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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원더스타인은 마차에 오르기 전에 극장 입구 쪽을 잠시 돌아봤다.

       행사에 참여했던 서커스단 사람들이 삼삼오오 극장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 중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 참가팀이 나오자 극장의 문이 닫혔다.

       끝내 그가 찾던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샛별 서커스단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떠난 모양이었다.

       

       “단장님?”

         

       유라크네가 마차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가 갑자기 중간에 멈춰선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단원들은 루엘로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도, 그와 미노바가 약속을 했다는 것도 몰랐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가죠.”

         

       그는 마지막으로 주차장을 한 번 둘러보고는 마차에 올랐다.

         

       카바레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무언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원더스타인.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시험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들은 카바레에서 나눠준 시험의 상세한 규칙들이 적혀 있는 안내문을 돌려가며 읽었다.

         

         

       *요리사와 웨이터를 포함한 모든 종업원은 서커스 단원(고용된 직원 포함)이 맡아야 합니다.

         

       *손님에게 제공되는 모든 상품의 원가는 루즈 무역회관에 기록된 유통가를 적용합니다.

         

       *성적은 매출에서 원가를 뺀 순이익으로 평가합니다.

         

         

       위와 같은 규칙들이 도입된 이유는 시험이 후원자들의 재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후원자들이 돈을 쏟아부어 어디선가 수십 명의 일류 주방장을 초청해온다든가, 구하기 힘든 다른 지역 특산물을 싸게 공수해서 판다든가, 비싼 술과 음식을 원가 이하로 제공함으로써 매출을 뻥튀기한다든가 하는 꼼수를 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엘라를 비롯한 3명은 규칙 중에서 다른 무엇보다 종업원 조항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단장을 포함해 12명이 전부다.

         

       그나마도 돌덩이가 된 메리사와 셋이 한 몸인 트라이머리 삼형제를 셈에서 뺀다면 활동 가능 인원은 9명이었다. 고용된 랫맨들을 합쳐야 겨우 20명이 됐다.

         

       다른 대형 서커스단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머릿수가 부족했다.

         

       대결의 무대가 되는 곳은 장미 풍차 카바레의 2번 홀과 3번 홀이었다.

        두 곳은 스텝 석을 중심으로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1번 홀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20명으로 운영하기에는 매우 벅찬 크기임은 분명했다.

         

       “공연도 해야 하는데 이걸 어쩌지?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있잖아. 접객할 사람은 더 줄어드는데.”

       “돌아가면서 하면 돼요. 애초에 우리 서커스는 전시회 방식으로 계획했잖아요. 차례차례 한 명씩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하죠. 나머진 일하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무대에 오르는 식으로.”

       “핫핫, 단독 무대라. 부끄럼쟁이들에겐 힘들겠는걸?”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원더스타인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현재 우리 단원들의 연습 상태는 어떻게 되죠?”

         

       그의 말에 엘라는 눈가를 찌푸렸다.

         

       “정말 빨리도 묻네. 지난번 이후로 한 달 만인 건 알고 있어?”

       “후후, 그랬나요?”

       “그러면 안 되지. 당신이 단장인데.”

       “엘라 양을 믿고 있어서요.”

         

       뻔뻔하게 받아치는 그의 모습에 엘라는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저 입만 산 철면피.

       말해봤자 그녀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당신이 짠 대본을 100%로 뒀을 때, 대회 시작 전까지 20%는 만들어 둬야 한다고. 다들 한 달간 고생한 덕분에-여기서 유라크네와 스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현재 성취도는 23%쯤이라 할 수 있어.”

       “23%라……. 그 정도면 예선전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이번 과제는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상대가 얼마나 못 하느냐도 당락에 영향을 끼치니까.”

       “후후, 그렇군요.”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며 웃는 원더스타인.

       엘라는 그런 그를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흘겨봤다.

         

       “당신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네? 무슨 생각이요?”

       “아니. 그냥…….”

         

       엘라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일부러 이쪽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협박이나 사고사 같은 걸 언급했다가 저 인간이 정말로 실행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기에 원더스타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그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근처에 샛별 서커스단이 머무르는 호텔이 있지 않았나요?”

         

       엘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쥐고 있는 종이가 살짝 구겨졌다.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다.

         

       긴장한 엘라와 달리 유라크네는 그가 질문한 의도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해맑게 대답했다.

       

       “샛별 서커스요? 맞아요. 저기 풍선이 보이네요.”

         

       길이가 수 m나 되는 노란색의 닭 캐릭터 풍선이 어느 호텔 옥상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좌우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샛별 서커스단이 루즈에 도착하자마자 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것은 간판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서커스단의 존재를 알렸다.

         

       수탉 미노바가 내지르는 목소리는 보통 사람의 몇십 배가 되는 폐활량에 기반한 것이었다.

       저 정도 크기의 풍선을 순식간에 숨으로 불어넣는 것은 그가 자랑하는 묘기 중 하나였다.

         

       원더스타인은 그 풍선을 바라보며 잠시 게임 속에서 겪었던 추억에 잠겼다가 마차를 멈춰 세웠다.

         

       “먼저들 돌아가 있어요. 저는 갑자기 볼일이 생각났거든요.”

         

       그는 마차에서 내리더니 검은색 망토를 펄럭이며 미끄러지듯 어두운 골목길 사이로 사라졌다.

         

       유라크네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옆에 앉은 스벤이 어깨를 으쓱였다.

         

       엘라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떨리는 눈길로 바라봤다.

         

       방심했다.

       한동안 너무 얌전히 굴어서 그만 경계심이 옅어졌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 얼마든지 무자비해질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가겠다고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던 남자 아닌가.

         

       모든 일에 무심해 보이는 그가 서커스 그랑프리에 대해서는 유독 집착이 심했다.

       예선전을 통과하기 위해 대결 상대에게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자신을 보며 천진하게 웃던 루엘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 위로 죽은 학교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 지나갔다.

         

       원더스타인은 나이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았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어린 아이들의 목을 꺾고 배를 꿰뚫고 가슴을 헤집고 머리를 터트렸다.

         

       엘라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속에서 메슥거림이 치솟아 올랐다.

         

       히이잉.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떠난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를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앞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악마가 행동하기로 했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와 그녀가 맺은 계약은 2가지.

         

       첫 번째는 그녀가 그의 일을 돕는 대신 사부님과 남은 친구들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오르면 단원들을 해방해주고 두 번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목숨은 보호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받아줄 리 없었기에 조건으로 내걸 생각도 못 했다.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때,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약속은 그뿐만이 아니잖아?

         

       -언니, 나중에 길들이기 재주 또 보여줄 거죠?

       -응. 얘들도 좋다고 하네.

         

       그래. 그녀는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다른 약속도 아닌 무려 공연 약속을 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 말이 가지는 무게를 떠올려보았다.

         

       덜컹.

       그녀는 달리는 마차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어, 아가씨?”

         

       마부의 놀란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녀는 그대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보통사람에게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녀 정도 되는 뛰어난 곡예사에겐 가뿐했다.

         

       “뭐야? 엘라, 너 어디 가니?”

       “핫핫, 아까 토를 하려는 것 같더니. 멀미라도 난 겁니까?”

       “응! 속이 좀 안 좋네! 잠시 거리 좀 걷다 올게!”

         

       바닥에 착지한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보는 마차 안의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마차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갔다.

       카바레를 나올 때만 해도 그럭저럭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거리의 가스등에 불이 들어왔다.

       얼마 안 있어 원더스타인이 내렸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모자 속에서 잠자고 있던 비둘기를 하늘로 던졌다.

         

       비둘기는 잠자던 자세 그대로 공중으로 치솟더니 그대로 다시 모자 속으로 쏙 떨어졌다.

       엘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야, 구돌아.”

         

       엘라는 모자를 흔들었지만, 비둘기는 눈을 감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꼬대 비슷한 울음소리를 반복하며 몸을 뒤척이기만 했다.

         

       이 자식이…….

       방금 낙하할 때, 분명 몸을 슬쩍 비틀어 착지 지점을 조정하는 것을 봤는데.

       녀석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에효.

       많이 피곤한가 보지.

         

       그녀는 비둘기를 포기하고 대신 주머니에서 쥐를 꺼냈다.

       찍순이는 꼬리를 흔들며 그녀가 바닥에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지? 원더스타인 그 인간을 조심해서 쫓아야 해.”

         

       쥐는 빠른 속도로 어둠 속으로 후다닥 달려가 사라졌다.

         

       인스피라-스피릿 링크.

       그녀가 키르쿠스로부터 받은 은총.

         

       그녀는 자신이 길들인 동물의 시각과 청각을 공유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근처의 카페에 앉아 찍순이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찍순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며 눈을 감자, 그녀가 지금 보고 있는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으힉!’

         

       엘라는 바로 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원더스타인,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다행히 그는 책장 사이에 숨어있는 찍순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까는 먼저 돌아가서 미안하네.”

         

       그가 앉은 탁자의 맞은편에는 아는 얼굴이 앉아 있었다.

         

       샛별 서커스단의 단장인 수탉 미노바.

       그의 뒤로 보이는 구석의 작은 침대에는 병아리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이곳은 샛별 서커스단의 숙소, 그중에서도 단장의 침실임이 분명했다.

       두 단장은 루엘로가 깨지 않도록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냥 돌아간 이유가 뭐죠? 제가 아이의 병을 치료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엘라는 움찔 몸을 떨었다.

       병이라고?

         

       그녀는 듬성듬성 자라 있던 루엘로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대충 몸이 탈이 났다거나 머리를 잘못 자른 게 아니었나?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아이가 그러더군. 아빠가 대결 상대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거야. 내가 자네에게 병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지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을.”

         

       엘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왜 모르겠는가 그 마음을.

       그녀에겐 가족이 없었지만 비슷한 경험은 한 적 있었다.

         

       하늘 같던 사부님이 몸이 망가져 바닥에 엎드린 꼴로 원더스타인에게 비참하게 빌던 모습이 떠올랐다.

         

       루엘로…….

       심각한 병인 것 같네.

         

       별거 아닌 병이었다면 그 수탉이 저렇게 저자세로 나올 리 없었다.

       

       “그래서 일단 약속을 파투낸 것처럼 하고 숙소로 먼저 돌아왔네. 딸에게는 자네를 쓰러트리고 치료제를 받아내겠다고 큰소리를 쳐댔지. 딸 앞에서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네.”

         

       그의 두 눈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딸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게 더 중요하네. 빌어먹을! 내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있네! 그러니……부디 딸의 병을 치료해주시게!”

         

       미노바가 넙죽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소문을 통해 들은 것으로, 잠깐 마주쳤던 것으로 그의 성격을 파악했던 엘라 역시 그랬다.

         

       그만큼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크구나.

         

       엘라는 이제 원더스타인의 속셈이 뭔지 알아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까마귀맛쿠키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복귀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같은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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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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