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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왜 이렇게 늦어지는거죠?”

     

    하늘이 어둑해져 보랏빛으로 변해도 베르그가 돌아오지 않지, 네르가 잭슨에게 질문했다.

     

     

    네르와 아르윈은 집에서 빠져나와 마을의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숀과 잭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돌아오지 않는 동료들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네르의 물음에 잭슨 또한 알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댈 뿐이었다.

     

    “…그러게요.”

     

    그 무책임한 말에 네르가 되묻는다.

     

    “네?”

     

    “아하하… 부단장이라면 괜찮을거에요.”

     

    “…”

     

    “하지만 혹시 부단장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안전히 스탁핀으로 데려가 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잭슨이 웃음을 터트리며 장난을 던졌다.

     

    하지만 아르윈과 네르 둘 다 굳은 표정으로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

     

    “…”

     

    무안해진 잭슨이 머리를 긁적이는 동안, 숀이 잭슨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퍽!

     

     

    바보처럼 행동하는 둘의 모습에도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네르였다.

     

    그녀의 가슴은 질척한 늪에 빠진것처럼 무거웠다.

     

    우두머리라는 더 거대한 마물도 순식간에 잡았으면서, 왜 마물 몇 마리를 잡는데 이렇게 오래걸리는 걸까.

     

    혹시 크게 다쳐 힘없이 어딘가에 쓰러져있는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후우.”

     

    조마조마하다.

     

    불편한 생각들이 머리를 감싼다.

     

    셀레브리엔 때도 이렇게 떨렸었다.

     

     

    역시, 남편의 직업이 용병이어서 좋을 건 어디에도 없었다.

     

    매번 이렇게 불안해야하는 걸까.

     

     

    “이런 경우가 흔한가요?”

     

    아르윈이 이어서 물었다.

     

     

    숀이 마을 밖을 보며 고개를 짧게 저었다.

     

    흔하지 않다는 그의 대답에 아르윈의 표정도 굳어갔다.

     

     

    네르는 그런 아르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베르그를 사랑하지 않을지언정, 좋아하지도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베르그의 빛나는 인품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홍염단의 단장에게도, 홍염단의 대원들에게도, 스탁핀의 주민들에게도, 스탁핀의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베르그다.

     

    외모 하나만으로도 파리 같은 여자들이 꼬이는데, 인품마저도 훌륭하다.

     

    대체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특히나 네르는 더더욱 그랬다.

     

    어떠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베르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가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항상 미소를 짓게 된다.

     

    베르그는 그녀의 첫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아르윈의 굳은 표정도 이해가 갔다.

     

    일단 베르그가 돌아오길 바랬다.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길 빌었다.

     

    항상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그였기에, 오늘만큼은 멀쩡히 돌아왔으면 했다.

     

     

     

    ‘…어떻게 된거야…?’

     

    숀이 무거운 표정으로 잭슨에게 속삭이듯이 묻는다.

     

    네르의 예민한 귀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단원들마저도 걱정하는 이 상황에 네르의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

     

     

    …정말 크게 다친걸까?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네르는 손톱을 가볍게 이빨로 뜯고 있었다.

     

    -톡…톡…

     

    이렇게라도 해야지 느껴지는 정신적인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어둠이 내려앉는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잭슨이 말했다.

     

    “…사모님들. 이제 들어가시죠. 부단장이 돌아오면 알려-”

     

    “-하, 씨…진짜. 사람 긴장하게…”

     

    그러다 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풀었다.

     

    잭슨도 그를 따라 뒤를 돌아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네르와 아르윈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서 걸어오는 인파를 보았다.

     

     

    “…하아…”

     

    네르는 그제야 몸에 힘이 풀린다.

     

    털썩 제자리에 다시 앉으며 몸에 녹아드는 안도감을 소화했다.

     

     

    꼬리가 제멋대로 살랑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불평불만만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늦은거야…”

     

     

    아르윈도 큰 숨을 들이쉬더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숀과 잭슨은 동료들을 마중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네르도 그들을 따라 걸어가보려 했지만, 풀려버린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네르? 안가볼거야?”

     

    아르윈이 묻자, 네르는 고개를 저었다.

     

    다리가 풀렸다는 이야기는 차마 부끄러워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 말에 아르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베르그를 향해 갔다.

     

     

    ****

     

     

    “부단장! 왜 이렇게 늦은거에요!”

     

    숀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해낸다.

     

    하지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생각보다 마물들이 많았어. 생각보다 많이 숨어있었고.”

     

    하루의 고단함을 넘기며 그들에게 설명했다.

     

    바란도 혀를 내두르며 숀과 잭슨에게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배는 많더라.”

     

    “언질이라도 해주던가…걱정돼 죽는줄 알았네…”

     

     

    나는 계속해서 화를 내는 숀을 내버려둔채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마중 나온 아르윈을 먼저 마주친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잘 쉬고 있었어?”

     

    “…”

     

    그 인사에 아르윈이 인상을 찌푸린다.

     

    “…늦었잖아요.”

     

     

    큭큭대며 걸음을 계속해서 옮기자, 아르윈은 자연스레 내 뒤쪽에 따라붙었다.

     

    “땀 냄새 날텐데.”

     

    “…”

     

    하지만 아르윈은 듣지 못했다는 듯 나를 따라 걸었다.

     

     

    이어서 저 멀리 앉아있는 네르가 보인다.

     

    내 모습에 꼬리를 살랑거리는게 어째서인지 기쁘다.

     

     

    근처까지 걸어가니 그녀가 물었다.

     

    “다친곳은?”

     

    “없어.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잖아.”

     

    “…치.”

     

    “뭐?”

     

    “…어렵지 않으면 왜 이렇게 늦은건데…”

     

     

    똑같이 말하는 네르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둘 다 같은 걱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나보다.

     

     

    이어서 녹스가 나타나 나를 바라보았다.

     

     

    카일라가 용병단 속에서 빼꼼 나와 제 아버지 쪽으로 갔다.

     

    그녀에게는 참 하루종일 시달리느라 지쳤다.

     

    드디어 그녀의 구애도 끝이 났구나 싶다.

     

     

    “…부단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녹스가 말한다.

     

    동시에 카일라가 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마물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어.”

     

    녹스가 숨을 들이쉬며 죄스럽다는 듯 놀란다.

     

    카일라가 이어 말했다.

     

    “…손님 대접을 조금 더 확실히 해드려야할 것 같아. 정말 인근의 마물은 용병님들이 씨를 말렸거든.”

     

    “그럼…! 그럼 당연하지.”

     

    녹스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몸부터 씻으시겠나요?”

     

    나는 뒤를 돌아봐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꾀죄죄한게 내 눈에는 불쌍하게만 보인다.

     

    놀더라도 깨끗하게 노는게 낫다.

     

    “먼저 씻겠습니다.”

     

    그에게 말했다.

     

    녹스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 동안 술과 고기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빈말을 뱉어보았다.

     

    “시간이 늦었는데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마을을 구해준 영웅들에게 이쯤이야.”

     

     

    ****

     

    용병단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된 음식을 즐기기 위해 하나둘 여관식당에 앉았다.

     

     

    베르그도 마찬가지였다. 아르윈 곁에 착석하여 기나긴 한숨을 내쉰다.

     

    녹스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여관주인이 나타나 베르그에게 먼저 물었다.

     

     

    “드시고 싶은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가능한 그 모든걸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베르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아무 고기나 주세요.”

     

    “술은…?”

     

    베르그는 그 말에 아르윈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르디 술 있나요?”

     

    아르윈은 잠시 심장이 놀라는걸 느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 단어에 몸이 딱딱하게 경직된다.

     

     

    “바르디 술이요…?”

     

    여관주인은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베르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술도 아무거나 주세요.”

     

    “…”

     

    아르윈은 떠나가는 여관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베르그에게 또 한번 말했다.

     

    “…이제는 정말 바르디 술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베르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했지만, 먹다보니 좋아져서 말이야.”

     

    “…”

     

    그리고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네가 처음으로 나한테 줬던 술이잖아?”

     

    “…”

     

    아르윈은 베르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판단하여, 그녀가 답했다.

     

    “…그랬죠.”

     

     

    .

    .

    .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하루의 일을 설명하는 베르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르윈은 베르그의 접시를 살폈다.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그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악몽을 꾼 자신을 위로해주느라 잠을 자지 못해 더 힘들었을테니, 이건 최소한의 예의였다.

     

     

    -툭.

     

    베르그의 접시가 비워지는 순간, 아르윈은 제 접시의 고기를 그에게 건넸다.

     

    “…”

     

    “…”

     

    그녀의 행동에 대화를 이어가던 네르와 베르그가 침묵한다.

     

    아르윈 스스로도 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애정 어린 행동.

     

     

    …하지만 어느정도는 베르그가 아내연기를 해달라고 했기에 하는 것도 있었다.

     

    아르윈은 눈동자를 굴려 베르그를 응시한다.

     

    행동의 이유를 눈빛으로 전달한다.

     

     

    아내인척 하는 것 뿐이라고, 시선으로 말했다.

     

     

    베르그는 알겠다는 듯 눈썹을 까딱이더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아르윈이 건넨 고기를 받아먹었다.

     

     

    “…”

     

    그 사소한 행동에 아르윈은 입에 미소가 걸리는걸 참아야했다.

    얼마만에 웃음이 나오는걸까.

     

    겨우 그것 하나로 웃게 되는 자신이 너무 멍청해진 것 아닌가 싶었다.

     

     

    그가 단명종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게 그를 향한 사소한 애정을 키우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

     

    아르윈은 눈치를 보며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더 친해져도 괜찮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도 모르게, 베르그를 향한 마음의 문을 점차 열어가고 있었다.

     

     

     

    “…저어…”

     

     

    그 순간, 누군가가 제 식탁으로 다가왔다.

     

     

    아르윈이 뒤를 돌아보니, 긴 토끼 귀 두 개가 돋아난 한 여인이 보였다.

     

    베르그와 하루종일 마물 토벌을 나갔던 카일라였다.

     

     

    아르윈은 자신도 모르게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문란하기로 소문난 묘인족인만큼 더더욱.

     

    “…왜?”

     

    네르도 마찬가지로 싸늘한 표정으로 카일라에게 물었다.

     

     

    카일라는 머뭇대다, 등 뒤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바르디 술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아까 찾고 계시다고 전해들어서…”

     

     

    카일라의 눈은 베르그에게만 향해있었다.

     

    어디서 저 술을 구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르윈은 그저 카일라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들을 무시하고 평민을 바라봐서 그런걸까?

     

    아르윈은 알지 못했다.

     

     

    “…두고 가.”

     

    네르가 말한다.

     

    그녀는 베르그를 위한 연기를 이어나가겠다는 듯, 차갑게 카일라를 대우했다.

     

     

    “…”

     

    하지만 카일라는 네르의 말에도 전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해서 머뭇거리던 그녀가 제안한다.

     

     

    “…베르그님께 한잔만 따라드리고 싶은데 안될까요?”

     

    “…”

     

    “…오늘 온종일 저를 지켜주셔서…”

     

     

    아르윈은 연기의 부담을 네르에게만 쥐어주기는 싫었다.

     

    그러니 그녀가 말했다.

     

    “…돌아가세요.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요.”

     

    “자리…가 없다고요? 하…하지만 인족은 일부다처제가…”

     

     

    아르윈은 카일라의 말대답에 기가 찼다.

     

    말의 뜻을 정말 이해하지 못해서 저렇게 답한걸까, 아니면 도발인걸까.

     

     

    “…카일라. 돌아가.”

     

    하지만 베르그가 끼어들었다.

     

    “말했지만 나는 더 이상 아내를 받을 마음이 없어.”

     

     

    카일라의 표정에 실망감이 물든다.

     

    하지만 베르그는 그런 표정을 이미 많이도 보았다는 듯 흔들리지 않았다.

     

    “그만해, 이제. 실례야.”

     

    “…”

     

    카일라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병을 식탁 위에 올려둔채 터덜터덜 뒤돌아섰다.

     

     

    베르그는 이후 네르와 아르윈을 바라보며 주제를 돌렸다.

     

    “이제 내일이면 뎀스 마을을 찾은 이유를 알게 되겠네, 네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아르윈은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게 대체 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

     

     

    네르는 베르그와 함께 침소에 들어섰다.

     

    웃통을 벗어던지는 그를 보며 네르는 숨을 자신도 모르게 참았다.

     

     

    “…”

     

    언젠가부터 무섭기만 했던 그의 몸이 이제는 다른 이유로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가면 갈수록 네르는 사람들이 베르그를 잘생겼다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 유일한 흠은 그의 볼에 패인 흉터였다.

     

    아르윈 덕에 남아버린 그 흔적 말이다.

     

     

     

    “읏차.”

     

    베르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그의 숨에서 술의 향기가 느껴진다.

     

    어쨌든 네르는 점차 행복을 느꼈다.

     

    네르는 베르그가 또 안전히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 또 오늘은 혼자 잠에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대해 기쁨을 느꼈다.

     

    새어나오는 미소를 참지 못했고, 흔들리는 꼬리를 멈출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아 느꼈던 걱정은 이제 모두 과거가 되어버렸다.

     

     

    베르그는 취기에 몸을 맡긴 듯,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누워 있던 그가 네르를 바라보았다.

     

    네르는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

     

    베르그는 팔을 뻗으며 무언가를 제안했다.

     

    “…”

     

    네르는 그게 뭔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셀레브리엔 영지에서 한번 해봤던 것.

     

     

    팔베개를 그가 다시금 제안한 것이다.

     

    “…”

     

    네르는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가볍게 그의 팔을 벴다.

     

    마치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것처럼.

     

    괜히 수줍어하고 망설이면 정말로 의식하는 줄로만 베르그가 알테니까.

     

     

    “내일 재밌을거야, 네르.”

     

    베르그가 동시에 속삭였다.

     

    “늦게까지 원없이 놀자.”

     

    네르는 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자.”

     

    네르가 제안했다.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노리는건 따로 있었다.

     

    아직 그녀의 밤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르윈은 베르그와 오랜시간 대화를 나눴으니…이번에는 자신이 베르그와 시간을 나눌 차례였다.

     

     

    그 말에 베르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피곤했는지 취기 때문이었는지…베르그는 순식간에 색색거리는 숨을 내쉬며 잠에 들었다.

     

     

    “…”

     

    네르는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최근 들어 베르그의 향기에 중독되어가는 중이었다.

     

    하루종일 향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싫다고 말하고 있지만…몸은 자꾸만 그 냄새를 찾는다.

     

     

    베르그가 좋아서 이러는게 아니었다.

     

    베르그의 체취가 좋아서 어쩔수가 없는 것 뿐이었다.

     

     

    그가 편하게 잠에 들자, 네르는 그의 볼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눌러 의식을 확인하고는…상체를 일으켰다.

     

     

    번뜩이는 그녀의 눈이 천천히 베르그의 품으로 향했다.

     

    목에 걸린 아르윈의 세계수잎이 거치적거려 옆으로 조금은 거칠게 치웠다.

     

    어제부터 안좋은 일들이 워낙 많았기에 충동을 참기가 힘들었다.

     

     

    네르는 이내 그에게 안기듯, 품에 얼굴을 묻었다.

     

    큰 숨을 들이쉬-

     

    “………………….”

     

    네르는 숨을 들이쉬다 우뚝 굳었다.

     

    심장이 뚝 떨어지듯 마음이 질척이며 가라앉는다.

     

     

    베르그의 향기에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

     

     

    알아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체취…아니, 페로몬.

     

    의도가 다분히 담긴 향기가 베르그의 몸에서 묻어나왔다.

     

    다른 여인이 묻혀 놓은 향기.

     

    씻었음에도 떨어지지 않은 향기.

     

     

    향기의 의미도, 네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묻어있는 페로몬의 의미는…

     

    ‘당신과 교미하고 싶습니다.’

     

    묘인족이라 예상은 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올줄은 몰랐다.

     

     

    -까드득…

     

    네르는 이를 갈았다.

     

    이토록 불쾌했던 기분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늑인족의 짝에게 이러한 향을 묻혀놓는건 정말 거대한 도발이었다.

     

     

    분명 베르그는 알지 못한 듯 했지만…이런 짙은 향이 몸에서 베어나오려면, 접촉은 있어야만 했다.

     

    ‘분명 내 남편 만지지 말라고 말했는데…’

     

    네르가 과거 제 경고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블랙우드를 무시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이 촌년은 알까.

     

    네르는 대체 어떤 부분이 더 화나는건지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늑인족의 짝에게 이런 행동을 저지른 촌년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블랙우드를 얕잡아봐서였을까?

     

     

    아니면…베르그에게 다가와서였을까?

     

    “…”

     

    마지막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아닐거라 믿고 싶었다.

     

     

     

    뭐가 됐든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네르는 베르그를 가만히 내려보았다.

     

    그리고는 단 한 번도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을 감행한다.

     

     

    -사아아…

     

    네르가 마음먹기 무섭게, 그녀의 몸에서 특유의 향기가 뿜어져나온다.

     

    베르그는 맡지 못할만큼 미묘했지만…페로몬을 맡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강렬한 향기.

     

     

    무늬뿐이라도, 네르도 블랙우드였다.

     

    마을의 촌년 따위는 만들어내지 못할 짙고 위압감 있는 향기가 만들어진다.

     

     

    이내 그녀는 곤히 잠든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사이가 좋아보일수록…좋다고 했지?”

     

    네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베르그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네가 해달라고 한거다?”

     

     

    끝내 네르는 그의 품에 볼을 가져다 댔다.

     

    -톡.

     

    따스한 그의 품이 안정감을 선물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

     

    의도를 담아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스윽…스윽…

     

     

    긴 흰색 머리카락으로 카일라의 페로몬을 지운다.

     

    제 영역을 표시한다.

     

    두 번 다시 저 같은 촌년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동시에 점차 되돌아오는 베르그의 체취를 맡았다.

     

    그 향기에, 네르는 점차 편안함을 느꼈다.

     

    “…하아…”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그의 향기에 취해갔다.

     

    밤새도록 네르는 그의 품 곳곳에 몸을 비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낮잠돌고래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돌아와요참치캔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저도 누가 이길지 모르겠네요. 돌아와요참치캔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이디54님! 3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전역을 최근에 하신건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ㅎㅎㅎ.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다친곳 없이 나오셨겠죠? 그랬길 바랄게요. 동시에 제가 조금 힘이 되어드렸다니 저도 기쁘네요.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대천체리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또, 팬아트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예쁘네요. 팬아트는 정말 받을때마다 놀라는 것 같아요. 저와 글을 위해 손수 그려주셨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이요…

    연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많이 써왔습니다. 조금이나마 후원 해주신 분들과 팬아트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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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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