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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대륙에서는 황실의 인정을 받은 공식적인 단체부터 이름도 모를 지방 소모임까지 다양한 학회가 열린다.

        이번 학회의 경우 마탑에서 개최되기에 갤러리에 관련 정보가 많이 떠돌아 다녔다.

        새로 개설된 ‘마탑 학회 게시판’에 올라오는 개념글만 봐도 누가 유력한 입상 후보인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

        [이번에 신성학파에서 만든 연구 결과물 외부 평가 어떰?]

       

        (사진)

       

        이름은 ‘마법의 조개껍질’이고

        마력 주입하고 조개에 궁금한 거 물어보면 성신께서 해주시는 답변을 얻을 수 있음

       

        사용 제한도 없고 단가도 낮고 엡실론 관에서 진행하는 시연만 제대로 되면 황실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정도면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가?

       

        — 걍 고리타분한 성경 구절이나 읊는 거 아니냐

        — 지금 보고 있는데 사람들 꽤 많이 몰림

        — 흠, 저따가 주딱 정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줄려나?

         ㄴ 걍 오류날 게 뻔함

         ㄴ 공식 시연에서 그딴 거 물어보겠냐 ㅋㅋ

         ㄴ 탑주라 하면 세상 뒤집어지는 거 아님?

         ㄴ 헉

         ㄴ 아니라 해도 뒤집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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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참여하는 팀들과 부지런히 접촉해야 하는 기자들 역시 이로 인해 손에 위치노를 하나씩 쥔 채로 이리저리 시연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멜은 엡실론 관의 한 강의실 복도에 놓인 자판기에서 막 발행된 신문 한 부를 뽑으며 중얼거렸다.

       

        “요즘 것들은 이런 걸 보고 기사를 쓰는 건가?”

        “아, 갤러리 말씀이시군요?”

        “출처도 신뢰도도 없는 정보를 가공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마탑에서 열리는 학회이니만큼 약간의 특수성이 작용한 것이겠죠.”

       

        시연은 아직 시작되기도 전인데 벌써 ‘마법의 조개껍질’에 대해 다룬 기사가 가득했다.

        ‘신의 말씀, 마법을 통해 인간에 닿다?’ 같은 자극적인 제목.

        내용은 하나같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근 화제인…….’ 등으로 시작하는 기사들이었다.

       

        각 학파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는 듯 한데, 고지식한 멜의 입장에선 탐탁지 않았다.

        갤러리라니. 지나치게 저속하고 품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닌가.

        로브 자락에 얼룩만 묻어도 질색팔색하는 마법사들이 뒤로는 ‘교미 중 색 변하는 카멜레온 성기 근접촬영’이라든가 ‘주딱 겨드랑이 빨고 싶다’같은 글을 올렸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허나 그레엄은 자신들에게 갤러리의 존재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사진기를 꺼내었다.

       

        “덕분에 멜 님께서도 유산의 조사에 시간을 투자하실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 이름을 달고 이런 무성의한 글을 복사하고 싶진 않군.”

        “최소한의 형식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추후 황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요.”

       

        황실의 심사관 자격으로 이곳에 온 것이기에 학회에 관심을 갖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래서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엡실론 관에 걸음한 것이었다.

        신성학파 출신의 고위 마법사이자 ‘대륙 마법 연구회’ 소속인 ‘스텔론’ 경이 이끄는 팀은 현재 유력한 대상 후보였으니까.

        그의 연구결과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멜은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오, 클락 또 보게 되는군.”

       

        그는 손을 붕대로 가린 여인과 함께 시연을 준비 중인 마법사들 옆에서 열심히 조개껍질을 나르고 있었다.

       

        “자네는 기숙사 사감 아니었나?”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인원이 부족해 생활부에서 지원자가 차출되기도 한답니다. 참, 안 그래도 두 분을 찾고 있었는데 잘 됐군요.”

        “우리를?”

       

        그는 의자에 앉은 두 사람에게 투명한 물병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레엄이 물병의 라벨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 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전에 말씀하셨던 이상현상 말인데 사실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어디에서지?”

        “알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보시다시피 제가 시간이 빠듯해서요. 지금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잠을 쪼개가며 일하는 실정입니다.”

        “이보게 지금 자네가 누구 앞에서 배짱을 부리는지…….”

        “시끄럽다 그레엄. 클락이라고 했지, 난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하를 제지시킨 멜의 눈이 반짝였다.

        협상과 거래라면 그녀가 무엇보다 자신있는 분야였다.

        뛰어난 상인은 절대 상대방이 주도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클락이 무엇을 원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무려 5년째 기숙사를 관리하는 사감이었다.

       

        능력, 재력, 출신 어느 것도 비범한 구석이 없다는 뜻.

        그렇다면 자신이 기자라는 직함을 벗어던지는 순간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딱 한 번만 제시하는 금액이다. 네 인생에 두 번은 없을 기회이니 잘 생각하고 그때 보여준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에 대해 설명해 봐라.”

       

        멜은 자연스럽게 품에서 백금화 한 닢을 꺼내었다.

        이거라면 중소 학파가 1년 동안 지원받는 연구비의 2배는 되는 금액이었다.

        어지간한 교수라도 눈이 돌아갈 만큼 찬란한 색의 주화.

       

        그러나 클락은 위치노트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잠깐 떼더니 놀란 투로 손을 내저었다.

       

        “아뇨! 저는 돈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닙니다. 딱히 그만한 금액을 받을만큼 대단한 정보까진 아니고요.”

        “정말인가?”

        “예, 물론 이 정도 금액이라면 얼음 정수기에 자동 높이조절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돈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클락의 손가락이 막 시연을 시작하려는 단상 위의 마법사들을 가리켰다.

       

        무엇을 원한다는 거지?

       

        “두 분은 기자이시죠? 그냥 저랑 같이 좀 다니시면서 학회에 참가하는 팀들에 관한 기사나 좀 써주시면 됩니다.”

        “기사?”

       

        스텔론 경이 ‘마법의 조개껍질’을 꺼내자 강의실로 사용하던 방 전체가 마치 성신이 강림한 것처럼 환하고 따뜻한 빛으로 휩싸였다.

        매끄러운 조개의 껍질이 열리며 포근한 빛을 품은 구체가 몇 센치 위로 떠올랐다.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마친 그가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는 누구나 신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오오……!”

        “지금부터 이 마도구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겠습니다. 크흠, 마법의 조개껍질 님. 성신의 진노를 사버린 대륙에 재앙이 도래하여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시기는 과연 언제입니까!?”

       

        멜은 실망한 듯 고개를 작게 저었다.

        첫 시연인 만큼 보수적이고 답을 맞추기 쉬운 질문을 설정한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성서에 따르면 이는 서력 1666년으로, 현재로부터 약 6백년 뒤의 계시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교국 내에서도 분파에 따라 이견이 있었지만 ‘단말마의 고서’라 불리는 신비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거라는 해석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6…….>

        “오오, 역시……!”

        “제대로 작동하는군요.”

       

        출력되기 시작하는 음성.

        더는 볼 게 없다고 생각해 일어나려던 순간, 클락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지?”

        “기사를 쓰셔야 한다니까요.”

        “그럴 가치도 없는 장난감이다, 놓지 않으면 당장 손목을 잘라버릴…….”

        <5……4…….>

        “응?”

       

        의아해하던 멜을 도로 앉히며 클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어, 이거 왜 이래!”

        “마법의 조개껍질 님?”

        <3……2……1…….>

        “재, 재앙이다…… 멸망이 도래한다!!!!”

        “아니, 아닙니다! 뭔가의 사고, 잠깐만요!!”

       

        그날, 스텔론 경의 팀은 평가에서 최하점을 맞았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기사 덕에 신성학파 뿐 아니라 교국의 사제들까지 혼란에 빠져들었다.

       

       

       

        *

       

        “진짜로 안 들키는 거 맞죠?”

        “그렇다니까. 놀라서 카운트 끝나기 전에 조개껍질 발로 부숴 버렸어.” 

       

        해주학파의 라운지.

        나는 로브를 벗고 가쁜 숨을 내쉬는 이자젤을 안심시켰다.

        대륙의 모든 마법사들이 몰려든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제 아무리 그녀라도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태연하게 갤질하는 나를 괴물을 보는 눈으로 바라봤다.

       

        “안 떨리세요……?”

        “내가 왜?”

       

        난 저런 마법의 소라고동인지 조개껍질인지에 걸린 마법을 조작할 능력이 못 된다.

        즉,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캥길 것도 없다.

        마음이 너무 여려서 멜이 제안하는 거금도 차마 받지 못하지 않았는가.

        남들이라면 양심을 팔아 자기가 가진 정보를 부풀렸겠지만, 나는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나중에 다시 조사한다 해도 넌 파문당했으니까 마력흔이 미티어 학파의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서 못 잡을 거야.”

        “저 진짜 어렸을 때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헌금 많이 하고 살았거든요. 이런 짓 했다가 성신께 천벌이라도 받으면 어떡하죠?

        “그런 놈이 검은별엔 왜 들어갔냐. 그보다 너 부잣집 딸이었어? 왜 흑마법사 노릇이나 하고 다니는 거야?”

        “말하자면 긴데요. 일단 제가 선산을 태웠거든요……?”

       

        더 안 들어도 될 것 같군.

       

        일단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시제품들은 보안이 취약했고, 경쟁 학파도 아닌 생활부의 마법사들이 물건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손을 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자젤의 극마법을 이용해 살짝 장난질을 쳐놓고 그걸 멜과 그레엄이 받아서 기사로 쓰게 한다.

        한 번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팀들은 줄줄이 수치를 머금고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비나의 ‘얼음물’이 후보에 오르겠지.

       

        “여기 오늘 자 신문들이니까 읽고 다음 후보 추려 놔. 난 그 4대 불가사의인지 뭔지 설명해주러 다녀올게.”

        “앗! 잠깐만요!”

        “이것들은 태우지 마라? 나도 돌아와서 봐야 하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는 이자젤을 라운지에 딸린 쪽방에 밀어넣었다.

        불안했는지 같이 있고싶어 했지만 프리나가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학파규칙 때문에 빠르게 나와야 했다.

        ‘빨간 머리 여자랑 같은 방에서 단 둘이 10초 이상 머물지 말 것!’이라니.

       

        시간이 빡빡하다 불평하며 멜을 만나기 위해 메릴랜드 관으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첫 주 출근을 마치고 ‘역시 난가?’라며 의기양양하게 집에 왔는데,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10번 틀리고 지금까지 30시간 정도 꼬르륵 했다가 되살아 났습니다.
    조금씩 익숙해지겠죠.
    연재주기도 빠르게 정상화해보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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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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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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