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좀 나왔는가?”
“아니요. 일단 밤이 왔으니까 변하는 게 조금 있지 않을까요?”
하루 종일 영혼들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들을 홀렸을까.
바닥에 주저앉아 하루 종일 살펴도 딱히 감이 잡히지는 않았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어때?”
내 질문에 옆에 앉아 있던 알루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영혼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어둠의 마나나 마법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레나는?”
“….무언가 이상하긴 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이들을 내 옆에 붙어 있게 했다.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느껴지는 게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지만 다 필요한 일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인지 알루어드가 나에게 물어왔다.
“크리스님께서 의도하시는 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알고 배우기는 해야지. 크게보자면 무당은 두 종류로도 나눌 수 있어.”
“두 종류요?”
클로셀 영감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기에 파라몬영감과 나머지의 눈에 궁금증이 생겨났다.
“나처럼 신기가 강해서 신이 내려 무당이 된 사람을 강신무당이라 그래. 그런데 꼭 이렇게 해야만 무당이 되는 건 아니야.”
“크리스님 처럼 신을 직접 몸에 모시지 않아도 무당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알루어드와 세레나가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특히나 하이 엘프인 세레나의 경우엔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완전히 무당이라고 할 수는 없고…비슷한 거긴 한데…재능이 없어도 내가 하는 의식들을 잘 배우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파라몬 영감이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인가? 마치 검술과 같군.”
“….영감님은 타고났지 않나요?”
“그 두 개가 합쳐지면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다네. 사실은 노력이 대부분일세. 궁금하니 마저 설명해보시게나.”
영감의 말이 맞다면 검술이랑은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경우엔 타고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니까.
“어쨌든…신내림을 받지도 않고 나처럼 칼위에서 춤을 출 필요도 없어.”
“마…많이 다르군요.”
“대신 굿판에서 악기를 연주해. 보통 가문을 타고 내려와서 ‘세습무’라고도 부르는데…”
악기를 연주한다는 말에 알루어드가 옆에 세워둔 종을 바라봤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습니다.”
나는 몰래 세레나를 흘깃 쳐다 봤다.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세습무를 이어가는 집안에 태어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다.
보통 남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된다.
둘다 꾸준히 무속에 대해 배워나가지만 여자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세습무의 집안에 태어난 여자는 어떠한 기간이 올때까지 그것에 대해 배울 수가 없다.
단 한 자락도 그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웃긴 것은 세습무의 집안에는 여자만이 정식으로 무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맺어 놨다고 하시더니…”
그 방법은….
결혼이다.
“참나… 세습무는 세습무끼리만 결혼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관습은 그랬지만,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맺어 놓은 신이 굉장히 큰 신인데.
“…… ?”
멀뚱멀뚱 나를 보는 세레나에게 손을 휘적여 주었다.
가만히 보면 참 공교로운 인연이다.
당산나무를 모시는 부족의 여인.
그것도 하이 엘프.
굳이 따지자면 당산나무의 당산신은 다른이름으로도 부르니….
“성황신을 모시는 집안인가…?”
어쨌든 세습무의 집안에 태어난 여자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무업에 관해 배울 수가 있다.
집안마다 굿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배우라는 것이다.
“이걸 내가 가르쳐도 되나…?”
보통은 시어머니한테 배우는 게 관습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자잘한 것들을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나는 대충 생각을 정리하며 바닥에 놔두었던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르릅 –
알루어드는 이제 차가 질리는지 더 이상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크리스님, 오늘 하루 종일 차만 드셨습니다. 평소에는 잘 드시지도 않던 것을 왜…”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걸 어떻게 다 가르친다는 말인가.
가르칠게 정말로 산더미였다.
“발복이라고 그래.”
“….예?”
“신이 몸에 깃들면 취향도 닮아. 내가 점을 보는 것도 칼위에 올라가는 것도….음….. 신의 흔적이 드러나는 건 전부 발복이야.”
“발복….발복…”
알루어드가 여러 번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알루어드한테 이런걸 가르쳐도 되는 걸까…
따지고 보면 조금 다른 업계이지 않은가.
내 생각은 등에서 들려오는 옹알이에 깔끔하게 해결되고 말았다.
“아부우!”
“루나는 재능이 많으니까, 두 개 다 해. 성녀도 하고 무당도 하고.”
“무다아?”
저쪽 업계의 성녀가 내 동생인데 협업하는 셈 쳐도 될 것 같았다.
“크리스…힘들면 제가 잠시 루나를…”
휙 –
“….?”
세레나가 팔을 뻗자 루나가 고개를 돌렸다.
휘익 –
마치 불만을 토하듯 다시한번 고개를 돌리는 루나.
“내 등에 있고 싶은가 보지.”
곧이어 옹알이가 터져 나왔다.
“바우우!”
바둥거리는 루나에게 방울을 쥐어 주자 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츄읍 –
“루나…그건 사탕이 아닌데…”
박수무당의 방울을 먹고 자라는 성녀라니….
이게 맞나 싶다.
“혼란스럽네 진짜…”
차를 한 번 더 홀짝이며 빙그레 웃고 있는 영감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슬슬 확실해지고 있으니 말해줘도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싸움이 없을 것 같으니까, 쉬어도 될 것 같아요.”
“단비 같은 소식이구만. 병사들에게 전하도록 하지.”
“흐음….”
아까부터 놀랍도록 마음이 차분했다.
정말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는 느낌.
영감님 역시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는 듯했다.
“자네 오늘은 사람이 조금 다르구만.”
“막간의 휴식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보다…”
돌아왔던 영혼들이 다시 성문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눈들.
그리고 홀린 듯이 움직이는 모습.
“많이 다른데…”
네크로맨서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느끼기로 그들은 망자를 희롱하고 권속으로 삼는 족속들이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영혼들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우리 쪽 방법인 것 같단 말이야…”
해를 끼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홀려놓았다.
물론 저렇게 산으로 간 영혼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겠지만, 산으로 유인하는 수단이 점잖았다.
후르릅 –
“이런 걸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짚이는 것이 있는가?”
자꾸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사람이 아니다.
지금 떠오르는 존재는 몬스터이니까.
“영감님, 혹시 주변에 오크가 있나요?”
“정찰대에게서 그런 보고는 없었네.”
주변에 오크도 없는데 왜 자꾸 그놈이 생각날까?
정식으로 신내림을 받고 처음으로 본 신점.
파렴치하게도 첫 점사의 복채를 외상으로 치른 놈.
“이 새끼 설마….”
“그러고 보니 이상하리만큼 오크들이 보이지 않는군.”
영감님이 나를 빤히 쳐다 봤다.
“자네, 엘프의 숲에서도 오크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별건 아니고, 복채를 떼먹고 도망간 오크가 하나 있어요.”
“허, 오크에게도 점을 봐주었는가? 살다 살다 별 이야기를 다 들어 보는군.”
경험 많은 영감이라면 무언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오크에게도 마법 같은 게 있나요?”
영감이 웃기는 소리를 다 들어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가 쓸 정도로 마법이 쉽지는 않다네. 기본적으로 오크는 머리가 나쁘니…”
“…그렇죠?”
알 수가 없으니 곤란할 따름이다.
원인을 밝혀야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을 텐데….
홀린 영혼들을 그대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밝히지도 못한 채로 깨워 버리기도 찝찝했다.
다행인 점은 영혼들에게 해가 가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
오히려 몸부림쳐야 할 영혼들이 잠시나마 슬픔을 잊고 있었다.
“멀쩡한 어르신 한분 깨워서 알아봐야겠네. 다들 이제 그만 가시죠.”
“그러세.”
“알루어드랑 세레나도 따라와서 봐야 해.”
영감님이 후련한 듯 말했다.
“얼른 가서 병사들이 쉴 수 있게 해야겠구만. 다들 기뻐할 것이네. 지칠지대로 지쳐있는 사람들이니.”
루나를 고쳐 업으며 몇 번 흔들어 준 나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문으로 향하는 길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어…어째서…! 아직 시간이 안 됐지 않습니까?”
늙은 마법사들에게 잡혀가고 있는 젊은 정령사.
압송을 당하듯 양팔이 잡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분명히 교대까지는 아직 시간이…!”
“험험…그 친구가 오늘은 조금 빨리 기절했지 뭔가?”
“그럼 신관님들께 부탁해 회복을…!”
정령사를 끌고 가던 마법사가 혀를 찼다.
“마나가 어디 신성력으로 채워지겠는가? 잔말 말고 따라오시게.”
“제…제발…저도 아직 마나가 다 회복이 안 됐습니다.”
“쥐어짜면 더 나오는 것이 마나일세.”
정령사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저 말고 그 친구를 쥐어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의 동료가 들었다면 상처를 입었을게 분명한 말.
하지만 말을 내뱉은 정령사는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이제 안 나오네.”
“…예?”
“다 짰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