 경계 안에서 소장은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본 소장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순식간에 깨달았다.

    가지고 있던 오브젝트를 모두 잃어버리고 격리된 상태에서 눈을 뜬 소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무한히 재생하는 연구소장 정복뿐이었다.

    쿵.

    일어서서 투명한 격리실 벽을 두들겼다.

    “으아아아아!”

    쿵쿵쿵.

    숨을 구석도, 그림자도 없다.

    감시자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정교한 감시장비는 소장의 눈 깜빡임과 숨소리 하나하나를 기록했고, 끊임없이 초점을 맞추는 렌즈는 그 어떤 곳도 놓치지 않고 소장의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아직…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데! 나는, 나는 인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단 말이다!”

    지문조차 남지 않는 투명한 벽을 두들기며 소장은 소리쳤다.

    하지만 감시하는 사람들은 그저 무표정하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관찰자들은 희미한 조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브젝트의 발현에 성공했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오브젝트가 인류의 손에 들어오게 된단 말이다!”

    “이름 없음을 없애고, 강철탑을 없애고!”

    “그래 회색 사신! 회색 사신을 죽여야 해! 인류를 위해 일하는 나를 막은 인류의 대적자!”

    소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발밑에서 연구원을 몰래 소환하기 시작했지만….

    탕! 

    천장에서 내려꽂히는 총성 한방에 미간을 뚫린 소장은 그대로 시체가 돼서 쓰러져 버렸다.

    격리실에 갇힌 소장의 첫날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특별한 ‘사고’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

    드디어 돌아온 세희 연구소 격리실.

    은은한 호박색 조명이 비추는 아늑한 방 한가운데, 푹신한 침대에 누워 아늑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언제나 쾌적하게 관리되는 푸른색 시트는 부드러운 주름으로 물결치며 바다의 잔잔한 파도처럼 부드러웠다.

    이 안락함의 바다 위에는 유령 고양이가 나른하게 누워서 하품했다.

    충실한 모험을 한 뒤라 그런지, 나른한 표정의 고양이는 이 안락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방 주변에는 푹신한 쿠션과 부드러운 러그가 안락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예린이 배치해 둔 푸른 잎이 무성한 화분도, 어느새 새로 배치된 은은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의 방향제도 방 분위기에 잘 맞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 안락한 침대 옆 TV에서는 일전의 사건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어떻게 사이비 종교 단체가 중국에서 출발한 뒤, 바다를 건너서, 인천까지 들어와서, 국민들을 학살할 때까지 정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의도적으로 정부에서 방관한 학살극입니다!]

    [저 흑의를 입은 괴한들이 습격하기 불과 며칠 전에 경찰 인력 파견 포기, 행정 관리 포기 등의 액션이 있었던 것만 봐도 정부가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TV 패널은 정부에서 경찰서로 내준 업무 지시서를 흔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에 위치한 계양산 임시 캠프의 참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캠프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거기다가 그 학살의 주체로 밝혀진 것이 정체불명의 사이비 종교 단체! 

    그 종교단체는 사실 중국에서는 꽤 유명한 사이비 단체였다.

    거대한 황금색 불꽃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

    중국 전역에서 온갖 오브젝트를 부수고 다니는 테러 단체로 악명이 자자했다.

    연구소가 확보 중인 것도 포함해서 온갖 오브젝트를 부수고 다니는 테러리스트.

    거기다가 파괴 공작을 막는 인간이나 직원들도 공격하는 테러 단체였다.

    관심이 생긴 닌자들의 종교단체라서 주의 깊게 뉴스를 들었지만 내가 원하던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왜 푸딩을 가지고 다니는가? 

    왜 나를 숭배하는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그 푸딩은 어디서 파는가?

    제일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알맹이가 빠진 뉴스였다.

    오도독. 오도독.

    나는 밤을 하나 집어서 갉아 먹으면서 TV 채널을 바꿨다.

    뭔가 재미있는 소식이 없나 채널들을 돌리다 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보였다.

    그림자처럼 새까만 황제펭귄!

    사진 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유쾌한 펭귄이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으면 사진 속에서 춤을 추며 살아 움직인다는 신기한 오브젝트였다.

    오, 왠지 재밌어 보여.

    저 펭귄을 계속 보고 있으면 예린이가 눈치채고 하나쯤 구해다 주겠지?

    ***

    탐정 선배와 망치 선배에게 달라붙은 황금 사신들이 모두 허공 속으로 녹아서 사라졌다. 

    덕분에 캠프를 나가는 수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후우.”

    심호흡.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탐정 선배는 눈치가 너무 좋으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황금 사신을 옷 속에 숨겨서 옮기고 있었다.

    피부에 닿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곳은 여기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

    다행히 황금 사신은 옷 속에서는 얌전히 있어 주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캠프에서 나갈 수 있어.

    캠프를 나서는 대로 선배들이랑 헤어질 테니 황금 사신이를 몰래 숨기는 미션 성공이다!

    탐정 선배의 인맥 덕분에 캠프를 나갈 때 하는 조사는 정말 간단한 문답만으로 끝이 났다.

    “그럼, 의뢰도 끝났는데 이대로 헤어질까? 아니면 탐정 사무소까지 데려다줄까?”

    “저… 저는 바로 가볼게요.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으래?”

    윽, 왠지 탐정 선배의 시선이 따갑다.

    뭔가를 눈치챈 건가?

    “선배! 왜 혜진이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봐요?”

    망치 선배가 탐정 선배의 등을 후려쳤다.

    와 소리 엄청나게 커. 아프겠다.

    왠지 그대로 있었으면 탐정 선배에게 들킬 것 같았는데, 망치 선배 나이스!

    이제 캠프를 나서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직행하면 황금 사신 밀수 성공이다.

    너무 안심을 한 게 문제였을까.

    황금 사신이가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튀어나온 사신이의 머리를 손으로 덮어서 가리며 주변을 돌아보니, 다행히 아무도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후아, 다행이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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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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