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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

       저게 지금 숨겠다고 숨은 건가?

        

       만약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저런 자세를 취한 거라면, 엄청나게 효과적이라고 칭찬할 수밖에 없겠다. 저번 주에 내가 사람들 이목을 끌기 위해서 했던 온갖 일들 보다 더 효과적이잖아.

        

       그러고 보니 저런 방법도 있었네. 대놓고 선생 하나 스토킹하기 시작하면 공포에 질려서 경찰에 넘기지 않을까?

        

       ……그만두자. 아무리 그래도 예사라를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대머리 선생 머리에 물 뿌린 것도 죄라면 죄다만, 그렇게 따지면 교내 따돌림이 훨씬 큰 죄다. 아무리 그래도 여론의 판단이 한쪽으로 쏠려버릴 중범죄와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아무튼, 나는 그 나무 밖으로 살짝 펄럭이는 파란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다 뒤로 휙 돌아섰다.

        

       나야 뭐, 어차피 애들 이목 끌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고. 뒤에 저런 스토커 하나 달고 다니면 애들도 절대 무시 못 하게 되겠지. 나로선 환영이다. 게다가 선도위원은 교내에서 나름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벌점을 매기거나 징계 위원회에 올리는 일을 반복해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다.

        

       그나저나, 학생회장한테 한 소리 들었을 텐데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를 쫓아 오다니, 그 근성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

        

       ……진짜로 인정해줘야겠다.

        

       “저기, 사라야. 아까부터 우리 뒤를 누가 계속 따라오는 것 같지 않아?”

        

       점심시간에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교내를 돌아다니는데, 내 옆에 붙어있던 하늘이가 그렇게 물었다. 사실 따라오는 것 ‘같다’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이미 명백하게 따라붙은 이가 있었으니까.

        

       그렇다. 아침에 등교할 때부터 내 뒤를 따라다닌 선도위원 손아름에 관한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진짜 대단하다. 쟤가 나의 등교 시간을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내가 등교하기 한참 전에 미리 학교를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니까. 게다가 나는 오늘 평소보다 더 일찍 등교했다.

        

       조회 시간 직전에서야 시무룩한 표정으로 교실에 온 하늘이를 보니 먼저 연락을 해줬어야 했을 것 같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평소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거의 두 달 정도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굳이 들고 다닌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져서, 양혜인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따로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내 얼굴을 보고 바로 표정이 활짝 피긴 했지만.

        

       아무튼, 선도위원은 그 뒤로도 내 뒤를 계속 따라다녔다. 본인 나름대로 복도 모서리나 문 옆, 신발장 뒤, 보도 옆의 풀숲 뒤나 나무 뒤에 숨기는 했지만, 그 긴 머리 때문에 다 보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죄다 이상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도 본인은 모르는 것을 보면, 대체 어떻게 외부 입학전형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 긴 머리나 좀 묶어 올렸으면 그나마 눈에 덜 띄었을 텐데.

        

       혹시 공간지각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걸까? 가끔 시험은 백 점씩 맞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프라모델 조립 같은 걸 못 하는 예도 있었으니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아까 아침부터 계속 저러고 있어. 그냥 둬도 별문제는 없겠지.”

        

       선도위원이 학생회장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진실을 들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냥 그러면 안된다는 경고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이야기를 들었건 저렇게 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이야기를 믿지 않거나, 아니면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도 자신의 정의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어느 쪽이건 참 대쪽 같다고 할 만하겠다.

        

       저렇게 강렬한 캐릭터 성을 가진 애가 히로인이 아니었다는 게 의아하긴 하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럼, 혹시 스토커……?”

        

       하늘이의 반대쪽에 붙어있는 이수아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얘들 오늘은 좀 거리를 두고 서 있네. 물론 여전히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붙어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던 지난주와는 다소 달랐다. 그냥 양쪽에서 가볍게 팔짱을 끼고 있는 정도였다.

        

       ……혹시 정말로 얘네들이 유서를 본 걸까?

        

       유서를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제일 큰 존재는 양혜인이었고, 그다음은 얘네들이었다. 내 방에 와 본 적이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어제 갑자기 담을 넘어 쳐들어온 소희를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양혜인이 이 아이들에게 유서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래, 도대체 왜?

        

       양혜인은 그저 예사라의 고용인이었다. 지난 3년 동안은 나름대로 정이 들었다고 해도, 양혜인은 그 모습을 절대로 예사라에게 비추지는 않았다. 그나마 내가 몸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후에나 먼저 말을 걸거나 나의 행동을 용인해주는 수준이었지.

        

       그런데, 이 아이들 세명에게 굳이 찾아가 그 유서를 보여주며 이야기해 줄 이유가 뭐가 있냐는 말이다.

        

       ……내가 지금 하늘이나 이수아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지.

        

       이것도 일단은 미뤄두기로 할까.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양혜인도 돌아올 거고. 그때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도 되겠지.

        

       “스토커라고 하기에는 학교 내에서만 따라다니니까. 으음…….”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직 점심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

        

       “얘들아.”

        

       나는 내 양쪽에 붙어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우리 잠깐, 산책이나 하지 않을래?”

        

       뭐, 사실 산책은 지금도 하고 있긴 했지만. 기왕이면 CCTV 없는 그곳으로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조금 아쉽게도 공원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공원에 CCTV가 없는 이유는 부잣집 자식들이 자기네끼리 이런저런 물품이나 금품을 주고받는 용도이기 때문이라고 했었지. 그 말이 맞는 말이긴 한가 보다. 이미 공원에는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씩 모여서 조용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서로 노트를 주고받거나 책을 주고받는 일도 있었다.

        

       저 책 사이에 뭐가 끼워져 있을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아무튼 그랬기에, 사실 공원은 그다지 조용한 곳은 되지 못했다. 아주 시끄럽다고 할 수준도 아니었지만,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뭐, 그것도 우리 셋이 나타나기 전까지였지만.

        

       공원에 우리 셋—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나타나자, 우리 셋과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아이들부터 우리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이미 말을 멈춘 뒤였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하긴, 무섭겠지. 필요하다면 회사 하나쯤은 우습게 박살 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중소규모 주식회사는 내 개인 자산만으로도 쥐고 흔들어버릴 수 있다. 거기에 이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내가 듣기라도 하면 그대로 약점으로 사용될 테니까.

        

       나를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이유가 뭘까? 내 뒤에 있는 최나경 회장의 그림자 때문에, 내가 요즘 미친년처럼 날뛰고 있어서?

        

       아니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예사라에게 해 온 짓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서?

        

       어느 쪽이 되었건 제 발 저리는 일이긴 할 것이다.

        

       내가 일부러 아이들이 앉아있는 의자 근처를 슥슥 훑고 지나가자, 아이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공원을 반 바퀴쯤 돌자, 반대편에 앉아있던 아이들도 얼른 일어나 자리를 떠버렸다.

        

       참, 겁도 많지.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오늘 밤에 침대 위에서 불안해하며 덜덜 떨 것을 생각하면 조금 시원했다.

        

       한가람 팀장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엔 일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확실히,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거 딱딱 지킬 것 같은 사람이긴 했다. 정확히 돈 받은 만큼만 일하는 사람. 하긴 그런 사람이 공사 확실해서 같이 일하기 좋긴 해.

        

       그렇게 비어버린 공원의 정중앙에 있는 의자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멀뚱멀뚱 보고 있는 하늘이와 이수아에게 웃어 보이며, 나는 의자 양쪽을 손으로 툭툭 쳤다.

        

       “일단 여기 앉아 봐.”

        

       평소와는 다르게 일부러 교내의 공원으로 나온 내가 조금 의아스럽긴 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둘은 내 말대로 내 양옆 자리에 앉았다.

        

       좋아, 그러면 어떤 자세로 있는 쪽이 가장 ‘악역영애’다울까?

        

       역시, 다리를 꼬고 오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쪽이 제일 좋을 것 같다.

        

       내가 다리를 꼬고 앉자, 그제야 두 사람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한 번 나와보지 그래?”

        

       내가 조금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저 멀리 있는 나무 뒤에서 선도위원이 나왔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는 제일 굵은 나무였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뒤에 완벽하게 숨기에는 얇은 나무였다. 사실 저기 서 있는 것이 너무 뻔히 보여서, 심지어 나를 피해 자리를 뜨는 아이들마저 선도위원을 흘끔거릴 정도였다.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내가 숨어있는 걸 알아차리다니, 그래도 눈썰미 하나는 좋은 모양이야?”

        

       주변에 아무도 없고, 자신을 상대하는 것이 무려 우리 셋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선도위원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고 있었다.

        

       ……사실 방향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그 용기 하나는 가상하긴 했다. 아마 이 아이는 예사라가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청소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 돈을 믿고 교내에서 악행을 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판단한 거고, 자기 나름대로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 나선 것일 거다.

        

       문제는 그 괴롭힘의 방향이,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봐선 절대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숨겨져 있다는 거지만.

        

       그래서 게임 엔딩에서도 예사라가 파멸을 맞이할 때, 유하늘은 끝까지 예사라가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뭐, 예사라의 공격 타겟이 유하늘을 향해 있었으니 그럴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긴 했겠지만.

        

       그나저나, 솔직히 눈썰미 그런 거 없어도 다 보이는 수준으로 숨어있었는데…… 말해봐야 본인이 상처받을 뿐이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아까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

        

       내가 질문하자, 선도위원은 나를 찌릿,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양쪽에 동급생 끼고 다니는 거?”

        

       내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보자, 선도위원의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이 파였다.

        

       “그것뿐이겠어?”

        

       “그거 외에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오늘은 얌전하게 있었잖아.”

        

       “……얌전한 학생은 다른 반 교실에 찾아가서 칠판에 은하수를 그리지는 않아.”

        

       내가 선생이 수업하는 칠판에 별을 좀 많이 그려 넣기는 했다. 그것도 선도위원네 반을 굳이 찾아가서 그런 짓을 했으니, 이렇게 어그로가 끌리는 것도 당연했다.

        

       양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말했다.

        

       “너희 반 애들한테 한 번 물어보지 그래?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

        

       그래.

        

       내가 이 장소로 나온 이유는, 선도위원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번에 선도위원이 했던 일은 모두 실패했다. 나에게 벌점을 주는 것도, 징계를 먹이는 것도. 학생회장 선에서 잘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그대로 포기할까 했는데.

        

       웬걸, 선도위원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기특하게도.

        

       기왕 남아있는 기회였으니, 활용하는 편이 제일 좋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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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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