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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1

    <731 – 누가 그랬어(2)>

     

    “흘흘흘.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딱히 지원사격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시종장 오카시이네 할아버지가 나를 두둔해주셨다.

     

    “선황파파는 어디에 두고 혼자 오셨어요?”

    “마침 한 가지 충고를 해드리려던 참이었기에 잠시 시간을 내었답니다.”

    “무슨 충고요?”

    “재단 이사장의 비공정이 차원도약으로 지나가던 차원 항공로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구치며 차원계 하나를 초토화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오잉? 그거 핵 아닌가?”

    “역시 재단의 후계자답게 신무기의 정체를 짐작하시나 보군요.”

    “…그, 그럴지도…?”

    “조만간 아카데미와 재단의 격돌이 일어날지 모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흘흘흘. 아무래도 재단의 계획을 아는 다크프린세스에게는 괜한 기우였던 모양이지만 말입니다.”

     

    그렇구나.

     

    “근데 그걸 시종장 할아버지는 어떻게 아세요?? 황제파파도 모르시던데!”

     

    시종장 할아버지가 히죽 웃으며 제안했다.

     

    “노구의 조건을 들어드리면 기꺼이 비법을 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와 정말요?”

     

    이 비밀스러운 할아버지가 통 크게 선심을 쓰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당연히 내 호기심은 가득 찼다.

    대체 무슨 일을 시키고 싶어서 그 무거운 입으로 의뭉스러운 비밀 하나를 밝히겠다는 걸까?

     

    “노구의 조건은 케이크 한 조각 먹기처럼 아주 간단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와! 그 간단한 조건이 뭔지 알려주세요!”

    “다크노디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겁니다.”

     

    근데 이 할아버지, 갑자기 풀 악셀을 밟으신다.

    다크노디를 지금 죽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고민을 하기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

     

    “시종장 할아버지 선 넘으시네!”

     

    넥타이를 잡아당겨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목덜미에 손톱 끝을 겨누었음에도 시종장 할아버지는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허허 웃었다.

    손녀의 장난에 휘말려서 난처해하는 할아버지처럼 순박한 얼굴을 하는 것치곤, 다크노디를 죽이라는 소리의 살벌함이 더욱 괴리가 느껴지는 상황.

     

    “재미난 일화를 드려드리죠.”

    “저는 이야기보다 사과부터 듣고 싶은데요!”

    “일생을 바꿀 기로가 바로 이 자리라면 구미가 당기십니까?”

     

    단순한 이야기였다면 별 관심도 없었겠지만, 선택지가 동반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

    <돌발퀘스트 – 운명의 갈림길>

    집사장 오카시이네는 내력을 알 수 없는 수상한 인물이며, 그 정보력 또한 원천을 가늠할 수 없는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런 존재가 입에 담은 운명의 갈림길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습니다.

     

    집사장의 사과를 받고 집사장의 흥미를 상실할지, 집사장의 흥미를 얻고 다크노디의 호의를 상실할지.

    집사장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다크노디를 죽일지, 다크노디를 살리기 위해 집사장의 비밀을 거부할지.

     

    모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

     

    퀘스트.

    이벤트.

    나를 지켜보는 신들이 ‘운명의 갈림길’임을 인정하는 증거가 나타났다.

    이 선택은 당신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거대한 분기점입니다, 라고 적힌 푯말을 망치를 들고 내 앞에 땅땅 때려 박는 수준의 공개선언!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절명기:일격필살>

     

    손톱 끝에서 솟구친 마나가 단숨에 집사장 할아버지의 목을 관통했다.

     

    “제 영구분신을 언제 수확할지는 제가 정해요!”

     

    <흐르는점토>

    <부정한생물>

     

    꾸물거리며 흘러내린 시종장 할아버지의 육신이 두 걸음 뒤에서 다시금 본래의 형상을 되찾았다.

     

    “이런. 화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은 사람들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어 오해를 샀다면 사과드리지요.”

     

    죽여도 죽일 수 없는 기믹을 지닌 존재.

    지금은 끝을 볼 자리가 아니었다.

     

    “흥.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똑바로 말해요. 갑자기 다크노디를 죽이라고 권하는 이유가 뭔데요?”

     

    옷에 뚫린 구멍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재주 좋게 복원한 시종장 할아버지.

    뒷짐을 지며 앞으로 나선 할아버지가 도시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흔히 분신하면 떠오르는 <도플갱어>라는 몬스터에게는 한 가지 충동이 있습니다. 자신이 처음 목격한 존재의 몸을 흉내 내는 것으로 모자라 그 존재의 인생을 빼앗으려는 <강탈욕>입니다.”

    “…그걸 지금 말하는 의도가 너무 불순한데요?”

    “흘흘흘. 선을 넘는 것이야 한 번이 두렵지, 두 번이 어찌 두렵겠습니까.”

     

    시종장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내 심기를 거슬렀다.

     

    “도플갱어는 보통 겉의 모방만으로는 완벽한 모방을 해내지 못합니다. 지식의 부재. 언어의 부재. 모방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무언가를 느끼지요.”

     

    도플갱어는 ‘나’라는 확실한 정체성이 없다.

    그런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극도의 정신적인 불안정성을 지닌다.

    이는 나 또한 게임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지식이다.

    실제로 도플갱어가 나오는 거울던전에서도 봤었지.

    날 흉내 내는 도플갱어 여왕 거울노디를!

    아카데미 던전테마파크에서 다른 던전보스를 수집하면 나를 좀 더 닮을 수 있지 않겠냐고 슬며시 미끼를 던져보기는 했는데, 지금쯤 잘 수집 해놨으려나 모르겠네.

    그런데 지금 상황이 한가하게 거울노디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기억을 교류하며 자신의 복제대상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플갱어도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 그 말로는 좋지 못합니다.”

    “왜요?”

    “나는 너보다 완벽한 네가 되었는데, 이제 네 존재는 무슨 쓸모가 있지?”

    “!”

    “그것을 도플갱어와 복제 대상이 깨닫는 순간, 둘은 하나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유일한 진짜가 되기 위한 사투를 벌이지요.”

     

    시종장 할아버지의 시선이 다크노디가 들어간 집으로 향했다.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그런 식으로 ‘숙주’의 몸이나 ‘복제대상’의 신분을 빼앗은 거물들에 대한 소문은 여럿 있으며 학자들은 그런 강탈당한 인생을 구분할 방법을 ‘친자식’의 존재 유무로 결정합니다.”

     

    그건 나도 모르는 설정이다.

     

    “왜요?”

    “도플갱어가 외면을 모방하고 성격을 따라하며 기억을 담습하며 살아갈 수는 있어도 생식기능까지 완벽하게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구나! 지식이 늘었당!”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죠! 다크노디는 도플갱어가 아니라 제 분신인걸요? 저랑 같은 생각,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으면 비효율적인 낭비를 할 리가 없어요!”

     

    수많은 <시간 낭비>나 <잘못된 루트 분기>에 대한 지식이 있는데 잘못된 선택으로 만사를 그르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리가 없잖아?

     

    “시종장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다크노디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요. 괜히 귀담아들었어. 완벽히 시간 낭비였어요!”

    “흘흘흘. 이미 그 길을 걸은 선객이 어찌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홀로 그 길을 걷는다고 고독할 일은 없습니다. 예로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자들도 정작 역사를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우행의 반복을 피하려는 자는 드물지요.”

    “누군가에 빗대고 싶다면 제가 아는 자의 이름을 대세요! 제가 모르는 먼 과거의 일 따윈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까요.”

    “흘흘흘. 걱정마시길. 당신처럼 <영구분신>을 만든 어리석은 이가 나타났던 시기는 그리 오래 지난 일도 아닙니다.”

     

    확신을 품은 내게 시종장 할아버지가 더욱 음험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지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둘이라면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서는 적을 이길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생각했답니다. 분신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얻지 못한 힘을 얻도록 만들자고.”

     

    시종장 할아버지의 발치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을 살았기에 뿌리를 뻗은 토지조차 말라비틀어진, 마치 지난 세월만큼이나 짙고 거뭇한 그림자였다.

     

    “분신은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본체가 할 수 없는 일도 척척 해낼 수 있는 훌륭한 존재가 되었지요. 본체는 크게 기뻐하며 권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적을 물리치자.’ 분신은 그래야겠다고 대답하며 본체를 찔렀지요.”

    “…!”

    “어째서? 본체가 부정해 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배신당했죠. 분신에게는 어느새 본체 또한 적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 자신과 내가 지닌 관계들을 내 것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다크노디는 달라요.”

    “기억의 교류조차도 도플갱어의 배신을 야기했습니다. 기억의 공유라는 교류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하길 바란다면 터무니없는 오산입니다. 해가 지날수록 느는 것은 나잇살뿐만이 아니지요. 소신은 알 수 있습니다. 다크노디도 다르지 않음을.”

    “무슨 근거로 확신해요?”

    “오크노디. 그대의 ‘파파’ 또한 이미 지나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지간한 개소리는 흘려들으려던 고인물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 파파요?”

    “모든 용사가 쓰러지는 종말점인 <교장>을 깨닫고 그를 타도하기 위해 어둠에 귀의하는 분신을 창조한 자. 반복되는 패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 용사가 내놓은 해법으로서 탄생한 삼대거악의 일축. 뒷세계의 지배자이자 결사의 정복자.”

    “헉. 그 수식어는…!”

    “<재단의 이사장>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된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와이히엠하이.

    재단파파가 나와 다크노디와 같은 <본체와 분신>의 관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파파에 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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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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