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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토너먼트 행사 당일.

         

       대형 대련장은 콜로세움처럼 가벽과 시설로 뒤덮여 개조된 상태였다. 학생이 마련한 음식 판매 부스들이 그런 콜로세움 외부를 둘러싸고 늘어섰다.

         

       파스텔은 아침 일찍부터 부스 사이를 거닐며 돌아다녔다. 놀러 다니는 건 아니고 정말 일을 하고 있었다.

         

       “외부인 통제는 어떻게 되고 있어?”

         

       엘리가 빠른 걸음으로 뒤따랐다.

         

       “일부 상단이 예고하지 않은 인원을 데려와서 대처 중이야.”

         

       친구친구가 달려오더니 현장에서 더스틴이 정리했을 메모를 건네주고 떠났다.

         

       엘리가 읽더니 보고했다.

         

       “대부분 돌려보내긴 했는데 몇몇 상단이 별로 협조적이지 않다네. 상단끼리 자존심 싸움이 붙었나 봐.”

       “무슨 자존심 싸움? 우리가 검증한 인원만 데려오라 권고한 학생회의 권위를 얼마나 무시할 수 있는가 같은 거?”

       “응. 근데 시간이 걸리긴 해도 어쨌든 돌려보낼 수 있을 거 같대.”

         

       본래 토너먼트 행사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려 했다. 그런데 외부 단체에 자기 어필할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별수 없이 일부 문호를 개방한 상태였다.

         

       이제 2학기고 방계나 사생아 출신이 많은 재학생들에게 자기 어필은 정말 미래 생계가 달린 일인지라 단호히 물리치기 어렵다.

         

       특히 간절한 고학년 선배님들이 암살 위협을 당하는 앨시어 벨라몬트의 서명에 재학생 서명까지 모아오기도 했고.

         

       사실 파스텔은 그래도 거절하려 했지만 학교 정상화 이후 행정을 지휘하던 호레이스 교수가 살짝 난감해했다.

         

       ―크흠, 후배. 너무 반대하면 재학생 민심이 나빠진다네. 안전한 정도로만 조금 양보하는 건 어떻겠나?

         

       학교에 사병까지 끌고 왔는데 민심 관리를 안 하는 건 매우 곤란하다.

         

       특히 이미 파스텔이 손수 테러범들을 죄다 잡아버려 이제 안전하지 않나? 라는 공감대가 올라온 시점엔 말이다.

         

       ―허억, 그럴 수가! 일을 너무 잘해도 탈!

         

       이것이 독재자, 아니 민심의 대표자가 겪는 곤란?

         

       ―걱정 말게! 내게 방법이 있으니!

       ―선배니임! 후배는 믿고 있었습니다!

         

       파스텔은 호레이스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안전한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으아, 어째서 학생 신분으로 굶주림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온 걸까요?

         

       학생 안전을 뒷전에 두던 카를로 교수가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기분이다.

         

       공감은 안 되지만!

         

       그래도 노력 끝에 철두철미한 외부인 검증 방법을 구상할 수 있었다. 크래프트 상단을 동원하고 아카데미의 행정력을 왕창 소비하는 방식이긴 했지만 재학생이 안전하면 된 거 아닐까?

         

       그 과정에서 카를로 교수를 포함한 그쪽 계파 인력들을 모든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헤헤.

         

       일 못하는 분들은 구경만 하세요.

         

       그동안 쌓인 감정의 복수 같은 건 절대 아니다. 절대로.

         

       응응!

         

       과거를 되짚으며 현황을 살피던 파스텔은 시야에 들어온 어느 음료 부스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뭔가 초면이 아닌 듯한 선배가 음료를 팔고 있었다. 오렌지 무늬가 그려진 와인통의 꼭지를 돌리자 주황 액체가 쏟아져 나무잔을 채웠다.

         

       으잉.

         

       기시감.

         

       『흠? 지난 축제 때 술 판 놈 아닌가?』

         

       허억, 맞아!

         

       야광 드래곤 짱짱 축제 때 오렌지 술을 몰래 팔던 선배님!

         

       근데 악마님 때문에 나만 못 마신……!

         

       으아아.

         

       파스텔은 괜히 안타까워하다가 멈칫했다.

         

       그때와 지금의 나, 완전 다르다.

         

       지금 파스텔, 초초슈퍼슈퍼 권력자.

         

       일단 사용인 신분인 악마님은 막을 수 없는 무소불위 권력자였다!

         

       파스텔은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본격적인 행사 전에 나무통을 닦던 선배가 돌아봤다.

         

       “오우, 두 번째 방문이네?”

         

       파스텔은 사악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때와 전 다르죠. 한 잔 주세-.”

       “술이네요.”

         

       대기의 향기를 맡던 엘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파스텔의 방금 발언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말을 멈추곤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 방금 무슨 말을 하려던 거야? 라는 의미가 담긴 눈길이었다.

         

       완전 찔린 파스텔은 얼어붙었다가 정의로운 학생회의 표정으로 점점 변했다.

         

       부스 탁상을 탕 쳤다. 단호한 눈빛으로 선배를 응시했다.

         

       “선배님! 토너먼트 행사 규정상 술은 절대 판매 불가해요! 대련 전에 술을 마시면 서로 위험해지잖아요!”

       “아…….”

         

       선배가 난감해했다.

         

       “어차피 오늘은 1학년 애들만 붙으니까 우린 상관없지 않아?”

       “그럼 오늘은 1학년에게 안 팔고 내일은 2학년에게, 아니 2학년은 없으니까 3학년에게 안 팔고 그다음 날은 4학년에게 안 파실 건가요? 마시겠다고 찾아와도요?”

         

       선배가 고민하더니 씩 웃었다. 엄지가 척 세워졌다.

         

       “자유로운 영혼에게 술 한 잔쯤은 괜찮잖아.”

       “안 괜찮아요!”

         

         

       선배가 움찔했다.

         

       “알겠어. 술은 치울게.”

       “불시에 단속할 거니까 꼭 치우세요!”

         

       성실하게 일을 끝낸 파스텔은 부스를 나왔다.

         

       “휴우, 정말 이래서 현장을 돌아봐야 한다니까.”

         

       뒤따라 나온 엘리가 묘하게 바라봤다. 너 방금 마시려고 하지 않았어? 라는 눈빛이었다.

         

       파스텔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마시려던 건 맞지만 일하는 지금 말고 일 끝나면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린 크래프트, 설마 술을 마시려던 아니겠지?』

         

       허억.

         

       난 마시지도 않았는데 혼날 상황.

         

       으아아.

         

       차라리 마시고 혼났으면 모를까 이건 아니잖아요오!

         

       파스텔은 악마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달렸다.

         

       “빨리 단속하자! 단속! 단속!”

         

       현장 단속을 진행했다. 어차피 레너드와 친구친구들이 꼼꼼히 단속하긴 하겠지만 직접 하면 마음이 편하다.

         

       “마석 각성제 팝니다! 교단의 수상한 제품이 아닌 연금학 전공자가 손수 만든 안전 제품! 믿고 사세요!”

       “우아악! 지금 뭘 파시는 건가요?!”

       “화끈한 토너먼트를 위한 조미료!”

       “도핑 안 된다니까요!”

         

       으아아.

         

       카를로 교수님이 마석 각성제를 암묵적으로 허용했던 바람에 아직도 이 모양이야!

         

       진작 내가 권력을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존경하는 후작 각하께선 오늘도 학생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학생 일동은 토너먼트 행사에 성실히 참여해 은혜를 보답하자.]

         

       학생의 목소리인 신문부도 긍정해 줬다.

         

       친구들의 마음, 나도 잘 알아!

         

       응응!

         

         

         

       #

         

         

         

       현장 점검을 마친 파스텔은 학교에 찾아온 그레이스 상단주를 만났다.

         

       부탁해 놓은 게 있었다.

         

       상단주가 길쭉한 상자를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일단 말씀하신 품질에 맞춰 최대한 제작해 오긴 했답니다. 그래도 마계 유물 수준의 물품은 절대 아니에요. 마석 가공 분야는 마계 개척 때 소실되거나 감춰진 기술이 많거든요.”

       “감사합니다!”

         

       파스텔은 상자를 열었다.

         

       마법 빗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막대에 분홍색 술.

         

       우와아!

         

       반짝반짝해!

         

       눈부셔……!

         

       조심스럽게 마법 빗자루를 들었다.

         

       탁월한 무게감.

         

       너 혹시 이름이 님부스 2000이니?

         

       아니라고? 뿌뿌.

         

       그레이스 상단주가 얼떨떨해했다.

         

       “도대체 마석 넣은 빗자루는 어디에 쓰시려는 거죠?”

         

       파스텔은 헤헤 웃었다.

         

       “제가 타려고요!”

         

       하늘고래에서 교단 무리와 싸울 때 경험한 게 있다.

         

       올라탄 테이블 아래에 마석 나이프를 고정하고 조종하니 테이블이 무려 날아다녔다.

         

       허억.

         

       놀라운 사실!

         

       파스텔은 날 수 있던 거임!

         

       그런데 그때는 수성 친구만 있었고 금성 친구는 없었다. 마석 조종에 손짓이 필요했던 반쪽짜리 비행이었다.

         

       하지만 인기인 파스텔에겐 이제 금성 친구도 생겼어!

         

       손짓 없이도 마석을 조종할 수 있단 말씀!

         

       “보여드릴게요!”

         

       파스텔은 소파에서 일어나 널찍한 공간으로 걸어갔다. 가랑이 사이에 빗자루를 끼웠다.

         

       정신을 집중하고 빗자루 내부의 마석을 감지했다. 형이상학적인 구조로 마석 가루가 배치된 게 느껴졌다.

         

       확실히 전대 마왕의 유산인 마석 나이프보단 품질이 낮아 보인다.

         

       그래도 어찌 조종은 될 거 같아.

         

       하아압!

         

       마석 조종의 권능!

         

       파스텔은 빗자루를 조종했다.

         

       “삐요삐요~!”

         

       자체 제작 효과음과 함께 빗자루가 떠올랐다. 철봉에 올라탄 느낌의 탑승감과 함께 몸이 덩달아 떴다.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대롱대롱 둥실둥실.

         

       “와아!”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날았어!

         

       파스텔은 빗자루를 잡고 천천히 비행했다. 낮은 비행으로 실내를 뽈뽈 날아다녔다.

         

       뽈뽈 뽈뽈~!

         

       그레이스 상단주가 멍하게 바라봤다.

         

       “그게 왜 뜨죠……?”

       “떴다 떴다 비행기라서요!”

         

       와아~!

         

       “슝슝 슝슝!”

         

       그레이스 상단주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크래프트 후작을 응시했다. 어느 때쯤 생각이 정리되고 당혹감이 가시자 줄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하긴 크래프트 가문은 마계 병탄의 선봉장이었으니……. 마왕의 권능을 분석하고 훔쳐냈어도 이상하진 않나.”

       “슈슝! 슈슝! 왁!”

         

       속도를 올리던 파스텔은 벽에 부딪히려 하자 급브레이크했다. 빗자루가 급격히 기울여졌다.

         

       끼기긱-!

         

       코앞에 당도하고 머리가 콩 부딪쳤다.

         

       “아야!”

       “괜찮으세요, 각하?”

         

       그으으.

         

       파스텔은 머리를 문질렀다.

         

       “괜찮아요! 하여튼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스케줄이 촉박해서 이만 가볼게요!”

       “그러세요, 각하.”

         

       파스텔은 창가를 돌아보다가 열린 창문을 발견했다. 자신의 몸 사이즈와 창문을 가늠해 보곤 빗자루를 띄웠다.

         

       하나, 둘, 셋!

         

       빗자루를 꼭 잡고 질주시켰다. 몸이 뒤로 쏠리고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시야가 급변하며 빗자루가 순식간에 창문을 통과했다.

         

       시야가 탁 트였다. 푸른 하늘과 교내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날아올랐다.

         

       콜로세움 모양의 대련장과 주변 부스가 한눈에 내려 보였다.

         

       사람이 병정놀이의 장난감처럼 작았다.

         

       “와아!”

         

       모든 것이 손닿을 곳에 있어!

         

       수상한 기색이 있으면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경관!

         

       친구들, 파스텔이 지켜줄게!

         

       너희가 염원하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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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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