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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EP.73

     

   「저, 저 고소공포증 있어요……」

     

   탑의 1층에서 한가민을 끌어안고 성 밖으로 뛰어내렸을 당시에 그녀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말을 하지.」

   「……말할 틈도 안 줬잖아요.」

     

   그때 한가민은 내가 성의 창문에 목제 티테이블을 던지는 순간부터 추락을 직감하고 몸이 굳어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만큼 뛰어내리는 것 외에는 탈출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고 몰려오는 공포심을 최대한 억누르며 어찌저찌 버텨 낸 모양이었다.

     

   「…….」

   「괜찮아?」

   「힝… 사실 저 지금 엄청 안 괜찮거든요.」

   「어, 어… 어?」

     

   한가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당돌한 모습만 보여 준 아이가 이렇게 여린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

     

   고소공포증이 심한 경우에는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복도식 아파트는 물론이고 집 안에서 환기를 하고 싶어도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에 창문에는 다가갈 수도 없다고 하니까.

     

   「흐끅. 저도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건 알, 흐끅. 알거든요?」

     

   떨어지지도 않을 곳에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발작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것은 모두에게 있고 공포라는 것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음에… 이럴 일 있으면 미리 언질을 줘요…」

   「그, 그래… 미안.」

     

   그날 이후로 나는 되도록 추락의 위험이 있을 만한 장소는 피했다.

   물론 전략적인 선택으로 어쩔 수 없이 절벽 근처에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일부러 땅이 보이지 않는 밤에, 그것도 최대한 멀리 자리를 잡은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고소공포증이라는 것을 빼더라도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괘, 괜찮아요?!”

     

   완벽한 추락.

   한 명이 두 명이 됐을 뿐, 나랑 똑같이 떨어지는 주제에 뭐가 괜찮냐는 건지 모르겠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내 옷을 뜯어버릴 기세로 붙잡은 한가민을 보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이래서야 한가민이 나를 위해 뛰어든 느낌이 아니라 그 반대의 느낌이 아닌가.

     

   “가민아 정신 차려! 숨 쉬어!”

   “쓰읍! 후!”

     

   나의 외침에 한가민이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급박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긴장을 풀려는 모습이 대견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칭찬을 건넬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순간 눈을 뜬 한가민이 마치 심연과도 같은 컴컴한 땅을 보더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고개를 푹 숙인다.

     

   “나 봐! 아래 보지 말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응시하는 것뿐이었다.

     

   “뭔가 하려고 뛰어내린 것 아니야?! 겁먹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생각해!”

   “네, 네!”

     

   지금 내가 한 말에 그나마 정신을 가다듬은 것인지 몸을 벌벌 떨던 한가민은 눈을 감은 채 품에서 작은 깃털을 하나 꺼내 내 몸에 가져다 댔다.

     

   [당신의 몸에 ‘경량의 깃(C)’이 사용됩니다.]

   [땅에 착지하기 전까지 낙하 속도가 줄어듭니다.]

     

   깃털이 몸에 닿자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며 눈에 띄게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막을 찢을 듯했던 바람의 굉음이 현저하게 줄어들자, 이제야 주변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나무만 보이는 깜깜한 땅과 달이 환하게 떠오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리고 우리가 떨어진 절벽은 까마득하게 멀기만 하다.

     

   “……히익!”

     

   속도가 느려졌어도 공포심은 그대로였던지 실눈을 떠보던 한가민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

     

   파스스슷!!!

     

   “우왁!”

   “꺄아악!”

     

   높게 솟은 나무에 몸이 닿는 순간, 아이템의 효과가 사라진 것인지 몸이 다시 무거워졌다.

   효과는 ‘땅에 착지하기 전까지’라더니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도 땅으로 취급이 되나보다.

     

   콰아앙!

     

   “아으윽!”

     

   나는 떨어지기 직전 한가민을 감싸서 그녀가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나뭇가지가 몸 이곳저곳을 긁고 지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2층에서 선물로 받은 천잠보의가 생각보다 튼튼했던지 큰 상처는 없었다.

     

   그래도 떨어질 때 충격은 그대로였으니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따, 땅!?”

   “그래 땅이야.”

   “사, 살았! 살았…!”

     

   고개를 번쩍 든 한가민이 언어 기능이 퇴화한 건지 말을 제대로 끝맺지를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퇴화한 신체 기능에 나도 슬슬 적응이 되고 있는 것인지 팔다리가 제기능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

     

   “구해 준 건 고마운데 슬슬……”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 바로 움직이기에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완전히 캄캄한 장소라 잘 안 보여서 그렇지, 나는 흙바닥에 누워 있었고 한가민은 내 위에서 나를 깔고 누워 있었으니까.

     

   “어, 아!”

     

   내 말을 이해한 한가민이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던지 휘청거리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시야가 좀 잡힐 때까지는 조금 붙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주변이 너무 어두워.”

     

   이곳에는 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나 전기 랜턴 따위가 없었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달빛 하나. 한가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

   “……”

     

   그렇게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시간이 조금 흘렀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주변에 나무가 있고 내 옆에 한가민이 있다는 것 정도는 구별이 되기 시작한다.

     

   물론 각성을 하기 전 같았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었지만,

   신체가 강해지면서 시력도 어느 정도 상식을 벗어난 것인지 모든 것에 대해 적응이 빨라진 것 같았다.

     

   “이제 앞이 좀 보이는 것 같네.”

   “그, 그렇네요.”

     

   숲의 한가운데라 그런지 공기가 서늘하고 습도가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만히 있다면 병에 걸리기 십상. 불을 피워야 하니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슬슬 움직이자. 조심히 따라와.”

     

   그렇게 말한 나는 자연스럽게 한가민의 손을 놨다.

   시야도 어느 정도 잡혔고 손을 계속 잡고 있으면 갑작스러운 위기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때.

     

   덥썩.

     

   “응?”

     

   내가 손을 놓자 허공을 휘저은 한가민의 손이 살짝 늘어진 내 천잠보의의 소매를 붙잡았다.

     

   “저, 저는 아직 잘 안 보여서…… 잠시만 잡고 가면 안 될까요?”

   “아, 응.”

     

   나는 오른손을 허리춤 검 손잡이에 얹어둔 채로 왼팔을 한가민 방향으로 살짝 내밀었다.

     

   “고마워요.”

   “괜찮아.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빨리 움직이자. 플레이어 말고도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감사 인사를 하며 슬쩍 다시 손을 잡는 한가민.

   뭐, 옷깃을 잡고 따라오는 것보다야 이제 확실히 서로를 잃어버릴 확률이 낮았으니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이긴 하다.

     

   ‘근데 나랑 지금 능력치는 똑같지 않나?’

     

   같은 좌표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능력치로 고정된 상황이다. 다시 말해 시력도 비슷할 것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무림 생활을 하며 어둠에 적응했던 내가 그녀보다 더 빨리 암순응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아, 아아!!!”

   “시인 씨! 가민아!”

     

   두 사람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정확히는 김시인이 추락하는 와중에 한가민이 어떻게든 그를 구해 보겠다고 뛰어내린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남은 지구 좌표의 플레이어들은 잔당들을 처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김시인이 날린 검기에 절단이 난 마법이 습격자의 반절을 초토화 시켰기에 그나마 싸움이 해볼 만해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하룻밤의 전투는 결국 지구 좌표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들과의 전투는 다행히도 아주 무의미하지 않았다.

     

   띠링.

     

   [낮이 되었습니다. 모든 망자들이 사라집니다.]

     

   [망자 ‘알렉세이’를 처단했습니다.]

   [망자 ‘알렉스’를 처단했습니다.]

   [망자 ‘다비드’를 처단했습……

     

   [체력과 마력이 Lv.1 만큼 상승합니다.]

     

   네다섯 명의 망자를 사냥한 보상으로 받은 능력치.

   한 번 탈락을 경험했던 그들은 플레이어가 아닌 개인전의 몬스터와 비슷한 취급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능력이 늘어났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능력치가 늘어난 것과는 별개로 너무나도 중요한 두 사람을 잃었으니까.

     

   “우리… 어떡하죠?”

   “……”

   “……”

     

   모두가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김시인은 그들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남궁천호가 단체전의 전체적인 작전을 세웠고 모든 사람이 함께 움직였지만 그것도 결국 김시인이 있었기에 확신을 가졌던 것.

     

   게다가 깃발을 가지고 있던 한가민이 함께 떨어졌으니 사실상 탈락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깃발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겠네요.”

     

   까마득한 절벽 아래다.

     

   조금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까마득한 숲의 한가운데 깃발이 툭 떨어졌으니 다른 좌표에서도 발견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일단 모입시다. 남은 사람들이 뭐라도 결과를 보여 줘야지 나중에 시인 씨 볼 면목이라도 있죠.”

     

   남궁천호의 말에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경쟁전에서의 죽음은 플레이어를 로비로 돌려보낼 뿐, 완전하게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단체전은 끝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깃발을 발견하기 전에 회수할 수만 있다면 아직 높은 성적을 노릴 가능성도 높았다.

     

   “그럼 전략부터 다시 세워 보는 걸로……”

     

   남궁천호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 끼어든 누군가가 있었으니.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제 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말을 끊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박조철. 그의 미간이 조금 전의 일을 회상하듯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마지막에 조금 본 것 같거든요.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초감각의 초능력을 발달시킨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가공할 속도로 추락하던 무언가가 떨어졌다기에는 절벽 아래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마도 살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가민이가 그렇게 단순한 아이는 아니거든요.”

     

   그 머리 좋은 대학생 꼬맹이가 그저 감정이 앞서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히 뭔가 방법이 있었기에 그런 터무니없는 액션을 취한 것.

     

   박조철의 설명을 들은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다들 동의하시면 일단 구조팀부터 짜보죠. 다음에는 습격조도… 지금 우리만큼 강한 좌표는 거의 없을 테니 지금이 적기입니다.”

     

   깃발을 찾기 위한 여정.

   그 와중에 다른 좌표의 깃발을 빼앗아 절벽 아래를 헤매고 있을 두 사람의 전력을 늘려주는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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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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