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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현재 제국은 재정 상황이 파탄 나 있는 상태였다.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국고는 늘 위태로웠다. 그런 마당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니 금고에는 거미줄 칠 날이 멀지 않게 되었다.

       

       국가부도. 자칫하면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가수반은 무얼 하고 있었느냐.

       

       그게 문제였다. 로베스피에르는 후작이라는 작위를 달고 있었음에도 황제가 뭘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고 받은 바가 없었다. 이 부분에 관해선 모든 게 추측의 영역이었다.

        

        현 황제인 옐친 필리우트는 폭군은 아니었지만 성군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왕의 자질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냥 어디 마을에서 촌장 정도나 하면 될 법한 그릇의 인물. 제국이라는 광활한 영토를 운영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그나마 그가 자신에게 내린 오더가 하나.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장학금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귀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살아온 로베스피에르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사전 조율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갑작스레 통보 받았으니 어이가 없는 지경이었다.

         

        물론 지금은 어려운 때다. 돈이 부족하고, 급한 일이 아니라면 돈을 쓰기보다는 끌어모으는 것이 상식이다. 자신은 한 명의 가신으로서 황제의 그런 결정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바로 어제, 황실에서 대대적인 축제를 감행하기 전까지는.

         

        아카데미한테는 긴축을 하라고 윽박 질렀으면서, 자기들은 성대하게 연회를 열고 앉아 있다니!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로베스피에르는 헤를라인 교수를 포함하여 평소 자신과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전부 연락을 돌렸다.

       

       그중에는 귀족은 아니지만 곧 귀족 작위를 받게 될 평민 출신의 금안족 소녀도 있었다.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눈앞의 금안족 소녀, 에테르는 총명한 아이다. 자신이 기대하지 않아도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학생이었다.

         

        분명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이 나라에서 잘 적응해 나가겠지.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나머지는 장소를 옮기고 난 뒤에 하도록 하죠.”

         

        아니, 앞으로 그런 건 상관 없으려나. 

       

       제국은 머지않아 패망의 길을 걸을 테니 말이다.

         

       

        **

         

         

        내 물음에 이사장은 바로 회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보단 안색이 나아졌다.

         

        반면에 나는 불안한 나머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절멸급 마수가 언제 어디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지금 이사장의 발언으로 대화의 맥이 끊겼다. 장학금 얘기를 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장소를 옮기자는 말이 나왔으니, 천리안을 지닌 마수가 이 광경을 보기라도 했다간 얼씨구나 했을 것이다.

         

        내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있자 이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 문제라면 최대한 일찍 끝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깝지만 번지수 잘못 짚었다.

         

        만에 하나 절멸급 마수가 이 대화를 엿듣고 있지 않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앞서 이사장이 했던 발언이 황실과 친한 다른 귀족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했다간 이사장은 현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필리우트 제국은 전제군주제를 따르는 국가. 제아무리 멍청하고 유한 황제일지라도 그가 내뱉는 말에는 위력이 있다. 그 언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역적으로 다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장은 긴축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나에게 부족한 장학금을 내주려고 한다.

         

        귀족 입장에선 고작 수백 만원 남짓한 돈. 하지만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의 기준에서 봤을 땐 자신의 목숨값까지 나에게 내주는 것과도 같았다.

          

       자고로 어른들의 대화에선 발화 의도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이사장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지니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럴싸한 결과를 도출해내기가 어려웠다. 나는 하릴없이 이사장의 부탁에 응했다.

         

        우리는 셋이서 같이 이동했다. 마수가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이래도 되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헤를라인 선생님 옆에 붙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낯빛을 훑었다.

         

        헤를라인은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 않았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도 오늘만큼은 화장과 함께 지워버렸다.

         

        나와 헤를라인 선생님은 이사장의 안내를 받아 건물 복도를 이리저리 지나쳐왔다. 그러다가 중복도의 한 구석에 마법으로 자물쇠가 걸려 있는 철문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두꺼운 강철로 덧댄 듯한 흔적이 남아있는 문이었다. 방공호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사장이 문고리를 돌리자 음산한 기운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끼이익, 하는 쇳소리가 알루미늄 판으로 된 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느라 요사스러운 소리가 난 건 덤이었다.

         

        “여기 어디에요.”

        “지하실입니다.”

        “지하실? 아카데미에 이런 스산한 지하실이 있었어요?”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만 해도 그렇다. 어둑어둑해서 빛이 없으면 뚫고 들어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냥 들어가기가 싫었다.

         

        “여기 꼭 들어가야 하나요?”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사장은 손끝에서 불길을 당겼다. 화계마도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벼운 점화 마법이었다.

         

        다만 그는 수준이 상당했는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광량을 주변 환경에 맞추어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냈다. 저리 보니까 마치 살아있는 광센서 같네.

         

        그나저나 굳이 대화를 이런 을씨년스러운 곳에서 해야 되나 싶었다. 

         

        아래에 주의하며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평지에 도달하자 사방이 철판으로 도니 좁고 구불구불한 복도가 나타났다.

         

        이 복도를 한참 걸어가니 넓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20평 남짓한 규모였다.

         

        방 내부에는 커다란 원탁과 함께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었다. 벽지는 복도와 마찬가지로 팔방이 온통 두꺼운 철판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인한 새끼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괴상하게 지어 놨다.

         

        “아무리 봐도 훌륭한 기계미학이군. 아카데미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이딴 게 기계미학…? 그냥 컨테이너 박스인데? 

         

        눈살을 찌푸린 채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쪽에는 자기 콧수염을 매만지며 방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귀족이 한 명.

         

        자세히 보니 그만 여기 와 있던 게 아니었다.

         

        “이거, 귀한 손님이 오셨군.”

        “플레어를 개발한 그 금안족 평민 아닌가?”

         

        우리 세 사람이 여기 도착하기에 앞서 먼저 와 있던 사람이 여럿이다. 내 또래는 아니었고, 전부 부모뻘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한 번 본 적이 있던 얼굴도 있었다.

         

        “저번에 엘프와 함께 우리 이르카를 도와줬던 금안족 소녀구나.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한 번 만나신 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예, 그때는 신세를 졌었습니다.”

         

        이르카 엘리예프의 아버지이자, 엘리예프 자작가의 가주. 그의 얼굴을 본 뒤 주변을 한 번 환기하자 이곳에 모인 모든 인물들이 귀족이라는 걸 알았다. 나만 빼고.

         

        “저, 이사장님. 여긴 도대체?”

         

        내 거듭된 질문에 이사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웠다. 괜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결과적으로 그 육감은 현실과 맞아 떨어졌다.

         

        “인사들 나누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학생 학비를 지원해줄 분들이니까요.”

        “…네?”

         

        여기서 1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에테르 양, 분명 저에게 도와드릴 일 없냐고 물어보았었죠?”

        “네? 네. 그랬죠.”

        “저희는 에테르 양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도 저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랍니다.”

         

        여기서 2타.

         

        순식간에 쌍타를 먹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로베스피에르의 말을 머릿속에서 분석해내기 시작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 그 말뜻은 비즈니스에서는 명백히 기브 앤 테이크를 뜻한다.

         

        즉 우리들이 너의 후견인이 되어줄 테니, 우리들이 바라는 일을 해 달라는 뜻이었다. 

         

        “뭘 도와드리란 말씀이신가요?”

        “이야기가 빠르니 좋네요. 그래, 헤를라인. 자네가 이 친구 담임이니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게 좋겠네.”

         

        이사장의 그 말에 뒤에서 스태프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헤를라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내 말이 그 말이다.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나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이만한 후견인을 받은 건 지구에서 연구했을 때에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잠깐만. 후견인? 

         

        옛날 귀족들이 보통 뭐 연구하라고 할 때 후견인 자처하면서 과학자들한테 자금 대 주고 그러지 않았나?

         

        헤를라인이 단어 선택을 신중하게 하고 있던 사이에 나는 이사장과 함께 원탁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귀부인 한 분이 유자차를 건네주셨다. 적당히 따뜻해서 마실 만했다.

         

        “그래, 우선 이것부터 얘기해야겠네.”

        “네, 말씀해 주세요.”

         

        마른침을 삼킨 나는 헤를라인의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인 채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하스펠트 선생님이 실종되셨어.”

        “컥, 케흑, 크헥!”

         

        예상치 못한 어퍼컷에 유자 한 조각이 그만 기도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

         

         

        「감사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나머지는 장소를 옮기고 난 뒤에 하도록 하죠.」

         

        “흠.”

         

        이상하다. 뭔가 괴리감이 있다.

         

        스코프를 통해 이사장실을 직관하던 로즈마리는 짧은 신음을 흘렸다. 불만족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물음을 던진 사람은 블랜튼 공작이었다. 하루 종일 멀티 스코핑을 하느라 지쳐 있는 상관을 위한 음료를 대령한 뒤 옆자리에 앉았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야.”

         

        로즈마리는 블랜튼이 내민 머그잔을 들었다. 알로에처럼 초록빛이 감돌고 있는 액체였다.

         

        “케헥!”

         

        머그잔을 입에 가져간 로즈마리는 언짢은 표정과 함께 혀끝을 적셨던 알로에를 뱉어냈다.

         

        “내가 옥탄가 110 이하는 안 마신다고 했잖아!”

        “나라 꼴이 개판이라 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에라이. 내가 이 나라 돈 굴러가는 것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해?”

        “전염병으로 제국을 거지로 만들어 놓은 건 5석께서 벌이신 일입니다.”

        “에휴. 됐다, 됐어.”

         

        이런 걸 따져봤자 시간만 아깝다. 로즈마리는 원래 업무로 돌아와서 성도를 감시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녀가 지금 모니터링하고 있는 사람은 셋. 틸레트 아카데미의 이사장과, 지계마도를 전공한 교수 하나. 그리고 가장요주의 인물인 금안족 소녀였다.

         

        “장학금 얘기하다가 갑자기 장소를 옮긴다고? 왜지?”

         

        그들이 향한 곳은 어둑한 지하실이었다. 로즈마리의 고유마도로는 내부를 살짝 쳐다보는 것이 한계였다.

         

        어느새 세 사람은 그 문 내부로 들어가고 없었다. 곧장 추적을 개시했지만 관제하고 있는 수경은 점차 흐릿해지더니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로즈마리는 혀를 차며 딸기맛 사탕을 입에서 빼냈다.

         

        마력이 들어있는 사탕이었다. 마력초 이상으로 비싼 제품. 원래는 마력 탈진이 온 어린애들을 구호하기 위해 수인국에서 발명해낸 고급품이었으나, 블랜튼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는 그녀에게는 기호식품에 불과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블랜튼의 물음에 로즈마리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이사장 녀석…. 내가 자길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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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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