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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그 용병단이 궤멸당했다고? 대체 언제?”

        

       어제 새벽이었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리클란트 자치국의 총독, 막시밀리안 슈미트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 기꺼운 얼굴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혹시 제국이 추가 병력을 동원했나?”

        

       “그것이…….”

        

       푸른 제복을 입은 고위 장교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멋지게 길러서 그 끝을 살짝 말아 올린 회색 수염이 꿈틀거렸다.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국군이 대군을 동원해 국경을 넘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사령관은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을 테니까. 자치국은 기본적으로 ‘공화국’의 형태였지만, 그렇다고 귀족주의적인 면모가 완전히 사라진 곳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제국에서 황실만 제외한 것 같은 모습의 국가였다.

        

       물론 정치적인 형태만 그럴 뿐 영토는 훨씬 더 작고, 군사력도 제국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원래라면 자치국의 군대가 통솔해야 했을 용병단이 혁명 와중의 혼란스러움을 이용해 아예 군벌이 되어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군사력을 제국과 비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국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그 군사력을 두려워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제국군을 들이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건 슈미트 본인뿐만이 아니라 자치국 내의 귀족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고, 군대는 아예 자존심이 상하는지 대놓고 반대하지만 못했지 종종 그 불만을 겉으로 내비치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 제국군이 그 부탁을 무시한다고 해도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지만, 황제는 일단은 그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다.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한 명?”

        

       슈미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윈터필드 장군이 다시 복귀한 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딸이……?”

        

       “……죄송합니다만, 그것도 아닙니다.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만, 윈터필드 장군의 딸보다는 훨씬 어렸습니다. 황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황녀? 황녀를 굳이 전장에 내보냈다는 말인가? 그 황녀가 승리의 열쇠가 되었다고?”

        

       슈미트는 잠깐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려 사령관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황녀가 군대에 와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든 그 황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국군이 희생을 감수하고 적을 친 것인가? 그렇다면 막대한 보상금이 필요하겠군.”

        

       ‘보호’도 공짜는 아니다. 설령 피해에 대한 보상을 대놓고 금전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군의 총칼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몰랐으니까.

        

       지금이야 국경지대에 군벌이 가득하지만, 제국이 그 군벌들을 하나하나 다 정리하고 난다면…….

        

       제국군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들어오지 않아 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계속하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슈미트의 그런 말은 사령관에 의해서 부인되었다.

        

       “제국군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피해만을 보았다고 합니다. 군벌의 기지는 벙커째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 아침 근처에서 주둔 중이던 부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직접 사진까지 찍어왔으니 한 번 보시지요.”

        

       사령관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얇지만 고급스러운 나무판을 슈미트의 책상 위에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

        

       슈미트는 보고서를 한 장씩 넘기며 훑어보았다.

        

       사령관의 말대로였다. 자치국 군대가 뚫지 못했던 그 기지가 무너진 채였다. 사방에서 제국군이 환호하고 있었고, 추레한 몰골의 용병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진 중 한 장에, 한 소녀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찍힌 것은 아니다. 조금 멀리, 무너진 벙커 쪽에 살짝 걸치듯 찍힌 그 사진에는 제국군 장교용 코트와 거의 같지만 약간 다른 형태의 코트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무표정한 표정이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옆얼굴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소녀가 황녀입니다.”

        

       “……그러니까, 이 황녀가 뭘 했다는 뜻인가? 황녀를 한 사람 보냈다고 하더라도 전장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혹시 사관으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투입되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보에 혼선이 있어서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소녀가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모양입니다.”

        

       “…….”

        

       슈미트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표정이 굳어있긴 했지만, 딱히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옷에 얼룩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흐릿한 흑백사진이었고, 초점도 정확하게 맞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어디가 다쳤는지 어쨌는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제국 측에서 보낸 전령에 의하면,”

        

       사령관은 마치 목소리에서 감정을 배제하여 객관적으로 만들겠다는 듯 평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황녀가 전장에 직접 투입되고, 수십 분 뒤 적진에서 총소리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에 큰 폭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투 소리에 제국군도 양동작전을 펼치듯 진격하기 시작했고, 황녀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방어선이 무너지며 주둔지 내로 제국군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프로파간다겠지.”

        

       슈미트는 코웃음 치며 그렇게 말하고는 보고서를 덮어 다시 사령관에게 내밀었다.

        

       “……윈터필드 영애의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황제의 피가 흐르는 이라면—”

        

       “윈터필드 영애라고 해도 혼자 무인 지대를 넘어 적진에 침투하여 탄약고를 유폭시킬 정도의 능력은 없어.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의 행위가 아니잖은가. 황녀는 총알이라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린가?”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사령관도 할 말은 없었다. 사실 사령관이 보고하는 내내 목소리에서 어조를 빼버린 것도, 사령관 본인부터 그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미트는 말끝에 덧붙이면서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었다. 이마를 시원하게 노출하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말끔하게 정리한 그의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신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조금 어려 보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얼굴보다는 나이가 더 많았다.

        

       “설령 그게 프로파간다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진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 사령관이 말한 윈터필드 영애의 사례처럼, 전투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어.”

        

       제국군이 자신들의 피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 허위 보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진에 나온 이상 황녀가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어쩌면 사람을 보내서 제국군들에게서 진위를 캐내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총독은 생각했다.

        

       “……흠.”

        

       “……왜 그러십니까?”

        

       슈미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령관을 바라보자, 사령관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되물었다.

        

       “사령관에게 딸이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있긴 있습니다만.”

        

       엄청나게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하는 사령관을 보고, 총독이 말했다.

        

       “내 딸은 제국 아카데미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서 말이지.”

        

       “…….”

        

       “만약 자네가 딸을 제국에 유학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자치국에서 성심성의껏 지원해줄 용의가 있네.”

        

       “…….”

        

       사령관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기는 하다만…… 뭐, 하기 싫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제국에 유학 가고 싶어 하는 아가씨야 자치국 내에 많을 테니까. 아니면 도련님도 괜찮겠고.”

        

       “고려해보겠습니다.”

        

       사령관이 말하자, 슈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기왕이면 최대한 빠르게 결정해주길 바라네. 나는 파견 수업 나온 생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기차에 유학생을 태워서 보내고 싶으니까.”

        

       물론 절차적으로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슈미트는 제도의 황제가 기꺼이 자기 제안을 받아주리라 생각했다.

        

       아직도 황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슈미트는 적어도 황제가 ‘재미있는 일’에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황녀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글쎄, 정보라는 건 일단 손에 쥐고 있으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기는 법이니까. 만약 이 황녀의 무력이 정말로 쓸만하다면…… 자치국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지. 우린 아직 이 황녀님의 성격도 모르잖나.”

        

       슈미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아, 그런데 사령관, 자네 딸은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가?”

        

       “아, 그것이—”

        

       사령관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보고, 슈미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알만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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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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