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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5

        

       본래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심리다. 이는 단순히 회피적 성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아주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판단 아래에서 나온 결정이기 때문이다.

         

       수습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터진 문제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고, 수습하는 것에 실패했다면 어차피 터질 문제가 터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어느 쪽이나 손해를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판단’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실패하게 된다면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대부분에는 이자가 붙기 마련이니까.

       빌린 돈은 불어나고, 고기는 오래 두면 썩어버리고, 과일은 벌레들이 알을 까고 제집처럼 드나들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들 역시 그러한 이자를 치르게 될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직접 말했다면 모르되, 혹은 수습하고 정보를 공유해줬다면 모르되 한창 일이 터지는 중에 연락이 왔다는 것은- 불길한 생각밖에 불러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특히나 얼마 전 난리가 날 뻔한 것도 있으니…. 주도권을 서로 전쟁 직전까지 갔던 상대편 나라에 넘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 것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일까?

       일본에서 온 연락은 추궁이나 비난이 아니었다.

         

       [ 합동 군사작전을 합시다. ]

         

       합동 군사작전.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것은 군대가 아니라 자위대이기에 ‘합동 작전’이 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양국이 힘을 합쳐서 군사 행동을 벌이자는 일종의 화해 제의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한국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옛 북한 땅에서 악귀가 출몰해 다른 나라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에서부터 책임 추궁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그것을 그냥 넘어가는 데다가 같이 토벌하자고 제의까지 한다니….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한때 적국이 될뻔했던 나라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해당 작전을 같이 진행하면서 일본의 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늠해볼 수 있기까지 하지 않던가? 혹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특수 전력- 영능력자나 신관 같은 이들의 실력이나 그 숫자 역시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평화적인 성향의 사람도, 호전적인 사람의 사람도 거절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아무런 이득이 없느냐 하면 또 아니었다.

         

       일본이 얻은 첫 번째 이득은 주도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한국도 곤란하지만 일본 역시 추궁하기 곤란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악귀?

       물론 한국 땅에 있다.

       단순히 ‘한반도는 전부 대한민국의 땅이다.’라고 글로만 적혀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북한의 멸망 이후 명백하게 한국이 점유하고 있는 통일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악귀가 발견된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영역이라는 개념이 육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굳이 따져보자면 악귀는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대한민국의 영해에다가 물건을 집어 던지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굳이 건져 올린 것은 일본의 무인들이다.

         

       던진 것이 한국의 악귀였다면 그것을 일본의 영해 내에서 건져 올린 것은 일본의 무인들이라….

       그러니 굳이 책임을 따져보자면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악귀는 자연재해와 같은 것이라서 추궁하기도 어렵고, 추궁한다고 하더라도 ‘아니 악귀나 악령이 누가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가 있냐?’며 물고 늘어지면 그만이다.

       물론 저 악귀가 대한민국 정부의, 혹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누군가의 손에서 탄생한 실험체 같은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거야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그게 가능한 이야기나 하겠는가?

       까딱하면 빙의되거나, 물리력에 의해서 잔인하게 고문당하다가 죽고 영혼까지 고통받을 텐데.

       아무리 미친 이들이라도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뭐, 워낙 한국이라는 땅이 귀신이 많으니 딱히 의심이 가는 것도 없었다.

       당장 독도에서도 악귀 때문에 개고생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일본은 주도권을 얻는 것을 택했다.

       한국이 잘못했지만,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줌으로써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 전쟁 직전까지 갔던 나라이니만큼 이 자그마한 우위는….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부채감의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할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더해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는 효과도 있었다.

       현재 일본 사회 분위기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일본 곳곳에서 터져 나온 테러도 그렇고, 수도가 오염되는 대사건도 그렇고….

       일본 내부는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려 ‘테러’라는 미지의 칼날이 그들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그런 공포가 팽배한 상황에서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갔으니…. 당연히 일본의 신민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때 전쟁을 벌일뻔했던 나라와 ‘평화롭게’ 악귀를 퇴치하는 군사작전을 펼친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평화와 화합의 표식이다.

         

       뭐 그 외에도 한국의 영능력자들을 엿보거나, 군사력을 가늠해보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일본이 가장 중요시하는 위의 두 가지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일본이 제의한 합동 작전은 순조롭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측의 이해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으니까 말이다.

         

         

         

        * * *

         

         

         

         

       D-DAY.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공위성의 렌즈는 북한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드론들이 ‘T 포인트’를 향해 날아갔다.

       항공모함이 떠서 움직이고, 항공모함을 호위하기 위한 다른 배들도 따라붙는다.

       거기에 38선 근처에 수많은 기갑이 모여 혹여 남하하는 악귀들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를 다 하고.

       평소에도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던 베테랑들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러한 분주한 움직임 속.

       두 나라의 사람들이 만났다.

         

       일본에서는 각지의 신사에서 온 신관들, 음양청에서 온 음양사, 그리고 혹 물리력을 가진 악귀와 전투를 할 수 있어 데려온 무인들과 마법사까지. 숫자는 적지만 정예들을 끌고 온 것처럼 보였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악귀와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무인과 아티팩트를 든 군인들이 모였고, 아티팩트를 수리하기 위한 마법사들과 전투 마법을 갈고닦은 마법사. 그리고…. 한국에서도 귀중한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젊은 주술사 한 명.

         

       그야말로 정예 집단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무리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정예 집단의 분위기는….

         

       “오, 박진성 주술사!”

         

       “아. 반갑습니다.”

         

       의외로 훈훈했다.

         

       물론 모인 이들은 처음에는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통역용 아티팩트 덕분에 언어의 장벽이 없어진 덕분일까?

       사교성 넘치는 어떤 이가 처음 말문을 튼 것으로 시작으로 이들은 인사를 시작으로 서서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거나- 혹은 명성이 넘치는 이들끼리 모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관심이라는 것이 균등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곳은 주술사와 음양사가 주가 되는 무리.

       정확하게는 한국의 주술사 박진성과 일본에서 온 음양사들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제가 비록 음양사이기는 하지만- 아니, 음양사이기에 박진성 주술사님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지요. 아주 강력한 화염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던가요? 듣기로는 사이고 신관님과도 비견될 정도의 경지를 이루셨다고 들었는데….”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사이고 신관님이라니…. 혹 그분과 친분이 있으신지요?”

         

       “물론입니다. 음양청과 협력하시는 분이니까 모를 수가 없지요. 물론 민간에까지 그 명성이 퍼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뭐 그거야 그분이 스스로 명성을 떨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테지요.”

         

       이들의 분위기는 매우 훈훈했다.

       ‘사이고 신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는 음양사들이 박진성의 실력을 인정하였기에 마찰이 생길 일도 없었으며, 박진성 역시 음양사들을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 무리는 곧 군사작전을 앞둔 이들이라기보다는…. 어디 사교계 모임에 온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특히 한 명의 주술사 주변에 음양사 여럿이 모여있는 것을 본다면…. 정말로 사교계의 스타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은 신관과 영능력자의 무리.

         

       “…흥. 이거 참, 신력이 불편하구려.”

         

       “저런. 영력이 신력에 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쯧.”

         

       이들은 몰려 있음에도 제대로 된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대화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말에 가시가 돋쳐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대화하기는 하는데 친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서로 견제를 하기 위해서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신력과 영력의 특성 때문일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모시고 있는 존재의 급 차이 때문일까?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부류는 서로 불편한 모습으로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

         

       무기를 들고 있는 무인들의 무리.

       그곳에서는….

         

       “하하. 자네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산 가르기의 카즈오인가?”

         

       무인들 특유의 ‘대화’가 오갈 징조가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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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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