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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 * *

       

       

       

       

       해를 지나 1월. 카이저 빌헬름 2세와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내가 독일 대사한테 카이저의 방러를 허가하고, 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뭐 알아보면 동프로이센 국내 정비를 좀 하느라 시간 좀 쓴 모양이다.

       

       직접 만난 빌헬름은, 가까이에서 보니, 인터넷에서 보던 그 위엄 넘치는 외팔이 카이저와는 많이 달랐다.

       

       가족들을 잃은 탓인지, 빨갱이들의 위협에서 살아남느라 고생한 탓인지, 얼굴이 퀭하고 실제 역사보다 더 늙어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나를 대하는 것이 깍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정말 최대한 상대를 추켜 세우듯 미소를 지어주거나. 나를 직접 칭찬해주거나 하면서.

       

       참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

       

       함께 크렘린궁을 거닐면서 그는 열심히 독일제국의 사정에 대해 말해줬다.

       

       

       “하하하. 정말 의젓하게 컸군.”

       “감사합니다.”

       

       

       외팔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연신 칭찬했다.

       

       부담스럽게 왜 그래.

       

       그렇게 굴면 나름대로 전생에 동방예의지국 출신으로서 기분이 참 좀 그렇단 말이다.

       

       

       “니키가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말이야. 허허허.”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람 좋은 얼굴로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할아버지가.

       

       레닌을 러시아에 투하한 놈이 뭐래 진짜.

       

       내가 뭐 무능한 니콜라이 2세 편을 들지는 않겠다만, 결국 차르일가를 죽게 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혁명을 의도해 레닌을 투하한 것은 이 양반이잖아.

       

       

       “그런데. 그 연약한 몸으로 정말 내전에서 군을 지휘했다는 말인가?”

       “저야 뭐 얼굴만 내밀었죠. 군을 지휘한 것은 검은 남작을 비롯해 안톤 데니킨 대장,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 등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얼굴만 내밀었다.

       

       물론 실제로 싸우기는 했지만, 전술 전략은 대부분 검은 남작의 머리에서 나왔고, 처음에는 콜차크가 나를 제대로 뒷바라지해줬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막아낸 것도 역사를 알기에 콜차크가 올 때까지 버틴 거였으니까.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게 있잖아. 만일 콜차크가 온다는 걸 몰랐다면 튀지 않았을까.

       

       

       “그렇군. 전투 경험이 많은 장성과 정예화된 군대만 수백만이라지?”

       

       

       저 탐욕스러운 눈을 봐라. 내 군대를 탐내는 저 눈!

       

       왜 내 군대를 당신이 탐내요.

       

       절대 내 군대는 당신의 독일 제국을 위해 싸울 생각은 없다.

       

       당신은 나중에 내가 독일 빨갱이를 모조리 잡고 나면 거스름돈으로 북독일을 받으면 될 뿐이다.

       

       독일을 주는 건 오로지 내 손에 달려 있다.

       

       

       “예. 그럼, 오늘 방공협정만 맺으러 오신 것인지요?”

       “그 전에 그. 카이제린 문제 때문에 말이야.”

       “아, 빅토리아 루이제 황녀의 제위 관련 문제도 있었지요.”

       

       

       그거 잊고 있었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고? 나라가 한번 뒤집어지면 그 틈을 이용해 원하는 대로 저지르면 되는 거지.

       

       나 봐라. 적백내전을 기회로 러시아 귀족들을 협박해서 내 정책 따르게 하고 겨우 민심 돌릴 수 있었던 거잖아.

       

       물론 아직도 사회주의자들은 많지만, 최소한 볼셰비키 짓은 하지 않는다.

       

       

       “아나스타샤. 아니지. 차리나. 우리 루이제가 카이제린에 올라도 아무 문제 없을까?”

       

       

       외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흐음, 그러니까 내 상황과 비교해달라는 건가.

       

       그래. 뭐 굳이 따지면 아무 문제가 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

       

       물론 러시아와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야.

       

       걱정이 많은 모양인데. 애초에 독일은 독일의 카이저인 빌헬름이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러시아는 의외로 괜찮더군요. 애초에 제가 아니면 아닐 상황인 것도 있지만 말이죠.”

       “음, 그럼 좀 도와줄 수 있나?”

       ”여제인 제가 지지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본심은 결국 그거구나.

       

       여제인 내가 카이제린을 지지해줬으면 해서.

       

       동프로이센만 가진 만큼 이 사람은 외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거다.

       

       그것도 군주제 국가의 지지가.

       

       영국을 선택하자니 본래 적대국인 것도 있고,  뭐가 되었든 공산 독일을 인정했으니 섭섭하겠지. 하지만, 자기네가 도와준 러시아라면 다르지. 심지어 여제인 국가고.

       

       

       “크흠. 아무래도 좀 융커들이나 군부의 눈이 있어서 말이네.”

       “어차피 이미 다 뒤집힌 거 아닙니까. 제가 지지하는 건 어려울 거 없습니다. 제가 인정하면 동프로이센의 융커나 군부가 뭐 이미 황위도, 자기네 밥줄도 위험한 상황에서 카이제린 문제로 독일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겠죠.”

       “아, 그렇지. 음. 방공협정을 맺고 본격적으로 공산 독일을 어떻게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네.”

       

       

       그는 야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역시 외교 말아 먹은 인물답다.

       

       하여간, 조금만 생각을 해보자고.

       

       

       “아직 안 됩니다.”

       “아직 안 되다니?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저 빨갱이들을 잡는단 말인가?”

       

       

       빌헬름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응시한다.

       

       저 눈을 보니. 거짓말이지? 너희 아니면 독일 되찾을 수 없어! 이러는 얼굴 같아서 좀 안쓰럽긴 한데.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 아니냐.

       

       프랑스에게 죽창 박겠다는 생각 이전에 내부부터 다스린다는 선택진 없었냐.

       

       

       “러시아 내부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카이저께서도 아시다시피 독일은 저희 처지에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음. 그렇긴 하지.”

       “더군다나 오히려 지금 저 공산 독일을 치게 되면 그걸 명분으로 저놈들은 자기들 원하는 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러시아가 먼저 침공했다. 라면서 국제사회에 저희 러시아를 개새끼로 만들 테고, 카이저께서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인 매국노라고 취급받을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나?”

       

       

       이 사람이 이쪽 사정을 아직 잘 모르네. 이러니 말아 먹었지.

       

       

       “뭐 독일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저희 러시아는 내전 당시, 볼셰비키가 외국군이 백군을 지원한다고 백군을 매국노 세력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 역사에서는 그게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지키는 수호자로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그렇군. 일리가 있겠군.”

       “루이제 황녀께 통일된 독일제국을 물려주고 싶으신 건 알겠지만, 지금은 좀 시간을 가질 때입니다.”

       

       

       이 양반도 알고 있겠지. 지금 황족들이 죄 죽어나갔다.

       

       자신마저 죽게 되면 루이제가 어떻게 될지 걱정될 거다.

       

       만일 독일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면 적당히 망명 쪽으로 길을 잡던가 그러겠지만.

       

       나도 빌헬름을 그냥 놓아줄 생각 없거든.

       

       어쨌든 히틀러가 독일 전체를 통일해 신성로마제국 판도를 만드는 꼴은 보기 좀 그러니까 말이다.

       

       헝가리나 체코 슬로바키아 쪽을 생각하면 굳이 빌헬름이란 카드가 없어도 독일 통일은 힘들 거 같긴 하지만.

       

       어쨌든 북독일을 지배할 인물은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빌헬름 3세고, 카이제린 루이제고 다 인정해주면서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다.

       

       

       “언제로 보고 있나?”

       “흠. 적어도 1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그냥 추측 뿐이다.

       

       적백내전이 백군의 승리로, 지금 역사가 완전히 뒤집어진 이상, 언제고 공산 독일이 혁명을 위해 전쟁은 준비할 거다.

       

       심지어 경제 대공황 겪으면 더 해보려고 할 테고.

       

       그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대충 십여 년은 걸릴 거라고 판단한다.

       

       그 외에.

       

       대체역사 소설 같은 거 보면 주인공이 미래 지식만 믿고 방심하다가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만큼.

       

       늘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쪽도 독소전에서 히틀러에게 제대로 한대 얻어맞은 스탈린 마냥 침략당하지 않고, 동프로이센, 폴란드 등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야지.

       

       

       “그 정도로?”

       “전쟁을 시작하는 건 저놈들이 될 테니까요.”

       

       

       이쪽은 절대로 먼저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다.

       

       적어도 동프로이센이나 폴란드, 오스트리아가 공격 받기 전까지는 말이지.

       

       

       “어째서 그리 생각하나?”

       “우리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적이 전력이 있고, 저 공산 독일은 세계혁명을 위해서라도 러시아를 물리치려 할 겁니다. 그게 저놈들이 정권을 잡은 이유 중 하나니 반드시 그럴 겁니다.”

       

       

       그 정도는 알아 먹을 거다.

       

       외교는 말아 먹긴 했어도, 나름 그래도 잘한 점은 있잖아.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으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내 말을 듣던 빌헬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그럼 저놈들이 전쟁 준비가 되면 온다는 뜻이로군.”

       “그렇죠. 카이저께서는 동프로이센의 힘만 기르시면 안 됩니다. 아마 저놈들은 독일 통일을 위해 동프로이센에 빨갱이를 밀어 넣을 겁니다. 그들을 색출하셔야 합니다.”

       

       

       빨갱이의 무서운 점은 늘 생각하지만,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니까.

       

       결국 썩어 빠진 곳에 빨갱이라는 붉은 바퀴벌레를 밀어 넣어 선동으로 붉게 물들이는 것이 패시브잖아.

       

       

       “허, 그 어린 아나스타샤가 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해.”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네가 못난 거라고는 생각 못하니.

       

       심지어 동프로이센은 융커로 가득 차서 더 위험하지 않나.

       

       그러니까 동프로이센만은 빼앗기지 말라고.

       

       

       “그날 가족들이 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지. 나도 내 가족들이 그렇게 테러당해 죽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네.”

       

       

       그래. 그렇게 다 죽었는데, 생각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당신의 자업자득이라고 그거.

       

       뭐 내 탓에 나비효과로 네덜란드 망명으로 끝날 것을 피를 보게 됐지만 말이야.

       

       

       “저는 제 생에 세계의 모든 빨갱이를 다 잡을 겁니다. 그러니 당숙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런가. 아참, 혼인처는 정했나?”

       “아뇨.”

       

       

       내가 왜 그걸 정해야 할까? 진지하게 육하 원칙으로 코치코치 캐묻고 싶다.

       

       아, 그래. 진정해야지. 이 사람은 내 사정을 모르잖아.

       

       외부인 입장에서야 궁금하겠지.

       

       이러면 당장 합중국 국민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런. 아무리 차르라 해도 혼인 적령기의 여인이 아닌가?”

       

       

       이 틈에 또 치고 들어오네.

       

       어떻게든 동프로이센 쪽 애들이랑 붙어 먹게 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애초에 그럴 만한 인물이 지금 있나? 없을 텐데.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당장 저만 해도 몸이 약해 고생했습니다. 저는 혈우병을 물려주기 싫습니다. 그렇다고 내 남편이 될 사람까지 자식이 없으면 좀 안쓰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당장 알렉세이만 해도 혈우병으로 사경을 헤맸고, 라스푸틴이 그 알렉세이를 호전시킨 덕에 니콜라이 2세에게 대접을 받지 않았나.

       

       그렇게 총애를 받아 점점 위세가 강해지고, 급기야 권력자가 되기까지 했지.

       

       뭐 나라면 라스푸틴 같은 놈은 처치하겠지만, 어쨌든 혈우병의 변수는 늘 있다.

       

       무엇보다 내 전생을 생각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건 좀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는 변명을 해야지.

       

       

       “저는 국가와 혼인을 했습니다.”

       

       

       애초에 결혼하면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어지지 않겠냐.

       

       더군다나 나는 내 특수한 사정을 생각하면 결혼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을 터다.

       

       내 대에 러시아를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데, 노력하고 있으면 솔직히 혼인할 정도로 여유로워지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럼 후계는 어쩌려고 하나?”

       “지금은 뭐 황족도 아닌 키릴 대공의 아들 블라디미르를 크렘린궁으로 들였습니다. 제 대에 나라가 뒤집어졌으니, 법도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요.”

       

       

       충실한 제정주의자라면 불편해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곧 법이다.

       

       내 대에서는 로마노프 왕조가 아닌 오로지 아나스타샤 왕실이라고 봐도 되겠지.

       

       블라디미르는 적절히 이쪽 뜻대로 키우면서 두마가 자기를 지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는 쪽으로 유도해야겠지.

       

       2차 세계대전 쪽에 참여하면 적어도 지지 세력은 좀 나오지 않겠나?

       

       블라디미르의 정통성도 지금 내가 아니면 안 되거든. 이미 키릴 쪽은 내가 아예 유배만이 아니라 작위도 전부 거두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

       

       절대 차르인 나를 감히 내전 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황족 놈들이 뭘 어쩌겠나?

       

       블라디미르만 특수한 경우라고 치고 내 후계자로 하면서 천천히 두마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게, 그쪽 사람들과도 친분을 나누게 하고.

       

       2차 대전에서 좀 이름 간판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군인으로 나설 수 있게 해야지.

       

       21세기에 스페인 왕녀가 왕위를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는 소식도 들었으니, 지금 블라디미르에게는 그쪽 루트가 나을 거다.

       

       

       “생각해둔 것이 많구나.”

       “네.”

       “폴란드는 저리 내버려 둘 셈인가?”

       

       

       폴란드를 저리 내버려둔다.

       

       아니, 그럴 생각 없는데. 이 정도면 정말 외부에서는 뭘 이렇게 폴란드를 봐주냐는 말도 나오지 않을까.

       

       세계에서 보는 시선은 아마 차리나가 폴란드를 많이 봐준다. 이 정도겠지.

       

       그러면 백군부에서 아! 폴란드 조지고 싶당! 이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딱 폴란드만 개새끼로 찍히고 진짜 차리나는 성녀라고.

       

       

       “폴란드도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쪽도 염려 마세요. 카이저께 위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겁니다. 방공협정은 뭐 이렇다 할 세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산 독일과 싸우는 아래에서 폴란드가 독일제국을 어쩌진 못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군. 그 방공협정 말인데. 아국이 들어가면 또 어떤 국가가 들어가나?”

       

       

       아, 그렇겠군.

       

       동프로이센은 지금 아군이 많이 필요할 테니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화는 아무래도 카이저와 만나는 거다 보니 대화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는 대역마다 영국이 살아남길래 영국 조지기 루트도 가보고 싶은데.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전화에 수많은 ‘후후벨카……’란 댓글을 보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흠.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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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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