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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푸욱.

       

       단검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들어갔다. 

       

       실비아가 가르쳐 준 대로, 검끝부터 검날 밑동까지 표적과 닿는 부분을 전부 느낄 수 있도록 감아 쥔 손가락 끝에 묘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생생해.’

       

       허수아비 따위가 아니다. 

       

       팍팍한 상처투성이의 나무 조각 따위가 아닌, 진짜 생명체의 살갗을 파고든 칼날이 크랫의 살을 가르고 신경을 찢어 놓는 감각이 더없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평소라면 기겁을 하며 뺐었을지도 모르는 칼날을 오히려 더 깊이 박아 넣는다. 

       

       “퀴익…!”

       

       목이 뚫려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크랫은 그대로 숨통이 끊어져 축 늘어졌다. 

       

       “허억, 헉.”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몇 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정보량이, 살아 숨쉬는 근육의 세포와 뇌에 절절히 흡수되는 것 같았다.

       

       꿀꺽.

       

       단검을 뽑아 탁, 하고 피를 털자 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짝, 짝, 짝.

       

       “와우. 레온 씨. 진짜 첫 실전 맞아요? 저 몰래 나가서 마물 잡고 온 거 아니죠?”

       “실비아 씨 몰래 제가 어떻게 나가요. 밤에 화장실만 가도 다 알면서.”

       “헤헤.”

       “헤헤가 아니고….”

       

       내가 이마를 짚거나 말거나, 실비아는 말을 이었다. 

       

       “근데 진짜 완벽했어요. 역시 그렇게 훈련을 열심히 하시더니, 성과가 있었네요.”

       “쀼우!”

       

       실비아의 말에 동의하듯, 내 후드 안에 숨어 있던 아르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봐요, 아르도 그렇다잖아요.”

       

       실비아는 그새 다가와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통 훈련에서 아무리 잘 했어도 실전에서는 그 실력의 반도 안 나오는데, 이 정도면 엄청 훌륭한 거예요.”

       “…그런가요?”

       “그렇다니까요. 무려 적의 기습에 스치지도 않고 피한 다음 한 방에 급소를 찔러 버렸잖아요. 후후. 역시 보람이 있네요, 보람이 있어.”

       

       나는 단검을 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흥분과 긴장이 조금 가셔서인지, 이제야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떨림을 멈추기 위해 단검을 꽈악 잡았다. 

       

       “…워터.”

       

       그리고 차가운 물을 소량 소환해 단검에 묻은 피를 닦고, 손도 가볍게 씻었다. 

       

       “벌써 단검 닦으시는 거예요?”

       “음, 아무래도 피가 좀 튀기도 했고….”

       

       다시 검집에 집어 넣으려면 간단하게 닦아 두는 편이….

       

       “근데 어차피 곧 다시 더럽혀질 텐데요?”

       

       그 말과 동시에, 발밑에서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거리는 아직 충분히 있어. 다만.’

       

       파악! 팍!

       

       “쮜이익!”

       “쮜익!”

       

       이번엔 두 마리다. 

       

       “쮜익!”

       

       아니, 옆까지?

       

       “옆이랑 뒤는 제가 맡을 테니 레온 씨는 앞쪽만 맡아 주세요.”

       “알겠어요.”

       

       실비아는 언제 검을 뽑았는지, 이미 옆에서 튀어나온 크랫을 가볍게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나도 질 수 없지.’

       

       아니, 실비아 씨가 제대로 하면 당연히 지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하압!”

       

       땅에서 튀어나온 크랫의 1차 공격을 피하고, 한 마리의 목에 단검을 옆에서부터 역수로 꽂아 넣는다. 

       

       “쮜이이익!!”

       

       곧바로 왼손으로 크랫을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단숨에 단검을 뽑아, 동료의 원수를 갚으려는 크랫의 발톱을 막아 낸다. 

       

       카아앙!

       

       “큽!”

       

       역시 힘 대 힘으로 맞붙으면 기술에 비해 힘 스탯이 달리는 나에게 불리하다. 

       

       ‘그렇다면.’

       

       있는 힘껏 발톱을 위로 쳐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크랫이 그대로 발톱을 내리 그을 때.

       

       스윽.

       

       ‘실비아 씨가 가르쳐 준 카운터 동작.’

       

       옆으로 한 스탭 반을 순식간에 돌아, 횡베기.

       

       촤아아악!

       

       “퀴에엑!”

       “더블 스탭.”

       

       카운터엔 성공했지만 급소까지 깊숙이 베진 못했으므로, 이어서 곧바로 스킬을 발동해 마무리까지.

       

       ‘이제 진짜 끝….’

       

       타앗!

       

       ‘…이 아니었어?’

       

       방금 마무리한 크랫 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내 밑에서 나타난 게 아니야.’

       

       이건 입구에서 나온 거다.

       

       하지만 이미 거리는 가까워진 상태. 

       단검을 빼서 막기에는 늦었다. 

       

       ‘회피 태세를….’

       

       초장부터 마력 소모가 심한 스킬을 쓰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지만, 이럴 땐 어쩔 수 없지.

       

       “회….”

       

       그리고 그 순간.

       

       “쀼—”

       “—파이어 애로우!”

       

       나는 내 앞에 별안간 나타난 마법진을 향해 반사적으로 왼손을 뻗으며 외쳤다. 

       

       화르륵!

       

       “쮜이이익…!”

       

       마법진에서 순식간에 생성된 커다란 화염 화살이 크랫의 몸통에 제대로 적중했고, 화살이 박힌 채 나가 떨어진 크랫은 곧 새까맣게 타 연기를 뿜었다. 

       

       “후우….”

       

       우리 아르, 내가 수련할 때 혼자 놀다가 실비아 씨 없는 날에는 마법 연습도 조금씩 하더니 파이어 애로우 자체 체급이 많이 올라갔네…?

       

       정통으로 맞았으니 한 방에 죽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렇게 까맣게 탈 정도라니.

       

       ‘여튼, 아르 덕분에 마나를 아꼈어.’

       

       이번에 새로 배운 ‘회피 태세’는 내가 이미 「레키온 사가」에서도 암살자 클래스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 요긴하게 써 먹었던 상당히 좋은 스킬이다. 

       

       ‘웬만한 공격은 그냥 발동하는 것만으로도 일정 시간 동안 흘려 주니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선 어떤 방식으로 발동하는지 궁금해 실비아가 없을 때 수련장에서 아르한테 나를 향해 쬐그만 아이스 애로우를 날려 보라고 한 결과.

       

       발동하자마자 반응 속도를 극한으로 올려 주는 동시에 최적의 회피 동선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도록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와도, 소리가 들리거나 다른 감각으로 감지만 할 수 있다면 바로 반응이 되니, 사기 스킬이 아닐 수가 없지.’

       

       다만 앞서 말했듯 가장 큰 단점은 마나 소모량이 크다는 것. 

       

       몸의 반응속도를 극한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몸 전체에 마나를 강하게 뿌려 줘야 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마력과 숙련도로는 한 번에 최대 마나의 1/3정도가 훅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나 대신 마법을 써 줘서 마나를 아낄 수 있게 해 준 아르한테 고맙긴 한데….

       

       “와아. 레온 씨, 그 찰나의 순간에 왼손으로 마법까지…? 대단한데요.”

       

       문제는 이게 좀 부담스럽다는 거.

       

       실비아는 나를 보고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마검사인가요? 오른손으로는 검을, 왼손으로는 마법을. 크으, 멋있네요. 마법의 퀄리티도 진짜 훨씬 올라간 거 보니 단검 수련뿐 아니라 저 없을 때 마법 수련도 열심히 하셨나 봐요.”

       “하하, 그럼요.”

       

       이래서 웬만하면 아르한테 마법은 안 쓰게 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뭐, 여기서 회피 태세를 썼어도 어차피 비슷한 반응이었으려나.’

       

       나야 스킬 시스템이 있으니 작게 영창하는 것만으로 회피 태세가 자동 발동되지만, 여기 원주민 암살자가 이걸 쓰려면 마나를 직접 전신으로 강하게 뿌려 줘야 할 텐데.

       

       그걸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성공해 보이면 그것 역시 다른 사람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일 테니.

       

       ‘어쩌면 급할 때 파이어 애로우를 써 버린 게 차라리 더 자연스러운 거였는지도 몰라. 어쨌거나 난 원래 마법사니까.’

       

       회피 태세를 실비아 앞에서 쓰는 건 좀 더 단검술이 숙련된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겠지. 

       

       ‘마법도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어. 나랑 아르의 실력 차가 너무 벌어져 버리면 내가 단독으로 마법을 썼을 때 의심 받을 수 있을 테니.’

       

       왠지 점점 더 빡세져 가는 것 같긴 하지만, 어쩌랴. 이게 다 아르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하는 수밖에.

       

       “하하. 그나저나 이렇게 둘 다 해 보니, 확실히 근접 전투랑 마법은 다르긴 하네요.”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멀리서 마법을 쓸 때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이렇게 맞붙고 검을 찔러 넣어 보니 진짜 용병들이 매 순간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매번 최전방에서 싸워 주시던 실비아 씨도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한 말이긴 했지만, 말 자체는 진심이었다. 

       

       마법사라는 직업이 비교적 희귀하고 대우를 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검이나 도끼 같은 근접 무기를 쓰는 용병들은 마법사들을 샌님이다, 겁쟁이들이다 뒤에서 떠들어 대곤 하는데,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직접 마물과 가까이서 싸워 보니 그동안 ‘겁쟁이 쉼터’에 있다가 이제야 ‘사나이 클럽’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전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실비아의 대단함이 피부에 좀 더 와 닿았다.

       

       “흐흠. 갑자기 제 칭찬을 해 주시니 좀 당황스럽지만…. 기분은 좋네요.”

       

       실비아는 이번엔 자기가 칭찬을 받자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이제 진짜로 들어갈까요, 레온 씨? 입구 근처에 있는 건 다 잡은 것 같은데요.”

       “그러죠. 제발 펜던트가 안에 있었으면 좋겠네요.”

       

       입구 근처에서 꽤 열렬한 환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안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자, 우리 앞에는 갈림길이 나왔고. 

       

       “…흐음. 두 갈래길인데 어떻게 할까요. 왼쪽부터 먼저 가 볼까요?”

       

       내 제안에 실비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냥 나눠져서 찾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나눠져서요…?”

       

       실비아 씨야 실력이 워낙 뛰어나니 걱정이 없다지만, 나는 혼자….

       

       ‘아니, 잠깐만. 혼자가 아니지.’

       

       이거 오히려 이렇게 되면….

       

       잠깐 실비아와 떨어진다는 생각에 망설였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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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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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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