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3

        

       “놓쳤군.”

         

       그는 뒷골목 구석에 있는 쥐 사체를 집어 들고 거기에 손톱으로 문양을 새겼다. 그리고 허공에 띄워서 그대로 자신에게 엿을 날리고 있는 거울 파편을 향해 집어 던졌다.

         

       퍼엉!

         

       파편에 닿은 쥐는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거울 파편을 모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 중심부에 있던 파편 하나는 가루가 되지 않고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대충 사포로 문질러 육각형으로 만든 것 같은 형상이었다.

         

       육각형의 거울 조각은 기이하게도 햇빛을 받아도 빛을 반사하지 않았고, 도리어 빛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빛을 빨아들이는데도 비치는 풍경은 그대로 비추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었다.

         

       ‘안눈(Annwn)의 경계 주술. 그중에서도 털루이스 테그(Tylwyth Teg)의 통행증.’

         

       진성은 거울 조각을 보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안눈의 경계 주술은 유럽에서 주류로 사용하고 있는 켈트 주술의 한 갈래로, 웨일스 지방의 주술사가 주로 사용한다. ‘거울’이라는 주술적 매개를 이용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힘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잘 다루는 이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도망을 칠 수 있다고 한다.

         

       방금 점술사가 했듯이 거울 속으로 몸을 던져서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용법이지만, 경지에 이른 주술사가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눈동자를 거울 삼아 도망을 칠 수도 있다.

         

       진성은 허공에 둥둥 띄운 거울 조각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어제 벌레를 통해 보았던 문양을 떠올렸다.

       ‘청소’를 당한 벌레가 죽음과 함께 그에게 보내왔던 문양을 말이다.

         

       뒤틀린 고래가 헤엄치는 듯한 기괴한 형상.

       소용돌이치는 눈동자를 사방으로 흔들며 허공을 부유하는 듯한 모습을 한 그것은, 천체가 소용돌이치는 눈동자가 되고 빛무리가 선을 이루고 면을 만들며 비틀린 몸체를 만들어 그 형체를 이루었다.

       사람의 눈높이로는 쉽게 눈치챌 수 없으며, 오직 낮은 곳에서 우러러보아야만 볼 수 있는 문양.

         

       ‘크롬 크루어히(Crom Cruach)의 인신공양 제단 문양.’

         

         

         

        * * *

         

         

         

       “아휴-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네?”

         

       러시아의 오지에 있는 버려진 벙커.

       벙커의 가장 안쪽에 있는 거울에서 수염을 기른 남성이 튀어나왔다.

         

       진성의 공격을 피해 도망쳤던 점술사였다.

         

       그는 곰팡이가 피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벙커를 쓱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며 자신이 튀어나온 거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벙커의 깊숙한 곳에서 거울에 상이 맺힐 리는 만무하건만, 그가 마주 보고 있는 거울에서는 뚜렷한. 누가 보아도 사람의 인영(人影)이라 할 법한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자신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남성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눈동자를 이곳저곳으로 굴렸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웬 괴물 새끼를 만나네. 제기랄.”

         

       거울에 비친 모습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남성의 행동을 따라 해서 입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입을 움직이며 목소리를 발한 것이다. 그것도 한낱 거울에 비친 그림자 주제에 말이다.

         

       “눈치챘던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시나? 응? 어떻게 생각해요?”

         

       여성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거울 밖의 남성은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그림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점술사는 그림자의 말에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흐-응. 둘?”

       “그래.”

       “하나는 우리가 하려는 짓을 간파한 거고. 또 하나는 뭐-얼까요?”

         

       그림자는 능청스럽게 묻는 그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긴. 그냥 그 새끼가 괴물이었을 뿐인 거지.”

       “어머?”

       “괴물이 뭐 이것저것 재고 달려드는 거 봤어? 먹음직스러우면 달려드는 거지.”

       “어머머, 먹음직스럽다니. 그런 말은 부끄럽네?”

         

       점술사의 얼굴은 부끄럽다는 말과는 다르게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 조~오금 마음에 안 드네. 응? 마음에 안 들어요.”

       “하, 누군 마음에 드는 줄 알아? 일방적으로 처맞았는데 나도 기분이 나빠!”

       “우리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좀 하겠다는데 이렇게 초를 치다니!”

         

       쾅!

         

       그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벙커 안에 굴러다니던 고물을 발로 차버렸다.

         

       “안 그래요? 제 여동생한테 축복 좀 걸어주겠다는데 이런 대접이 말이 되냐고요!”

       “어쩔 수 없지. 보호자가 싫다는데. 옘-병.”

       “싹수없는 년 하나 바치면 예쁜이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데! 선업(善業)을 잔뜩 쌓을 기회가 자주 있는 게 아닌데!”

         

       점술사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긴 머리카락이 뭉텅 뽑히고 피가 송골송골 흘러나와 머리를 타고 흘렀지만, 점술사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가, 곧 자신의 뺨을 스쳐 지나가는 간지러운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거울 속에서 팔을 뻗어서 제 얼굴을 쓰다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화를 가라앉혔다.

         

       “진정하고 정리를 하자.”

       “정리요?”

       “일단 하나 전제를 깔자고. 이 기회를 버릴 수는 없어. 그렇지?”

       “그렇…죠. 하지만 그 괴물이 있는데 쉽지는 않을 텐데요?”

         

       점술사는 조금 전까지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악령이 떼로 몰려와 습격한, 그야말로 악몽 같았던 전투를.

         

       쉽게 보기도 힘든 악령을 어디서 그렇게 모아왔는지.

         

       온갖 끔찍한 몰골을 한 악령들이 음식을 앞에 둔 아귀처럼 달려들었고,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온갖 일을 겪었던 점술사도 학을 뗄 정도였다.

         

       게다가 악령을 보내는 주술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령을 보내고, 악령을 강화하며 끊임없이 그를 괴롭힐 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전면으로 나서는 등의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렇다고 포기를 할 거야?”

       “어머. 무슨 소리를.”

         

       좋은 일을 하면 선업(善業)이 쌓인다.

       켈트 주술에서 말하기를, 사람이 인생에서 걸어온 길은 기록이 되고, 기록이 쌓이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가 쌓이고 쌓이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늘어난다 하였다.

         

       세상에 유의미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

       그것을 켈트에서는 ‘영웅’이라고 불렀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걸 포기해요? 미쳤어요?”

       “암, 당연히 그래야지.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영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이아린과 엘라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선물과 같았다. 가지고 있는 선업을 왕창 늘리고, 단번에 영웅이라는 목표 지점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 방법이 인신공양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였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한 사람을 바쳐서 두 사람이 이득을 얻으면.

       좋은 일이고, 선한 일이 아니겠는가.

         

       “기회를 보자고, 기회를.”

       “다 얻으면 좋고. 다 못 얻어도….”

       “보니까 그놈 여동생은 노리기 힘들어도, 남은 하나는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어머, 당연히 노릴 거면 그 애들을 노려야죠.”

       “그렇지! 구명(救命)의 선업(善業)을 쌓는 일인데, 개화(開化)보다 우선해야 하는 게 맞지!”

         

       둘은 얼굴을 마주한 채 결론을 내렸다.

         

       가능하다면 둘 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토끼를.

         

       “좋아요. 기회를 노려보죠.”

         

       점술사는 자신의 최우선 목표를 떠올렸다.

         

       눈처럼 하얀 긴 머리카락.

       제단에 올라간 첫째 아이가 흘리는 피보다도 더 새빨간 눈.

       가뭄 날에 떠다니는 하얀 구름보다도 새하얀 피부.

       작달막하게 부풀어 있는, 제 자매의 흔적을 담은 가슴.

         

       “재료가 많이 필요하겠어요.”

         

       점술사는, 하얀 마녀를 떠올리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 * *

         

         

         

       호텔로 돌아온 진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아린과 이세린이 머무는 숙소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사람을 똑바로 앉혀놓았고, 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종이에 기괴한 형태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이 문양을 아느냐?”

         

       그 문양은 참 기묘했다.

       아니, 기괴하다고 표현해야 옳을지도 모르리라.

         

       소용돌이치는 눈알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원시인이 고래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모습 같기도 하였고, 심해 속에서 잔뜩 찌그러진 괴물을 형상화한 것으로도 보였다. 얼핏 보면 어린아이의 낙서 같기도 했으며, 한때 반짝 유행했다가 사라져버린 컬트적인 무언가로 보이기도 했다.

         

       “오래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아린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갑자기 방으로 쳐들어오더니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그러더니 그걸 보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묻는다.

         

       “무슨 일인데? 그리고 이 그림은 뭐고?”

         

       얼굴이 심각한 것을 보니 그냥 단순한 퀴즈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아린의 옆에 앉아 있던 이세린은 악마가 귀띔이라도 해준 것인지, 아는 체를 했다.

         

       “크, 크롬 두브(Crom Dubh)?”

         

       진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다. 크롬 두브. 혹은 크롬 크루어히라고도 불리는 것의 상징이니라.”

         

       그는 이세린에게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것이 새겨진 주물(呪物)들을, 네가 찾아야 하느니라.”

         

       이세린이 얼떨떨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왜 그래야 하냐는 의문이 잔뜩 담겨있었다.

         

       “으, 응?”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악마가 그녀의 귓가에 무어라 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이세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얼굴에 경악이 가득 담겼다.

         

       “이, 인신공양?!”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