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3

    <73 – 내 말이 맞지 오크노디>

     

    헤스티아는 아무도 없는 112호 자기 방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거대한 양날도끼를 벽에 걸고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다.

    허리춤의 허리띠를 풀어 의자에 걸치고 수련복을 훌훌 벗어 빨래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갑옷의 무게감을 잊을까봐 옷 안에 단 무게추를 잔뜩 단 중량조끼를 쿵 소리 나게 풀어놓았다.

     

    우드득

     

    어깨뼈의 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중량조끼에 쓸리지 않도록 속옷 위에 받춰 입은 내피까지 빨래바구니에 넣었다.

     

    ‘가슴이 결리네.’

     

    속옷차림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관절의 가동범위를 확인하는 것부터 어깨주변근육을 하나씩 꼼꼼히 풀어주었다.

    가슴을 적당히 주무르며 가슴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열심히 몸을 점검하며 일과를 마무리하던 도중.

    벽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오크노디가 대화할 준비가 되었을 때 종종 들려주고는 하는 소리였다.

     

    “미안. 오늘은 좀 늦었지?”

     

    헤스티아는 신이 나서 침대 옆 바닥에 앉아 벽에 대고 말을 걸었다.

     

    -기다렸어.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기다렸어, 라니.

    마치 자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애완동물처럼 흐뭇해지는 대답이 아닌가.

     

    “오늘은 훈련장에서 양날도끼로 무기파괴를 하는 연습을 했어. 나무무기 12개에 쇠무기 3개를 부쉈는데 마지막에 부순 건 철로 만든 대검이야.”

     

    스트레스를 풀듯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들려주거든 오크노디는 언제나 그렇듯 귀찮다는 내색 하나 없이 전부 들어준다.

     

    -굉장하네.

     

    “그렇지? 용병들 중에서도 나만큼 무기파괴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어. 아카데미에 들어온 뒤로 녹슬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감을 기억해서 다행이야.”

     

    말 타는 법을 한 번 익혀두면 몸이 기억하듯이 무기파괴 하는 요령도 한 번 익혀두면 몸이 기억한다.

     

    “그래도 가끔 요령을 잊으면 헤매기에 이렇게 한 번씩 집중적으로 수련을 할 필요가 있어.”

     

    강의는 어떤 강의를 들었고 교수는 누구인데 애들은 어떤 애들이 있었고 되게 별로였다는 둥.

    한참 자기얘기를 꺼내던 그녀는 문득 손목에 찬 마법시계를 봤다.

     

    [오후 9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크노디는 키가 작으니까 얼른 자야해. 못 다한 얘기는 내일 다시 하자.”

     

    -싫어. 더 놀아.

     

    “언니는 먼저 씻고 잘 거야. 근육도 잘 찢고 나면 휴식을 취해야 성장하니까. 오크노디도 얼른 자.”

     

    속옷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개인용 샤워실에 들어가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를 찾아 온도조절기를 이리저리 맞추고 있자니 노곤노곤하게 몸이 풀어졌다.

     

    “흐.”

     

    김이 뽀얗게 맺힌 거울.

    손으로 한 번 훑자 뽀득 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근육으로 뒤덮인 튼튼한 몸.

    다리는 성인남성의 허리둘레만하고 팔뚝은 어지간한 남자의 머리통만하다.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도, 흉기에 가깝게 단련된 신체도 여성미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남에게 드러내기 부끄러운 성적인 부위 정도.

     

    ‘무슨 약한 생각을 하는 거야?’

     

    헤스티아는 두 손으로 물을 모아 얼굴에 끼얹었다.

    여성스러운 삶을 살았던 유년기의 자신은 그 약함을 빌미로 고향과 가족, 친지를 모두 잃었다.

    그 뒤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두 번 다시 약하게 살지 않겠다고.

    여성적인 모습을 상실할 정도로 단련을 거듭하면서도 그 다짐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일 마나연단법에 있었더라면.’

     

    그러면 분명 외모와 강함을 동시에 손에 넣을 수도 있었겠지.

    헛된 꿈이다.

    마나연단법은 귀족가문의 전유물.

    혹은 무사가문의 비전.

    일개 용병 따위에게 배움은 허락되지도 않고, 함부로 베풀어주지도 않는 상위계급의 전유물이다.

     

    꽈득.

     

    어떻게든 마나연단법을 손에 넣고 싶어서 많은 귀족가문과 무사가문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렸다.

    귀족들은 잘만 하면 연단법을 베풀어줄 것처럼 용병을 부려먹었지만 결말은 돈 몇 푼 쥐어주고 쫓아내거나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보내기 일쑤.

    무사가문의 비기라는 것들은 제대로 된 연단법도 아니고 사기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프트 아카데미는 달라. 이곳은 분명하게 학생들이 원하는 기술을, 가치 있는 비전을 가르치고 있어.’

     

    아직 교육의 초반임에도 쉬이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교육이 실전적이지만 실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이론과 지식, 요령을 터득할 수 있다.

    이론교육은 양이 너무 많거나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흠이 있기는 해도 교육 자체는 분명히 이뤄졌다.

    돈을 내고 배우는 사람에게 거들먹거리는 개인과외강사도, 엉터리 교육으로 얼버무리는 사기꾼도 없다.

     

    ‘그래도 역시 초조해지는걸.’

     

    어디서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찾기 힘들었던 바깥세계와 달리,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는 변방과 제국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가 잔뜩 있다.

    한 세력의 수장급이 아니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그녀가 긴장해야 할 상대가 복도 하나 건너 한 명 꼴로 나타난다.

    상급반 강의는 용담호혈龙潭虎穴.

    용이 사는 깊은 호수와 호랑이가 사는 굴처럼 위험한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자신을 볼 때마다 살기를 뿜어내며 시비를 거는 싱이라는 검객이나 피를 보고 싶다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즈앙이라는 소녀도 신경 쓰이지만…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역시 오크노디다.

     

    ‘지켜주고 싶은 아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지. 그 아이가 정말 내가 지켜줘야 할 아이일까?’

     

    롯토를 습격했던 것을 막았을 때, 오크노디는 분명히 마나연공법을 사용했다.

    얇은 팔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을 사용했을 때부터 근육의 압축률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일격을 받아낸 감각은 상상 이상이다.

     

    “오크노디. 하나만 물어도 괜찮아?”

     

    -9시 지났어.

     

    삐졌는지 퉁명스레 돌아오는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몸으로 침대 옆에 털썩 앉으니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오크노디가 익힌 마나연단법. 혹시 괜찮다면….”

    “…아니야. 역시 못 들은 걸로 해줘.”

     

    못할 부탁이다.

    그 아이가 귀족가의 암살자로 키워졌다는 소문을 들어놓고도 한가하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쐬려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는데, 작은 아이가 휘청휘청 걸으며 기숙사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크노디?”

    “오크노디 아니야.”

    “즈앙인가.”

     

    오크노디 못지않게 작은 체구의 즈앙.

    그녀는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

     

    “강의를 들었어?”

    “5교시. 오크노디도 같이 들었지.”

     

    헤스티아가 멈칫했다.

     

    “그럴 리가 없어. 오크노디는 방금 전에 나랑 대화했는걸.”

    “벌써 방에 들어갔어? 아닌데. 분명 내가 먼저 돌아왔는데.”

     

    의아해하는 즈앙.

    마치 자신이 대화한 상대가 오크노디가 아니라는 것처럼 주장하는 말에 코웃음을 쳤다.

     

    “오크노디는 방금 전까지 나랑 대화했어.”

    “나랑 같이 5교시 강의 들었다니깐?”

    “안 속는대도.”

    “내가 널 왜 속여?”

     

    헤스티아와 즈앙의 표정이 굉장히 찝찝해졌다.

    뭐지, 이 녀석/덩치.

    왜 자기가 오크노디랑 같이 있었다고 주장하지?

    장난이라도 치나 싶지만 표정이 너무 리얼하다.

    자기 말이 진짜라고 믿는 기색이 뚜렷했다.

    헤스티아는 용병의 감으로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렸고, 즈앙은 암살자의 훈련된 표정읽기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크노디한테 확인해보면 알겠지.”

    “이쪽이 할 말이야.”

     

    헤스티아와 즈앙은 오크노디의 방문에 노크했다.

    똑똑.

    잠시 후, 복도에서 오크노디가 모습을 보였다.

    즈앙의 얼굴은 거봐라가 되었고.

    헤스티아의 얼굴은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변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

     

     

    헉. 일 났다!

     

    “오크노디. 우리 방금 전까지 강의 같이 들었지?”

    “아니지, 오크노디? 우리 방에서 대화했잖아.”

     

    헤스티아와 즈앙이 서로 자기가 나랑 같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바로 눈치 챘다.

    즈앙이 5교시를 같이 보냈다고 주장하는데 그동안 <대답하는 문>과 대화를 했던 헤스티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도중에 나와 마주쳤나보다.

    여기서 즈앙의 말을 긍정하면 헤스티아의 멘탈이 크게 꺾일 가능성이 높다.

     

    “헤스티아랑 대화하고 있었지.”

    “거봐.”

     

    한결 안도한 헤스티아.

    반대로 이번에는 즈앙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그런 이상한 거짓말을 해? 우리 분명 강의 듣고 왔잖아.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

     

    듣고는 왔지.

    그렇지만 인정할 수는 없어.

    헤스티아가 회까닥 돌아버릴지도 모르는걸!

     

    “5교시에는 그런 강의도 있어?”

    “뭐?”

    “나, 월요일이랑 수요일에는 강의 4교시까지밖에 안 듣는걸.”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즈앙이 굉장히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같이 강의를 들었던 오크노디는 대체 누구였던 거야?”

    “몰?루.”

    “너, 장난치는 거지? 그거 외출복이잖아.”

     

    장난이면 빨리 말하라는 것처럼 매달리는 즈앙.

     

    “정말이야?”

     

    헤스티아가 뭔가 미심쩍음을 느꼈나보다.

    나를 콕 짚고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이제 곧 10시, 통금시간인데.”

    “강의 진짜 안 들었어! 준비를 하러 갔다 온 거야.”

    “무슨 준비?”

     

    문득 대답하는 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벽 2시 22분에 본관 2층으로 향하는 중앙계단을 오르면 숨겨진 방에 도착할 수 있어.

     

    소통이 간절했던 문이 자발적으로 플레이어를 유혹하며 알려줬던 히든피스.

    그 외로움 많이 타는 문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면 헤스티아에게도 분명 한 번은 말하지 않았을까.

     

    “본관 2층에 갈 준비.”

     

    예상이 적중했다.

    그 말을 꺼내자마자 헤스티아가 굉장히 죄책감어린 표정이 되었다.

     

    “날마다 갔던 거야?”

    “응!”

     

    이러면 월요일 5교시에 즈앙이랑 같이 강의 들었던 것도 면피가 가능하겠지?

    역시 난 천재야!

    혼자 뿌듯해하는데 헤스티아가 “난 쓰레기야. 오크노디를 혼자 두다니”라고 자괴감에 빠지고 즈앙은 “유령? 진짜로? 유령?”이라며 고장 난 로봇처럼 중얼거리며 몸을 떨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광역피폐생성기 오크노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