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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현재 공화국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보스타니아 상공에 진입한 성십자여단은 세인트 프랜시스와 인접한 공항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시민들의 인파를 보십시오! 모두가 우리 성십자여단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군용 수송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이는 성십자여단장 하인츠 비스마르크 준장입니다.]

         

       [하인츠 비스마르크 준장은 과거 티탄과의 대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그레이브야드’ 요새에서 근무했던 전쟁영웅으로 이제는 은퇴한 전설적인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 준장의 의지를 이어받아 인류의 무궁한 안녕과 평안을….]

         

       삑.

         

       베르너 그라임은 리모컨을 들어 TV 화면을 꺼트렸다.

         

       “이럴 때만 전쟁영웅이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베르너의 한 마디에 존 홉스 중령이 쯧쯧 혀를 차며 받아들었다.

         

       어느새 안보전략국의 중책으로 우뚝 선 존이었다.

         

       그는 국장 베르너 그라임의 충직한 기둥으로서 조직의 중심을 바로 잡곤 했다.

         

       하루가 멀다고 바쁜 안전국의 수장으로서 출타가 잦은 베르너였기에, 자연스레 조직 내에서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 나오기 마련.

         

       국장 바로 다음가는 본부장이라는 직책을 꿰찬 존 홉스 중령은 그런 미꾸라지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내 타 부대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그런 그도 어쩌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국장님, 안에 계십니까?”

         

       “켁, 루돌프 자식.”

         

       “역시나 존 본부장과 함께 계시는 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들어와도 좋아.”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장실의 문이 열리며 깔끔하게 머리를 넘겨올린 남자가 들어왔다.

         

       안보전략국 작전기획실장 루돌프 뢰쉬만 중령.

         

       안전국이 여단급 제대로 격상되며 상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안착한 고위급 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작전기획실ㅡ 다른 야전 부대에서는 작전과에 해당하는 조직의 핵심에 해당하는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자신이 총통의 명령으로 안전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구태여 숨기지도 않아, 굉장히 처치가 곤란한 인물이었다.

         

       “말씀하신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그 외에 시키실 것은 따로 없으십니까?”

         

       “아직까지는 없군.”

         

       “흐음… 가장 중요하면서도 바쁠 부서인 작전과가 아닌 다른 부서에는 계속해서 업무가 들어가고 있는 것 같던데. 혹시 제가 어떤 잘못이라도…?”

         

       루돌프 뢰쉬만이 검은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말도록.”

         

       베르너는 손을 휘적거리며 그의 질문을 일축했다.

         

       “…진심이십니까?”

         

       “딱히 텃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과장들에 비해 실장 자네의 능력이 과도하게 뛰어난 것일 뿐일세. 휘하의 부하들도 생각해야하지 않나.”

         

       “국장님,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저 역시 윗선에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 내가 자네의 윗선인데 자꾸 누구에게 보고한다는 말이지?”

         

       그나마 유한 태도로 넘어가려던 베르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빛을 번뜩였다.

         

       한번 눈을 부라리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중압감.

         

       그 살기를 그대로 마주한 루돌프 중령이 빠르게 시선을 피하며 뒤로 물러선다.

         

       수십, 수백, 수천의 죽음을 뛰어넘어 벼려진 전쟁영웅의 기백.

         

       애초부터 총통의 낙하산 따위가 쉬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똑바로 생각해. 중령이 지금 누구에게 더 가까이에 있는 지 말이야.”

         

       “….”

         

       결국 이번에도 발을 빼는 쪽은 루돌프 뢰쉬만 중령이었다.

         

       첫 착임에서부터 베르너와는 확실하게 대립각을 세웠으나, 정작 우위를 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베르너 그라임ㅡ 전설처럼 회자되는 방어의 사자이자, 제국의 파수꾼인 루터스 에단의 이름이 안전국을 꽉 틀어쥐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베르너가 자신의 편이 아닐 낙하산들을 군말없이 받아준 것부터가 그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한 총통이 쉽사리 꼬투리를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도 있었다.

         

       제 사람을 대놓고 꽂아도 으르렁거리기만 할뿐 실질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구제불능의 의심암귀인 미하일 비스마르크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카드가 되는 것이다.

         

       너무 굽신거려도 의심스럽고.

       너무 반응해도 의심스럽다.

         

       안전국 국장 베르너 그라임이 아닌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으로서 행사하는 최소한의 권리.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

         

       루돌프 뢰쉬만은 베르너에게 말없이 경례를 건네고는 들어온 길로 그대로 사라졌다.

         

       정작 완료했다던 서류는 내려놓지도 않고 사라졌으니, 서류는 그저 구색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존 홉스가 제 이빨을 뿌득 갈았다.

         

       “에라이 미친 새끼. 저 놈 간섭이 점점 더 격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더 툭툭 건드려볼 심상이겠지. 만일 정말로 총통이 병기국 지하에서 배양되던 티탄을 세인트 프랜시스에 풀어두었던 거라면… 샬롯 에버그린과 같은 부대 출신이던 내가 거슬리긴 할 테니.”

         

       “어쩝니까? 확 담가버려요? 국장님이시라면 깔끔하게 사고사도 가능할 것 같은ㅡ.”

         

       “그런 말은 농으로라도 하는 거 아니다.”

         

       베르너가 손을 들어 존을 진정시켰다.

         

       진정한 맹수는 가장 최적의 사냥 기회만을 노리고 숨을 죽인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애초에 모든 퍼즐이 모이지도 않았다.

         

       속전속결.

       완전작전.

         

       설령 실패할 지라도 그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이번에도 가장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제 목숨도 아낌없이 내던질 테니까.

         

       말 없이 손가락을 까딱이던 베르너 그라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제 코트를 걸쳤다.

         

       “어디 가십니까?”

         

       본부장의 물음에 베르너가 간단하게 답했다.

         

       “붉은 거리.”

         

       한밤중의 낮.

         

       겨울이고 여름이고, 쉴새없이 양기를 끌어모으는 수도의 홍등가를 향해 베르너 그라임이 나아갔다.

         

       비석의 주춧돌 중 하나인 헤타이라 도로시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

         

         

         

       제국의 수도.

       호엔바렌.

         

       무수한 예술가들을 배출해내고, 걸출한 위인들이 탄생한 제국 문화의 요람이자, 역사의 시작점.

         

       하지만 명이 있으면 응당 암도 있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비석의 주춧돌 중 하나인 대부 마테우스의 원래 본거지가 바로 호엔바렌이었고.

         

       살귀 레고로도가 활동한 주 무대이자, 아직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는ㅡ 레고로드가 벌였던 피의 금요일 사건이 벌어진 도시 역시 호엔바렌이었으며.

         

       백인대장 살로카가 그 능력을 개화하여 본격적인 정보상의 일을 시작한 곳 역시 호엔바렌이었다.

         

       전쟁에서도 굳건히 그 위치를 지켰던 제국의 빛은, 그 빛 만큼이나 그림자 역시 깊고 짙었으니.

         

       제국에서 제일 가는 포주이자 마약상인 헤타이라 도로시 역시 호엔바렌에 가장 큰 둥지를 틀어놓고 있었다.

         

       거리 전체가 붉은 조명으로 칠해져있고.

         

       상가 곳곳에 세워진 내부가 훤히 다 보이는 유리창 안에는 헐벗은 것보다 못한 차림을 한 여인들이 매혹적인 춤을 추며 수컷들을 유혹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곳곳에서는 쿰쿰하고 향기가 풍겨왔으니, 담배 형태의 흡입형 마약은 물론이거니와 사랑의 정신을 쏙 빼놓는 ‘좀비 마약’에 이르기까지.

         

       텅빈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한 손에 주사기를 든 이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틀어진 욕망의 집합소.

         

       베르너 그라임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자 온갖 천박한 몸짓으로 유혹하던 창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색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뻣뻣한 자세로 서 있는가 하면, 황급하게 뒤로 돌아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남자가 아닌, 저 남자를 눈독들이고 있는 여우에 의해서 말이다.

         

       그때였다.

         

       약에 취한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모를 남자가 비틀거리며 베르너에게로 다가왔다.

         

       “야이, 씨발…! 넌, 뭐야 이 새끼야! 이런데 그렇게 깔쌈하게 차려입고 오면, 창녀 새끼들이 더 잘 대주기나 한다냐!?”

         

       홍등가에서는 으레 있는 사건이었다.

         

       무언가에 취한 남자들이 제 기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상한 꼬투리를 잡으며 시비를 거는 것.

         

       붉은 거리를 한 두 번 방문해본 것도 아니기에, 베르너는 그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제 갈길을 걸었다.

         

       그래.

       본래라면 이쯤에서 저쪽도 그만두었을 터였다.

         

       그래봐야 멀어져가는 그를 향해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것이 전부일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베르너에게 파리 한 마리가 집요하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개새끼야! 내 말 안들려?! 이 씨발, 창녀들이고 손님이고… 다 나를 좆밥으로 아는 거냐!!?”

         

       남자가 품 속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 형태를 확인한 행인들이 곧장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자, 베르너 역시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괜히 총성으로 인해 경찰이 밀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오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뭐, 뭣 이 씨발새끼야! 총 보니까 무섭지? 흐흐흐흐…!”

         

       베르너 그라임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자연스레 몸을 움직여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주워들었다.

         

       그대로 돌을 던져 이마든, 눈이든 맞춘 뒤 곧장 접근해서….

         

       “!?! 크, 크겍, 케에에윽ㅡ.”

         

       베르너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그 순간.

         

       총을 들고 위협하던 남자의 뒤에서 나타난 덩치가 그의 목을 매섭게 졸랐다.

         

       숨이 틀어막히는 고통에 남자가 발버둥치기도 잠시, 허우적거리던 다리가 축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드레이크 브라운, 아니 그보다 덩치로만 따지면 더 클 지경인 남자는 순식간에 제압당한 남자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패대기치어버리고는 베르너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붉은곰 로젠발트.

         

       도로시의 최측근이자, 붉은 거리의 실질적인 관리자인 남자였다.

         

       “들어오시죠. 누님께서 목 빠지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도 지각하여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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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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